생각의 전환 : 치유• 치료의 효과가 일정 부분은 플라세보 현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말을들어도 당황하지 말기를 바란다! 아무리 기대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그에 따른 생물학적인 효과는 진짜이다.
여러 의학적 처치 가운데 한 가지를 고를 수 있다면, 플라세보 효과의 크기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을 염두에 두자. 다른 요인들이 모두 동일하다면 알약의 크기가 작은 것보다는 큰 것이 더 효과적이며, 웬만하면 캡슐이 가장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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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슷한 이유로 의료진을 선택할 수 있는 경우에는 기왕이면 공감 능력과배려심이 뛰어난 쪽을 고르도록 하자. 의료진의 태도에 따라서 여러분의몸이 치료에 반응하는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
• 담당 주치의든 다른 신뢰할 만한 정보원이든 여러분이 받는 치료가 어떤원리로 이루어지며 어떤 식으로 효과가 나타나는지 물어보고 설명을 듣도록 하자. 이러한 정보를 아는 것이 치료의 효과를 높일 수 있다.
• 이렇게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회복되는 모습을 상상해보고 경우에 따라서는 더 건강해지기 위한 계획을 세워보자. 이를 행함으로써 병세가 호전

될 가능성이 극대화된다.
가능하다면 같은 치료를 받고 회복되어 그 경험담을 나누고 싶어하는다른 환자들을 만나보자. 치료 결과에 대한 여러분의 기대를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오픈라벨 플라세보를 구하는 것도 고려해보자. 일부 온라인 소매상을통해서 상업적으로 거래되고 있다. 전문가와의 상의 없이 진짜 약 대용으로 사용해서는 안 되지만 기존의 치료와 병행한다면 효과를 높일 수도있다.
●무엇보다 몸과 마음의 연결성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해서 현실적이면서도 낙관적인 시각을 가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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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트윅 공항이 "공격"을 당했을 때, 경찰은 목격자들의 증언이 신빙성 있다는 데에 무게를 두고 싶었겠지만 뇌를 예측 기계라고 보는이론에 따르면 세상에 완벽하게 객관적인 목격자란 있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신경과학자 아닐 세스가 말했듯이, "우리는 단순히 수동적으로 세상을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세상에 대한 상을만들어낸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은 외부 못지않게 내면에서 비롯된 것이다. ‘‘‘ 우리의 뇌가 가지고 있는 기대는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것에 복잡하게 얽혀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뇌가 본래 주관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가라앉았던 기분을 회복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유난히 불안하거나 우울하고 마치 이 세상이 내가 가진 두려움을 더 확고하게 만들어주는 것만 같을 때면, 나는 나의 감정과 그에 따른 기대가 나의 지각을 왜곡시켰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 자신에게 납득시키려고 노력한다. 부정적인 기대는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는 대상까지도 좌우할 수 있으므로, 나는 분명한 친근함의 표현들에 집중하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더 애를 쓴다. 사실상 실생활에서 편향 수정 게임을 실천하는 셈이다.

제퍼슨은 "내가 아는 가장 뛰어난 의사 중 한 명은 자신이 지금까지 다른 모든 약을 합친 양보다 빵 부스러기와 색소 탄 물, 히코리 나무 재를 더 많이 썼을 것이라고 장담했다"라고 덧붙였다. 환자를 속이는 것 자체는 윤리적으로 옳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어느 선 이상 호전시키지도 못하면서 독성을 띨 가능성이 있는 약물을 마구 처방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판단이었다. 제퍼슨의 말대로 "선의의 거짓말인셈이다.

플라세보 효과에 다시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한 것은 헨리 비처라는미국의 한 마취과 전문의 덕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복무했던 그는 당시 피부가 뜯겨나가고, 뼈가 산산조각나고, 포탄의 파편이 머리, 가슴, 복부에 박히는 등 정말끔찍한 부상을 입은 병사들을 자주 맡아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그중 약 32퍼센트에 해당하는 적지 않은 수의 환자들이 아무런 통증을 느끼지 못했고, 44퍼센트의 환자들은 아주 약하거나 그럭저럭 참을 만한 수준의 불편감만 경험했다. 심지어 이 환자들 중 4분의 3은진통제를 권해도 필요 없다며 거절했다. 비처가 보기에는 격전지에서살아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일종의 마약 같은 강렬한 희열이 되어 부상의 고통을 마비시키는 듯했다.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한 환자들의 해석이 어떤 영향을 미쳐 뇌와 몸이 자체적으로 천연 진통물질을 내뿜은 것으로, 이는 당시의 의학 지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한참넘어서는 현상이었다.

임상시험의 설계는 완벽했지만 왠지 플라세보 집단의 참가자들에게서 점점 더 약의 효과가 커져서 실제 약의 효능과 통계적으로유의미한 차이를 증명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졌던 것이다. 예를 들면1990년대에 진행했던 진통제 임상시험 결과들을 살펴보면 유효약이플라세보보다 27퍼센트가량 뛰어난 효능을 보이고는 했다. 그러나2013년이 되자 그 차이는 고작 9퍼센트로 줄어들었다. 여기에서 핵심은 이 같은 결과가 거의 전적으로 가짜 치료제의 효능이 증가한 데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플라세보 약의 진통 효과는 1990년대와비교해서 2013년에 약20퍼센트 상승한 반면, 같은 기간에 유효약에서는 이러한 증가 추세가 관찰되지 않았다. (유효약은 이미 약으로서낼 수 있는 통증 완화 효과의 최대치에 다다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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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생활하는 공간이 아니면 시 쓰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 오히려 편한 공간에 있으면 집중하기 어렵기 때문에 카페에서 쓰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집이나 편한 공간이 아니라면 집중하기 어려울 것 같다. ‘어려울 것 같다‘라고 추측하는 이유는 사실 밖에서 써 본 적이 없어서 그렇다. 그럴 마음이생기지 않는다. 나는 방에서도 많이 움직이지 않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에서 보낸다. 밥도 책상에서 먹고, 책도 책상에서 읽고, 시도 책상에서 쓰며, 게임도 책상에서 한다. 잠을 자거나 ‘낭비 시간‘을 가질 때가 아니라면 항상 책상에 앉아 있다.

현재 나는 세 개의 키보드를 사용하는데, 그때마다 사용하는 키보드가 다르다. 매일매일 키보드를 바꿔 가며 사용하는 건 아니고, 평균적으로 계절마다 한번씩 바꾸는 것 같다. 키보드가 손에 익숙해지게 되면새 키보드를 사기도 한다. 기계식 키보드를 선호하며,
그중에서도 청축 키보드를 가장 선호하는 편이다. 청축 키보드는 기계식 키보드 중에서도 키압이 낮은 편인데, 그 키감이 좋아서 제일 선호한다. 자판을 누를때마다 찰칵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도 마음에든다. 시를 포함한 모든 글은 한글2022 에 작성하고있는데, 일정 주기마다 판형을 새로 만들어 가며 글을쓴다. 예전에는 좌우로 넓고 위아래로 짧은 판형에 시를 썼는데, 요즘은 그것보다 좁고 긴 판형에 시를 쓰고 있다. 보통 키보드를 바꿀 때마다 판형도 새로 만들어서 사용한다. 만약 PC가 없는 시대에 내가 태어나 글을 썼다면 펜과 노트를 여러 개 쓰게 되었을까?

오래요즘에는 솔직한 것에 대해 오래 생각하고 있다.
솔직한 것은 좋은 것과 비교했을 때 비교적 선명한 느낌이다. 어떤 솔직함은 무해하지만 어떤 솔직함은 누군가를 찌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보통 거짓말쟁이를 싫어하는데, 우리가 솔직함을 긍정하고 사랑해서 그렇다. 그러면 ‘솔직한 시‘는 무슨 시인 거지?
작가가 그냥 "솔직하게 썼어요." 하면 ‘솔직한 시‘가되는 걸까? 나는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작가로 산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누구라도 글을 쓰면서 살 수 있고, 글을 쓰면 누구나 작가라고, 작가도 직장에 다니는 사람과 다를 바 없다고, 사람들이 직업으로서 물건을 만들어 팔듯이 작가는 문장으로써 그럴 뿐이라고, 작가는 좋게 말해 봐야 문장노동자에 불과하고, 나쁘게 말하면 대부분 시간을 백수로 지낸다고. 작가의 삶에 가지는 환상이 오히려 작가로 사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루틴에 관한 자기 계발서가 쏟아지고 있다. 나도 다른 글에 루틴 이야기를 한 대목 쓰기도 했다. 거기서 나는 루틴이란 다만 개인의 성공을위한 습관이 아니라 우주를 지탱하는 힘이라고 이야기했다. 루틴을 틀에 박힌 행동이나 어떤 일의 반복이라고 본다면, 지구가 일정한 궤도로 태양 둘레를 돌고또 달이 지구를 도는 것도 루틴이다. 어김없는 계절의변화나 해류의 순환 등도 마찬가지다. 이 우주적인 차원의 루틴 없이 세계는 존속할 수 없다.

물론 개인의 삶에도 루틴은 중요하다. 그때그때 닥치는 일만 해결하며, 되는대로 살아서는 죽도 밥도 안되기 십상이다. 그 사실은 내가 누구 못지않게 잘 안다. 전업 작가로 살아온 요 몇 년간은 루틴을 만들고그것을 지키려는 투쟁의 연속이었다. 타인과의 다툼이라면 지든 이기든 벌써 승부가 났겠지만, 나는 나를떠날 수 없어서 이 싸움은 지금도 지루하게 이어지고있다. 내 루틴이라고 해 봐야 글을 쓰기 전에 집안일을 하는 것뿐인데, 그마저도 거르지 않고 제때제때 하지 못한다. 그러고 보니 일상적으로 늘 반복해서 하지못하는 일을 루틴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모르겠다.

뻔한 소리지만, 무엇이든 생각하기 나름이다. 똑같은 행동도 어떤 마음가짐이냐에 따라 무의미한 반복일 수도 있고, 루틴이 될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징크스와 루틴은 한 끗 차이다. 물론 그 한 곳도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는 것이다. 꽃나무」에관한 해석을 찾아보니 하나같이 꽃나무를 화자의 모습이 투영된 객관적상관물로 분석하고, 화자의 심리를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둔다. 그런데 나는 읽기를 거듭할수록 이 시의 주인공은 ‘나‘가 아니라 ‘꽃나무‘ 같다. 내가 생각하는 꽃나무에 도달할 수 있든 없든, 화자가 나를 떠나가든 말든, 열심으로 꽃을 피우는 저 꽃나무 말이다.

매일 똑같은 것 같아 마음의 두려움과 어둠도 늘 그대로인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느리게 쪼개어 들여다보면, 매 순간이 다르고 모든 것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거든요. 당연한 것은 없고 새롭게 느껴집니다. 매일 아침, 이런 새로움을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사소한 반복의 반복 속에서 변화를 감각하고 연습합니다. 아침 일찍 일정이 있는 날에는 기상 시간을 앞당겨서라도 물, 사과, 커피의 루틴을 이어 가는 편입니다. 조금 피로할 수 있어도 오히려 마음이 안정되고 기분을 관리하는 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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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말해, 하루를 이렇게 시작하지 않으면 그날은 아무 것도 쓸 수가 없다. 이는 생각보다 엄청난 재앙이기도 하다.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통제하고 일을분배해야 하는 프리랜서에게 루틴은 정말 중요하다.
루틴 없이, 그날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 일한다? 일어나는 시간과 자는 시간을 정해 두지 않는다? 아주 잠깐은 가능하겠지만 건강을 위해 이런 방법은 오래 추천하지 않는다.
일하는 시간을 정해 두지 않으면 일과 생활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그리고 경계가 모호해지면 언제든 일이 모든 시간을 침범하는 때가 오게 된다. 마감이 급한데 시간이 없으면 첫 번째로 마감하며 식사를 대충때우고, 두 번째로 잠을 줄이게 된다. 조금만 늦게 자면 마감을 얼추 맞출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커피와 술은・・・・・・ . 사실 시를 쓰는 동안 커피를 마시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보통 시를 쓰기 전, 혹은 휴식을 취하는 동안 마시는 편이다. 술 같은 경우는, 원래술 마시고 시를 쓰는 경우가 없었는데, 평소에 ‘혼자술을 마신다 시를 못 쓴다‘가 되는 경우가 많아지자.
조금씩 술을 마시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즐거운 일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셈이다. 물론 취할 때까지 마시진 않는다. 술을 마시는 것보다 시를 쓰는 게 더 즐거우니까.

요즘에는 솔직한 것에 대해 오래 생각하고 있다.
솔직한 것은 좋은 것과 비교했을 때 비교적 선명한 느낌이다. 어떤 솔직함은 무해하지만 어떤 솔직함은 누군가를 찌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보통 거짓말쟁이를 싫어하는데, 우리가 솔직함을 긍정하고 사랑해서 그렇다. 그러면 ‘솔직한 시‘는 무슨 시인 거지?
작가가 그냥 "솔직하게 썼어요." 하면 ‘솔직한 시‘가되는 걸까? 나는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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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다 보면 자기가 만든 논리나 세계에 매몰되곤한다. 거기서 빨리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집이라는 탈출구가 있다는 사실. 거기선 놀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겐 너무나 중요하다. 그러니까 글을 카페에서만 쓴다. 웃긴건 내게 친구들과 함께 쓰는 작업실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집에서 5분만 걸어도 도착할 수 있는 곳에 있다. 그런데 거기서는 시를 절대로 쓰지 않는다. 친구들이 보통 저녁에 작업실에 오기 때문에 낮에 거길 가면 똑같이 외롭고, 시간의 주인이 된 것 같겠지만. 그래도 시는 카페에서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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