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1년 5월부터 1522년 3월까지 마르틴 루터는 가명으로 신분을 가장하고 독일 튀링겐 숲에 있는 바르트부르크성에서 숨어지낸다. 그곳에서 그는 단 십일 주 만에 신약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했다. 바르트부르크에는 아직도 루터가 머물던 방이 남아 있다.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어느 날 밤 성서를 번역하던 루터가 고개를 드니 맞은편에 악마가 있었다고 한다. 루터는 반사적으로 책상 위의 잉크병을 집어들어 악마를 향해 던졌다. 다음날 아침, 책상 맞은편 벽에는 흩뿌려진 잉크 자국만이 남아 있었다. 아직도 바르트부르크성 루터의 방에는 그 자국이 선명하다. 이 일화는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눈먼 탐정」을 쓰던날 내 책상 맞은편 벽에 가상의 잉크 자국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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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율의 집은 복층 오피스텔이었다. 복층이라고는 하지만 이층은 일어서서 움직일 수 있는 높이가 아니었다. 은율은 그곳에 프레임 없는 얇은 매트리스를 놓았다. 낮은 좌탁과 스탠드도 놓았다. 유자가 자고 갈 때를 위해서였다. 버스로 두 시간이 넘게 걸리기는 했지만, 저녁을 같이 먹고 잠깐 노닥거리다가 집으로 돌아오기에는 충분한 거리였다. 그래도 유자는 가끔 은율의 오피스텔복층에서 하룻밤씩 자고는 했다. 은율이 마련해놓은 잠자리가 다정하고 고마워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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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말했다. 일 년 동안 연락 한번 없지 않았냐고. 임종도 안 보지 않았느냐고. 맞다. 그랬다. 사실이다. 이모도 엄마에게 끝까지 연락하지 않았다. 심지어 큰이모와외삼촌에게 신신당부했다. 절대 작은언니에게 말하지 말라고. 평생 이모의 말을 무시했던 큰이모는 왜인지 그 말은 참 잘 지켰다.
엄마가 자신과는 불행을 나누지 않은 게, 그렇게 미웠나? 아무튼그녀는 외삼촌의 입도 꾹 다물게 만들었다. 그래서 엄마는 몰랐다. 이모의 치료가 중단된 것도, 안진의 작은 병원에 입원해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아무것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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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서 혼자 잠들었다가 도중에 깨어날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다시 안방으로 간다. 혼자 잘 자다가 누군가의 곁으로 돌아갈수 있다는 것이 좋다. 어쩌면 나는 이 마음 때문에 잠들 수 있는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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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호흡을 골랐다. 그 안에 있는 사람한테 내 말이 들릴지 알 수 없어 가슴이 뛰었다. 몇 걸음을 더 걸어보았다. 거기 있을 수도 있는 사람을 그려보면서. 이제부터 내가•말하게 될 김춘영의 생애를 들을 수 있는 사람. 이 작업의 최종 청자. 텐트 앞에 다다를 때까지 나는 좀더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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