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살이 됐을 때쯤 나는 보라색 자전거를 타고 서쪽으로 열블록 정도 떨어져 있는 포타와토미 공원에 가곤 했다. 오크나무가줄지어 서 있고, 아무리 팔을 뻗어도 몸통둘레의 반이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단풍나무가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늙고 병든 사자, 목청껏 우는 공작 여섯 마리, 전시된 바퀴벌레들(정말이다), 콧김을 뿜어내는 당나귀가 있는 작은 동물원이 있었다.

그포타와토미 공원의 반딧불이와 벌들과 거대한 오크나무는 나를 알에서 깨어나게 해주었다. 세상의 밀물과 썰물로, 재잘거림과윙윙거리는 소리와 쉭쉭거리는 소리는 매일의 음악으로 나를 이끌었다. 호기심을 자극하며 내가 모든 것의 한 부분이라는 경이로운 감정을 느끼게 했다. 나의 침실 창문 밑 화단에 핀 국화는 여름을 느끼는 감각을 일깨웠다. 우리집 단풍나무위홍관조의 화려한깃털 색은 내게 가장 완벽한 빨강이었다. 옆집 칼과 이본 윌슨의집 도로 옆, 사과나무 위에 앉은 비둘기의 노래는 처음 듣자마자왠지 모를 익숙함과 안정감을 안겨주었다.

어떤 식으로 자연을 경험했든, 그 마법은 그냥 사라져버리거나 조용히 떠나가 버리지 않는다. 삶의 여러 단계를 밟아가는 동안우리는 자연에 관한 경험을 다른 것으로 대체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더하며 쌓아나갈 것이다. 당신이 도시에서 혹은시골에서 삶을 꾸리든 관계없이, 자연은 당신 곁에 있다. 정신적지주가 되어주고, 영감을 주고, 당신이 바라던 것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되게 해줄 것이다.

마치 그가 내게 자주 말해주던 농부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순종들이 출전하는 경주 대회에 밭을 가는 늙은 말을 매년 한 주도빠짐없이 출전시키던 농부가 있었다. 어느 날 농부의 친구는 왜 이기지도 못할 경주에 매번 출전료를 내느냐고 물으며 만류했다.
"자네 말이 맞네" 농부는 손으로 턱을 문지르며 이야기했다.
"내 말은 이기지 못하겠지. 하지만 친구들과 함께하는 건 분명 좋아할 거야."

무엇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집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에 대해전하고 싶다. 단순히 당신이 자란 곳, 잘 깎인 잔디밭과 시멘트 욕조가 있는 교외의 복층 집이나 벽돌로 지은 아파트, 나무들이 길게늘어선 도시 중심의 하얀 집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아니다. 창고와녹색 트랙터, 보름달처럼 눈이 큰 소가 있는 낡은 농장으로 돌아가라는 것도 아니다. 소중한 우리의 집이란 지구의 경이로움과 맺는본능적인 동지애를 회복할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소속감과 같다.

지나치게 바쁠 때(지금은 끔찍할 정도로 많은 날이 그렇지만), 우리는 그저 잠시 멈춰 서서 하늘을 볼 시간도 없이 쫓기듯 살아간다.
비 냄새를 맡을 시간도, 서로를 격려하며 겨울 보금자리로 향하는거위들을 감상할 잠깐의 시간도 없이. 하지만 생각해봐야 한다. 자연의 지혜와 멀어지는 것은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것이 많기때문만이 아닐 수 있다. 우리가 배워온 사고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역사를 통틀어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에 대한 우리의 신념은 문화적 관점, 사회적 관습, 과학적 발견이 결합된 채, 세대를 타고 전해지며 형성되었다. 그러나 자연의 본성과 더불어 세상과 우리 사이의 관계에 대해 우리는 엄청나게 많은 부분을 그저 ‘원래 그런 것‘
으로 받아들여 왔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음에도.

MIT의 시스템 과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피터 센게는 자연과의 일체성을 잃는 것은 상호 의존을 인지하는 능력을 잃는 것과 같다고 짚어냈다. 우리 대부분이 잘 모르는 사실이다.
상호 의존을 받아들이면 무엇이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가에관한 지식을 넘어, 무엇이 세상을 계속해서 움직이게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닿을 수 있다. 그리고 지금 과학이 우리에게 증명하듯,
그 답은 언제나 관계에 있다. 마치 균들이 숲의 토양에 양분을 주고, 그 질소를 양분 삼아 나무들이 싹을 틔우며 성장하고, 그 나무들이 우리가 들이마실 산소를 내뿜는 것처럼.

우리는 자연이다.
이 명백한 사실 위에 단단히 발을 딛고 자연은 ‘저기‘, 우리는
‘여기‘에 있다는 오랜 환상을 걷어내면, 우리를 가장 괴롭게 했던끈질긴 문제들을 해결할 새로운 빛을 볼 수 있다. 더불어 우리가필요한 모든 것이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이미 존재한다는 확신을얻을 것이다.

여느 위대한 과학자들이 그랬듯, 아인슈타인은 그 어떤 문제도 그것이 처음 드러난 차원의 관점으로만 보아서는 풀 수 없다는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직 완전히 정의되지 않은, 창의적인공간인 숲을 통해 자신을 한 차원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고자 했다. 숲속 수수한 나무들이 뿜어내는 거대한 신비로움을 마주하며아인슈타인은 그가 ‘진정한 예술과 과학의 원천‘이라고 여겼던 존재들과 만날 수 있었다. 제자들에게 조언할 때도 지식을 얻는 것과신비로움을 가까이 두는 것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반드시 신비로움을 택해야 한다고 했다.

끈 이론의 독보적인 권위자이자 지구에서 가장 총명한 사람이라고 불리는 현대 물리학자 에드워드 위튼은 신비로움이 인간존재의 가장 근본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제인 구달 또한 진실과 과학만으로는 삶을 설명할 수 없다고 여겼다.
"세상에는 신비로움이 넘칩니다. 경외해야 할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신비로움에 다시 곁을 내준다면, 우리는 그것이 자리 잡는 곳을 관찰하고 배우며 좀 더 지혜로워질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신비로움이 머무는 그곳에는 경이로움이 가득하다.

우리는 사실 오늘 길을 걸었지만, 땅을 밟지는 않았다. 신발에 있는 전자의 자성이 도로에 있는 전자를 밀어내므로, 조금 과장하면 우리는 사는 동안 한 번도 땅에 발을 딛지 않는 것이다. 그저공중에 떠 있는 상태처럼. 만약 우리가 지구에서 로켓을 타고 우주의 끝을 찾기 위한 여행을 시작한다면, 1000년 동안 한 시간에 약160킬로미터 속도로 날아간다 해도 우주의 끝에 단 1인치도 가까워질 수 없는 셈이다. 이런 오랜 이야기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인식은 모든 것의 주고받음이라는 큰 틀에 자연이 속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확장된다. 주고받음이란 신비로운 밀물과 썰물이며, 철학자 닐 에번든이 ‘맞바꿈의 리듬Rhythm of Exchange‘이라 말했던 나타남과 사라짐이다. 하나가 말하면 다른 하나는 듣는다. 하나가 땅을 밟으면 다른 하나는 땅을 박차고 날아오른다. 한 부분이차오르면 다른 부분은 기운다. 하나가 죽으면 다른 하나가 태어난다.

그러므로 세상이란 흐르는 거대한 강과 같아 똑같은 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는 곳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관점으로 세상을 보기까지 왜 그렇게 힘든 시간을 거쳐야 했을까? 먼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제인 구달, 칼 세이건과 같은 사람들이 자신만의인식을 구축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부터 영감을 얻으며매 순간 신비로움을 받아들일 때, 사회는 중요한 체계들을 벽장 안에 정리하는 데만 몰두해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분명 아이는 정원에 핀 꽃들 위에 앉은 나비를지켜보며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나비가 꽃의 꿀에 닿을 수 있는 입을 가진 유일한 곤충이라는 객관적 사실을.

카슨은 이렇게 말했다. "사실이 지식과 지혜를 품은 씨앗이라면, 감각을 통해 받아들이는 인상과 감정은 그 씨앗이 자라는 데꼭 필요한 기름진 토양과 같습니다."

그때의 나는 당신을 어머니의 작은 텃밭에 여섯줄짜리 완두콩 나무로 데려가 작은 삽으로 흙을 파낸 뒤, 작은 덩어리와 이리저리 얽힌 뿌리를 보여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 과학 선생님이셨던 롱에네커 선생님의 가르침 덕에, 나는 당신에게 뿌리혹은 박테리아라는 또 다른 생명체의 산물이며, 그 박테리아 중 한 종류는흙에서 질소를 끌어내 저장할 수 있다는 것, 더 나아가 질소는 가장 훌륭한 비료라는 사실도 말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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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보다 자는 것이 중요하다고 심리상담사는말했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더라면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가끔 심리상담사를 죽이는 꿈을 꾸다가 그가 내 얼굴을 달고 있는 장면에서 꼭 잠을 깬다 내 얼굴을 향하여 내가 칼을 들이밀고 있었으므로

차마 안부를 묻지 못할 거라 생각하니 사무칩니다
바닷속의 발들을 기다리는 해안의 발들이
퉁퉁 부어 있는 가을 저녁입니다

아림 속으로 돋아나는 살의 적막한 빛에 침묵하는철망을 바라보다가 그는 장화를 벗으며 물에 튼 손가락을 만졌다 그리고 그가 바닷바람에 모든 방향을보냈을 때 굴이 제껍데기에 아주 도착하는 시간이왔다

팔을 잃어버리고도 안을 수 있는 것이 있는지
혹은 인간의 팔이 해주는 포옹을 기억하는
지삽으로 흙을 파는 건지 땅에 상처를 주는 건지

토기는 발을 잃은 채 하늘의 서재에 꽂혀 있고 별들은 하늘의 서재에 가득 찬 책장을 넘겼다 밤의 벌들은 꿀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꽃의 잠을 모았다 그잠 속에서 나는 이렇게도 하릴없이 중얼거렸다.

별들이 많다고 쓰다가 이생에 다시 만날 사람들의숫자가 자꾸 줄어들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더러 만나보지도 못했던 유령들도 있어서 누군가 영혼의 물을 따라주자 나는 그걸 눈물이라고 부를 수도 있었네

그는 답했다. 노래하던 것들이 떠났어
그것들, 철새였거든 그 노래가 철새였거든
그러자 심장이 아팠어 한밤중에 쓰러졌고
하하하, 붉은 십자가를 가진 차 한대가 왔어

헤어졌다 헤어지기 전
내 속의 신생아가 물었다. 언제 다시 만나?
네 속의 노인이 답했다. 꽃다발을 든 네 입술이 어
떤 사랑에 정직해질 때면
내 속의 태아는 답했다. 잘 가

돌이킬 수 없는 짠 사랑의 보리굴비를 가울물에밥 말아 먹다가 한 사람 울었네 눈물 많은 이의 지문너무 자주 들여다본 편지는 사라지네 골목에는 아무일 없어 언제나 같은 노래만 흘러나왔네 모두들 오늘 하루를 사랑하며 잠이라는 짐승의 숲 속으로 들어갔네

너는 왔고 이 세기에 생존한 비닐영혼은 손금에서내리는 비를 피하려 우산을 편다 너 없이 희망이여몇백 년 동안 되풀이된 항의였던 희망이여 비닐영혼은 억울하다.
너 없이 희망과 함께

쉰 살이 되어가는 내 꿈의 낯선 입은 묻는다네,
지구여 네 바깥에는 태양 및 별들이
고아로 남겨져 있는가?

얼마나 오래
이 안을 걸어 다녀야
이 흰빛의 마라톤을 무심히 지켜보아야
나는 없어지고
시인은 탄생하는가

종소리는 공중에서 유리 조각으로 흩어지고
잠이 덜 깬 잘 아는 얼굴은 황망히 도시를 떠난다
가방을 끄는 소리도 시끄러웠지

잠의 가장 시끄러운 곳 속에서
떨어진 노래를 줍는다.
그 너머에는 네가 있다.
나보다 더 오래된 지구의 생물 하나인 너는
날개를 받고 있었지

얼굴에 먼지와 피를 뒤집어쓰고
총 쏘기를 멈추지 않던 노인이여
붉은 양귀비꽃이 뒤덮인 드넓은 들판이여
무너진 담벼락 사이로 터지던 지뢰여
종으로 팔려가서 영영 돌아오지 않던 소녀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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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므린 손금처럼 어스름한 가냘픈 길, 그 길이 부셔서 마침내 사월 때까지 보고 있어야겠다 이제 취한 물은 내 손금 안에서 속으로 울음을 오그린 자줏빛으로 흐르겠다 그것이 이 가을의 무늬겠다

저녁의 가장 두터운 속살을 주문하는 아코디언 소리가 들리는 골목 토마토를 싣고 가는 자전거는 넘어지고 붉은 노을의 살점이 뚝뚝 거리에서 이겨지는데 그 살점으로 만든 칵테일, 딱 한 잔 비우면서 휘파람이라는 명랑한 악기를 사랑하면 이국의 거리는작은 술잔처럼 둥글어지면서 아프다

박쥐는 가을의 잠에 들어와 꿈을 베꼈고
꿈은 빛을 베껴서 가을 장미의 말들을 가둬두었다
그 안에 서서 너를 자꾸 베끼던 사랑은 누구인가
그 안에 서서 나를 자꾸 베끼는 불가능은 누구인가

당신이 오는 계절,
딸기들은 당신의 품에 얼굴을 묻고
영영 오지 않을 꿈의 입구를 그리워하는 계절

SHP5B 9 S# P# 9*숨죽인 밤구름 바깥으로 상쾌한 달빛이 나들이를나온다 그 빛은 당신이 나에게 보내는 휘파람 같다그때면 춤추던 마을 아가씨들이 얼굴을 멈추고 레몬의 아린 살을 입안에서 굴리며 잠잘 방으로 들어온다

마음속을 걸어가던 달이었을까, 구름 속에 마음을
다 내주던 새의 한 철을 보내던 달이었을까. 대답하지 않는 달은 더 빛난다 즐겁다

익은 속살에 어린 단맛은 꿈을 꾼다 어제 나는 너의 마음에 다녀왔다 너는 울다가 벽에 기대면서 어두운 걸레로 바닥을 닦았다 너의 얼굴에는 여름이 무참하게 익고 있었다 이렇게 사라져갈 여름은 해독할수 없는 손금만큼 아렸다 쓰고도 아린 것들이 익어가면서 나오는 저 가루는 눈처럼 자두 속에서 내린다 자두 속에서 단 빙하기가 시작된다 한입 깨물었을 때 빙하기 한가운데에 꿈꾸는 여름이 잇속으로 들어왔다 이것은 말 이전에 시작된 여름이었다 여름의영혼이었다 설탕으로 이루어진 영혼이라는 거울, 혹은 이름이었다 너를 실핏줄의 메일에게로 보냈다 그리고 다시 자두나무를 바라보았다 여름 저녁은 상형문자처럼 컴컴해졌다 울었다. 나는 너의 무덤이 내가슴속에 돋아나는 걸 보며 어둑해졌다 그 뒤의 울음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자두뿐이었다

오렌지 나무는 아무 말 없이 녹빛 그늘의 눈을 우리에게 주었다 단단한 잎은 번쩍거렸다 나는 너에게둥글게, 임신 말기의 여름에 열리던 아주 둥근 열매처럼 단 한 번만 더 와달라고 말하려다 참았다

내 혀는 가을의 살빛을 모두어 들이면서 말하네,
꼭 그대를 만나려고 호두 속을 들여다본 건 아니었다고

모든 우울한 점성의 별들을 태아 상태로 머물게해요, 얼굴 없는 타락들로 가득 찬 계절이 오고 있어요, 라고

잎사귀 모양을 한 깃털을 떨구고 날아간 문득,
숱이 두터운 눈바람 속, 새이던 당신에게날개의 탄생을 붉게 알려준그 나무 열매의 이름이 알고 싶었다

넝마 같은 세월을 햇빛에 말리며
라디오 속 노래들이 기절한다면
난 무얼 할까
바짝 마른 빨래 없는 계절이 지나가는데
울었던 흔적을 지워줄 내일은 없는데
나는 무얼 할까

낚시꾼들은 가까운 바다로 나간다 우럭을 잡아서그 자리에서 회 친다 우리의 가장 다정한 조상 네안데르탈인들이 헬무트 씨의 고기를 구울 때, 그 표정으로 낚시꾼들은 우럭의 투명한 살을 저민다 인간의문명에서 시간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은 양념이다 그때에는 빨간 초장 푸른 와사비는 없었다 시간을 달이며 고독해지던 간장도

아이는 소를 제 품에 안았다
둘은 진흙으로 만든 좌상이 되어간다
빛의 섬이 되어간다
파리 떼가 몰려온다
파리의 날개들이 빛의 섬 위에서
은철빛 폭풍으로 좌상을 파먹는다
하얗게 남은 인간과 짐승의 뼈가 널린 황무지
자연을 잡아먹는 것은 자연뿐이다.

틀에 갇혀버린 옆 마을의 나치 할아버지,
사각의두줄무늬 늙은 나비, 지던 페르시아 퀸 장미, 위대한가을의 국화, 휠체어에 앉아 있던 아이패드 5의 햇살욕설, 오던 구급차와 가던 장의차, 토해놓은 사랑과죽음으로도 돌이킬 수 없던 나날들, 고양이가 마시던 오후의 커피, 고요히 돌아와 창백한 별의 심장을안아주던 어둠조차 사각의 관 속에 든 정물화가 되어가던 시간을 함께 보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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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섬 바리시고 네여 도 닦듯 하염없이 튀김 기름 끊는열반 속에 환한 수련 열 듯 고구마는 솟아오르고누런 아가는 양털 보풀이는 싸묵눈길을 간다네 마징가나 은하철도 기름 열반 속 고구마 꽃잎에 뚝뚝 떨어지는기름처럼 눈발은 잠 속을 녹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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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 언저리 잎 진 산벚나무로 서 있는 내게 주지 스님이삭발하자, 말씀하시고는 길 따라 내려가신 지 여러달 캄캄이다 달도 차서 참나무 숲으로 기운 게 여러번 눈길 밟아 마음도 득달같이 속세로 달아나버렸다가 미끄러져 돌아오는날이 돌마당 갈잎으로 뒹굴었다 긴 머리 질끈 묶고 모과나무 그늘에 서서 시린 산 아래 내 그림자만 만지작거리다가 문득, 놓고 온 것들에 대한 서글픔이 눈앞을 가리는데 어질어질 산벚꽃 핀 자리로 돌아오신 스님 내 눈을 깊이깊이들여다보고는 오늘은 안되겠다 하시며 바랑에 내 설움까지넣고 또 휘청휘청 고갯길 넘어가셨다

동네 할매들과 민화투를 치고 온 그녀가 내민 것은 딸년볼때기에 달린 혹이 그냥 혹이 아니라 불혹이라는 것, 여직결혼을 안하는 것은 남자에게 큰 상처를 받았을 거라는 민화투 토의가 이루어졌다는 것, 삼광도 보이지 않고 홍단도없는 이불 위로 떨어졌다는 내 얼굴, 오는 내내 내 얼굴만 보여야 하는데 살구나무집 앞 살구꽃잎이 허옇게 앞을 가려서그놈이 어떤 놈인지 생각도 잊었다고, 방구들 붙잡고 쭈그려 앉은 내 얼굴 보자마자 그놈이 생각났다는, 도대체 그놈이 누구인지 나도 알 수 없는,

몸에 깃든 병도 없는데 몸이 아팠다 서울 오르기 전, 마른가지에 물 돌듯 그나마 움찔했는데 광화문 한복판 그늘을어깨에 올리고 바람에 꺼질 듯한 촛불을 감싸며 술집 귀퉁이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집으로 온 뒤 몸이 아팠다일찍이 이유 없이 보름을 골골거리다가 시 한편 쓰고 나면 언제 아팠냐는 듯이 멀쩡해지는 몸 싹이야 이곳저곳에서나는 몸뚱어리지만 세월호 엄마아빠들의 북소리를 듣고 온뒤 몸이 아파 며칠 방구들 지고 누웠다 가슴을 둥둥 쳐대는긴 북소리가 파도를 타고 녹슨 몸 구석구석을 에돌자 곳곳에서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툭툭 터져나왔다

돈 없다면서 바지며 윗도리며 브라자까지 산 어머니 저승가신 아버지 불러다 브라자 보여주려고 무지개색으로 샀느냐고 망사에 야시시한 것이 가슴이 맞아야 내가 입든지 하는데 그러다가 아버지 가시며 남겨둔 돈 다 쓰겠다고 하자어머니 하시는 말씀, 거덜 난다고 목구멍에 거미줄 치지는않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내 돈 내가 쓰는데 옆댕이 붙어살면서 지글지글하게 참견한다고 말년에 과부 돼서 평생 못써본 돈 좀 써보겠다는데 지랄이냐고 병들면 약 들고 무덤들어갈 테니 걱정 말라며 거울 앞에서 이놈 차보고 저놈 차보고 창문 밖에 뚱딴지꽃 쿨럭쿨럭 잔기침 뱉으며 짐짓 모르는 척 딴짓한다

은행잎이 11월 그늘을 끌어들이자 사그락사그락 햇살이궁구르는 길 위로 진눈깨비 날렸다 벼 바심 끝난 논바닥에내려앉은 구름이 웅덩이 속에서 흘렀고 서리 맞은 호박잎이 밭머리에 누렇게 스러져가는 바람을 흔들었다 발자국의로 내려놓은 이파리 위로 번진 노을 가슴에 담아놓고 가도좋은 것을 벚나무 그늘이 깊어서 쓸쓸함이 박새 발가락으로흔들렸다 나를 스치는 것들이 햇살에 부딪쳐 스러지던 날아우, 저승길 걷기에 참 좋은 날

그새 봄까치꽃 환하게 밭모퉁이에 피었다 똥구멍 시리게달렸던 겨울은 전깃줄에 매달린 방패연구멍 속에서 뱅뱅돈다 빈대 잡는다고 불에 탄 꼬리 흔들며 짖어대는 진순이를 뒤로하고 불에 덴 손등에 침발라가며 검불 불사른다 마른 오줌 벽이 검게 그슬린다

달 눈꺼풀이 바르르 떨리는 밤 잠결에 어머니가 한바탕크게 웃는다 자다 말고 일어나 얼굴을 보니 볼이 붉다 내려앉은 초승달이 눈 한가득이다 닭도 울지 않은 새벽녘에 일어나 오줌 누러 가는 어머니 등 뒤에 대고 뭐가 우스워서 자면서 그리 웃었느냐고 물으니 저승 간 느 아버지가 왔다고옆에 누워 내 젖을 만졌다고 간지러워서 웃었다며 지지 않은 달빛 속으로 들어간 부끄러움 한동안 빤히 창밖만 바라보던 어머니 서둘러 화장실로 들어가며 네년 때문에 오줌찔끔거렸다고 속옷 갈아입어야겠다고 잠이나 자지 왜 일어나서 지랄이냐고 괜스레 애먼 나만 타박이다

뒤집어봐야 됫박인 줄 알고 좆 끝으로 밤송이 발라봐야지 좆 끝만 아프지 누구 좆도 안 아프다고 여길 가봐도 저길가봐도 찬밥덩어리인 줄 모르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잔소리는 오만가지 지 잘난 줄만 알고 남 잘난 줄은 모르는 기둥에 고무줄로 매단 빗마냥 이리 튕기고 저리 튕기고 그래도제자리로 잘도 돌아온다고 십년 객지 생활에 철드는가 싶더니 이건 그놈이 그놈이고 그년이 그년이라고 자식새끼 욕해봤자 당신 얼굴에 침 뱉기라 남한테 말도 못하고 산 넘어 가신 아버지

늙으면 병들어 죽는 게 아니란다 벽에 걸린 새끼 사진들여다보다가 외로워서 한밤에 벌벌 한기 느끼다가가는 거란다 가는 순간 귀가 열리는데, 이미 식은 몸뚱이는 저승길가자, 가자 하니 귓구멍에 그저 소쩍새 소리만 들렸을 거라는앞집 황소 아줌마 이불 덮지도 못하고 바짝 쪼그리고 갔다고 장의사 와서 팔다리 펼 때 욕봤을 거란다 고집 세지, 힘세지 이길 장사 없었는데 말다툼도 많이 했는데 정, 정 해도 미운 정이 더 깊다고 보고 싶은 마음 자락 끝에 개 밥그릇 발로차며 성질만 낸다

여자 둘이 사는 집에 술 취한 사내가 대문 밖 진순이와싸움이 붙었다 갈 길 잃었다고 너는 누구고 나는 누구냐고팔짱 끼고 서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데 진순이는 허연 이드러내고 상대가 누가 됐든 집만 지키면 된다고 멍멍 짖어댔다

먼 하늘이 아득해서 바지랑대 걸쳐놓은 빨랫줄도 팽팽해졌다 마른 꽃무늬 속옷이 몇날 며칠 이슬을 받았다 냈다 해도 걷어낼 사람 없는 시름시름 앓는 집 한 철 넘기는 일이 그늘을 당겼다 놓는 감나무처럼 버석거렸다 고추 따다가 어지럼증으로 고꾸라져 받침대에 팔을 찔렸다 우환이 도둑이라돈 잡아먹는 귀신이 문지방 비비며 들락거리고 식은 밥이저승 밥이라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창문 밖에 고추만붉다가, 붉다가 곪아터졌다 빳빳해진 속옷위에 잠자리 앉았다가 날아간다

내가 먼저 가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어 너 혼자 남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증이 일어나 나이 사실에 옆댕이서 젖만져줄 놈 하나 없는데 코골고 자는 모습 보면 안쓰럽기도하고 성질도 나고 내가 니 아비 먼저 보내놓고 사방의 온 병끌어모아 이 고생인데 안 봐도 비디오여 나 가고 나면 가슴쥐어짜고 살 텐데 내가 그 꼴을 저승 가서 어찌 보겠냐 아,
견우직녀도 매년 새 대가리 밟고 손모가지 붙잡는데 너도아무 놈 손모가지라도 끌고 와 그래야 내가 편히 눈감어 온몸이 종합병원인데 너는 어찌 어미 맘을 모르냐 뭣 모르고대가리 벗겨진 콩처럼 튈 궁리만 하고 앉아 있고 사는 게 별거 아니지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하니 너도 대가리 그만 굴리고 나가서 한 놈만 잡아봐 그러면 어찌 아냐 저승 간 니 아비 새 대가리 밟고 와서 손잡고 예식장 들어가줄지!

돈 많아도 다 헛지랄이여, 돈 간수보다 자식 간수가 우선이지, 그리 돈, 돈, 돈 하더니, 그놈의 돈 때문에 새끼 잃고 며느리가 재산 몽땅 가지고 날랐잖어, 개같이 벌어정승같이쓴다는 말이 오디 그게 말이여 똥이여? 새끼 교통사고로 보내놓고도 장례식장 비용 땜시롱 실랑이하더니 죄받은겨, 그리 촐싹대며 이 집 저 집 일숫돈 받으러 다니고 안 주면 땅문서라도 들고 나오는 사람이었잖어. 지금이 일제시대인 줄아나, 왜 강제로 뺏어가느냐고 그러니 며느리가 게 눈 감추듯이 돈 들고 날지 않고 배기겄어, 돈이 무신 소용이여, 잘벌어 잘 쓰야지, 나는 돈도 없지만 있어도 죽을 때까지 안 줄겨, 나 죽으면 그 돈으로 장례나 치러, 속 끓이지 말고, 정신똑바로 차리고 살어, 손바닥 깔짝 뒤집으면 이승과 저승이바뀌는겨, 암만, 다 그런겨

흔들어 깨운 어머니가 내가 그리 밉냐고 그래서 그리 소리 지르느냐고 그렇게 미우면 나가 살라고 애먼 소리로 새벽 그늘을 뒤집었다 내가 밉다는 할머니와 자기를 미워한다고 생각하는 어머니

통 중에서 가장 깊고 속 터지는 통은 울화통인데, 그 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이 아궁이에 불붙은 장작만 하겠느냐만, 어린 새끼 바닷물 속에 넣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밥알이 넘어가는 어미의 통은 환장통이다 이유도 모르고 바닷속에서 뒤집어졌을 새끼 속은 어두컴컴 보이지 않는데,
아비의 속울음은 부글부글 애끓는 눈물통이다열두살 난 아들 수멍통에 잃어버리고, 한 시절 눈물 위 손바닥으로 노 저어오다 녹내장으로 눈먼 앵두나무집 할매 속은 썩어 문드러진 염통인데, 그 쪼그라든 통이 깔짝깔짝 뛸때마다 살아 있는 자신의 가슴을 퉁퉁 쳐댔단다살아 있는 그 끝까지 수없이 뛰는 가슴을 치며 살아갈 우리의 눈물통은 마를 새 없는데, 어찌 모를까 언젠가 터질 울화! 눈먼 앵두나무집 할매 눈에도 보이는데 눈멀지 않은눈은 붉은 눈물통으로 바라보는데

‘백년 묵은 상수리나무 옆 언덕바지까지 늘어진 지붕이 올씨년스레 똥바가지 뒤집어쓴 수국이 토악질해대던 변소

수수꽃다리 향기 코끝 간질간질하게 재채기 나왔던 변소에서 바지춤을 여미곤 했다 할아버지 돌아가신 뒤 상수리나무 옆 변소는 사라지고 상수리나무도 베어졌다 굵은 밑동은나이테를 올리며 덩그러니 별을 바라보았다

삼대가 걸쳐 살았던 향나무 꺾인 집을 나오면서 자꾸 뒤돌아본 건 감나무에 걸쳐는 바랜 장대 때문이다 마른 호박줄기 엉켜 기지개 한번 켜보지 못하고 주저앉은 비닐하우스늙은 호박이 땅에 닿을 듯 말 듯 바람 줄기 쥐락펴락하는 손힘이 빠진 지 오래다고사리 장마에 고개 내밀다 꺾인 고사리밭은 조릿대가 살얼음빛으로 서걱이고 벙어리 뻐꾸기가 피 토했던 상수리나무의 그늘이 옷깃을 잡는데 사람 숨소리에 기둥도 반듯하게선다는 집, 그러나 처마 처진 지 오래된 아버지의 아버지의아버지의 집 남의 손에 넘기고 돌아오던 날, 내 눈물을 낡은양파 망에 담은 장대가 하늘 높아 더 추운 겨울을 푹, 찌르고있다 까치가 파먹다 찢어진 홍시가 그대로 얼어버린 집에서

비 내린 뒤끝, 서로 먼 산만 바라보다가 눈앞 흩날리는 꽃잎을 바라보다가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구부러진 손가락을꼭 잡은 아들 손으로 눈물을 훔치는 어머니

바라보다가 고라니 까만 눈으로 바라보다가 잡으려 하니그 자리에 별이 스러졌다

툇마루 옹이 빠진 구멍 속
거미의 눈으로 바라보는 내 안의 사랑은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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