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하나의 언어밖에 구사하지 못하죠. 인간중심적인 시선과 사고는 언어의 폭을 좁게 하고, 결국 유연하지못한 글을 쓰게 해요. 우리는 외부와 연결됨과 동시에 그것을자유자재로 응용하여 내면을 확장하거나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할수 있어요. 언어의 한계가 곧 내 세계의 한계라는 말이 있듯, 저는가능한 한 많은 언어를 습득하고 더 많은 세상을 보기 원해요.
그것만이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방식 같아요. 세상에는 안다고믿는 것보다 알아가야 할 게 너무 많아요.

말씨나 솜씨, 글씨, 마음씨 같은 단어가 있어요. 현상 뒤에품고 있는 씨앗들이죠. 분명 어떤 사실 속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공들여 가꾼 무엇이 숨어 있어요. 조심스러운 대화 속에도 타인에대한 배려가 담겨 있고, 한 접시의 음식이 나오기까지 시간과정성을 다한 마음이라든가, 허리를 세우고 숨을 참은 채 한 글자한 글자 눌러쓰는 자세에서도 설핏 떨어져내린 씨앗이 있어요.
마음씨라는 말 속엔 정성과 태도가 있어요. 그런 것을 바라보고쓰려고 노력해요. 그러다 보면 단순히 글을 쓰는 게 아니라글솜씨가 좋아질 수 있지 않을까요.

삶에는 보이지 않는 장면이 도처에 숨겨져 있고,
보물찾기하듯 그것을 찾아보는 것은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점이라 생각해요. 그렇게 수집한 것들과 함께 나만의 고유한언어를 구축하는 것. 쓰고자 하는 사람의 시선과 태도야말로글쓰기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준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그리하여 저는 무엇을 어떻게 쓸까, 가 아니라 살아오며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느꼈는지에 초점을 맞추려 해요. 아무도모르게 외롭게 다져온 내공이 가장 중요한 글감이 되니까요.
아무나 글을 쓸 수는 있지만, 타인과 어떤 차이를 만들어가는 건아무나 할 수 없는 작업이겠지요. 누군가는 그 과정을 통해 훌륭한문장력을 가질 수 있어요. 제게는 문장력보다 통찰력을 갖는 것이더 중요한 힘이에요. 저는 그 방향으로 나아가보려고 하는 것같아요.

한 편의 글을 완성하기까지 하루가 걸렸다면, 글감을얻기까지 어쩌면 우리는 평생이 다 동반되어야 할지도 몰라요.
눈앞에 놓여 있는 삶을 사랑의 시선으로 꼼꼼히 들여다보아야하니까요. 그런데 그것이 삶을 살아가는 단단한 자세가되어줍니다.

만약 아무것도 쓸 수 없다면 가만히 바라보아도 좋아요. 그시간을 애쓰기보다는 그냥 지나가보는 거예요. 쓰지 않더라도꾸준히 바라보면서요. 내 주변을 둘러싼 가장 가까운 장면부터창문 너머 저 멀리 펼쳐진 이야기를. 무언가를 내 의지로 쓰려고하기보다는 외부가 내게 들려주는 말을 가만히 들어보는 거예요.
의자에 오래 앉아 고민하는 것보다 문을 열고 나가 조금 걸어보는것도 좋아요. 삶은 테이블 위에 없고 삶 속에 있으니까요. 삶에서의발견은 분명 살아 있는 문장을 쓰게 해요.

다행히도 저는 절망보다 희망을 더 믿는 편이에요. 눈앞에놓여 있는 좌절보다는 보이지 않는, 아주 실금 같은 몽상과 희망을믿는 편이에요. 이런 용기는 삶의 태도에서 나오고, 글은 그지구력으로 써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하거나 비교하고 회피하기보다, 조금 더큰 각오로 계속해서 밀고 나가보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글이라는성과보다 훨씬 더 큰 것을 얻게 되어요. 글이 아닌 나의 성장과아름다운 삶을요.

‘나에게 선명하게 남는 말‘로 시를 시작합니다. 어떤 이유로든그 문장이 저의 마음에 닿았다는 뜻이고, 하얀 종이에 다소느닷없이 시작되어도 괜찮을 거 같습니다.

얼굴을 간질이는 햇살에 눈이 떠졌다. 오랜만의 휴일. 새로운프로젝트를 시작한 이후로 가장 간절했던 시간이다. 여유를 부릴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해도, 일의 끝을 보기 전까지는 시간을온전히 쉼의 영역으로 가져갈 수 없었으니까. 계속해서 생각은마무리 짓지 못한 일에 머물러 외투 주머니에는 항상 두통약이있어야만 했다. 비과학적인 해석일지 모르지만, 생각이 나아가지못하고 고민의 벽에 가로막힐 때면 어김없이 두통이 시작됐다.
마치 머릿속 어딘가를 꽉 막아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러나오늘은 주머니를 살필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전인 지금은 가장 평평한 기분이니까.

물론 글을 쓰는 순간들은 대부분 매우 괴로웠다. 마음을문자로 옮기는 일은 그 자체로 고통을 수반하는 일이기도 하고,
담고자 했던 것들이 대체로 기쁜 순간보다는 나와 내 주변,
사회와 세상의 아픈 구석인 경우가 많아 그렇기도 하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이 넓은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그건 감내할 만한 고통이었고, 동시에 기쁨이었다.

당신만의 달리기와 결과를 알 수 없는 새로운 산책을 온마음으로 응원하며 투명한 유리컵과 퍼즐, 창가의 바람과 곶감을이제 당신 앞에 건넨다. 아, 어떤 질문이 들었을지 모를 쪽지하나도

"너는 자꾸 결론을 정해놓고 가려고 해. Not-Knowing의상태에서 출발해야 Knowing이 나오는 거야. 지금은 절대로 알 수없는 거라고. 일단 계속 써! 이해했어?"

글을 통해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내가 연결된다는 게 가끔은신비롭게 느껴진다. 지금 쓰는 글은 나중에 또 무엇이 될까? 내서랍 속에 잠든 쓰다 만 노트들도 언젠가는 이야기가 되어 세상밖으로 나오게 될까?

그래서 나는 외부로 향해 있는 시선을 ‘나’로 돌리는 작업에 관심이 많다.

"우리, 잘 쓰려고 하지 말아요. 책이라는 말이 부담을 준다면인쇄물이라는 말로 바꿔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아무에게도 주지말고 우리끼리만 교환해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아니라 나를 위한 기록집이라고, 내가 보려고 만드는 거라고생각해봐요. 우리가 하려던 건 내가 써온 일기를 모아서 다시 한번보는 거예요." 나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자기만의 이야기를 스스로 열고 닫아본 사람은 계속해서이야기를 짓는 것 같다. 쓸모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 조각들이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을 몸으로 느껴보면, 창작의결과가 아닌 과정의 재미를 느끼고 나면, 그 사람은 계속 창작하는사람‘으로 살아간다고 믿는다. 나는 모든 사람이 창작자의정체성을 지니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모든 사람이 창작하는직업을 갖기 바란다는 말은 아니다. 꼭 전문적인 작가가 되지않더라도, 많이 팔리는 책을 쓰지 못해도, 살면서 나의 이야기를쓰고 한번씩 마감하는 루틴을 갖는다는 건 꽤 매력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예술철학자 맥신 그린(Maxine Greene)이 자주 한말이다. ‘나‘라는 사람은 아직 현재진행형이고 새로운 가능성은언제나 열려 있다는 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나의 세계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고, 내 안에 닫혀 있는 문을계속해서 열어보고 싶다. 글을 쓸 때마다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너는 이 이야기를 왜 하고 싶어?‘ 그렇게 묻고 답하다 보면 내가모르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그이야기가 내게 왜 중요했는지 알게 된다.

그렇게 해서 저는 한 줄에서 두 줄, 두 줄에서 다섯 줄 쭉문장을 이어붙여 한 편의 글을 만들어나갔습니다. 감정에서글감을 찾다보니 하루 중에 겪는 일, 만나는 모든 사람이 나에게오면 글이 될 수 있었어요. 거기서 중요한 점은 내가 그 사건과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관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것입니다. 인간은 대개 자신의 감정에 취하면 객관적으로스스로를 보기 어렵습니다. 누가 옆에서 ‘너 지금 뭔가에 홀린 것같아. 정신 차려!‘라고 일깨워줄 때가 아니고서야 판단력이 흐려져내가 무얼 하는지조차 모를 때가 있지요. 하지만 글로 남겨둔기록은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남겨둔 문장은마음을 추측해보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보통 제가 마음을 들여다보는 글을 쓸 때는 ‘현실직시 - 감정 알아차리기 - 감정의 이유 찾기 - 스스로를 이해하고객관화하기‘의 과정을 거치고 있어요.

글을 쓸 때는 보통 ‘계획하기‘ 단계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글쓰기를 계획할 때는 무엇에 대해 쓸 것인가(주제), 이 글을 왜쓰는 것인가(목적), 이 글은 누가 읽을 것인가(독자), 이렇게 세부분에 대한 고민이 충분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저는 흔들리는 제마음에 대해 쓰면서 고요한 호수 같은 마음을 만들고 싶었고, 저와비슷한 어려움을 가진 독자들에게 닿기를 바라며 글을 썼습니다.
글쓰기에는 왕도도 없고 정답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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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질문이 이어지고 가볍게 충돌할 때, 인물의 성격과배경은 조금씩 더 명확해진다. 결과적으로 나는 예상치 않은 VR멀미와의 만남을 통해 구상 중인 소설의 주요 인물이 좀처럼거절을 못 하는 성격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는 즐거워서 그림을 그립니다, 라는 말이 찡했다.
마티스가 말했던 ‘봄날의 기쁨’이 담긴 말을 직접 듣는 호사스러운순간이었다. 나는 그 화가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돌아서자마자나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이용해 메모를 남겨두었다. 누군가의도를 가지고 구성해놓은 극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처럼관람의 시작과 끝이 뱅그르르 돌아서 손을 마주한 듯한 순간들을잊지 않기 위하여. 또한 언제든 다시 삶에서, 혹은 소설 속에서만나기 위하여.

거저 가는 시간이 없다.
면목이 없습니다.
그 말을 너무 남발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면목이 있으나 없으나 시간은 간다.
충동섬에 전시된 충동들을 상상했다.
형상을 가진 충동들과 그것들이 모인 섬이라는 공간.
해안절벽과 파도를 쓸 수 있으리란 생각으로그 발상을 발전시켜 소설화하고자 했는데,
안 했다.

마음이 네모반듯하게 접힌 게 아니라 종이학처럼 접힌 것 같았다.

마음과 유리가 마음도 유리도.
뭔가 잘 설명해내는 나를 상상해보기도 하고.
좀 더 성실한 나를 상상해보기도 한다.
뭔가 생각하고. 뭔가 잊고, 캘린더를 살피고 뚫어져라.
눈이 피곤해지면 눈을 감고 잠이 들거나.
꿈에서 충동섬까지 가거나.
바다에 모래를 던지거나.
모래로 바다를 만들거나.
돌을 줍고, 돌에 이름을 붙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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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상태는 오감으로 느껴야 하는 만큼 사람의 손길이 :요한 관측의 영역이지만 이제는 기상위성이 내려다본 구름 영상을 받아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일기도에서 구름 기호가 하나둘 사라져가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도심의 바쁜 일과 중에눈앞의 숙제나 걱정에 쪼들리다 보면 하늘을 쳐다볼 여유가 없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하늘에는 프레임에 갇힌 풍경이나 아이맥스 영화와는 비견할 수 없는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자연이 주는 소소한 즐거움은 늘 우리 곁에 있다.

태양은 공평하게 사방으로 빛을 내보내지만 땅이 받는 일사랑은 지역마다 다르다. 지구가 둥글게 생긴 탓이다. 적도 지역은햇빛의 부국이고 극지는 햇빛의 빈국이다. 한쪽은 쌓여가는 부를시키고자 하고 다른 쪽은 부족한 부를 빼앗아 오기를 꾀한다. 그사이에 첨예한 대치 전선이 펼쳐진다. 전선은 남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그 한가운데에서 국지전이 일어난다. 눈이나 비가 내그리고 바람이 잦아들면 전선은 다시 소강상태로 접어든다. 전선이곳곳에 남겨둔 생채기는 이 땅의 곳곳에 고루 에너지를 나누어주기 위해 햇빛이 연출한 날씨의 드라마일 뿐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같은 서부 해안가 도시나 튀르키예의 앙카라를 비롯한 지중해 도시는 한반도와 같은 중위도권에 속해 있음에도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여름이 건조하다. 그래서 이 도시들은 한여름 태양 아래에서도 그리 덥지 않다는 느낌을 준다. 습도가 낮으면 땀을 통해 금방 체내의 열이 빠져나간다. 해수욕을 즐기다 뭍으로 나오거나 그늘 속으로 들어가면 금방 서늘하게 느끼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한편 겨울철에는 해풍이 불어와 추위가 그리 심하지 않고 대신 비가 자주 내린다.

한편 겨울이 되면 일사량이 줄어들면서 육지가 바다보다 빨 식는다. 이번에는 바다에서 상승한 공기가 육지에서 하강한다.
대륙에는 고기압이 발달하고 바다에는 저기압이 형성된다.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 있는 우리나라는 겨울이면 시베리아고기압의 영향으로 대륙의 차고 건조한 공기가 유입한다. 반면 샌프란시스코는 북태평양 고위도에 놓인 알류샨저기압의 영향으로 남서풍이 불고 추적추적 비가 오는 겨울 날씨를 보인다. 지중해 도시들은 북대서양의 아이슬란드저기압의 영향으로 서풍을 타고온화한 바다의 해풍이 들어온다. 그 덕분에 기온도 영상에 머무르고 비가 자주 오는 날씨를 보인다.

폭풍의 한가운데에서는 거센 바람에 얼굴을 들기조차 어렵고 눈앞은 캄캄하다. 뮤지컬 <회전목마(Carousel)>에서 네티는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상심하는 줄리를 위로하며, <당신은 절대 혼자 걷는 게 아니에요(You‘ll Never Walk Alone)>를 불러준다. "…………폭풍우 속을 헤맬지라도 어둠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맞서 걸어요. 폭풍우의 끝자락에 가면 종달새가 달콤하게 은빛 노래를 들려주리니." 갑자기 불행이 덮치더라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고개를 들고 전진한다면 도움의 손길도 자연히 뒤따라올 것이다. 어두운 터널도 끝이 있듯이 폭풍이 지나간 후에는 하늘이 다시 열리고 햇살이 비친다.

그렇다면 수증기가 가장 적은 곳은 어디일까? 사람의 손이닿지 않는 차디찬 우주다. 별과 별 사이의 우주 공간은 물질이 거의 없는 텅 빈 곳이다. 지구의 대기는 중력으로 지구 표면에 달라붙어 있다. 대기 중에서 가벼운 기체일수록 좀 더 외계로 뻗어나가 지표면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우주와의 경계를 형성한다. 이 지점부터는 수증기가 전혀 없는 가장 건조한 곳이다.
설령 수증기를 이곳에 가져다 놓는다고 해도 워낙 낮은 기온 탓모두 얼음이 되어 습도는 여전히 0퍼센트다. 밤하늘에 보이는혜성의 꼬리는 대부분 얼음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주변에서 수증기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태양 덕분에 지구상의 기후구라는 대기의 질서가 유지된다. 열대지방에서는 햇빛을 듬뿍 받아 상승하는 공기가 연일스콜을 쏟아내며 열대우림기후를 가져오지만, 인접한 아열대에서는 바로 그 공기가 수레바퀴가 돌아가듯 하강하며 건조한 사막기후를 만들어낸다. 햇빛의 힘으로 대기가 지구상의 습한 지역과건조한 지역을 갈라놓는 것이다. 에어컨을 구동하는 동안 뜨거운바깥 공기는 한사코 실내 공기와 섞이려 하지만 전기의 힘이 실내의 차가운 공기와 바깥 공기의 기온 차를 벌려놓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나의 기포는 오랜 여정 끝에 극지에 당도한다. 우선 하나의 눈송이가 만들어지는 것 자체가 예사롭지 않다. 머리 위에 방금 내려앉은 눈송이는 구름 속에서 100만분의 1의 경쟁률을 뚫고 내려온 행운아다. 구름 안의 작은 방울이 100만 개 이상 모여야 하나의 눈송이가 되기 때문이다. 구름 안에서 주변의 수증기나 과냉각 물방울이나 다른 얼음 결정을 먹으면서 100만 배나 덩치를 키운 것이다.

지상에 내려온 다음에도 눈송이끼리의 경쟁은 계속된다. 작은 눈송이에서 기화한 수증기는 큰 눈송이에 달라붙는다. 그렇게큰 눈송이는 살이 통통해지면서 점점 커지고 작은 눈송이는 쪼그라들다가 이내 사라진다. 그런가 하면 결정의 모양이 복잡한 눈송이의 표면에서도 별이나 바늘처럼 볼록 튀어나온 곳은 표면장력이 커서 쉽게 수증기가 기화하는 반면 움푹 파인 곳은 표면장력이 작아 주변의 수증기가 쉽게 달라붙는다. 이렇게 빈틈이 메워지면서 현란한 별 모양이었던 눈송이는 점차 둥그스름하고 볼품없고 평범한 모습으로 변해간다.

뇌우리나라에 흔한 함박눈과 달리 타이거 산림지대에서 극지까지의 추운 지방에는 가루눈이 내린다. 차이콥스키의 발레곡<호두까기인형>에서 마법에 걸린 클라라는 꿈속에서 여러 나라를 여행하다가 어느 순간 눈의 나라에 당도한다. 이곳에는 전나무처럼 뾰족한 나무들이 빽빽한 숲속에 가루눈이 사뿐히 내린다.
나무도 들판도 온통 눈으로 하얗게 빛난다. 초록 조명 사이에서군무를 추는 발레리나들은 마치 눈송이처럼 사뿐사뿐 내려앉다가 다시 바람에 날아오르고 이내 곧 정숙하게 설원 위에 미끄러져서 잠을 청한다. 눈의 요정이 있다면 이런 곳에 머무르지 않을까.

날씨 전선에 안전지대는 없다. 밤낮 없이 아무 때나 찾아오는 불청객을 맞이하느라 기상예보 본부에는 24시간 불이 꺼지지않는다. 남서쪽 해상에서 들어온 비구름이 물러나나 싶으면, 북서쪽에서 찬 공기가 밀려와 큰 눈을 뿌린다. 한파가 누그러든다 싶으면 황사가 날아들고 먼지 농도가 올라간다.

기상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갈 것 같으면 평소보다 서둘러 야간 근무지로 향한다. 낮에 잠깐 선잠이 들었다가 깨어서인지 머리는 둔기로 얻어맞은 듯이 여전히 멍하다. 밤새 자료와 씨름하며 여기저기 기상특보를 발표하고 새벽 5시에 정규 일기예보를내보내고 나면 무거워진 눈꺼풀 사이로 졸음을 참느라 또 한 차례 전쟁을 치러야 한다.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애써 태연하게 일근 조와 교대하면서도 속으로는 다음번 야근에는 어떤 날씨가 날괴롭힐지 걱정이 앞선다.

대기를 구성하는 기체들은 각자의 온도에 따라 끊임없이 적외선을 방출하며 에너지를 잃는다. 어디선가 에너지를 받지 못하면 대기의 온도는 계속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대기층을 통과한햇빛이 지면을 달구면 지면의 온도가 올라가고 지면 부근에서 난류가 일어난다. 이 난류가 지면의 열을 대기로 끌어올려 대기를다시 덥혀준다. 햇빛이 지면과 가까운 아래쪽에서부터 대기의 온도를 높여주는 것이다.

산은 우리 민족이 이 땅에 터를 잡고 살기 오래전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바람이 땅의 지세에 순응하여 흘러왔듯이이 땅도 대기의 숨결을 받아들였다. 오랜 세월 이 땅은 바람이 부는 대로, 비나 눈을 맞는 대로 깎이면서 그렇게 다듬어져왔다. 완만한 언덕을 오를 때는 부드러운 비와 이슬을 느낄 수 있고, 가파암반 기슭을 오르는 동안에는 바람의 거친 손자국을 그려볼수 있을 것이다. 등반을 하다 보면 하루 동안에도 여러 개의 기후대를 통과하게 된다. 마주치는 동식물과 토양의 미생물은 날씨에적응한 그들만의 삶을 속삭인다. 우리는 산의 날씨가 특이한 것에 놀라지만 날씨는 자연의 원리에 따라 산과 그곳에 머무는 생명과 조화롭게 공존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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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치고는 때 이르게 한파주의보가 내렸던 날이 기억난다.
북쪽에서부터 찬 공기가 빠르게 내려와, 구름을 높은 곳으로 밀어 올렸다. 추분을 지나며 태양의 남중고도가 한결 낮아진 만큼,
높은 구름에 비친 저녁 햇살은 더 큰 각도로 구름 하부에서 반사되며 멋진 저녁놀을 선사했다. 아직 푸른빛이 남아 비취색으로은은하게 빛나는 하늘과 핑크색으로 단장한 높은 구름은 그렇게깊어가는 가을밤을 화려하게 열고 있었다. 다음 날 찬 공기가 불러온 대륙고기압이 세력을 뻗치면서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었고 먼지마저 사라졌다. 대기는 빨강과 노랑으로 조금씩물들어가는 벚나무 이파리 사이로 더욱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시인의 탄성이 들려왔다. "오매 단풍들것네."

한 그루의 나무 안에서도 가지마다 나뭇잎이 물드는 속도가달라서 여기저기 다른 색의 꽃이 피어나는 것 같다. 어떤 벚나무는 한쪽은 붉은색이고 다른 쪽은 아직 초록색이 많은 콤비로아입는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한쪽은 잎이 떨어진 앙상한가지만 남기고, 다른 쪽은 온통 붉은빛으로 물든다. 생을 다할 때까지 정열을 남김없이 불태우는 모습이 마치 타다 남은 촛불이한데 모여 바람에 흔들리는 것 같다.

가을에 더욱 건조해진 공기 안에는 미량의 향기들이 들어 있다. 이 향기들은 각자의 존재를 알리면서 예민해진 후각을 자극한다. 낙엽이 서로 부딪칠 때마다 다크 초콜릿의 달콤한 향기에다 장작불을 지필 때 맡았던 갖가지 향이 섞여 나온다. 풍파를 만나야 덕이 드러나듯이 낙엽도 으스러질 때마다 지나온 세월의 향기를 내어놓는다. 메타세쿼이아나 소나무 길로 들어서면 갑자기눈이 내린 듯 고요해진다. 가느다란 이파리들이 마치 눈이 내리듯 쌓이면서 소음을 빨아들이는 것 같다. 그러면서 곱게 깔린 양탄자 위를 지나가는 것처럼 푹신한 느낌이 든다.

바람도 모나지 않았다면 이파리가 줄기에 단단히 붙어 안정된 환경에서 지내올 수 있었을 것이다. 가을이 되어 맑은 날이 계속되면 낮에는 햇빛을 많이 받아 설탕이 많이 생산되고, 밤에는 적외선이 쑥쑥 하늘로 방출되어 기온이 뚝뚝 떨어진다. 떨켜층이 두텁게 자라는 동안 이파리에 남은 영양분은 안토시아닌으로 변해 빨간 단풍잎이 제대로 모양을내게 된다. 이렇게 축복받은 날씨의 혜택을 입은 이파리라면 축적한 영양분이 풍부해서 가을에 감사의 축제라도 벌이듯 곱게 물들 준비가 되어 있는 셈이다.

게다가 가을이 되어도 구름이 많이 끼면 낮에는 광합성이 잘되지 않아, 설탕이 덜 만들어지고 색소의 생산도 더뎌진다. 야간에는 구름이 대지를 감싼 비닐하우스 역할을 하게 되어 기온이덜 떨어지고 나무의 생체 시계도 느려진다. 날씨가 끄물끄물하고비가 구질구질하게 자주 오면서 단풍이 활짝 모습을 드러내기보다는 색이 선명하지 않은 단풍이 느리게 찾아올 것이다. 그러면사람들은 단풍 색이 왜 이리 탁하냐면서 괜스레 대기오염을 탓할지도 모른다. 물론 나무도 사람처럼 공해와 먼지로 인해 생육에지장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날씨가 주는 스트레스가단풍의 빛깔에 고스란히 나타난 것이다. 화난 사람이 표정을 일그러뜨리듯이 말이다.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서 여름이 길어지고 가을은 점차 짧아지는 추세다. 단풍이 드는 시기도 점차 늦어지는 경향이 있다.
밤이 길어지는 신호는 일정하지만 기온이 낮아지는 신호는 온난화로 계속 늦추어진다. 두 신호가 서로 엇박자를 내면서 나무의생체 시계는 교란되고 단풍의 색도 둔탁해진다. 온난화는 특히낮보다는 밤 기온을 높이는 쪽으로 작용한다. 여름철에는 열대야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가을에는 야간의 기온이 덜 떨어지면서단풍도 곱게 물들기 어려워진다. 온난화는 식생의 분포에도 영향을 미친다. 나무들은 더위를 피해 점점 북쪽으로 옮겨간다.
지에서도 점점 높은 곳으로 옮겨가는 추세다. 단풍은 식생의 분포에 따라 색의 배치가 달라진다. 기후변화가 심해질수록 자연은지금과는 사뭇 다른 가을 풍경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지금은 당연하게 즐기는 단풍의 향연도 후대 사람들에게는 먼 옛날의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남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빛이 밝음의 힘이라면 인력은 어둠의 힘이다. 태양이 빛나는 광선으로 만물에 생기를 불어넣는 동안 우리는 이 어둠의 힘을 잊고 산다. 하지만 생명을 다한 별이 남겨두었다는 블랙홀을보라.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심지어는 빛마저도 끌어들인다지 않는가. 달은 햇빛을 반사하여 밤에빛난다. 달은 스스로 빛을 내지는 못하지만 인력만큼은 자기 몫을 낸다. 달이 바닷물을 끌어당기는 힘은 태양의 두 배나 된다. 무게는 태양보다 훨씬 덜 나가지만 지구 가까이 있다 보니 물을 끄는 힘은 더 세기 때문이다.

반면 어두운 면을 보면 보름달의 인력에 이끌린 무언가가 무덤에서 일어난다느니 하는 기이한 서양 미신이 떠오른다. 아르헨티나의 어느 시골에는 일곱 번째로 태어난 아이가 사랑에 빠지면보름달이 뜰 때 늑대로 변한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영화 <나자리노>에서 늑대 인간은 금발 소녀 크리셀다와 사랑에 빠지고 두 연인은 결국 마을 사람들의 총에 맞아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난다.
주제가 〈아이가 태어나면(When a Child Is Born)〉은 나자리노의 슬픈 운명을 암시하는 것 같다. "아이가 자라게 되면 눈물이 웃음으로, 증오가 사랑으로, 전쟁이 평화로 바뀌어 모두가 이웃이 되고,
비애와 고통은 영원히 잊히게 될 겁니다. 지금은 이 모든 것이 꿈이고 환상이지만."

가을밤이 깊어가면서 여기저기 안개가 피어오른다. 구름방울이 첩첩이 쌓인 침침한 수분의 장막을 헤쳐가다 보면 시야가좁아지고 고립된 느낌에 기분이 가라앉는다. 하지만 어디선가 빛이 비치면 사정이 달라진다. 가로등이나 주변 건물에서 새어나온불빛이 구름방울에 산란하여 광원 주변으로 은은하게 퍼진다. 구름방울이 저마다 작은 광원이 되어 텅 빈 공간을 빛의 선으로 연결하면 나와 주변 세계의 관계망이 복원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모나리자〉를 그릴 무렵에도 종종 대륙고기압이 유럽을 감싸면서 기류가 정체하여 꼬물거리는 날씨가 이어졌을 것이다. 대기가 안정한 가운데 먼지가 달라붙은 수증기가 차곡차곡 내려앉아 시야는 흐려지고, 대기 중에서 산란한 햇빛이 전경에 끼어들어 산야에는 어스름한 푸른빛이 감돌았을 것이다. 거장은 인물뒤쪽의 계곡과 폭포와 들판을 연무가 낀 듯 희미하게 처리했다.
배경이 더욱 멀리 있는 것처럼 그려냄으로써 중앙의 인물이 더욱도드라져 보이게 했다.

미래학자 폴 사포(Paul Saffo)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벗어나려하기보다는 껴안으라고 조언한다. 예측대로 굴러가는 시장은 투자할 매력이 없다는 것이다. 불확실성은 위기인 동시에 기회임을상기하면서도 나에게만큼은 안개가 걷히기를 바라는 건 풀리지않는 딜레마다.

우리는 날씨의 혜택을 많이 받는 나라에 살고 있다. 연중 비나 눈이 적당히 내려주고, 그 사이사이마다 무난한 날씨가 고루섞여 있다. 장마철만 잘 보내면 비나 눈이 기껏 하루 정도 내리다가 날이 회복된다. 궂은 날씨를 잠시 견디고 나면 한동안 평온한날씨가 이어지는 자연의 리듬을 즐길 수 있다. 하늘의 표정이 덤덤하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조용히 지나가는 날씨는 당연히주어진 것, 으레 있는 평범한 것으로 치부하고 만다.

제철에 맞는 옷을 입고 있다면 여름이나 겨울에도 좋은 날씨가 제법 있다. 겨울에는 찬 공기가 자주 내려와 대기가 안정하므로 먼지 농도가 관건이다. 하지만 온대저기압이 막 통과한 후에는 북서풍이 강하게 밀고 내려와 일시적으로 먼지를 내보낸다.
이때 추위만 견딜 수 있다면 습도, 먼지 농도, 하늘 상태 모두 양호한 쾌적한 날씨를 즐길 수 있다. 게다가 북동풍이 불어오는 날이면 동해의 깨끗한 공기가 한동안 들어와 더없이 맑은 하늘을즐길 수 있을 것이다.

날씨가 좋은 날은 모든 것이 평탄하게 흘러가서 일기예보도쉬워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평탄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얘기를 들어보면 곡절이 있고 남모를 애환이 있듯이 평탄한날씨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어, 이들을 위한 예보는 여전히 도전적이고 어렵다. 이동성고기압이 한반도에 자리 잡으면서 대체로 무난한 날씨가 예상될 때에도 어떤 이들은 안개나산불이나 불볕더위로 힘든 시간을 보낸다. 사실 무난한 날씨라는표현은 일상적으로 무난한 하루를 보내는 이들에게나 해당하는것일 뿐이다.

수증기건 먼지건 간에 통상 맑은 날에 몰려와서 문제다. 흐린 날에는 비나 눈이 내려서 기분을 가라앉게 하고, 맑은 날에는수시로 먼지가 불청객처럼 찾아온다. 늦가을이나 겨울철에 고압권이 세력을 뻗치며 무난한 날씨가 보장되는 때에는 하늘이 뿌옇고 탁하다. 주변에서 배출된 미세먼지가 위로 확산하지 못하고계속 쌓이면서 먼지 농도가 높아진 탓이다. 그게 아니라면 북서풍을 타고 이웃나라에서 오염 먼지가 유입된다. 지자체마다 주변산업 시설의 먼지 배출량을 통제하고 주민에게는 가급적 외출을자제하라는 문자메시지를 계속 날리느라 바쁘다.

이런 일을 겪고 나면 좋거나 나쁜 날씨가 없고, 특별히 무난하거나 평이한 날씨도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상황에 따라 날씨의 표정이 달라지고 날씨로 인한 나의 기분도 달라지기때문이다. 내가 평이한 날씨의 혜택을 누리는 동안 누군가는 바로 그 날씨로 힘든 시간을 보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날씨는 자연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현상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구름에 따라 하루의 표정이 달라진다. 맑은 날 하면 파란 하늘을 떠올리지만 막상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다면 얼마나 단조로울까, 흐린 날에는 으레 구름이 꽉 들어찬 잿빛 하늘을 쳐다보고싶지도 않지만 조금 벌어진 구름 틈새로 햇살이 내려올 때는 또얼마나 가슴이 벅차올랐던가. 우리도 모르는 새 하늘은 순간순간모습이 달라진다. 파란 하늘도 태양의 궤적에 따라 색의 농염이달라진다. 뭐니 뭐니 해도 하늘의 인상을 좌우하는 건 파란 배경사이로 흐르는 구름이다.

5D
구름 중에서 가을 하늘 높이 뜬 새털구름은 반달 모양의 원호를 그리며 파란 하늘에서 하얗게 반짝인다. 마치 새들이 경쾌하게 가지에서 가지로 뛰어다니는 것 같기도 하고, 학이 가볍게이리저리 날갯짓하는 것 같기도 하다.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어린 콩나물처럼 매달린 가는 구름 띠에는 얼음 결정이 들어 있다. 이것이 햇살에 반짝이며 더욱 정결한 느낌을 준다.

대기의 상태와 움직임에 따라 구름의 형태와 모양이 달라지듯이 거꾸로 구름만 잘 관찰해도 일기를 대강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예보관들은 일기도에서 맨 먼저 구름 기호부터 읽는다. 일기도에는 다양한 구름 기호가 쓰여 있다. 이것들은 마치 이집트상형문자같이 생겼다. 뒤집힌 U자는 구름이 솟아나는 모양으로,
뭉게구름을 나타낸다. 옆으로 긴 줄은 구름이 옆으로 퍼지는 모양으로, 비단구름같이 평평한 구름을 나타낸다. 한자를 쓰듯이 펜으로 그린 두세 획이면 27종의 구름을 구분해낼 수 있다.

구름을 분류하는 방식은 학자마다 다를 수 있었지만, 당시유럽 사회는 그림을 통한 과학의 소통 방식에 큰 호응을 보인 것같다. 목동의 뒷모습을 배경으로 멀리 지평선까지 드리운 양떼구름에는 한가로움이 담겨 있다. 아이를 안고 웅크린 여인의 뒤로번개의 섬광과 함께 높이 솟은 먹구름에는 격정과 근심이 가득하다. 순간 포착에 뛰어난 사진기가 발명된 후에도 구름 책자에 풍경화와 사진을 나란히 배치하는 관행은 19세기 내내 이어졌다.
괴테가 구름 에세이를 칭송하는 시를 쓰면서 하워드는 유명세를탔고 그가 제안했던 구름 분류 뼈대는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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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을 통틀어 창틀이 바람 소리를 내는 시기가 두어 번 있다. 한 번은 한겨울 시베리아고기압이 확장하며 북풍이 몰아칠때다. 어느 때보다 대기압이 높은 데다 풍속도 초속 10미터에 근접해 소리를 낸다. 겨울철에는 눈이 그치고 한파가 닥칠 때마다이런 소리를 몇 차례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멀리서 폭풍우가 다가오면 기압이 서서히 낮아진다. 그런데 이 미세한 공기의 떨림은 소리로 감지되지 않는다. 설령 미약한 음파가 전해온다고 하더라도 여의도 몇 배만 한 대형 스피커에서나 나올 법한 초저음이라서 듣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우리가 느끼든 아니든 간에 우리 주변에서는 공기가 쉴 새 없이 흔들리며 기압의 파동을 만들어낸다. 그중에는 소리로 들을 수 있는것도 있고, 전혀 들을 수 없는 것도 있다. 바다 위에 출렁이는 물결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기압 파동은 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음파와 달리, 파의 진행 방향과 수직으로 공기가 진동하므로 고막을 자극하지 못한다.

공기의 떨림을 소리로만 듣는 것은 아니다. 스피커에 손을대보면 묵직한 저음이 흘러나올 때마다 뭔가가 손을 자극한다.
피부가 음악을 느끼는 순간이다. 쉴 새 없이 스피커의 떨림판이진동하여 공기를 흔들어대고 그 압력이 다양한 리듬으로 피부를두드리는 것이다. 헬렌 켈러도 설리번 선생님이 말하는 것을 듣기 위해 입술에 손을 대고 진동을 느껴보지 않았던가.

이렇듯 기압의 파동을 체감하는 방식은 실로 다양하다. 들리지 않는 것을 몸으로 느껴보고 마음으로 그려볼 때, 우리는 대자연이 펼쳐놓은 리듬과 멜로디와 음색의 향연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될 것이다.

의도적인 태풍 조절 실험은 멈추었지만, 우리는 매일 온실기체를 배출하며 태풍의 강도와 경로에 영향을 미치는 실험 아닌실험에는 여전히 참여하는 중이다. 영화 <투모로우>에서는 기후변화로 대서양의 해류가 난조를 보이고 북극 한파가 남하하며 한기와 난기가 만나는 곳에서 초강력 태풍이 발달한다. 태풍이 몰고 온 거대한 파도가 뉴욕을 비롯한 해안 도시를 집어삼키는 장면은 가공의 시나리오이기는 하지만 자연의 파괴력에 전율을 느끼게 한다. 물론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하지만 지구온난화가 계속되어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 바다에서 증발이 더 활발해진다.
그렇게 증가한 대기 중의 수증기는 태풍의 연료가 되어 더욱 강력한 태풍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기후변화의 시대에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5월에서 6월 초순까지는 건조하고 맑은 날이 많은 편이다.
비가 오더라도 그치고 나면 금방 쾌청한 날씨로 되돌아온다. 햇볕이 점차 따가워져서 아파트 뒷길을 걸을 때도 요리조리 그늘을 찾아다니게 된다. 울타리마다 고개를 내민 빨간 덩굴장미가여왕의 계절임을 말해준다. 꽃봉오리가 막 피어날 때는 진한 빨간색이었다가 활짝 꽃잎이 열리면 점차 꽃의 크기가 커지면서 색도 옅어진다. 햇살이 강해 꽃잎이 말라가고 색깔도 연한 핑크빛에 가까워진다. 이때가 되면 한때 맑기만 했던 하늘은 어느새 우윳빛으로 혼탁해지고 구름이 많아지며 날은 흐리기 일쑤다. 필경장마철이 가까워진 것이다. 덩굴장미는 자연의 시계를 미리 알고있는 듯 이렇게 아름다움을 뽐낼 시기와 물러갈 시기를 저울질하는 것이다

장맛비는 대양의 수증기가 계절풍을 타고 아시아 대륙의 열기를 찾아가는 대규모 지구촌 행사다. 여름이 되면 태양의 남중고도가 높아지고 열의 적도는 북반구로 옮겨온다. 육지가 많이몰려 있는 북반구는 바다가 많은 남반구보다 빠르게 달아오른다.
특히 아시아 대륙은 광활한 만큼 다른 지역보다 더욱 빠르게 달아오른다. 더워진 공기는 위로 올라가고 이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주변에서 바람이 모여든다. 아시아 대륙의 남동쪽에 위치한우리나라는 여름에 바다에서 대륙으로 향하는 계절풍의 영향으로 남동풍 또는 남서풍이 분다.

식물이 영양분을 축적했다가 꽃을 피울 때 일거에 몰아 쓰듯이 대기도 태양으로부터 받은 에너지를 우기에 몰아 쓴다. 적도에서 조금 비껴 있는 아열대 해역은 햇빛을 듬뿍 받아 수온이 높고 열에너지가 풍부하다. 하지만 비가 거의 오지 않아 바다의 사막이라 불린다. 심해의 자양분이 표면으로 올라오지 못해 물고기도 찾지 않고 고기잡이배도 없는 황량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장맛비를 가져다주는 소중한 수자원의 원천이다. 바다가 햇빛으로부터 받은 많은 에너지는 바닷물이 증발할 때 수증기로 옮겨 탄다. 여름철에는 아열대 해역에서 고원을향해 수증기가 대거 이동하므로, 계절풍의 길목에 놓인 우리나라에는 이 수증기의 다발이 먹구름이 되어 장맛비를 내린다. 그러다가 계절이 바뀌면 계절풍이 점차 북서풍으로 변하면서 장마철도 끝난다.

지구온난화는 장맛비의 또 다른 변수다.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 증발량이 늘어난다. 기온이 올라가면 대기 중의 수증기도늘어난다. 계절풍의 세기가 같더라도 수증기가 증가하면 계절풍의 길목에서 더 많은 먹구름이 생겨나고 더불어 장맛비도 거세진다. 반면 계절풍을 비껴가는 곳에서는 비가 오지 않고 고온에 땅의 수분이 증발되어 물 부족 현상이 심해진다. 지금과 같은 기후변화 추세가 이어진다면 홍수와 가뭄의 대조가 지역별로 더욱 뚜렷해질 가능성이 크다. 항생제를 투여할수록 바이러스의 내성이강해지듯이 자연에 대한 관리 영역을 넓히려 할수록 자연은 더욱미묘하게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심술을 부리는 것 같다.

바람이 불고 구름이 끼고 비나 눈이 오는 것은 태양이 지구를 비추고 있어서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 대기도 햇빛의 힘으로 움직인다. 대기는 식물처럼 햇빛을 직접 소화할 능력이 거의 없다. 대신 동물처럼 다른 것이 만들어낸 에너지를 먹고 산다. 땅이나 바다가 햇빛을 받아 만들어낸 에너지를 받아 쓰는 것이다. 한마디로 땅과 바다가 쉬지 않고 일을 해서 대기를 먹여 살린다.

기작은 소나기구름이 발달했다가 소멸하는 데는 반 시간가량이 소요된다. 잠깐 비를 피해 기다리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처럼 금세 날이 개는 것이다.

뮤지컬 영화 〈오즈의 마법사>를 보면 단조로운 일상에 따분해진 도로시가 〈무지개 너머 어딘가(Somewhere Over the Rainbow)〉를 노래한다.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 하늘은 푸르고 당신의 꿈이이루어지는 곳."

비온 후 무지개가 뜨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매일 보던 낯익은 건물이며 들판이며 도로이건만, 하늘에 드리운 형형색색의구름다리 아래에서는 새로 단장한 풍경화가 되어버린다. 공장에서 새어 나오는 검은 연기나 도로 위를 가득 메운 차량의 행렬이나 아무렇게나 우후죽순 솟아난 스카이라인도 밝은 빛의 조화에파묻혀 보이지 않는다. 머릿속의 복잡한 고민이나 일터에서 가져은 상념도 잠시 사라지고, 한동안 잊고 있었던 옛 추억과 아름다운 꿈이 떠오른다.

어둠 속에서 파란빛이 먼저 다가와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높은 곳에 떠 있는 기체가 일찍 해를 보고 소식을 전한 것이다. 스카이라인에는 두터운 대기층을 지나며 살아남은 붉은빛과 주변의 파란빛이 섞인 오묘한 보랏빛이 감돈다. 여명이 아름다운 것은 땅이 떠오르는 태양을 감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늘의 파랑은 그냥 파랑이 아니다. 빛나는 파랑이다. 햇빛의 빠른 박자에 맞추어 기체 안의 전자가 진동하며 경쾌하게 춤을 춘다. 게다가 바람이 부는 대로 대기가 흔들리면 푸른빛이 반짝거린다. 사파이어가 우주의 별처럼 하늘에 넓게 퍼져 있는 것같다. 기체들은 층층이 쌓여 중력이 끝나는 곳까지 빛을 산란하므로 파란색의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보면 볼수록 심원한 대기의 바다 속으로 빨려들어 갈 것만 같다.

가을은 사계 중 가장 쾌적한 시기다. 장마철에 수증기를 몰고 왔던 남풍은 북서풍으로 바뀌며 습도가 낮아진다. 피부에 뭔가 닿아도 끈끈해지는 불편함도 없고, 그렇다고 피부가 마를까봐 크림을 발라주지 않아도 된다. 실내든 실외든 겉옷만 맞춰 입으면 쉽게 체온을 조절할 수 있다. 체온을 내리기 위해 땀을 흘리지 않아도 되고 몸을 덥히기 위해 근육을 긴장시키지 않아도 된다. 들판에는 여름 내내 햇빛을 듬뿍 받아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열매들이 수확을 기다린다. 집 앞마당 감나무 가지에는 홍시가 주렁주렁 매달리고 저 멀리에는 벼이삭이 여문 황금벌판이펼쳐진다. 여기저기 붉거나 노랗게 물들어가는 단풍 사이로 드러난 하늘은 색의 대비로 파란색이 더욱 선명하다.

특히 새털구름은 깃털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우아함을 더해준다. 아무렇게나 우후죽순 자라는 것이 아니라 혼란 속에서도 어떤 질서와 미적 균형을 보여주는 것이다. 얼음 입자는 구름 속에병존하는 과냉각 수적이나 주변 수증기를 끌어들여 덩치가 커진다. 그러다가 자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하강하는 동안 증발이일어나 입자는 점차 쪼그라들다 결국 사라진다. 결국 구름의 흔적이 끊기게 되어, 지상에서 보면 가느다란 구름 띠처럼 보인다.
대류권에서 바람은 고도가 높을수록 강하므로, 구름 상부가 하부보다 바람에 많이 밀려 올라가 활 모양으로 휘어진 구름 모양이나온다. 쉼표 모양의 꼬리는 왈츠처럼 경쾌하게 미끄러지는 리듬으로 차분한 파랑 위에 생동감을 불러일으킨다.

생활 주변에서 흔히 마주치는 푸른색은 대개 화학적 공법으로 만들어낸 인공 색이다. 휴양지로 유명한 그리스 산토리니섬은하얀 벽돌 위에 돔 모양의 파란 지붕을 얻은 건물들로 관광객의눈길을 끈다. 섬마을 사람들은 석회암에 탤크 가루를 섞은 안료를 썼다. 배를 손질하고 남은 페인트로 지붕뿐 아니라 집 안의 다른 곳을 칠할 만큼 파란색도 흔한 색이 된 것이다. 쓸 수 있는 파란색의 종류는 수십 가지가 넘지만, 하늘이 보여주는 색의 다양성과 깊이와 광택과는 비교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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