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들 속으로 모래가 들어온 걸 벗어서 털면서 나는 문득 실소를터뜨렸다. 어머니가 낯설고 바늘 끝도 안 들어가게 척박한 땅에다가아둥바둥 말뚝을 박으시면서 나에게 제발 되어지이다,라고 그렇게도 간절히 바란 신여성보다 지금 나는 너무 멋쟁이가 돼 있지 않은가. 그러나 신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어머니가 생각한 것으로부터는 얼마나 얼토당토않게 못 미처 있는가. 엄마의 생각은 그당시에도 당돌했지만 현재에도 역시 당돌했다. 엄마의 억지는 그뿐이 아니었다. 나로 하여금 끊임없이 근거를 심어줌으로써 도시에서만난 웬만한 걸 덮어놓고 무시하도록 부추기다가도 근거의 고향으로 돌아가선 서울내기 흉내를 내도록 조종했다.

나는 내가 아직도 잊지 않고 있는 ‘신여성‘ 이란 말을 마치 복원한성벽처럼 옛것도 아닌 것이, 새것도 못 되는 우스꽝스럽고도 무의미한 억지라고 느꼈다. 나는 앞으로 다시는 그것을 복구하지 않을것이다. 그건 지나간 세월 역시 부정되어선 안 될 것 같았다.

그 섬뜩한 건 핏줄 사이에만 있는 신비한 끈과 관계가 있다기보다는 내 철저한 방심과 더 깊은 관계가 있음 직했다. 집안일에 대한 일시적인 방심은 나 자신만의 일이나 재미에 대한 몰두를 뜻하기도했고, 그런 모처럼의 이기에서 헤어났을 때, 한 집안의 안주인 노릇만을 숭상했던 평소의 의식이 느낄 수 있는 가책과 당황이 그런 섬뜩한 이물감으로 와닿았다고 생각하는 게 훨씬 지당하고도 속 편했다. 내적인 심리 상태와 외부의 현상 사이에 있다고 가정한 어떤 초월적인 힘의 작용에 대해 이런 온당하고 상식적인 해석을 붙이고나니 섬뜩한 느낌의 영험도 차츰 무디어지기 시작했다.

그뿐 아니라 불길한 것의 감지 능력이 거의 백발백중이었을 소싯적의 그 기분 나쁜 섬뜩한 느낌 또한 나는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지금의 나의 안주인으로서의 당당한 권세, 일종의 터줏대감 의식도실은 그 시절 그 느낌에 근거하고 있을 것이다.

봄에서 겨울, 앵두꽃에서 눈꽃 사이 이 아름다운 술을 빚을 수 있는 새빨간 열매를 서 말, 아니지 다섯 말씀을 그 작은 키에 다닥다닥매달고 서 있었을 앵두나무의 고달픈 시기를 생각하며 나는 찬탄을주체 못 하고 있었다.

친구의 남편이 돌아왔다. 폭설을 멎었지만 논, 밭, 길, 개울의 구별없이 망막한 눈밭에 새로운 길을 내면서 돌아온 그의 귀가는 휘황한헤드라이트를 앞세우고 엔진 소리도 요란하게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무릅쓴 동물의 귀소처럼 야성적으로 보였다. 나는 크게 감동해서 예의 거나한 다변으로 찬사를 퍼부었다. 나의 주정의 또 하나의 미덕은 아무리 마셔도 거나한 것 이상은 취하지 않는 거였다.

짧고 깊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찬물을 끼얹듯이 제일 먼저 떠오른생각은 내 아이들이 나에게 가장 가까운 육친이듯이 어머니 역시가장 가까운 육친이라는 거였다. 소위 말하는 일촌 사이가 서로 동등하거늘 나는 내 아이들 대신 어머니가 당한 재난을 마치 타인에게 그것을 떠맡긴 양 다행스러워했던 것이다.

이때 간호원이 우리 가족을 불렀다. 우리는 우르르 담당 의사한테로 몰려갔다. 응급실 담당 레지던트는 너무 젊고 피곤해 보였다.
벽에 붙은 전자시계의 빨간 초침은 소리 없이 자정을 넘고 있었고,
엑스레이 감광판에서 어머니의 앙상한 엉치와 대퇴골이 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오른손을 높이 쳐들어 보이면서 우리 모두를 감싸고도남을 듯이 너그럽고 훈훈하게 미소지었다. 그러나 누가 보기에도어머니의 오른손 손목은 정상이 아니었다. 뼈가 불거져 나오고 한쪽으로 약간 삐뚤어져서 성한 손목보다 굵어 보이긴 했지만.

묻고 물어서 당도한 산골굴은 암벽에 빈지문이 달린 굴속이었다.
대낮인데도 촛불을 켜놓고 있었다. 한눈에 보통 토굴이나 암굴하곤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벽이고 천장이고 온통 반짝이는 쇠붙이로 뒤덮여 있었다. 오톨도톨 모자이크된 잗다란 쇠붙이들이 촛불이출렁이는 대로 물결처럼 흔들려 신비한 몽환의 세계를 이루고 있었다. 산골 굴의 주인은 흰 무명 두루마기를 입은 젊은 남자였다. 만약 그가 나이 들고 흰 수염이라도 기르고 있었더라면 우리 남매는다짜고짜 그의 발밑에 몸을 던지고 어머니를 위한 영약을 주십시사간절히 빌었을지도 모른다.

텔레비전 연속극이나 영화 같은 데서 보면 수술실로 들어가기 직전의 집도의와 환자 가족 사이가 사뭇 감동스럽다. 초조해하는 가족 앞에서 의사는 잠깐 권위의 갑주를 벗고 인간적인 온정과 성의를 내비친다. 실수할 확률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손 치더라도 인간을 인간에게 맡겼다는 게 인간을 백발백중의 기계에게 맡긴 것보다훨씬 마음 놓이게 한다. 그런 마음이 의사에게 당치 않은 엉석도 부리게 하고 때로는 추태에 가까운 애걸이나 부탁, 다짐까지 하게 되고 의사는 가족들의 그런 인간적인 약점에 잠깐이나마 그 어느 때보다도 너그러워지는 아량을 보인다. 어쩌면 그건 아량이라기보다는 동정이나 감상인지도 모르지만

딴것도 아닌 사람들의 목숨을 맡고 맡기는 관계에 있어서 사전에잠시라도 그런 인사치레 내지는 교감이 없다는 게 나는 몹시 허전했다. 수술동의서에 도장 찍는 일보다는 그게 더 필요한 일일 것 같았다. 그런 중에도 수술장에 들어가기까지의 어머니의 밝고 천진한태도는 많은 위안이 되었다. 팔십 노구에 가해질 대수술에 대해서어쩌면 그렇게 불안 없이 마냥 편안할 수가 있는지 어머니는 산골요법과 수술을 동일시함으로써 그런 편안함에 도달할 것이다. 어머니에게 아직도 오빠는 종교였다.

수술실 문이 열리고, 아직 수술복인 채인 의사가 눈만 반짝거리는 커다란 마스크의 한쪽 끝을 천천히 귀에서 벗기면 입가엔 어려운 일을 성공적으로 끝낸 사람 특유의 만족스런 피곤이 감돌고, 마침내 입을 열어 "안심하십시오. 수술은 성공적이었습니다" 하면 가족들이 혹은 우러러보기도 하고, 혹은 머리를 조아리기도 하면서감격과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광경은 출구 쪽에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입구는 환자를 받아들이고 출구는 환자를 토해내고 가족은 전송하고 마중할 뿐이었다.

장정 둘이서 미는 바퀴 달린 침대는 긴 복도를 신속하게 통과해서엘리베이터 앞에 멎었다. 그러니까 우린 경망스럽게도 이런 시험을바퀴 달린 침대를 겅정겅정 따라가면서 치른 것이다. 더 경망스러운 것은 그런 간단한 시험으로 우린 어머니의 수술이 성공적이었다고 믿어버린 것이다. 엘리베이터 속에서 우린 벌써 어머니에 대해 무관심했다.

밤에 홍 박사가 수련의들을 거느리고 병실에 들렀다. 회진 시간이 아닌데 들른 걸 보면 그날 수술한 환자만을 특별히 한 번씩 돌아보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회진 때와 마찬가지로 일진의 질풍처럼순식간에 몰려왔다가 순식간에 몰려갔다. 회진은 늘 질풍이었고복도에서 마주치는 의사 개개인의 걸음걸이나 행동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어디에고 머물기를 꺼리는 바람처럼 신속하고 정 없이 스쳐갔다.

어머니는 기운이 없다는 핑계로 기침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다가도 가래가 괴면 목에 경련을 일으키며 괴로워해서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 했다. 가래를 삼키면 폐렴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아무리일러도 소용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쉬지 않고 무슨 말인지 웅얼거렸다. 기력이 쇠진해서 사람의 육성 같지가 않고 미풍이 가랑잎 흔드는 소리가 났다.

악과 악의 대결처럼 살벌하고 무자비한 모녀의 힘의 대결에서 어머니가 패색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나의 손가락 자국대로 선명하게 부풀어 오른 어머니의 뺨에 비로소 내 뺨을 비비며 소리 내어 통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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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그때부터 대처로의 출분을 꿈꿨다. 마침 오빠의 소학교졸업을 기화로 그 꿈은 구체화됐다. 엄마는 아버지의 삼년상도 받들기 전에 오빠를 데리고 서울로 떠났다. 맏며느리로서 시부모 공양하고 봉제사라는 신성한 의무를 포기하는 대신 엄마는 아무런 재산상의 권리도 주장하지 못했다. 숟가락 하나도 집안 것은 안 건드리고 오로지 당신의 단 하나의 재간인 바느질 솜씨만 믿고 어린 아들의 손목을 부여잡고 표표히 박적골을 떠났다. 그때는 내가 떠날때 같은 고부간의 사전 불화조차 없었다.

엄마는 표를 사러 가고 나는 할머니와 긴 의자에 앉았다. 농바위고개에서 볼기 맞고 나서 나하고 할머니 사이는 쭉 서먹했다. 할머니는 보따리 귀퉁이에 손을 넣으시더니 조찰떡을 꺼내서 먹으라고하셨다. 나는 헛헛해서 매점 유리창 속에 고운 종이에 싼 먹을 것을바라보며 군침을 삼켰지만 그것을 받아먹긴 싫었다. 나는 속에 팥을 넣고 큰 고구마처럼 아무렇게나 뭉친 조찰떡과 할머니의 갈퀴같이 모진 손이 함께 싫고 창피해서 세차게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창밖에 전송객들도 따라 움직였지만할머니는 그냥 서 계셨기 때문에 곧 보이지 않게 됐다. 나는 휴우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고 나서 엉덩이를 들까불러서 의자의 신기한탄력을 시험해보기도 하고 한 손으로 등받이를 만져보고 쓸어보기도 했다.

어둑해질 무렵 경성역에 내렸다. 경성역은 아닌 게 아니라 컸다.
컸기 때문에 도리어 전모를 파악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생전 처음보는 인파에 휩쓸리면서 엄마를 놓칠까 봐 조마조마하는 게 고작이었다. 엄마는 할머니가 여다 준 짐까지 합해서 세 개나 되는 보따리를 이고 들고 구름다리를 오르내리느라 내 손을 잡아줄 수 없었다.
치마꼬리에 매달리는 것도 싫어했다.

나는 험악하게 생긴 지게꾼의 얼굴에 경멸이 스치는 걸 놓치지 않았다. 도시의 집단 속에서 엄마는 작고 초라해 보였다. 동백기름을발라 늘 곱게 빗어 쪽 찌던 머리가 힘겨운 짐을 이었다 내렸다 하는새에 헝클어지고 곤두선 것도 보기 싫었다. 나는 이유가 분명치 않은 슬픔이 복받치는 걸 느꼈지만 울음을 터뜨리진 않았다.

말끝마다 꼬박꼬박 상상꼭대기라네, 되지 못한 늙은이 같으니라구. 엄마는 포개놓은 세 개의 짐에 머리끝까지 가려서 겅정겅정 뛰다시피 하는 두 다리만 뵈는 지게꾼을 향해 조그만 소리로 그렇게중얼거렸다. 그러나 흥정이 그렇게 끝난 건 나한테는 매우 다행한일이었다. 나는 마음놓고 엄마의 손을 잡을 수가 있었다. 우리는 지게꾼을 따라 겅정겅정 뛰다시피 했지만 지게꾼은 줄창 저만큼 앞서가고 있었다.

엄마가 무서운 얼굴을 했다. 그리고 길가에다 화덕을 놓고 동그란 빵을 구워내는 곳에다 동전을 한 푼 내밀었다. 시골집에 있는 다식판 구멍보다 훨씬 큰 구멍에다 묽은 밀가루 반죽을 붓고 팥속을넣어 익힌 따끈한 빵을 두 개 받아 들었다. 팥의 감미는 혀가 녹을것 같았다. 그건 내가 알고 있는 엿이나 꿀의 감미보다 희미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훨씬 고혹적이었다. 나는 두 개의 국화빵에 현혹되어 전차 타고 싶은 걸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아껴가며 먹었지만 순식간에 먹었고, 그 후에도 오랫동안 시골의 감미하곤 이질적인 새로운 감미에 대한 감질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그 상자갑을 쏟아놓은 것처럼 담 쌓인 집들 중의 하나나마 우리 집이 아니라는 거였다. 현저동에서도 상상꼭대기에 있는 초가집의 문간방에 엄마는 세들어 살고 있었다. 집이 없는 사람이 남의 집에 세들어 사는 생활방식에 대해서 그 전에나는 듣도 보지도 못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하늘 같은 시부모님한테도 다소곳한 채로 또박또박 할 말을 다하던 엄마가 안집 식구라면 코흘리개까지도 두려워하고 굽신대는 것이었다.

나는 차츰 엄마 앞에서 안집 애한테 엄마가 기겁을 할 짓을 해서엄마로부터 동전을 얻어내는 방법을 알게 됐다. 서울 온 날 전차를타는 대신 얻어 먹은 국화빵의 달콤한 팥소 맛을 나는 결코 잊지 못했다. 그것은 엿이나 꿀의 단맛처럼 끈기 같은 게 가미된 강렬한 단맛이 아니라 부드럽고 순수하면서도 혀를 녹일 듯한 감미 그 자체였고 단 한 번에 나를 사로잡은 대처의 추파요, 대처의 사탕발림이었다. 1전짜리 동전은 당장에 그 달콤한 것과 바뀌었다. 국화빵이아니더라도 알사탕이나 박하사탕, 캐러멜 등 구멍가게에서 살 수있는 모든 것에도 나를 못 견디게 현혹시킨 도시의 감미가 들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의 악필과도 결코 무관한 것이 아닌 속필로 제아무리 많은 글씨공부도 후딱 끝냈다. 글씨공부 중에서도 일본 가나공부는 단조롭고도 무의미했다. 오빠는 자기 공부가 바빠서인지 그부호의 음만을 가르쳐주었다. 그 부호를 연결해서 만들 수 있는 새로운 말에 대해선 한마디도 안 가르쳐주었기 때문에 재미를 붙일수가 없었다.

나는 석필보다는 단간방의 연금 상태에서 벗어난 게 신기하고 즐거웠다. 살 것 같았다. 우리가 세든 초가집은 높은 축대 위에 있었다. 대문 밖도 평탄한 골목길이 아니고 인왕산으로 통하는 오르막길에서 가지를 뻗은 좁은 막다른 길이어서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길 밖은 곧 낭떠러지였다. 그러나 전망은 좋았다. 멀리 파란상자갑같이 생긴 전차가 왕래하는 한길이 보였고, 그 너머론 높고 붉은 담장을 둘러친 어마어마하게 큰 집이 보였다. 그 큰 집엔 임금님이라도 사시는지 파수꾼이 밤이나 낮이나 지켜 서 있었고 전차의 이마빡에 뻗친 더듬이가 공중에 걸린 줄과 맞닿으면서 간간이 일어나는푸른 섬광은 어둑어둑해질 무렵이 가장 아름다웠다. 나는 그것을볼 때마다 내 속에서도 뭔가와 부딪쳐 스파크를 일으키려는 아슬아슬한 힘 같기도 하고 열기 같기도 한 걸 느끼고 전율했다. 그건 골수에 사무치는 심심함이었다.

기어코 서울에도 말뚝을 박았구나. 비록 문밖이긴 하지만..………."
비록 여섯 칸짜리 집이지만 없는 게 없었다. 안방, 마루, 건넌방,
부엌, 아랫방, 대문간 이렇게 여섯 개의 방이 공평하게 한 간씩이었다. 마당도 있었다. 마당이 네모나지 않고 삼각형인 게 흠이었다.
엄마는 이런 마당을 ‘우리 괴불마당‘ 이란 애칭으로 불렀다. 새집은셋집처럼 대문 밖이 낭떠러지가 아니고 보통 골목인 대신 직삼각형마당의 가장 변이 긴 쪽이 남의 집 뒤쪽으로 난 담인데 그 밑이 어마어마하게 높은 축대였다.

엄마가 이웃을 상종해도 괜찮을 이웃과 상것, 바닥 상것의 세 가지로 나누는 기준은 들쑥날쑥해서 일정치 않았다. 성씨나 사는 형편, 말의 직업하고 관계가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았다. 기분내키는 대로였고 또 매우 변덕스러웠다.

시골 우리 면에서도 면서기가 그걸 가지고 집집마다 돌면서 쌀을감춰뒀음 직한 데를 함부로 찌르다 어떤 볏짚더미 속에서 피와 살이 묻어나왔다는 참혹한 소문도 엄마는 가져왔다. 징용을 피해 다니던 남자가 그 속에 숨어 있다가 그런 변을 당했다는 거였다.
일본이 망해가면서 인심이 흉흉하고 내일을 모르게 불안할 무렵나는 중학생이 돼 있었다. 나는 이미 문둥이가 어린이 간을 내먹는다는 소문은 믿지 않았지만 순사의 창이 엄마의 배를 찌르는 악몽에 비하면 그게 도리어 낭만적이었다.

결국 엄마가 악착같이 최초의 말뚝을 박고 서울 살림의 기틀을 마련하던 곳을 뜨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그건 엄마의 당초의 소망대로 문안의 좋은 집을 사서 가는 이사가 아니었다. 패색 짙은 일본의마지막 성화인 소개령에 못 이겨 솔선해서 시골로 피난을 떠났다.
피난살이 반년 만에 해방이 되었는데 먼저 상경한 오빠는 북새통에 돈을 좀 벌었는지 문안의 평지에다 집을 장만해서 엄마의 소원을 풀어드렸다. 그 후 살림은 순조롭게 늘어나 좀 더 나은 집으로 이사도 여러 번 다녔다.

어머니가 아무리 그때에다 대면 지금 큰 부자됐지? 하시지만 그때하고 비교하는 마음을 버리시지 않는 한 우린 그 최초의 말뚝에매인 셈이었다. 놓여났다면 구태여 대볼리가 없었다. 어느 만큼 달라졌나 대본다는 건 한끝을 말뚝에 걸고 새끼줄을 풀다가 문득 그길이를 재보는 격이었다.

그날 오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친구들하고 영천에서 헤어져서 그 동네의 예전 길을 더듬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길이 많이 변했지만 우리가 살 때 화산학교라고 부르던 붉은 벽돌집이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어서 눈대중 삼기에 편했다. 틀림없었다.
괴불마당 집이 있던 근처에 연립주택이 병풍처럼 들어서서 인왕산을 쳐다보지도 못하게 가리고 있었다. 나는 가슴속을 소슬바람이부는 것 같은 감상에 젖으며 그 근처를 헛되이 배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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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없는 꿈에서 자신의 영혼을 부활시키라. 영원한 지혜로 자신을 부활시키라. 그 방법은 무엇인가? 긴장 풀기, 자제력, 올바른 식생활, 올바른 각오 그리고 두려움 없는 마음 자세가 그것이다. 패배를 인정하지 말라.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다른 패배를 불러온다.
당신에게는 무한한 힘이 있다. 그 힘을 길러야 한다. 몸과 온갖 시련의 족쇄로부터 영혼을 부활시키는 방편이 명상이다. 무한하신 분의 발치에서 명상하라. 하느님으로 자신을 흠뻑 적시는 법을 배우라. 당신이 겪는 시련이 제법 크겠지만, 당신의 가장 큰 적은 자신이다. 당신은 불멸不滅이고 당신의 시련들은 필멸必滅이다.
시련들은 바뀔 수밖에 없지만 당신은 바뀔 수 없다. 당신이 그 영원한 힘을 풀어놓을 수 있고, 그것으로 자신의 시련을 흩어버릴 수있다.

일반적인 기도의 형식 대부분이 별 효과가 없는 까닭은 우리가하느님을 진정으로 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 깊은 곳에있는 이기적 욕망들을 아신다. 그래서 스스로를 나타내시지 않는것이다. 감각과 생각의 마귀들이 우리 몸과 마음의 신전에서춤추는 한, 침묵의 베일 뒤에 숨어계신 하느님을 알아보기 어렵다.

또한 이것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그 기쁨을 한번 맛보면다른 모든 욕망들이 초라하게 여겨질 것이다. 의식이 끝없이 확장되고 온갖 어려움들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온 세계가동원되어도 그 지복을 포기하도록 꾀어내지는 못할 것이다.
당신은 그 지복 안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즐길 것이다.

명상이 깊어지면 기쁘고 평화로운 상태가 되지만, 그러다가도 어느새 호흡이 거칠어지고 온갖 욕망과 어지러운 생각들이 일어난다. 수행자는 마땅히 이에 낙심하지 말고 더 깊은 명상으로 호흡과 감각을 고요하게 만드는 법을 배워야 한다.
비록 사람이 자기 육신을 극복할 수 없더라도 명상은 계속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감각의 덜한 즐거움과 영혼의 더한 즐거움을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척추를 바로 세우고 앉아야 한다. 척추를 구부리고 어딘가에기대는 것은 당신의 몸이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하는 것과같다. 무슨 중요한 일을 하는 것처럼 그렇게 앉아야 한다.
구부정한 척추는 자기 깨달음의 적이다. 머리가 구부정한척추에 얹혀있으면 몸의 전류가 살과 뼈로 흐르는 데 바빠서 하느님께 온전히 집중할 수 없다. 몸을 단련하라. 그러면 마음이 자신의 의식을 몸에서 무한하신 이에게로 자유로이 옮겨줄 것이다.

끊임없이 명상하면서 ‘하느님의 의식‘이라는 북극성에 마음의 초점을 맞추라. 나침반이 되라. 어디에 두어도 그 자리에서 작은 바늘이 북극성을 가리킬 것이다. 당신의 의식 또한 그래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과 함께 있으라. 무한하신 이와 더불어모든 것을 즐기라. 그 의식 안에서 항상 행복할 것이다.

결코 내일을 생각하지 말라. 오늘을 잘 살피라. 내일도 잘 살피게 될 것이다. 명상을 내일까지 미루지 말라. 좋아지기를 내일까지 미루지 말라. 지금 좋아지라. 지금 고요해지라. 이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될 것이다.

정서적 균형을 기르라. 불안을 극복하려면 어떤 일을 하든 괜히 흥분하여 설치거나 쓸데없는 의심으로 마음을 무겁게 하지 않겠다는 결심부터 단단히 하라. 그러고는 당장 해야 하는 일에만 생각을 집중하라. 방금 마친 일은 잊어버리고 곧장 다음 일로 넘어가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자신의 길을 가야 한다. 시련의 폭풍이 닥쳐도 ‘지복福‘이라는 항구를 향해 ‘집중’이라는 배를 저어갈 수 있고, 그래야 한다.
보통사람은 자기가 처한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집중하는 사람은 자기 인생의 꼴을 스스로 빚는다. 날마다 그날의 계획을 세우고, 하루가 저물면 그 계획이 이루어졌는지, 그래서 하느님과 자기인생목표에 더 가까워졌는지를 점검한다.
자신이 겪는 어려움의 탓을 남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아침마다, 친구와 적에게 똑같이 친절하겠다고, 어제보다 더 깊이 명상하겠다고, 좋은 책을 읽거나 좋은 음악을 듣겠다고 결심하라. 자신이지금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아닌지를 살펴보라. 고인 물이 되지말라. 스스로를 일깨워 계속 앞으로 나아가라.

의지력을 키우려면, 할 수 없겠다 싶은 일을 하기로 작심하고한 번에 한 가지씩 일을 완수하는 데 있는 힘을 다 하라. 잘 선택했다는 확신을 품고 실패에 좌절하지 말라. 이번 생生에서 자신을 완벽하게 성취하는 데 의지력을 활용하라. 자신의 마음에 점점 더 의존해야 한다. 그 마음이 자기 몸과 환경을 만드는 동력이기 때문이다.

직관적 감수성感受性을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 모든 앎의 바탕이 자기 안에 있다. 깨어난 뇌를 통하면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내가 행복해지려고 남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을 인생의 으뜸목표로 삼으라. 무언가를 아무런 사심 없이 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나 좋자고 이 일을 하는 것이라는, 남을 행복하게 해주는 데서 내 인생의 즐거움을 찾는 것이라는 생각을 놓지 말라.

무한하신 이 (the Infinite)의 음성은 강하고 힘 있어서, 그것이당신 몸을 관장하면 온갖 잘못된 진동이 멈춘다. 그 ‘영원한힘‘이 당신의 목소리를 통해서, 당신의 침묵을 통해서, 당신의 행동을 통해서, 당신의 이성理性을 통해서 말하는 것이 느껴지면, 그때 당신은 무덤 너머로까지 계속될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

잠들기 전, 가슴 깊은 곳에 하느님의 사랑을 모시라. 크리슈나, 그리스도, 평화, 지복의 제단에 휴식하시는 그분을 꿈에서 뵙게 될 것이다. 잠자리에 들 때는 하느님께서 평화와 기쁨의 품으로당신을 안아주신다. 그러니 잠 속으로 빠져들기 전에 그분을 평화로이 안아드리는 자신을 상상하라.

‘기쁨‘이라는 영적 보물을 붙잡으라. 다른 사람들 마음에도 기쁨을 불어넣고 길러주라. ‘근심’이나 ‘이기심‘이라는 강도에게 기쁨을 내어주지 말라. 죽음이 문을 두드리더라도, 당신의 잠재의식이 ‘모두 잃었다‘고 말하더라도 기쁨을 놓지 말라.

당신은 그동안 잠들어 나쁜 꿈을 꾸었다. 이제 하느님 안에서 깨어나라. 깨어나서 모든 곳에 실재하는 기쁨과 덕德을 온몸으로 느끼라.

이 책은 반세기도 전에 나온 것이지만, 벌써(?) 사람의 머리보다 가슴을 말하고 있다.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고 더 정직하다는 건 우리 모두경험으로 알고 있다. 감히 예견하거니와 앞으로는 머리 잘 돌아가는사람이 아니라 가슴을 움직이는 사람이 사회의 지도자가 될 것이다. 사회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옛 어른들처럼 가슴으로 사는 세상을 만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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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팔에 가만히 자기 손을 올려놓았다. 그런 다희를 보며, 그녀는 왜 자신이 팔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의 일들을 떠올리곤 하는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다희와 주고받던 이야기들 속에서만 제 모습을 드러내던 마음이있었으니까. 아무리 누추한 마음이라 하더라도 서로를 마주볼 때면 더는 누추한 채로만 남지 않았으니까. 그때, 둘의 이야기들은서로를 비췄다. 다희에게도 그 시간이 조금이나마 빛이 되어주었기를 그녀는 잠잠히 바랐다.

나도 네 살 무렵에 헤어진 엄마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어. 언니가 해주는 말을 통해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우리가 엄마와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추측할 뿐이었지. 어린 시절 언니는 엄마와다시 만날 날을 희망하고 있었어. 그 기대가 꺾이고 꺾여 더는 꺾일 게 남지 않게 되자 언니는 엄마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는 듯이 말하곤 했어. 엄마에 대해서라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면서. 그건 내가 처음으로 알아차린 다른 사람의 거짓말이었지. 언니의 그런 거짓말을 들을 때면 마음이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는 언니가, 나보다 삼 년을 더 엄마와 보낸 언니가 솔직히 부럽기도 했던 것 같아.

언니는 언제부터 그를 만났을까. 그는 늘 우리집 골목 앞큰길에서 언니를 내려줬어. 검은색 세단이었지. 평범한 차였지만 번호판에 적힌 숫자가 단순해서 알아보는 게 어렵지 않았어. 어느 날인도를 걷는데 누군가 차에서 내리는 거야. 고개를 돌리니까 조수석 문을 열고 나오는 언니와 함께 운전석에 앉아 언니를 올려다보는 남자의 얼굴이 보였어. 내가 처음 그를 본 순간이었지.
나와 마주친 언니는 안절부절못했어. 묻지도 않았는데 하굣길에 우연히 만난 교련 선생님이 데려다준 거라고 말하더라. 집으로가는 내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땅만 보면서 걸었어.

나는 주머니에서 핫팩 두 개를 꺼내 언니에게 건넸어. 그리고곧바로 집으로 뛰어갔지.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다가는 결국 언니에게 상처를 줄 것 같아서. 그날 이후에도 언니는 내게 그 말을 자주 했어. 너희 형부는 좋은 사람이야, 본성은 착한 사람이야, 나한테 잘해줘. 그럴 때면 나는 폭발할 것 같은 마음을 억누른 채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차마 언니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는 없었어.

"니 동생 왜 저렇게 살쪘는데?"
나는 못 들은 척 룸을 빠져나왔어. 스무 살의 나는 사람들의 본격적인 악의에 대해 잘 몰랐지. 언니의 시어머니는 뒤에서 계속나에 대해 말을 하는 것 같았는데, 빠르게 걸어나온 덕에 다행히그 뒤의 말은 듣지 못했어.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언니가 나를따라오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 같아. 마음이 상한 건 아닌지 걱정된다. 그런 말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홀을 나와서 뒤돌아봤을 때 언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시어머니와이야기하고 있더라. 마치 내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는 대답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어. 나는 어른이었고 더는 보호자가 필요한 나이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어. 내 편이 되어줄 사람도 없었지. 그도 그 사실을알고 내게 손을 댄 거겠지. 아빠에게 말한다고 해도 아빠는 나보고 참으라고 할 게 분명했어. 언니에게 말한다면 언니는 그가 나를 때린 이유를 물을 테고, 결국은 그가 나를 때릴 수밖에 없었다고 정당화하리라는 것도 알았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더이상언니를 믿지 않는 나를 발견했어.

사람들은 그와 그녀가 전혀 다른 성격을 지녔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도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같은 천성을 공유하고있다는 것을. 그 또한 자신의 슬픔을 너무 쉽게 알아보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가 언제나 자신에게 져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자신이 아무리 잔인하게 대해도 참고 견뎌줄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그를 그토록 애틋하게 여겼으면서도 동시에 그렇게 대했다. 이제와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제는 어떤 식으로도 지난 일을 만회할 수 없으니까.

몇 년 후 마침내 그녀가 첫 단막극으로 입봉했을 때, 그는 ‘작가이민주‘라고 쓰인 드라마 오프닝 장면을 캡처해서 한지 가게에 표구해 걸어뒀다. 좁은 빈 벽에 있던 시계를 떼고 그 자리에 액자를걸어둔 거였다. 왜 그런 걸 걸어뒀냐고, 당장 치우라고 타박하면서도 그녀는 그의 마음에 눈물이 났다. 그는 어떤 것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싫어했고, 과시와도 거리가멀었다. 그런 그가 남들에게 그녀를 자랑하고 있었다. 내 동생이이토록 멋진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어 어쩔 줄 몰라했다. 그녀가무슨 대단한 작가라도 된 것처럼, 특별한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그녀가 여덟 살이었던 그때, 그는 스물셋이었다. 갓 제대해서복학했다가 어머니의 투병으로 다시 휴학했다. 그와 이모가 돌아가며 어머니를 간병했다는 걸 그녀는 나이가 들어서 그에게 들었다. 아버지가 누군가와 전화하는 소리, 가끔 집에 들어오는 그가깊은 잠을 자는 모습 ・・・・・・ 막연함은 차츰 분명함으로 변해갔다.
하루하루 집안에 쌓이는 비통함의 공기는 그녀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그녀의 몸속을 드나들며 그녀를 일깨웠다.

시원한 바람이 소리와 그녀에게 불어왔다. 연한 나뭇잎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뭇가지가 흔들릴 때마다 봄볕이 눈을 따갑게 했다. 그녀도 소리를 따라 무릎을 세우고 앉아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바라지않아도 그 흔적은 사라지지 않을 거야. 그녀는 속으로 말했다. 푸른 무청이 가득한 텃밭을 그리면서 그곳으로 찾아올 햇볕과 비와바람과 작은 벌레들을 기다리면서.

이모는 어린 나를 이곳저곳에 데리고 다녔다. 그중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순간이 있다. 엄마와 이모의 사촌언니 환갑잔칫날이었다. 노래방 기계가 설치된 넓은 연회장에서 한복음입은 사회자가 노래를 부르고 손님들이 다 같이 춤을 줬다. 손님들은 술에 취해 소리지르듯이 말했다. 시끄러운 음악소리, 번스러운 분위기.… 나는 이모가 그런 상황을 가장 싫어한다는 걸알았다.

이모는 왜 그렇게 싫은 게 많아? 왜 다 못마땅하게 여기는 거야? 왜 그렇게 불평을 해? 좋은 면을 보는 게 그렇게 어려워? 이모가 감정적으로 인색한 사람이란 거 알아? 때로는 마음속으로,
때로는 이모 앞에서 소리 내어 그렇게 말했으면서도 때때로 나는내 안에서 내가 그토록 견디기 힘들어했던 이모의 모습을 본다.

어린 시절 나를 둘러싼 세계는 늘 모호했다. 어른들은 내게 뭔가를 감추고 있었고 나는 내가 알아서는 안 되는 일이 무엇인지궁금했다. 나는 어른들의 대화에서 분명히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말이나 감춰진 감정의 진동을 느끼면서도 그것의 정확한 의미를알 수가 없었다.

요즈음 나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종종 놀라곤 한다. 사십 년 동안 자주 사용한 얼굴 근육은 나를 이모와 비슷한 종류의사람으로 보이게 한다. 얼굴이 말해주는 그대로, 나는 완고한 어른이 되었다.

나는 그렇게 답하고 자리를 떴다. 나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멋대로 나를 판단했다고 분노하면서도 나는 그애의 말에 마음을 다쳤다. 그 말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가 의젓하게 내 길을 찾아가서 기쁘다고 했다. 내가반항 한번 하지 않고 유순하게 사춘기를 넘겼다면서 다시없을 효녀라고 했다. 그런 인정을 받으면 기쁠 거라고 상상했던 적도 있었지만 정작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그저 공허하기만 했다.

이모와 만나지 않고 지냈던 그 시절에 나는 자주 이모를 떠올렸다. 처음으로 비행기를 조종한 날, 높은 고도의 비행에 성공한 날,
근무지 부대로 이사를 간 날, 깊은 잠에서 문득 깨어나는 순간들마다 나는 이모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모, 이 정도면 만족해?" 세수한 뒤 수건으로 얼굴의 물기를 닦고 거울을 보면 그곳에이모와 닮은 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모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가 꼭 그 자리에 존재하지않는 것처럼,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묵은 상처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런 순간의 감정을 나는 잊고 있었다. 좋은 것만 기억하려고하면서, 내가 이모와 비슷한 환경에 놓였다면 이모보다 더 나은인간이 되지 못했을 거라고 이모를 이해하려고 하면서. 그것이 이모에 대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모는 가장 기본적인 수준의 공감조차도 하지 않으려 했다.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않았다. 나는 다시 냉정한 이모 앞에 선 일곱 살짜리 아이가 된 것같았다. 분노인지 슬픔인지 알 수 없는 뜨거운 감정이 목을 타고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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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시련이나 걱정근심에 사로잡혔거든 잠을 자보라. 잠들었다가 깨어나면 걱정하는 마음이 조금 누그러져 있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일러주라. 지금 당장 내가 죽어도 지구는 제 궤도를 돌고 회사는 여전히 돌아간다고. 그러니 걱정할 게 무엇인가? 매사를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죽음이 와서 비웃으며 물질적인 삶과 그 임무들이 덧없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줄 것이다.

걱정과 근심을 놓아버리라. 아침과 밤에 절대 고요 속으로 들어가라. 특히 걱정거리가 생겼을 때, 일 분만이라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있어보라. 그렇게 몇 분 더 있으라. 그러고 나서 과거에 경험한 행복했던 순간들을 상상해보라. 머릿속에서 근심걱정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계속 행복했던 경험을 떠올려보라.

하루에 세 번 근심걱정을 털어버리라. 아침 7시, 자신에게 들려주라. "7시에서 8시까지 간밤의 근심걱정을 모두 털어버리자.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걱정은 사절이다. 지금 나는 근심 단식중이다."
오후 1시, 다시 말하라. "나는 괜찮다. 걱정하지 않겠다."

밤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스스로에게 말해주라. "나는 균형잡힌 보좌에 앉아있는 ‘평화의 왕자(Prince of Peace)‘다."

인생에서 참으로 필요한 것이 정신력이고 영적인 건강임을 모든 사람이 기억해야 한다. 목표는 최대한의 평화, 전천후로 발휘할수 있는 정신력, 그리고 사는 데 필요한 만큼의 물질적 안정이다.

함께 어울릴 사람들을 주의 깊게 선택하라. 자신보다 침착하고 강하고 슬기롭고 심지 깊은 사람들과 사귀라. 범죄자를 더 큰범죄자 무리에 가두어두면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가 교도소를 떠날 때 교도관이 물을 것이다. "언제 다시 올래?" 신경질적인사람이 신경질적인 사람들 무리에 속해있으면 더 나아질 수가 없다. 언제나 평온한 사람들을 선택하라.

주의가 산만하고 집중력이 부족한 사람은 간단한 버릇 하나들이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지만 집중력 있고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는 사람은 조금만 노력해도 좋은 버릇을 들일 수 있다.
그러니, 자신의 발전을 가로막는 정신적·육체적·영적 버릇이 있거든 당장 떨쳐버리라. 그것을 그냥 놔두지 말라.

기억은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다. 훈련되어야 한다. 자신을 위로 끌어올릴 고상한 경험들을 떠올리는 데만 써야 한다. 많은경험에서 추려낸 좋은 것들만 기억보관소에 저장되어야 한다. 끈적거리는 더러운 생각들이 기억보관소에 들어있으면 예기치 않은순간에 같은 생각들이 말과 행동으로 튀어나올 것이다. 속에 선한것들만 있으면 선한 것들만 밖으로 나오게 되어 있다. 자기 마음의문을 조심히 지키라.

마음이 튼튼해지면 몸의 고통도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무슨일이 일어나더라도 마음은 절대 자유로워야 한다.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에 진실과 더불어 깨친 영혼의 힘이 담겨 있어야 한다. 확신과 믿음과 직관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강하게진동하는 폭탄 같아서 온갖 곤경의 바윗돌을 깨부수고 바라던화를 가져다준다. 비록 참말이라도 불쾌한 말은 입에 담지 말라.

강한 의지로 끈기 있게 외는 주문의 힘은 잠재의식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기적 같은 정신의 힘이 저장되어 있는 초超의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언제나 지금 당장 필요한 것에만 마음을 쓰고, 자신의 모든 능력을 동원하고, 유익한 정보들로 자신을 가득 채우면 인생을 더욱값진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아무쪼록 하느님이 주신 능력, 자기 존재 가장 깊은 데서 나오는 무한능력을 남김없이 모두 써야 한다.

희망을 버리는 것은 본인의 신성한 정체를 짐승의 탈 뒤에 감추는 것과 같다. 그러지 말라. 그러지 말고 위없이 높고 더없이 선한 것을 희망하라. 하느님의 자녀인 당신에게 그보다 좋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희망을 지키라. 언제고 자기 안에서 잊었던 하느님의형상을 다시 기억해내리라는 것을 직관하는 데서 희망이 생겨난다.

기억하라. 모든 행복과 번영으로 가는, 건강과 재물과 평화와지혜를 얻는 가장 확실한 길은 명상을 통해 응답받을 때까지 쉬지않고 자신의 메시지를 고요한 마음의 송신기로 하느님께 전송하는 것이다.

침묵하는 기술(art)을 익히라. 근심걱정, 질병, 죽음의 호랑이가 당신을 쫓아 달려오고 있다. 당신이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침묵 속에 있다.
더 많이 침묵할수록 더 많이 행복할 것이다. 깊이 명상하는 사람은 놀라운 침묵을 느끼는데, 그것은 사람들에 에워싸여 있으면서도 유지되는 침묵이다. 명상에서 배운 것을 말과 행동으로 실습하면서 아무도 자신의 고요를 흐트러뜨리지 못하게 하라. 자신의평화를 꼭 부여잡고 있으라.

항아리의 출렁이는 물 위에 비친 달은 일그러져 보이지만 달자체는 결코 일그러지지 않는다. 일그러진 달의 모습은 출렁이는물결의 작품이다. 항아리의 물을 고요하게 하라. 일그러지지 않은온전한 달을 보게 될 것이다.

온갖 복잡한 생각들의 신전神殿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기 전에는 하느님이 당신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다. 당신 마음에서 세속적인 생각들이 전부 지워졌음을 확인하기까지 하느님은 스스로를당신에게 넘겨주시지 않는다. 그분은 쉴 새 없는 돌풍 앞에서 버티지 못하는 촛불과 같다. 쉴 새 없는 온갖 생각에서 자유로워졌을때 비로소 그분이 당신에게서 타오르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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