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사라진 시대입니다. 대답하려는 사람들은 많아졌으나 정작 질문하려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왜 이렇게 된 걸까요.
누군가가 필요하지 않아져서일까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인터넷에는모든 문제에 대한 대답이 잘 나와 있으니까요. 지식만으로는 이제누군가의 질문에 대해 만족스러운 대답을 해 주기 어렵습니다.

첫째, 질문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질문에 대한 이해를명확히 하면 대답하기에 급급하다 자칫 실수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대답할 때는 질문자의 질문과 시간적 간격을 두는것도 좋습니다. 잘못된 대답을 하는 것보다는 시간이 걸리지만 차분하게 대답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세요.

질문과 대답은 배움과 성장에 가장 중요한 소통 방법입니다. 하지만제대로 된 질문을 하고, 제대로 된 답변을 했음에도 상대방의 질문과 답변 수준이 현격히 떨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론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추어 질문하고 대답하려는 노력에 게으르지 않았다는 전제하에서 말입니다.
순자의 대답은 냉정했습니다.
첫째, 질문하는 데 예의가 없는 사람에게는 답변하지 말 것.
둘째, 늘 퉁명스럽게 답변하는 자에게는 굳이 질문하지 말 것.
냉정하긴 하지만 뭔가 속이 시원하지 않나요? 질문과 대답에 대해다소 상대방에게 가혹하게 대하라는 순자의 결론은 이러했습니다.
부說楷者勿聽也(설고자물청야)有爭氣者勿與辨也(유쟁기자여야

즉, "말이 거친 사람으로부터 답을 듣지 마세요. 늘 다투려는 기색이 있는 사람과는 아예 대화도 시도하지 마세요"라는 겁니다. 조용히 자기 일에 몰두하면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힘을 주는 말입니다.
특히 다수의 무례한 사람을 대해야 하는 사람들, 예를 들어 고객센터 등에서 근무하는 분들에게는 더욱 위로되는 말일 것입니다.
순자에 의하면 질문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 대답을 엉망으로 하는 사람하고는 아예 어울릴 이유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사람과는 거리를 두라!‘라고 권합니다. 순자는 아무리 지식이 뛰어나도 아무리 명예가 높은 사람이라도, 얼굴빛 하나 관리하지 못하는사람과는 대화를 나누지 말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얼굴빛이 부드러운 뒤에야 비로소 도의 극치를 논할 수 있다.

예의 없는 사람, 퉁명스러운 사람, 거친 사람 그리고 다투려고만 하는 사람과 말을 섞을 이유는 없다는 순자의 말처럼 우리도 할 이유가없는 말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사람과 대화를시도하는 것은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그때는 아예 관계 대신외로움을 선택하는 것도 삶을 지키기 위한 현명한 길일 겁니다.

맹자에 나오는 이 단순한 사례에서 살아갈 날들을 더 아름답게 하는 기술로서의 ‘바라봄‘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사랑의 대상과 어떻게 화해해야 하는가를 배울 수 있었고, 인을 찾고, 또 그것을행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 시작은 ‘잘 바라볼 줄 앎‘이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봅니다‘라는 말은 단순한 지각(알아차림)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 존경, 인정 등 다양한 뉘앙스가 함축된 것이죠. 포괄해서 사랑이라는 더 깊은의미를 갖기도 하고요?"

"왕의 은혜는 한낱 짐승인 소에게는 미치고 있으나 그 은혜가 백성에 이르지 못하는 건 아십니까? 깃털 하나를 들지 못하는 것은 힘을 쓴 것이 아니며, 수레에 실린 땔나무를 보지못한 것은 시력을 쓰지 않은 것이며, 백성이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은 은혜를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로 왕께서 왕의노릇을 하지 않음은 ‘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하지 못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태산을 겨드랑이에 끼고 북해를 건너는 일을 타인에게 말하기를 ‘나는 할 수 없다‘라고 한다면 이는 정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뭇가지를 꺾어 주는 일을 두고 ‘나는 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하지 않는 것이지, 할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잘살아왔다면 더 잘살기 위해서, 잘못 살아왔다면 이제부터라도 잘살기 위해서 배울건 배워야 합니다. 그 시작은 세상과 상대방을 나의 잣대로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존중하는일일 겁니다. 물론 자신도 바라볼 줄 알아야 함은 물론입니다.

세상이 너무 차가워졌다고, 각박해졌다고 한탄합니다. 타인을 고려하지 않는 말과 행동을 보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 우리는 그것을 인간의 본성이라고 하면서 걱정합니다. 하지만 세상에는선행의 삶을 몸소 실천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타인을 위해 살았던 의인도 많습니다.
나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향해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것, 이것이야말로 어른의 삶일 것이며 만약 부족하다면 반드시 채워넣어야 할 무엇일 겁니다. 맹자는 측은지심을 발휘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측은지심이야말로 우리가 사람인지, 짐승인지를 구분하는 기준이라고 하면서요.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은 인의 싹이고,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악을 미워하는 마음은 의의 싹이고,
사양하는 마음은 예의 싹이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은 지혜의 싹입니다."

어른이 되고 싶습니까. 존경받고 싶습니까. 무엇을 공부해야 할까요. 우리가 갖고 있지 못한 그 무엇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마음속에 지닌 따뜻한 마음을 잘 살펴서 세상 밖으로 그것이 드러나게 하면 됩니다.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 부하를 바라보는상사의 마음, 어려움에 있는 사람을 보는 마음속에 측은지심을 가득채우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다‘라는 맹자의 말처
‘럼 세상이 ‘사람‘으로 가득하길 바랍니다. 타인을 따뜻하게 바라볼줄 아는 우리의 본성을 굳이 감추고 차가움으로 세상을 대할 이유는없습니다. 즉 주변 사람을 향해 측은지심으로 바라볼 줄 안다면우리는 잘살아 갈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 겁니다.

"대인은 말을 함에 있어서반드시 남들이 믿어 주기를 바라지 않고,
행동함에 반드시 상응하는 결과가 생길 것을 바라지 않으며,
오직 의로움이라는 기준에 따라 말하고 행동할 뿐입니다."

바르지 못한 것을 하지 않을 수 있는 태도를 갖춘 후에야 올바른정의로움을 실천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혼탁한 세상이라고들 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큰일을 하려면 우선 자신의 말과 태도가 의에 어긋난 것은 아닌지 늘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자기의 생각과 행동이 정의(正義)인지 불의(不義)인지를 늘 구분할 줄 알아야 마땅합니다.

우리가 겪는 고통 대부분은 삶의 균형이 어긋남에서 시작됩니다.
이때 우리는 무엇인가를 더 채우려고만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처한현실의 그릇에 무엇인가를 더 얹어 내는 것보다는 자신이 가진 욕망의 그릇에서 욕심을 한 스푼 덜어 내는 방법이 우선돼야 합니다. 일
‘종의 ‘포기‘라는 용기가 바로 그것일 겁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새로운 것에 다시 도전할 수 있습니다.

"대인은 말을 함에 있어서 반드시 남이 믿어 주기를 바라지 스않고, 행동함에 반드시 상응하는 결과가 생길 것을 바라지않으며, 오직 의로움이라는 기준에 따라 말하고 행동할 뿐입니다??

‘맹자가 말했습니다. "남의 나쁜 점을 말한다면 닥쳐 올 후환을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요?"
孟子曰(맹자왈) 言人之不善(언인지불선) 當如後患何(당여후환하)
살아보니 기쁨과 행복감의 충분함보다는 고통과 불만의 적음이일상을 영위하는 데 더 중요함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이때 맹자의말, 즉 말조심 그중에서도 ‘타인의 나쁜 점을 말하는 것‘에대해잘통제하라는 것을 잘 기억한다면 우리는 후환 없는, 고통 없는 그리고 쓸데없는 일에 휘말리지 않으면서 자신의 일상을 잘 보존할 수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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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산에 오르지 않으면 하늘이 얼마나 높은지 모르고, 깊은 계곡을 내려다보지 않으면 땅이 얼마나 두터운지를 모릅니다. 선왕이 남긴 교훈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학문의 위대함을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순자에 따르면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은 원래 악한 존재이니 포기하자‘라는 것이 순자의 결론은 아닙니다. 성악설의 방점은 ‘원래‘보다 ‘교화‘에 있습니다.
‘이익을 좋아하고, 질투하고, 쓸데없는 욕망으로 가득한 존재인 인간이니만큼 더 겸손함을 배우고, 남을 배려하며, 예의를 지키자‘라는게 순자의 주장입니다.

석, 박사 연구자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접속해 봤을 사이트가있습니다. ‘Google 학술검색‘ 페이지가 그곳입니다. 이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초기 화면에 단 하나의 문장이 연구자들에게 화두를던집니다. 영국 과학자이자 왕립조폐국장을 지낸 뉴턴이 했던 말이 그것입니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라."
맞습니다. 프롤로그에서 언급한 바로 그 명언입니다.

높은 산에 오르지 않으면하늘이 얼마나 높은지 모르고깊은 계곡을 내려다보지 않으면땅이 얼마나 두터운지를 모릅니다.
不登高山(부등고산) 不知天之高也(지천지고야)
不臨深谿(불림심계) 不知地之厚也(부지지지후야)

선왕이 남긴 교훈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학문의 위대함을 알 수 없습니다.
不聞先王之遺言(부문선왕지유언) 不知學問之大也(부지학문지대야)

잘 들어야 합니다. 자기 경험과 지혜의 한계를 겸손히 인정하고,
타인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절실하게 느끼는 것, 이것이순자가 말하려 했던 배움의 시작이었습니다. 배움을 통한 계속적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배우지 않으려는 마음, 경청하지않으려는 완고하고 오만한 태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변화의 실패, 즉 학습 실패의 원인은 곧 생각 없음에서 비롯됩니다. 특히 오만, 즉 경청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살아갈날들을 위해 공부를 하려면, 생각 없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고자 한다면, 완고하고 오만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내려놓는 게 먼저 아닐까요.

도(道)로 교화시키는 것보다 더 크게 신나는 것은 없고,
화를 입지 않는 것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神莫大於化道(신막대어화도)福莫長於無福(복막장어무화
)-《순자》, 〈권학〉 중에서

간, 월, 이, 맥 같은 이(異)민족 아이들도 태어날 때는 우리아이들과 같은 고고지성(瓜瓜之聲)을 내지만 자라면서 풍속이 달라지는 것은 서로 다른) 교육이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千越夷務之子(간월이맥지자) 生而同聲(생이동성) 長而異俗(장이리속) 敎使之然也(교사지연야)

‘그 아이들도 모두 같은 사람들이다. 같은 소리를 내면서 태어나C
지 않았는가. 하지만 결국 그들은 모두 달라지고 그들에 의해 그곳의 풍습도 달라지는데, 그 이유는 오로지 교육 때문이다.‘

순자가 굳이 간월이맥이라는 중국의 변방 국가들 아이를 사례로든 이유가 있을 겁니다. 부모라면 이왕이면 자녀가 세상의 중심에서기를 바랄 겁니다. 하지만 교육을 하지 않는다면? 변방에서 머무르는 삶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순자는 묻습니다. ‘그렇게 당신의 아이들을 놔둘 겁니까?‘ 아이들의 본질을 무작정 흔들자는 게 아닙니다. 본질은 두되 변할 것은 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군자는 사는 데 반드시 좋은 곳을 선택해야 하며,
배움에 있어 반드시 어진 선비를 가까이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악해지고 삐뚤어지는 것을 막아올바름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나니 뭔가 허전합니다. 그럼 그냥 서울 살라는 말이야? 강남에 입성하라는 말이야? 맹모삼천지교를 단순하게파악하고 또 적용하겠다고 생각하면 이런 난관에 부딪힐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러나 순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본다면 살아갈 곳이란, 사는 곳이란,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인간적 장소‘임을 알 수있습니다.

난괴(蘭槐)의 뿌리는 향료인데, 그것을 오줌에 담그면군자는 가까이하지 않고, 일반인도 들고 다니려 하지 않습니다.
이는 본바탕이 향기롭지 않아서가 아니라그것을 적신 오줌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올바름‘에 가까워지기 위해 배워야 합니다. 좋은 곳에 살아야 하는 이유, 아니 좋은 사람과 함께해야 하는 이유는 결국 나에게 무엇인가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어떻게 해서든지 가까이 두기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악해지거나 삐뚤어지는 것을 막아 괜찮은 사람으로 세상에 나아갈 수 있게 말이죠.
나를 지키고 싶다면 도망치세요. 나쁜 사람이 곁에 있다면, 누군가당신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면, 주위의 사람이 변할 것같지 않다면 묵묵히 버티지 말고 도망가야 합니다. 그런 다음 이제좋은 사람이 있는 좋은 장소를 찾으세요. 그래야 나다움을 지킬 수있습니다. 지금 당신의 주변에는 어떤 사람이 있습니까.
영향을 순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장 쉽게 배우는 방법은 좋은 스승을 가까이하는 것입니다.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을 찾아 좋아하는 것보다 배움에 이르는빠른 길은 없습니다.
營學莫便乎近其人(학막변호근기인) 學之經莫速乎好其人(학지경막속호호기인

스승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걸까요. 저는 ‘그의 앞에 서면 모든것을 내려놓게 되는 사람‘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의심이 생겼을 때조차 자신의 아집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물어볼 수 있는 그런사람을 스승으로 모셔야 합니다. 모셨다면 배워야 합니다. 모르면 모르는 것을 배워야 하고, 알면 아는 게 맞는지 배워야 합니다. 배울 수만 있다면 내일이 어제보다 더 나은 나으리라고 기대할 수 있을 겁니다. 배우지 않으면 오늘 여기에서 끝입니다.

배움이야말로일생을 청춘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묘약인 것이죠.
배울 수만 있다면 젊게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라도 배워야 합니다.
배우기 위해 스승을 찾아야 하고, 스승을 찾았다면 그 스승을 좋아하되, 언젠가는 그 스승을 넘어설 수 있게 정진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제대로 배웠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순자의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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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내 애들이 학교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나는 독립하고싶었다. 나는 내 귀여운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내 집 문을쾅쾅 두드리게 하고 싶었다. 조카애들보다 작고 위축된 내 애들의 차임벨 소리를 가려내는 일을 새롭게 시작할 수는 도저히 없었다. 그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올케와 나는 마주 보고 눈을 찡긋했다. 나는 올케 편이었다.
나는 이웃사촌이 철저히 지켜지고 있는 이구동네가 싫었다. 도대체가 남의 집 일에 너무 관심들이 많았다. 뉘집 아들이 일류 대학이나 일류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하면 서로 제 일처럼 신이 나고, 떨어진 집엔 심란한 얼굴로 위로를 하러 몰려가고 노인네들 생일엔 서로 청해서 먹고 노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남의 집 내막을 알아내서 풍기고 흉을 보는 데도 선수들이었다.

그럭저럭 이삿날이 가까워졌다. 어머니는 새삼 묵은 근심을들춰내서 또 걱정을 시작했다. 두터운 콘크리트 벽으로 차단된 세대간의 그 독립성이란 게 암만해도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혼자서 살림을 할 수 있다는 나의 독립성조차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당신이 와서 살림 참견을 하자니 사위고 딸이고 그래주십사고 청하지도 않는데 자청한다는 건 자존심 문제였다.

어머니는 우리 애는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니 매사를 좀가르쳐주고 도와주라고 그 여자에게 신신당부했다. 어머니의부탁이 아니더라도 나는 단박에 그 여자에게 호감이 갔다. 그여자네 살림살이는 어찌나 알뜰하고 아기자기한지 꼭 동화 속에 나오는 방 같았다. 나는 꼭 그 여자네 방처럼 꾸미고 싶었다. 나는 꽤나 수줍어하면서 가구나 실내장식에 대해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 여자는 조금도 염려 말라고, 이 아래 상가가구점이랑 커튼센터랑 없는 게 없다고 일러줬다. 아파트란 참 너희 올케 말 짝으로 편한데로구나 하며 어머니까지 좋아했다.

서양 여자들이 체중을 줄이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듯이 이곳아파트의 여자들은 남의 흉내를 내기 위해, 순전히 남을 닮기위해 다이어트를 했다. 나는 이런 닮음에의 싫증으로 진저리를 쳐가면서도 철이네만 있고 우린 없는 세탁기를 위해 콩나물과 꽁치와 화학조미료와 철이 엄마식 요리법만 가지고 밥상을 차리고, 철이 엄마는 내가 살림 날 때 올케한테서 선물로받은 미제 전기 프라이팬을 노골적으로 샘을 내더니, 오로지그녀의 요리법 하나만 믿고 형편없는 장보기를 하고 있었다

금요일 저녁, 금요일 저녁이 문제였다. 남편이 돌아오기 전어린 남매는 이른 저녁을 먹고 피아노 레슨을 받으러 9동 음대생한테 가는 시간이었다. 나는 재빨리 금요일 저녁에서 후텁지근하고 아슬아슬한 간음의 냄새를 맡았다.
희열과 초조로 통통한 몸뚱이가 거의 파열할 듯이 불안해뵈는 금요일, 그리고 다음날인 토요일의 그 여자의 걸레쪽 같은 허탈, 일요일부터 다시 번뜩이기 시작하는 그 기분 나쁜 희열-, 도대체 의심할 여지는 조금도 없었다.

금요일이 되었다. 나는 희열은커녕 뜻하지 않은 불안으로안절부절을 못했다. 나는 내 복권에 대해선 전연 관심이 없고다만 철이 엄마의 복권에만 관심이 있었다. 내 것이 당첨될 리는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겨지는데 철이 엄마 것은 꼭 될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은 같은 무기수 중 하나만 이유 없이 석방되는것을 봐야 하는 남은 무기수의 심정 같아서 미칠 것 같았다.

이런 고통은 철이 엄마쪽에서도 마찬가지였던가보다. 우리는 핏발 선 눈으로 서로 마주 보는 데 어지간히 지쳤다. 우리중 누가 먼저였는지 모르게 복권을 살 때부터 네 것 내 것 없이 같이 사서 아무거나 당첨이 되면 반씩 나눠 갖자는 말이 나오고 두말없이 이에 합의를 보았다

나는 죽고 싶도록 비참한 심정으로 그애들에게 그걸 물을수밖에 없다. 그애들은 그런 내가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이 깔깔대며 "엄마, 내가 형이야" "응, 그래 난 동생이구" 한다. "너희들은 그걸 어떻게 알았지?" 나는 내가 모르겠는 걸 쉽게 알고 있는 그애들이 수상쩍은 나머지 이런 멍청이 같은 질문까지 하고 만다.

나는 지쳐빠진 나머지 그까짓 형 아우쯤 뒤바뀌면 어떠랴,
한 뱃속에서 동시에 생명이 비롯되어 나란히 한자리에 앉았다가 다만 세상 밖에 누가 몇 분 먼저 나오고 나중 나온 걸로 결정된 형 아운데 그게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고 눙쳐 생각하려 든다.

나는 그가 불쌍하고 불쌍해서 가슴을 조이며 내 앞으로 가까이 오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이 좋았다. 나는 그가 불쌍해서,
서럽도록 불쌍해서 좋았다.

뭔가 저질러야겠다는, 꼭 저지르고 말리라는 준비태세로 온몸이 조바심했다. 마치 오랫동안 맛대가리 없는 배합사료로사육돼오던 들짐승이 어떤 계기로 촉발된 싱싱한 야성의 먹이에 대한 식욕으로 이빨이 견딜 수 없이 근질대듯 내 온몸이 이빨이 되어 근질근질 조바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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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가 들어오고 있었다. 딴 계집애들처럼 나폴대는 초미니스커트를 입고 굽이 십 센티나 될 것 같은 구두를 신고 모델처럼 또박또박 우아하게 걸어들어왔다. 한때 며느리였던 여자와마주 앉는다는 건 모르는 사람끼리 합석하는 것보다 더 어색했다.

나는 아기의 이런 울음소리를 듣자 느닷없이 가슴에서 젖줄이 넘쳐, 정말로 펑펑 넘쳐 옷섶을 흥건히 적시고 있는 것처럼느끼며 이런 풍요한 젖줄과 목마른 아기를 굳이 떼어놓는 어머니에게 격렬한 적의마저 품었다.

점심시간은 엉망일 수밖에 없었다. 워낙 몹시 운 끝이라 울음을 그치고 나서도 흑흑 느끼느라 김밥 하나를 제대로 못 넘겼다. 내 조그만 허영이 불쌍한 조카의 일학년 첫 소풍의 추억을 이렇게 슬프게 얼룩지워놓고 만 것이다.

버스가 강원도 지방으로 접어들자 산을 휘감은 비탈길이 많아 헉헉 숨이 차했지만 그곳은 맑은 날씨여서 훨씬 덜 불안했다. 진부에 닿은 것은 서울을 떠난 지 여섯 시간 만이었다. 거기서 유천리까지 갈 버스를 기다릴 동안 요기를 하기 위해 국밥집에 들렀다.

더위와 악취와 이 생각 저 생각으로 한잠도 못 잔 나는 주인여자가 일어난 기척을 듣고 따라 일어나 그동안 신세가 많았다고 치하도 하고 자기소개도 했다. 주인여자는 시골 여자답지 않게 냉담하고 도도하게 "신세진 거 하나도 없습니다" 했다.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이건 겸사의 말이아닌, 돈 받고 하숙 치는 관계일 뿐 신세를 주고받는 관계가아님을 강조하는 말투였다.

훈이가 젖먹이일 적, 그때 그 지랄 같은 전쟁이 지나가면서이 나라 온 땅이 불모화해 사람들의 삶이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 던져지는 걸 본 나이기에, 지레 겁을 먹고 훈이를 이 땅에뿌리내리기 쉬운 가장 무난한 품종으로 키우는 데까지 신경을써가며 키웠다. 그런데 그게 빗나가고 만 것을 나는 자인했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나는 가슴이 답답해서 절로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후회는 아니었다. 훈이를 키우는 일을 지금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이러이러하게 키우리라는 새로운 방도를전연 알고 있지 못하니, 후회라기보다는 혼란이었다.

세상은 그대를 두고 남의 글 애써 읽고 이를 쓰고 가르치기에 삶을 탕진한 사람이라 하는데 사실이냐. 그렇다면 필시 그속에는 작가 박완서의 글도 들어 있되 큰 비중으로 자리하고있지 않겠는가. 어떤 방식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 그 점이 조금 궁금하다. 멍석을 깔아놓겠으니 한번 말해보겠느냐.
원고청탁서치고는 조금 유별하긴 해도 이에 내가 응한 것은오직 <대학신문>이었기 때문.

마치 겁쟁이가 실로폰 채로 실로폰을 가볍게 건드린 것같이짧게 살짝 울리는 차임벨의 ‘딩‘ 소리를 대가족의 무르익을대로 무르익은 흥겨운 소란 속에서 나는 가려내야 하는 것이다. 그 일은 어렵다. 나는 그 일이 끔찍하다. 그 시간의 이 집안의 시끌시끌함을 무엇에 비길까.

내가 반했을 당시의 그이는 부드럽고 따뜻하고 좀 슬픈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내 남편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번번이 대문간에서 잠깐 낮을 가린다. 그이는그런 나를 조금도 개의치 않고 우리 방으로 걸어들어간다.

이제 늠름하게 자란, 이목구비가 수려한 내 아들들을 보면꼭 거저 얻은 한 쌍의 보물 같다. 나는 내 아들들보다 더 잘생긴 얼굴은 아예 상상도 할 수 없으므로 내 아들들이 쌍둥이라는 데 지극히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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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이혼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다. 이혼에 따른 전반적인문제, 심리적 후유증, 법적인 문제, 재산분할, 가족의 역할 등등. 할 말을 못다 해서 잠시 멍하고 있다가 안 하길 잘했다고생각을 고쳐먹었다. 복잡하고 구질구질한 건 질색인 시누이였다. 서두만 듣고도 머리를 흔들고 끝까지 들으려고도 안 할 것이다. 남들의 통속적인 속내에 전혀 호기심 없는 태도 자체가도덕적인 해결책보다 훨씬 도움이 될 적이 있었다. 지금도 그런가. 파출부 다음으로 해야 할 오늘 일에 대한 부담이 한결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쿨하게 쿨하게. 바로 그거야.

시누이는 오히려 그걸 즐기는 것 같았다. 엄마에게 내놓은자식 취급당하니 살 것 같다고 했다. 넉넉한 위자료와 아이들양육권까지 챙긴 그녀는 자식 뒷바라지도 잘해 좋은 외고도보내고 명문 대학도 보냈다. 곧 유학을 보내거나 결혼만 시키면 완전 프리라고 꿈에 부풀어 있었다. 지금도 자식이나 남의이목에 신경쓰며 사는 건 아니었다. 동창들 사이에서는 직접적으로나 한두 다리 건너서 알 만한, 꽤 괜찮은 유부남들하고염문도 잘 뿌리고 헤어지기도 잘했다. 아마차버렸을 것이다.
찼든 차였든 임자 있는 남자와의 염문에 지저분한 뒷소문이없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해서 그 비결을 물어보면 ‘쿨하게‘ 였다. 만병통치, 그놈의 쿨은 도대체 어떻게 하는걸까. 아무튼 부러운 능력이었다.

그녀답지 않게 가벼운 설교까지 하고 나서 전화를 끊었다.
안 하던 짓이었다. 그거 하나 혼자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느냐는 가벼운 질책은 시누이 노릇이라기보다는 우정에 가깝다.
시누이로서보다는 친구로서 그 여성이 고맙고 의지가 되는사실이다. 그러나 나도 고분고분한 성미는 아닌데 처음부터도 아니고, 시집살이 무섭던 옛날에도 고방 열쇠 물려받을이 나이에 새삼스럽게 시어머니한테 꼼짝 못하고 쥐여 살게된 사정은 내가 생각해도 하도 치사스럽고 한심해서 설명이 불가능하다.

남편은 어머니의 위장 가난 때문이었는지 한때의 시대정신때문이었는지 대학 시절 내내 운동권의 변두리를 돌다가 군대갔다 와서 간신히 취직한 회사에도 오래 붙어 있지 못했다. 그래도 취직하길 참 잘했다 싶은 건 나에게 청혼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아직까지도 가끔 말하는 걸 보면,
이 남자가 나하고 결혼한 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건 확실했다.

부모 자식 간에도 자유를 사고팔 수 있게 하는 게 돈의 힘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팔순이다 된 노인에게 그렇게 많은 사교모임이 있는 줄은 몰랐다. 정기적인 것만도 한 달에 서너 번은 되는 것 같았고, 친구네 혼사 생일 입학 학위취득 등 축하를 핑계로 모이기도 하지만 언짢은 일도 위로한답시고 꼬박꼬박 챙겼다.

희수 해에는 그 비슷한 모임이 몇 번 더 있었다. 희수니까.
나도 될 수 있는 대로 기쁜 마음으로 허울뿐인 맏며느리 노릇에 충실하려고 했다. 4.4모임 외에는 다들 L호텔보다는 싼데서 했지만 여러 번 치르는 걸 보니 그게 다 내 주머니에서나간다면 수월치 않은 액수일 테니 마냥 좋은 얼굴만 할 수는없을 것 같았다.

내가 다달이 시어머니 아파트로 시누이 말 짝으로 파출부나가게 된 경위가 대강 이러했다. 절대로 자식 신세 안 지고사는 잘난 노인들의 잘난 노인다운 이 착한 일을 내가 미력이나마 - 한 달에 한 번이니까- 거드는 일을 영광스러워는 못할망정 파출부라니,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줄 안다. 그러나그날이면 아침부터 심사가 꼬이는 걸 어쩔 수가 없다. 신역이고돼서는 절대 아니다.

배불리 잡숫고 나서 남은 음식은 싸달라고 했다. 어떤 분은잡채를, 어떤 분은 야채전을, 혹은 북어구이를 싸달라고 하면서 손님 치르고 나면 남은 음식이 제일 곤란하잖아, 이렇게 생색을 냈지만 집에 기다리고 있는 영감님이 있는 사람이 주로싸달라는 것 같았다. 영감님이 계신데도 남은 음식 차례가 안간 이에게는 넌 가다가 김밥이나 족발이라도 사가지고 가렴,
일러주기도 했다.

시어머니가 나에게 이제 가도 좋다는 눈짓을 했다. 그런다고 당장 나오긴 좀 뭣해서 잠시 머뭇거리고 있을 때, 그제야곗돈들을 모으다 말고 누가 느닷없이 말했다.
야, 그 배고프던 그 시절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

드나드는 젊은 여자들은 하나같이 팬티가 보일락 말락 하게짧고 나풀나풀한 치마를 입고 있다. 커피빈 안쪽 벽은 완만한둥근 곡선인데 선을 따라 턱을 만들어놓아 걸터앉을 수도 있게 꾸며놓았다. 동성끼리나 사무적인 관계로 보이는 남녀만테이블에 마주 앉고 사귀는 사이로 보이는 커플은 나란히 앉을 수 있게 해놓은 그쪽에 가 앉아 있다. 남자 무릎 위에 올라앉은 계집애도 있고, 남자 목에다 제 팔을 감고 있는 아이도있다. 그 자리는 남녀의 친밀한 신체 접촉을 위해 꾸민 자리인듯했다. 근데 가만히 보니 상대를 주무르고 있는 건 주로 여자고 남자는 수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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