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사라진 시대입니다. 대답하려는 사람들은 많아졌으나 정작 질문하려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왜 이렇게 된 걸까요. 누군가가 필요하지 않아져서일까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인터넷에는모든 문제에 대한 대답이 잘 나와 있으니까요. 지식만으로는 이제누군가의 질문에 대해 만족스러운 대답을 해 주기 어렵습니다.
첫째, 질문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질문에 대한 이해를명확히 하면 대답하기에 급급하다 자칫 실수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대답할 때는 질문자의 질문과 시간적 간격을 두는것도 좋습니다. 잘못된 대답을 하는 것보다는 시간이 걸리지만 차분하게 대답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세요.
질문과 대답은 배움과 성장에 가장 중요한 소통 방법입니다. 하지만제대로 된 질문을 하고, 제대로 된 답변을 했음에도 상대방의 질문과 답변 수준이 현격히 떨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론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추어 질문하고 대답하려는 노력에 게으르지 않았다는 전제하에서 말입니다. 순자의 대답은 냉정했습니다. 첫째, 질문하는 데 예의가 없는 사람에게는 답변하지 말 것. 둘째, 늘 퉁명스럽게 답변하는 자에게는 굳이 질문하지 말 것. 냉정하긴 하지만 뭔가 속이 시원하지 않나요? 질문과 대답에 대해다소 상대방에게 가혹하게 대하라는 순자의 결론은 이러했습니다. 부說楷者勿聽也(설고자물청야)有爭氣者勿與辨也(유쟁기자여야
즉, "말이 거친 사람으로부터 답을 듣지 마세요. 늘 다투려는 기색이 있는 사람과는 아예 대화도 시도하지 마세요"라는 겁니다. 조용히 자기 일에 몰두하면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힘을 주는 말입니다. 특히 다수의 무례한 사람을 대해야 하는 사람들, 예를 들어 고객센터 등에서 근무하는 분들에게는 더욱 위로되는 말일 것입니다. 순자에 의하면 질문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 대답을 엉망으로 하는 사람하고는 아예 어울릴 이유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사람과는 거리를 두라!‘라고 권합니다. 순자는 아무리 지식이 뛰어나도 아무리 명예가 높은 사람이라도, 얼굴빛 하나 관리하지 못하는사람과는 대화를 나누지 말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얼굴빛이 부드러운 뒤에야 비로소 도의 극치를 논할 수 있다.
예의 없는 사람, 퉁명스러운 사람, 거친 사람 그리고 다투려고만 하는 사람과 말을 섞을 이유는 없다는 순자의 말처럼 우리도 할 이유가없는 말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사람과 대화를시도하는 것은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그때는 아예 관계 대신외로움을 선택하는 것도 삶을 지키기 위한 현명한 길일 겁니다.
맹자에 나오는 이 단순한 사례에서 살아갈 날들을 더 아름답게 하는 기술로서의 ‘바라봄‘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사랑의 대상과 어떻게 화해해야 하는가를 배울 수 있었고, 인을 찾고, 또 그것을행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 시작은 ‘잘 바라볼 줄 앎‘이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봅니다‘라는 말은 단순한 지각(알아차림)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 존경, 인정 등 다양한 뉘앙스가 함축된 것이죠. 포괄해서 사랑이라는 더 깊은의미를 갖기도 하고요?"
"왕의 은혜는 한낱 짐승인 소에게는 미치고 있으나 그 은혜가 백성에 이르지 못하는 건 아십니까? 깃털 하나를 들지 못하는 것은 힘을 쓴 것이 아니며, 수레에 실린 땔나무를 보지못한 것은 시력을 쓰지 않은 것이며, 백성이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은 은혜를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로 왕께서 왕의노릇을 하지 않음은 ‘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하지 못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태산을 겨드랑이에 끼고 북해를 건너는 일을 타인에게 말하기를 ‘나는 할 수 없다‘라고 한다면 이는 정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뭇가지를 꺾어 주는 일을 두고 ‘나는 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하지 않는 것이지, 할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잘살아왔다면 더 잘살기 위해서, 잘못 살아왔다면 이제부터라도 잘살기 위해서 배울건 배워야 합니다. 그 시작은 세상과 상대방을 나의 잣대로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존중하는일일 겁니다. 물론 자신도 바라볼 줄 알아야 함은 물론입니다.
세상이 너무 차가워졌다고, 각박해졌다고 한탄합니다. 타인을 고려하지 않는 말과 행동을 보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 우리는 그것을 인간의 본성이라고 하면서 걱정합니다. 하지만 세상에는선행의 삶을 몸소 실천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타인을 위해 살았던 의인도 많습니다. 나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향해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것, 이것이야말로 어른의 삶일 것이며 만약 부족하다면 반드시 채워넣어야 할 무엇일 겁니다. 맹자는 측은지심을 발휘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측은지심이야말로 우리가 사람인지, 짐승인지를 구분하는 기준이라고 하면서요.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은 인의 싹이고,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악을 미워하는 마음은 의의 싹이고, 사양하는 마음은 예의 싹이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은 지혜의 싹입니다."
어른이 되고 싶습니까. 존경받고 싶습니까. 무엇을 공부해야 할까요. 우리가 갖고 있지 못한 그 무엇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마음속에 지닌 따뜻한 마음을 잘 살펴서 세상 밖으로 그것이 드러나게 하면 됩니다.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 부하를 바라보는상사의 마음, 어려움에 있는 사람을 보는 마음속에 측은지심을 가득채우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다‘라는 맹자의 말처 ‘럼 세상이 ‘사람‘으로 가득하길 바랍니다. 타인을 따뜻하게 바라볼줄 아는 우리의 본성을 굳이 감추고 차가움으로 세상을 대할 이유는없습니다. 즉 주변 사람을 향해 측은지심으로 바라볼 줄 안다면우리는 잘살아 갈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 겁니다.
"대인은 말을 함에 있어서반드시 남들이 믿어 주기를 바라지 않고, 행동함에 반드시 상응하는 결과가 생길 것을 바라지 않으며, 오직 의로움이라는 기준에 따라 말하고 행동할 뿐입니다."
바르지 못한 것을 하지 않을 수 있는 태도를 갖춘 후에야 올바른정의로움을 실천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혼탁한 세상이라고들 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큰일을 하려면 우선 자신의 말과 태도가 의에 어긋난 것은 아닌지 늘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자기의 생각과 행동이 정의(正義)인지 불의(不義)인지를 늘 구분할 줄 알아야 마땅합니다.
우리가 겪는 고통 대부분은 삶의 균형이 어긋남에서 시작됩니다. 이때 우리는 무엇인가를 더 채우려고만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처한현실의 그릇에 무엇인가를 더 얹어 내는 것보다는 자신이 가진 욕망의 그릇에서 욕심을 한 스푼 덜어 내는 방법이 우선돼야 합니다. 일 ‘종의 ‘포기‘라는 용기가 바로 그것일 겁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새로운 것에 다시 도전할 수 있습니다.
"대인은 말을 함에 있어서 반드시 남이 믿어 주기를 바라지 스않고, 행동함에 반드시 상응하는 결과가 생길 것을 바라지않으며, 오직 의로움이라는 기준에 따라 말하고 행동할 뿐입니다??
‘맹자가 말했습니다. "남의 나쁜 점을 말한다면 닥쳐 올 후환을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요?" 孟子曰(맹자왈) 言人之不善(언인지불선) 當如後患何(당여후환하) 살아보니 기쁨과 행복감의 충분함보다는 고통과 불만의 적음이일상을 영위하는 데 더 중요함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이때 맹자의말, 즉 말조심 그중에서도 ‘타인의 나쁜 점을 말하는 것‘에대해잘통제하라는 것을 잘 기억한다면 우리는 후환 없는, 고통 없는 그리고 쓸데없는 일에 휘말리지 않으면서 자신의 일상을 잘 보존할 수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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