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산에 오르지 않으면 하늘이 얼마나 높은지 모르고, 깊은 계곡을 내려다보지 않으면 땅이 얼마나 두터운지를 모릅니다. 선왕이 남긴 교훈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학문의 위대함을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순자에 따르면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은 원래 악한 존재이니 포기하자‘라는 것이 순자의 결론은 아닙니다. 성악설의 방점은 ‘원래‘보다 ‘교화‘에 있습니다. ‘이익을 좋아하고, 질투하고, 쓸데없는 욕망으로 가득한 존재인 인간이니만큼 더 겸손함을 배우고, 남을 배려하며, 예의를 지키자‘라는게 순자의 주장입니다.
석, 박사 연구자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접속해 봤을 사이트가있습니다. ‘Google 학술검색‘ 페이지가 그곳입니다. 이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초기 화면에 단 하나의 문장이 연구자들에게 화두를던집니다. 영국 과학자이자 왕립조폐국장을 지낸 뉴턴이 했던 말이 그것입니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라." 맞습니다. 프롤로그에서 언급한 바로 그 명언입니다.
높은 산에 오르지 않으면하늘이 얼마나 높은지 모르고깊은 계곡을 내려다보지 않으면땅이 얼마나 두터운지를 모릅니다. 不登高山(부등고산) 不知天之高也(지천지고야) 不臨深谿(불림심계) 不知地之厚也(부지지지후야)
선왕이 남긴 교훈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학문의 위대함을 알 수 없습니다. 不聞先王之遺言(부문선왕지유언) 不知學問之大也(부지학문지대야)
잘 들어야 합니다. 자기 경험과 지혜의 한계를 겸손히 인정하고, 타인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절실하게 느끼는 것, 이것이순자가 말하려 했던 배움의 시작이었습니다. 배움을 통한 계속적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배우지 않으려는 마음, 경청하지않으려는 완고하고 오만한 태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변화의 실패, 즉 학습 실패의 원인은 곧 생각 없음에서 비롯됩니다. 특히 오만, 즉 경청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살아갈날들을 위해 공부를 하려면, 생각 없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고자 한다면, 완고하고 오만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내려놓는 게 먼저 아닐까요.
도(道)로 교화시키는 것보다 더 크게 신나는 것은 없고, 화를 입지 않는 것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神莫大於化道(신막대어화도)福莫長於無福(복막장어무화 )-《순자》, 〈권학〉 중에서
간, 월, 이, 맥 같은 이(異)민족 아이들도 태어날 때는 우리아이들과 같은 고고지성(瓜瓜之聲)을 내지만 자라면서 풍속이 달라지는 것은 서로 다른) 교육이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千越夷務之子(간월이맥지자) 生而同聲(생이동성) 長而異俗(장이리속) 敎使之然也(교사지연야)
‘그 아이들도 모두 같은 사람들이다. 같은 소리를 내면서 태어나C 지 않았는가. 하지만 결국 그들은 모두 달라지고 그들에 의해 그곳의 풍습도 달라지는데, 그 이유는 오로지 교육 때문이다.‘
순자가 굳이 간월이맥이라는 중국의 변방 국가들 아이를 사례로든 이유가 있을 겁니다. 부모라면 이왕이면 자녀가 세상의 중심에서기를 바랄 겁니다. 하지만 교육을 하지 않는다면? 변방에서 머무르는 삶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순자는 묻습니다. ‘그렇게 당신의 아이들을 놔둘 겁니까?‘ 아이들의 본질을 무작정 흔들자는 게 아닙니다. 본질은 두되 변할 것은 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군자는 사는 데 반드시 좋은 곳을 선택해야 하며, 배움에 있어 반드시 어진 선비를 가까이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악해지고 삐뚤어지는 것을 막아올바름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나니 뭔가 허전합니다. 그럼 그냥 서울 살라는 말이야? 강남에 입성하라는 말이야? 맹모삼천지교를 단순하게파악하고 또 적용하겠다고 생각하면 이런 난관에 부딪힐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러나 순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본다면 살아갈 곳이란, 사는 곳이란,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인간적 장소‘임을 알 수있습니다.
난괴(蘭槐)의 뿌리는 향료인데, 그것을 오줌에 담그면군자는 가까이하지 않고, 일반인도 들고 다니려 하지 않습니다. 이는 본바탕이 향기롭지 않아서가 아니라그것을 적신 오줌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올바름‘에 가까워지기 위해 배워야 합니다. 좋은 곳에 살아야 하는 이유, 아니 좋은 사람과 함께해야 하는 이유는 결국 나에게 무엇인가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어떻게 해서든지 가까이 두기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악해지거나 삐뚤어지는 것을 막아 괜찮은 사람으로 세상에 나아갈 수 있게 말이죠. 나를 지키고 싶다면 도망치세요. 나쁜 사람이 곁에 있다면, 누군가당신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면, 주위의 사람이 변할 것같지 않다면 묵묵히 버티지 말고 도망가야 합니다. 그런 다음 이제좋은 사람이 있는 좋은 장소를 찾으세요. 그래야 나다움을 지킬 수있습니다. 지금 당신의 주변에는 어떤 사람이 있습니까. 영향을 순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장 쉽게 배우는 방법은 좋은 스승을 가까이하는 것입니다.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을 찾아 좋아하는 것보다 배움에 이르는빠른 길은 없습니다. 營學莫便乎近其人(학막변호근기인) 學之經莫速乎好其人(학지경막속호호기인
스승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걸까요. 저는 ‘그의 앞에 서면 모든것을 내려놓게 되는 사람‘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의심이 생겼을 때조차 자신의 아집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물어볼 수 있는 그런사람을 스승으로 모셔야 합니다. 모셨다면 배워야 합니다. 모르면 모르는 것을 배워야 하고, 알면 아는 게 맞는지 배워야 합니다. 배울 수만 있다면 내일이 어제보다 더 나은 나으리라고 기대할 수 있을 겁니다. 배우지 않으면 오늘 여기에서 끝입니다.
배움이야말로일생을 청춘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묘약인 것이죠. 배울 수만 있다면 젊게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라도 배워야 합니다. 배우기 위해 스승을 찾아야 하고, 스승을 찾았다면 그 스승을 좋아하되, 언젠가는 그 스승을 넘어설 수 있게 정진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제대로 배웠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순자의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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