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으로 소설을 써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가지고있던 아이디어는 마지막 장면 하나뿐이었다. 주인공이 뒤늦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를 눈치채고 그를 향해 숨이 차도록 뛰어가는 모습. 설원에서서 세상을 떠난 연인을향해 잘 지내고 있느냐고 목이 터져라 외치는 「러브레터」의주인공처럼.

쓰다가 만 소설은 의미가 없다. 누구나 인정하는 거장의미완성 유작이 아닌 이상, 쓰다가 만 소설에 관심을 가질 독자는 없다. 식자재만 훌륭하면 무슨 소용인가. 조리를 해야훌륭한 요리가 되지 않겠는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어떻게든 완성해야 소설로서 최소한의 가치가 생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그렇다고 붓다의 가르침을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지므로아등바등 살 필요가 없다는 허무주의로 오해하면 안 된다.
오히려 삶을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채찍질에 가까운가르침이다. 모든 존재와 현상에는 원인이 있고,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으니,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집착에서 벗어나고자 마음을 다스리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연기론의 가르침이었다.

내가 처음 소설을 쓸 때 떠올렸던 마지막 장면의 문장은
"종은 치는 사람의 힘만큼 울린다"였다. 나는 소설을 쓸 때이보다 더 최선을 다할 수 없다고 자신할 수 있을 정도로 나를 몰아붙였다. 있는 힘을 다해 종을 쳤는데도 울림이 원하는 곳까지 닿지 않았다. 그때 나는 소설가로 살겠다는 꿈을접으며 진심으로 ‘체념’할 수 있었다.

노력과 운 중에서 무엇이 우리의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칠까.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한참 후에 나는 여러 심사위원 중에서 심사위원장 단 한 사람만 「도화촌기행』을 강력하게 지지했다는 뒷이야기를 들었다. 괜한 오해를 할까 봐 미리 말하는데, 나와 심사위원장은 일면식도 없는 관계다. 다른 사람도 아닌 심사위원장이 밀어붙이니 심사 현장의 분위기도 달라졌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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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소설을 쓸 수 있는 사람인지 알게 된다면, 비전공자라는 ‘핸디캡‘은 오히려 전공자보다 더 다양한 경험을해 소설로 쓸 이야기가 많다는 ‘베네핏’으로 바뀐다.

훌륭한 도입부가 훌륭한 엔딩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도입부를 인상적으로 쓰는 데 시간을 들이기보다, 완벽하지않아도 좋으니 일단 쓰던 글을 어떻게든 마치는 게 좋다. 앞부분만 명작인 습작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야기는 어떻게든 끝이 나야 한다. 그래야 새로 시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놀라웠던 경험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사람에게 사랑받는 일이 얼마나 기쁜지 알게 됐다는 점이다.
가수 김연자가 「아모르 파티」로 노래했듯이, 나는 삶에서
"결혼은 선택"일지 몰라도 "연애는 필수"라는 데 격하게 동의한다.

나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꿈만 꾸는 사람과 한 글자라도 쓴 사람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꿈을 현실로 이뤄낼 가능성이 있는 쪽은 전자보다 후자이니까. 내가만약 소설을 쓰고 싶다는 충동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면소설가로 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시작이 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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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그저 경험하고만 있을 때, 그것이 소위 지금이 순간에 있기라는 것이다. 이 논의의 이 지점에 이르면, 그밖에는 있을 곳이 달리 없다. 현실세계는 밖에 있고, 그것이 당신의 마음속에 비추어지고 있고, 당신은 제 앞에 펼쳐지고 있는 형상들을인식한다. 이 아주 단순한 상태에서, 당신은 경험하게끔 된 것을경험하고 있다. 당신에게 주어지고 있는 순간의 선물인 것이다. 그것이 들어오고, 당신은 그것을 경험했으므로 그저 그로부터 배운다. 거기에는 아무런 혼란이 없다. 거기에는 단지 자기 앞에 펼쳐진 순간과의 온전한 일체감만이 있다.

당신은 이처럼 일심으로 의식이 빨려들어가는 상태에 이르렀던 또 다른 경험이 있다. 사랑하는 이에게 깊이 다가간 순간, 모든게 다 괜찮았고, 당신은 그 순간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렸다. 갑자기 온전한 아름다움과 평화가 덮쳐 온다. 의식이 의식하는 대상과하나로 녹아들 때, 당신은 신의 임재를 느낄 수 있다. 요가 사상에서 참나는‘삿칫아난다(sat-chit-ananda)‘, 곧 ‘영원한 의식의 희열(eternal-conscious-bliss)‘이라 불린다. 참나가 단 하나의 대상에일심 집중할 때, 그는 참나의 본질-온전한 평화, 지극한 만족, 압도하는 희열을 경험한다. 일심 집중된 의식의 흔들림 없는 상태에 들어가는 법만 배울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 앞에 언제든지 열려있다.

의식은 그 근원의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그 주의는 주목하는 무엇에나 보내어진다. 의식이어떤 것에 주목할 때 그것은 큰 힘을 지닌다. 태양 빛이 돋보기에의해 모아질 때 큰 힘을 지니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당신은 집중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실로 집중된 의식이다. 그것이 의지의 힘의 근원이다.

내면의 어떤 경험이 당신에게 중립적으로 느껴지지 않으면 그것은 당신의 의식을 끌어당겨 거기에 집중시킨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순간, 당신의 마음을 지나가는 것들은 더 이상 동등하지 않다. 어떤 것이 나머지 것들보다 더 도드라지는 것이다. 그런 일을겪는 이유는 단지 당신이 의식을 거기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당신의 의식은 일종의 힘이고, 당신은 그 힘을 마음속의 특정한 대상에집중시키고 있다. 의식의 힘이 마음속의 한 대상에 집중되면 그 대상은 다른 대상들처럼 마음을 그냥 지나가지 못한다. 태양풍이 우주 공간을 지나는 물체에 영향을 끼치듯이, 집중된 의식은 마음속을 지나는 대상에 영향을 끼치는 하나의 힘이다.

‘방울뱀을 경험하기‘에 저항하고 그 순간의 나머지 것들은 지나보내고 나니 나비가 한 마리 날아온다. 나비는 당신의 팔에 사뿐히 내려앉고, 그것은 너무나 아름다운 경험이어서 당신은 절로 거기에 의식을 집중한다. 나비가 다시 날아가 버릴 때, 당신은 그것싫어서 의지력을 사용하여 그 마음속 이미지를 붙잡는다. 이것이 불교가 말하는 집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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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의식은 눈앞의 순간을 알아차리겠지만, 그 순간을 당신이 창조하지는 않았다. 그저 창조의 한순간을 경험할 멋진기회가 당신에게 주어지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것이 여기에 도달하는 데는 백수십억 년이 걸렸다. 그러니 부디 이 쇼를 놓치지 마시라.

그들이 당신을 위해 이 모든 것을 창조해 냈다. 그에 대해감사를 표할 수 있겠는가? 당신은 이 사실에 감사하고, 자신이 숲과 바다와 하늘을 누릴 자격이 있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음을 자각할 수 있는가? 당신은 ‘당신이 어디서 생겨나왔는지조차 모른다. 그저 ‘그 안에서 자기 앞에 펼쳐지는 이 놀라운 선물을 경험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이것이 영성이다. 당신의 개인적인 자아 대신 현실과 조화를 이루는 것 말이다.

불교는 텅 빈 마음에 대해 말한다. 가장 순수한 의미에서 ‘마음‘
이라고 할 때 우리가 가리키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그 안에 아무것도 없는, 하나의 에너지장이다. 거기에는 생각이 하나도없다. 거기에는 우리가 마음이라 부르는 절대적으로 고요하고 형상 없는 에너지장만이 있다. 이것은 관념이 아니다. 당신도 거기에갈 수 있다. 깊은 경지에 이른 명상가는 이것을 이해한다. 텅 빈 마음으로, 그저 공(空) 속에 머문다. 당신은 거기에 있지만 아무런 생각이 없다. 그저 완전히 적막하고 완전히 비어 있다. 그것은 마치소프트웨어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강력한 컴퓨터와도 같다.

외부세계는 이 마음의 장과는 무관하게 존재한다. 마음이 고요하든 시끄럽든 상관없이 지구는 축을 중심으로 계속 돌아가고, 은하계들은 우주 공간을 계속 떠다닌다. 물질계를 이루는 에너지는정신계를 이루는 에너지보다 더 낮은 진동수로 진동한다. 당신도몸소 경험하고 있어서 알지만, 의식은 물질계와 정신계를 동시에 인식할 수 있다.

마음은 실로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다. 사실 그것은 너무나 개인적이어서 외부의 형상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이 컴퓨터는 화면도, 연산장치도, 그래픽 장치도 다 내장되어 있고 입력을 위한 키보드도 마우스도 음성인식 장치도 필요가 없다. 그것은 당신과 너무나 정교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당신의 의지와 가슴의 아주 미세한 박동에도 응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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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 앞의 순간은 비개인적인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매우 개인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것이그토록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당신 앞의 순간이 원하는 대로 펼쳐지지 않을 때 당신은 괴로워하고, 성미에 맞으면 기뻐한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것은 당신이 그 순간 속에 갖다 붙이는 어떤 것 때문에 그렇게 된다. 그것은 그 순간 자체에 내재하는 것이아니다. 우주의 모든 순간들은 그저 우주의 순간들이다. 이 비개인적인 순간들에 개인적인 기대를 갖다 붙여서 개인적인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은 당신 자신이다.

가장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눈앞의 순간이 당신을 괴롭히고 있는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눈앞의 순간을 두고 당신이 당신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일은 138억 년 전에 일어났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 과학적 증거를 가지고 있다. 별들은 바로 지금도 태어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과정을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오리온성운을 관찰할수 있을만큼 강력한 망원경을 가지고 있다면 그 가스 속에서 빛나고 있는 별들을 볼 수 있다. 오리온성운이나 말머리성운과 같은 성운들은 그저 현란하게 빛나는 가스구름의 아름다운 사진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성운은 별들의 요람이다. 138억 년 전에 최초의별들이 만들어질 때 일어났던 것과 정확히 동일한 과정을 통해 이성운들 속에서도 별들이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별들은 태어나고,
곧 살펴보겠지만, 또한 죽는다. 이곳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것과 동일한 생명의 우주적 순환과정 속에서 말이다.

70당신은 날마다 대하는 무수한 물체들로 둘러싸여 있다. 거대한고층 빌딩들과 작은 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체들이 감각을 통해서 힘들이지 않고 의식 속으로 들어온다. 그 밑바닥에서 보면 이낱낱의 물체들은 원자로 만들어져 있다. 당신은 방금 이 모든 원자들이 어디서 나왔고 그것이 왜 당신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닌지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것들은 별 속에서 창조되었다. 이 사실은당신을 겸손해지게 만들어 눈앞에 펼쳐진 창조의 힘에 경외감을느끼게 하는 데 일조할 것이다. 희망컨대 이 깊은 겸손과 경외의 마음이 자유와 해탈을 향해 가는 당신의 영적 여행에 도움을 주기를.

존재의 실상에 관해 과학이 발견한 사실들은 창조에 대한 경외심을 더욱 불러일으킬지언정, 줄어들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우주에 일어난 이런 놀라운 일들을 우리가 해명해 낼 수 있다는사실은 당신에게 경외감을 남겨 주었으리라. 138억 년이 지난 후에 그것이 결국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바라보라. 이 맥락 속에서당신 앞에 놓인 광경을 한번 살펴보라. 이제 당신은 그 모든 것이어디서 생겨났는지를 안다. 그것을 유심히 살펴보라. 당신 눈앞의이 모든 것은 매우 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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