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이 무거워지려는 분위기를 깼다. "그런 질문은 꽤 깊은생각에 잠기게 해요. 그렇죠? 아네테와의 대화는 결국 인생에서 실제로 뭔가를 바꾸는 계기가 됐어요. 시간이 좀 걸리기는했어요. 사실 당연하죠. 그런 일은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으니까. 하지만 보시다시피 나는 바로 다음 진출로에서 방향을 틀어 직장에 사표를 내고 농업을 공부한 다음 언제였던가이 농장을 찾아냈어요. 아침에 양치질할 때마다 보면서 용기를 북돋울 수 있도록 아네테가 나를 위해 보르헤스의 문장을써서 욕실에 거울 대신 걸어 줬죠." 그가 다시 독특한 웃음을터뜨렸다. 처음 그를 보자마자 내가 좋아하게 되었던 웃음이었다. 요란하게 천둥 치는 듯한 그 웃음소리는 완벽하게 자유로웠다.
오늘날, 사람들은 규가 커피를 쏟으면 지경을 보고, 지경이화분에 걸려 넘어지면 규를 본다. 지경이 과음하면 규를 보고,규가 하품하면 지경을 본다. 그 조용한 관음의 공기 속에서 규와 지경은 서로 뺨을 갈기면서도 끝까지 가는 사이 나쁜 부부처럼 산다. 둘은 최후의 멤버가 될 것이다. 아, 신나!어느 날, 규가 자신도 모르게 소리 내 말한다. 지경이 흘끗본다. 지경의 표정은 무엇을 말하고 있나. 사람들의 눈이 돌아간다. 저마다 망상하며.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요. 절대 안되요. 그리고 나는 손으로 내 입을 막았다. 여자는 멍하니 나를바라보다 곧이어 알 수 없는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내가아니라 내 뒤의 허공을 바라보며.
"미안해.맹지가 내 눈을 애써 피한 채로 말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끄덕이며 철봉 아저씨가 열심히 철봉 하는 모양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나는 네가 좋아. 맹지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나는 맹지를 보며 활짝 웃었다. 이쪽은 덥고 저쪽은 시원하지만, 딱 이만큼은 미온한 곳. 관심을 받지 못한 아저씨가시무룩해진 채 금방 떠났다. 마음속으로만 아저씨에게 박수를보냈다. 이번엔 맹지가 먼저 제안했다. 우리 자신감 훈련 할까? 이른 아침이었고 안산 자락에는 맹지와 나밖에 없었다.얼른 팔을 뻗은 채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훈련을 시작했다.
나였던 것은 산산이 흩어지고 만다. 그래도 그때에는 마음 둘 곳이 몇 있어서 사람들은 잘 살다가도 불쑥불쑥 나를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