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어두워진 현관 한쪽에서 종이상자를 가만 내려다봤다.
집 우울, 집 주宙. 옛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큰 집이라 여겼다. 그런데 어떤 존재들은 왜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못할까. 실은 돌아왔는데, 몇 번 돌아왔었는데 문이 굳게 잠겨있어서, 우리가 깜빡하고 닫아놓은 문만 한참 바라보다 떠난건 아닐까? ...사실 남편과 타임머신 대화를 나눴을 때 나는 남편이 우리만 아는 그때, 우리 아이를 구할 수 있었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대답할 줄 알았다. 어쩌면 나를 배려해 일부러 엉뚱한 소리를 한 건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왠지 그게 순도 높은 진심 같아, 앞으로도 같은 답을 할 것 같아 가슴 아팠다. 그리고 나는 손에 든 책을 보고야 비로소 종일 나를 사로잡은 깊은 상실감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집을 잃어서도, 이웃을 잃어서도 아니었다. 우리가 정말 상실한 건 결국 좋은 이웃이 될 수 있고, 또 될지 몰랐던 우리 자신이었다는 뼈아픈 자각 때문이었다. 그 낯선 당혹 앞에서 나는손에 쥔 책을 다시 어느 자리에 두어야 할지 몰라 불 꺼진 현관 앞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2021년 어느 가을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