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 - 사람을 얻는 마법의 대화 기술 56, 개정판
샘 혼 지음, 이상원 옮김 / 갈매나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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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 까지 필요한가?”라는 것들이 보통 있다. 그냥 잘 하면 되는 것인데 말이다. 그런데 그런 책이 꼭 필요한 사람들이 종종 있다.

가령 나의 경우를 한번 보도록 하자. 나는 취준생이다. 제법 노련한 취준생축에 속한다.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는 필기시험에는 합격을 못한 일이 거의 없으나, 면접장만 가면 딱딱 떨어진다. 아주 그냥 강탈이다. 최종까지 올라가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처음 시험 준비를 할 때에는 면접간 가봐라! 진짜 내가 완전히 잘해서 찰싹 하게 붙겠다!”라는 상상을 많이 했으나, 면접을 보는 현장에서 나의 행동은 이와는 많이 달랐던 것 같다. 일주일 전 면접을 봤을 때에도 나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말았다.

아마 이 책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은 내가 취업을 위해서는 무조건 읽었어야 하는 책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신청했던 것 같다. 이 책은 솔직히 별 것 아닌 대화에서조차 상대방의 반발을 이끌어내는 나에게 상당히 필요한 책이다. 나는 그걸 면접장에서도 똑같은 짓을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더 고치기 힘들다. 말이라는 것의 버릇은. 정치권에서의 막말 논란이 보여주듯이, 말이란 것은 정제해서 하기가 상당히 힘들고, 상당부분 자신이 이제 써왔던 관성에 의해 작동되기 일 수다. 즉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공기같은 그리고 그 존재가 중요한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알고리즘을 거치지 않고 있는 문제에 대하여 이 책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은 쓰여진 것이 아닐까. 그런 자연스러운 혹은 너무 쉽게 사용될 수 있어서 그걸의 살상(?)범위가 상상을 초월하는 그리고 대화의 비법을 이 책은 알려준다. 어쩌면 이 책의 가장 정확한 기능은 일종의 필터 혹은 방지턱이 아닐까. 적을 만들 수 있는 말이 내 입에서 나가기 전에, 이 책에서 제시한 경고 혹은 가르침을 상기시키고, 적어도 그 부분에 대해서 대비할 수 있으니 말이다.

세상에는 적만 있는 것도 혹은 아군만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 어떻게든 정도 만들어질 수 있고 아군 또한 만들어 질 수 있다. 이 책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은 그래서 중요하다. ‘이라는 어쩌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적을 양산할 수 있는 가능성들을 이 책을 통해 저게 조절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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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건네는 말
한경희 지음 / 북나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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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이란 상태 혹은 분위기와 글쓰기라는 행위는 분명히 인간들이 모르는 어떤 관계가 있음에 틀림없다. 고독한 상태에서 사람은 뭐든지 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글쓰기 또한 그중 하나다. 글쓰기는 그 고독함을 해소하게 만들지만 단순히 고독함만을 해소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고독함만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고,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하여 계속해서 고민하고 생각하도록 만든다. 보통 때라면 수많은 정보에 떠밀려서 정리되지 않던 연결되지 않던 고민들은 고독한 분위기에서 글쓰기란 행위를 통해서 다듬어지고 구체적으로 변모한다.

나는 글쓰기와 고독의 이와 같은 역학 관계를 최근에서야 알게 됐다. 그전에는 뭐 관심도 없었다. ‘작문이라는 것을 하면서 말이다. 작문은 보통 자신의 과거를 회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과거에 대한 회고지만 글을 쓰는 시점은 현재이고, 글의 마지막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즉 미래를 논하면서 끝난다. 좋은 작문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러한 방식으로 연결시키고, 한 인간의 내면의 성숙에 기여한다. 이게 글쓰기의 힘이고, 이게 작문의 힘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것보다 고독하게 혼자서 작문하는 것을 즐긴다. 과거를 되돌아보고 그것에 대한 의미를 찾는 과정은 몸에 좋은 약이 쓰다는 법칙을 벗어난다. , 도움이 될 것 같은 일이 어렵거나 귀찮거나 하지 않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약간의 생각이 변했다. 내가 읽는 책들은 주로 사회과학 도서다. 나의 내면 스스로를 돌아봤을 때에도 얻을 수 없는 지식들을 사회과학 도서를 통해서 나는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이 책 <시간이 건네는 말>은 한 작가의 수필이고,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들이 적혀 있다. 평소에 나였다면 이 책을 읽는 일이 상당히 부담스럽고, 귀찮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은 한편으로 나에게 있어 거울이기도 했다. ‘작가가 왜 작가인가. 작가들은 단순히 글을 쓸 수 있기에 불리는 가벼운 이름은 아니다. ! 전에도 그리고 이전에도 좀 글을 길게 쓸 수 있다고 하여 자신을 작가라고 소개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낸 책을 보고 난 현기증에 빠진 일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을 보는 내내 작가가 내는 글맛, 그리고 작의 묘사 그리고 작가의 언어 등에 대해서 배운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자신의 지식을 뽐내기 위해서 좀 긴글을 쓰고 작가란 타이틀을 단 사람의 글이 아닌, 이 책은 문학을 하는 사람이 어떠한 글을 쓸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작가가 이 책을 통해 들려준 것은 비록 자신만의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이 책을 통해 내 작문을 쓸 때 어떻게 정제된 언어를 사용하는법, 좀 더 구체적으로 서술하는 법 등을 배웠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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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문득 길고양이와 마주친다면 - 15년간 1,500마리의 고양이를 구조한 기적 같은 이야기
유주연 지음 / 비타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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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타이밍이 아슬아슬하게 아쉬웠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 책의 제목은 <당신이 문득 길고양이와 마주친다면>과 같은 상호아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상황은 이랬다. 집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머리와 목이 얄싹한 고양이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 고양이는 구슬프게 울고 있었다. 뭘까. 그 고양이 바로 뒤에서 나는 조용히 고양이를 관찰했다. 솔직히 처음이었다. 고양이를 그렇게 옆에서, 가까이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고양이를 바라보고 3분 정도 후. 집 옆에 있는 약간 쓰레기장처럼 보이는 곳으로 고양이는 들어갔다. 그곳은 인간이 갈 수 없는 곳 이었다. 장애물이 많아서. 하지만 우리 집의 3층에서는 고양이가 간 곳이 보인다. 그래서 나는 3층으로 올라가 고양이를 추적했다. 그곳에서는 검은색 노란색 그리고 검은색과 노란색이 섞여있는 아기 고양이 3마리와 조금 전에 봤던 엄마 고양이가 있었다.

 

과연 저곳에 먹을만한 게 있을까. 문득 나는 내가 앞으로 먹지 않을 음식을 집에서 찾기 시작했다. 한돈에서 나온 스팸이었다. 바로 뜯어서 고양이가있는 곳의 문틈으로 넣었다. 그런데 엄마 고양이가 갑자기 하악 질을 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검나 깜짝 놀랐다. 고양이를 놀라키게 하기 위해서 쫓아나 왔지 내가 을이 돼서 고양이에게 놀란 적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고양이들은 내가 준 스팸을 몇 햝았다. 엄마 고양이 그리고 다른 고양이들 모두. 그리고 저녁이 되어 나는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그 고양이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덩그러니 내가 놓아둔 스팸은 놓아둔 채 말이다.

 

<당신이 문득 고양이와 마주친다면>을 만약 먼저 읽었다면, 내가 만났던 그 고양이들과의 인연은 좀 다르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고양이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고양이에게 밥을 줘야 하는지, 그리고 냥줍은 어떻게 하는지 등등. 이 책을 봤으면 나의 행동은 많이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약간 늦은 타이밍은 고양이와 나의 인연이 이어지게 못했다. .. 안타깝다. 이번에는 냥줍을 하고 싶었는데 말이다. 어찌 됐든 조금 안타깝다. 이 책을 조금 일찍 읽었다면 내 지루한 하루하루를 고양이들과 약간은 의미있게 보낼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이 책에 있는 정보들을 통해서 나 또한 한 고양이의 엄마가 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이 책에 있는 내용을 하나하나 곱씩으며 다음번에는 냥줍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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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이라 쓰고 버티기라 읽는 -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한재우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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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영하 씨가 한 이 말을 나는 잊지 못한다. “책은요. 읽을 책을 사는 게 아니라, 산 책 중에 읽는 거예요.” 그렇다. 나는 이 말이 들렸을 때,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영하와 나의 공통점이 있어서라기보다, 책에 대한 나의 지름신적 집착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 그것도 유명인이 있다는게 좋았기 때문이다. 김영하의 이 말을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 세계적인 기호학자인 움베르트 에코 또한 자신이 산 책들의 1/4밖에 읽지 못했다고 하지 않은가. 그에 비하면 아직 나는 몇 권 산 것도 아니고, 아직 많이 읽은 것도 아니다.

 

어쨌든 네이버 지식캐스트 같은 곳에 들어가 보면 000의 서재와 같은 글들이 올라와 있다. 가령 유시민의 서재라고 하면 우리나라 근현대사 및 세계의 역사책들이 유시민의 서재 이곳저곳에 비치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사람의 서재가 그 사람에 대한 전부를 이야기 해주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도 말하지 않았던가. 서재에 있는 책들은 그 사람이 읽은 책들이 아닌 읽을 책들이고, 이는 그 사람의 단순한 기호 혹은 선호를 반영할 뿐이다. 그 사람이 쓴 택스트를 보지 않는 이상, 단순한 책 만으로는 한 사람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표면적인 정보밖에 알 수 없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서재에 있는 자신이 쌓아둔 책을 읽고 그 사람이 그 책의 내용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했고, 무엇을 느꼈냐가 중요할 것이다. 김영하는 김영하의 서재에 있는 책들이 김영하를 만든게 아닌, 어찌 됐든 김영하가 읽은 책들이 그리고 김영하가 그것을 소화해 배출한 글들이 지금의 김영하를 만든 것 아니겠는가. 이 책 <노력이라 쓰고, 버티기라 읽는..>이 재미있는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이 책의저자 한재우 씨와 내가 읽은 책들은 거의 일치하지 않는다. 물론 몇 개는 일치하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저자가 하루키를 읽고 혹은 <미움받을 용기> 등을 읽고 그것을 해석하고, 그것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양상은 전혀 다르다. 저자가 살아온 맥락, 저자가 해당 책을 읽은 이유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나는 책을 무겁게 여겼던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 봤으면 한다. 여기에 있는 책들은 대개 가볍다. 그리고 저자의 글도 가볍다. <노력이라 쓰고, 버티기라 읽는..>가 쓰인 목적은 아마도 가볍게 자신이 책을 읽고 도출한 결론,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해 놓은 책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저자가 이야기 한 책들에 대하여 호기심을 갖고, 이에 대한 관심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저자가 그런 호기심을 불어 넣었고, 상큼한 서평 혹은 저자만의 생각을 통해 다른사람들 또한 이와 같은 글을 쓰고 싣도록 본의 아니게 의도한 면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 책의 주 목적은 제목에도 나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전혀 다른 삶의 길로 우리를 의도하기도 한다. 그것은 아마 저자가 책에 관한 이야기로 책을 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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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다 버리고 싶어도 내 인생
하수연 지음 / 턴어라운드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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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00이가 00병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1588-0000으로 00이를 위한 성금 모금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마 90년대 태어난 사람들은 <사랑의 리퀘스트>라는 프로그램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해당 프로그램에는 가난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나오고, 방송에서는 그 사람을 위한 성금모금을 한다. 당시에는 나도 이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보곤 했다. 빈곤 포르노라고나 할까. 어떻게 가난한지에 대해서 그들이 사는 집을 통해, 장애를 통해 혹은 그들의 활동 등을 통해서 다양한 우리 사회의 약자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루는 나와 함께 그 프로그램을 보던 중에 아는 사람이 하나 나왔다. 우리 마을에서도 꾀 유명한 가난한 사람이라고나 할까. 엄마랑 함께 사는 거지(?)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나는 물론 그 사람에 대하여 애정어린 눈빛 혹은 측은한 눈빛을 발사했다면, 나와 함께 그 사람을 보고 있던 할아버지는 전혀 달랐다. “저놈 저거! 나라에서 돈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 줄 알아!!” 할아버지의 말 이었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때 할아버지가 그 불쌍한 사람의 처지를 100% 알 수 있는 증명서를 갖고 있는지 혹은 할아버지가 그 사람을 얼마나 밀착해서 봤는지 난 할아버지에게 묻지 않았다. 다만, 할아버지는 TV에 나오는 사람이 편집된 영상만큼이나 그렇게 궁핍하게 사는 것은 아니다라는 뉘앙스의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라 상상할 뿐이다. 할아버지는 졸부였기에 아마 불쌍한 사람들이 나라에서 10만 원이라도 받으면, “저거 일 하나도 안하고 돈 많이 받는 놈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TV에 나오는 영상과 할아버지의 상반된 모습을 보면서, 내가 보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누군가의 입장에서는 다르게 보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때 처음 들었다. 솔직히 이 책. <갖다 버리고 싶어도 내 인생>을 처음 받은 순간... 나는 과거 불쌍한 처지에 처한 사람들의 모습을 다시한번 소환할 수밖에 없었다. 희귀병이니 정말 희귀한 빈곤을 갖고, 희귀한 경험들을 많이 하지 않았을까? 같은 생각 말이다. 그런 독특한 희귀한 사례들을 통해서 적절한 글감을 찾아보고자 한 것이 내가 이 책을 신청한 이유였다.

하지만 뭐랄까. 이 책은 적어도 스스로를 환자고 가여운 존재로 생각하고 쓴 빈곤 포르노와 같은 책은 아니다. 밀레이널 세대라 그럴까. 저자가 자신의 병을 바라보는 삶의 태도는 어느 측면에서는 달관적이고 어느 측면에서는 냉소적이며 또 어떤 측면에서는 긍정(?)적이기 까지 하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희귀병을 몇 년씩이나 달고 살았고, 거기에서 헤어 나왔는데, 그 오랜 시간 동안 저자가 다양한 생각을 하며 자기 자신을 객관화시키고, 바로 보려는 노력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 책의 묘미는 여기에 있다. 보통 빈곤 포르노의 가장 좋은 프로듀서는 아마 자기 자신일 수 있다. 자신의 피해자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드러내어 (때론 윤지오 씨처럼 왜곡을 하고 거짓을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고자 한다. 하지만 저자가 자신을 객관화 시키고, 자신의 인생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솔직히... 뭐랄까... 쿨하다고나 할까. 그냥 패셔너블 한 것이 아니라, “성숙한 쿨함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을 예상치 못한 저자의 리엑션을 볼 때마다 웬지모를 카타르시스가 느껴져 재미있었던 것 같다.

저자 하수연씨 부디 남은 인생 병은 가졌을 때처럼 쿨한 자세로 잘 사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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