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다 버리고 싶어도 내 인생
하수연 지음 / 턴어라운드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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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00이가 00병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1588-0000으로 00이를 위한 성금 모금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마 90년대 태어난 사람들은 <사랑의 리퀘스트>라는 프로그램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해당 프로그램에는 가난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나오고, 방송에서는 그 사람을 위한 성금모금을 한다. 당시에는 나도 이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보곤 했다. 빈곤 포르노라고나 할까. 어떻게 가난한지에 대해서 그들이 사는 집을 통해, 장애를 통해 혹은 그들의 활동 등을 통해서 다양한 우리 사회의 약자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루는 나와 함께 그 프로그램을 보던 중에 아는 사람이 하나 나왔다. 우리 마을에서도 꾀 유명한 가난한 사람이라고나 할까. 엄마랑 함께 사는 거지(?)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나는 물론 그 사람에 대하여 애정어린 눈빛 혹은 측은한 눈빛을 발사했다면, 나와 함께 그 사람을 보고 있던 할아버지는 전혀 달랐다. “저놈 저거! 나라에서 돈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 줄 알아!!” 할아버지의 말 이었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때 할아버지가 그 불쌍한 사람의 처지를 100% 알 수 있는 증명서를 갖고 있는지 혹은 할아버지가 그 사람을 얼마나 밀착해서 봤는지 난 할아버지에게 묻지 않았다. 다만, 할아버지는 TV에 나오는 사람이 편집된 영상만큼이나 그렇게 궁핍하게 사는 것은 아니다라는 뉘앙스의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라 상상할 뿐이다. 할아버지는 졸부였기에 아마 불쌍한 사람들이 나라에서 10만 원이라도 받으면, “저거 일 하나도 안하고 돈 많이 받는 놈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TV에 나오는 영상과 할아버지의 상반된 모습을 보면서, 내가 보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누군가의 입장에서는 다르게 보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때 처음 들었다. 솔직히 이 책. <갖다 버리고 싶어도 내 인생>을 처음 받은 순간... 나는 과거 불쌍한 처지에 처한 사람들의 모습을 다시한번 소환할 수밖에 없었다. 희귀병이니 정말 희귀한 빈곤을 갖고, 희귀한 경험들을 많이 하지 않았을까? 같은 생각 말이다. 그런 독특한 희귀한 사례들을 통해서 적절한 글감을 찾아보고자 한 것이 내가 이 책을 신청한 이유였다.

하지만 뭐랄까. 이 책은 적어도 스스로를 환자고 가여운 존재로 생각하고 쓴 빈곤 포르노와 같은 책은 아니다. 밀레이널 세대라 그럴까. 저자가 자신의 병을 바라보는 삶의 태도는 어느 측면에서는 달관적이고 어느 측면에서는 냉소적이며 또 어떤 측면에서는 긍정(?)적이기 까지 하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희귀병을 몇 년씩이나 달고 살았고, 거기에서 헤어 나왔는데, 그 오랜 시간 동안 저자가 다양한 생각을 하며 자기 자신을 객관화시키고, 바로 보려는 노력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 책의 묘미는 여기에 있다. 보통 빈곤 포르노의 가장 좋은 프로듀서는 아마 자기 자신일 수 있다. 자신의 피해자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드러내어 (때론 윤지오 씨처럼 왜곡을 하고 거짓을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고자 한다. 하지만 저자가 자신을 객관화 시키고, 자신의 인생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솔직히... 뭐랄까... 쿨하다고나 할까. 그냥 패셔너블 한 것이 아니라, “성숙한 쿨함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을 예상치 못한 저자의 리엑션을 볼 때마다 웬지모를 카타르시스가 느껴져 재미있었던 것 같다.

저자 하수연씨 부디 남은 인생 병은 가졌을 때처럼 쿨한 자세로 잘 사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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