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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
김영하 글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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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고 싶은 곳은 없다 하지만 떠나고 싶은 곳만 남았다
모두들 평범한 일상에 찌들어 사는 것이 싫어 일탈을 꿈꾼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하는 여행을 하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들것이라고 기대를 하게 된다.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배우고 인생 한 언저리를 그렇게 여행으로 가득 메웠으면 한다. 나도 그렇고 내 사람들도 그렇다. 그래서 나도 휴학을 했을때 잔뜩 가방만을 둘러 메고 최초의 해외 여행을 시도 했었다. 장기간 떠나는 여행. 집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지만 내가 번 돈으로 꿈에 그리던 배낭여행을 할 수 있다는 즐거움. 그것만으로도 난 너무 행복했다. 수개월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홀로서기를 당당히 해냈다는 자신감에 넘처났고 이젠 어떤 것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불끈 불끈 솟아났다. 그것이 여행이다. 나에겐 여행이 특별히 무언가를 얻는 것이였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생각 속에서 읽게 된 책이다.
저자가 말하는 책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은 얻은것도 잃을 것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삶 그 자체이다. 김영하 작가는 교수에 베스트 셀러 작가에 라디오 방송인까지 소위 잘나가는 사람이였음에도 삶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모든 것을 버리고 시칠리아로의 여행을 떠났다. 그가 이루고 싶었던 것이 있었는지 모른다. 너무 피곤한 인생 자체에서 탈피하고자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을 읽게 되면 전혀 다른 생각과 이해로 두근 거리는 삶의 심장을 느끼게 된다.
리피리 마을에서 만난 채소가게 아저씨 이야기라던가, 스쿠터를 타고 올라간 협곡을 지난 절벽의 풍경에서의 감동이라던가 그런 것들이 저자만의 아름답고 달콤하며 소소한 문체로 맛깔나게 표현되어 있다. 그는 그래도 아내와 함께 한 여행이기에 더욱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혼자만의 여행도 값지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있는 여행은 두배로 값질 수 가 있을 것이다.
작가가 학식이 뛰어난 사람이여서 인지, 여행의 흔적 곳곳에서 자신의 오랜 추억과 빼곡히 채운 지식들을 한꺼번에 멋지게 말아서 맛난 음식으로 우리를 대접한다. 호메로스의 흥미로운 이야기나 원형 극장에 대한 그만의 해설들이 바로 그런 것이다.
" 어떤 풍경은 그대로 한 인간의 가슴으로 들어와 맹장이나 발가락처럼 몸의 일부가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가볍게 저해줄 수 없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다."
-P.108-
이탈리아의 섬 시칠리아 자연스러운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체험하면서 그는 한 그릇에 가득 담기에는 너무나 넘칠 것 같은 온갖의 미사여구로 환희에 젖는다. 이곳을 오기 전에 인간이 만든 창조물인 미술이나 책, 음악에 감탄하면서 살았음을 자연에의 오만함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무너진 신전을 바라보았을때 신이란 것이 상상속에 존재하는 것이라는 것과 인간의 건축물은 결국 건축물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기도 한다. 그것은 내가 느끼고 싶은 삶의 이치와도 맞닿아 있는 것 같아서 읽는 내내 책장을 쉽사리 넘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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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이렇게도 한 문장 하나하나가 생동감 있게 살아 꿈틀거릴수가 있을까. 작가의 글들은 최상의 날개를 얻은 듯 살아서 우리에게 편지로 전달된다. 속속들이 담겨있는 그림 또한 글과 너무도 최상의 커플을 자랑하며 시칠리아를 한 눈에 보고 있는 듯한 현실감을 준다. 이 책은 책장 가장 가까운 곳에 두고 떠나고 싶은 날마다 보아도 좋다. 진짜로 떠난다면 무모한 도전이 될 수 도 있겠지만 그가 말했듯이 여행하는 동안은 아무것도 잃지 않을 수도 있다.
다시 한번 이탈리아를 여행한다면 로마와 베네치아가 아닌 이곳 시칠리아를 너무나도 가고싶은 생각이 문득 문득 든다. 그만큼 이 책은 감성적인 요소로 가득 메워져 있어서 마음을 혼란스럽게 한다. 그는 시칠리아 여행의 끝에서 이런말을 한다. 자신은 다시 이곳을 돌아올 것이라고, 내가 달라진 사람 같다고.. 그가 느낀것은 다름아닌 그냥 사는 것이였다. 그냥 먹고 자고 마시고 웃고 울기도 하는 계획없지만 자연스러운 삶 그 자체... 나도 꿈꾼다. 그런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