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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그리고 또 다른 <재즈 시대 이야기들>, 펭귄 클래식 ㅣ 펭귄클래식 11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박찬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월
평점 :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슬픈 한 남자의 이야기
원작인 책보다도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라는 사실로 더 뜨거운 열기 속에 인기를 한 몸에 받고 도착한 책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정말 제목 한번 기막히게 지은듯 하다. 하필이면 이름이 '벤자민 버튼'이어서 인지 난 이상하게도 '버튼'에 집중 되었다. 왜 하필 버튼이였을까? 버튼이란 단어 자체가 가져오는 수만가지의 느낌과 상상력이 나를 몰아쳤다. 우리가 버튼을 누를 때 생길 수 있는 수많은 일들을 생각해 보라. 해리포터의 비밀의 방도 열릴 수 있을 것이고, 버튼을 눌러서 다이너마이트가 펑 하고 터트려질지도 모를 일이고, 온 지구의 불이 모두 꺼져버릴 수 도 있는 것이다. 그런 버튼 가족에게서 태어난 벤자민. 그는 누구인가?
사실 이 책은 고전중의 명작 <위대한 개츠비>의 저자인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집을 모은 책이다. <재즈 시대 이야기들>이란 부제로 [나의 마지막 자유분방한 그녀들]에서의 젤리빈, 낙타의 뒷부분, 노동절, 자기와 핑크 그리고 [판타지]에서의 리츠칼튼 호텔만큼 커다란 다이아몬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칩사이드의 타르퀴니우스, 오 빨간 머리 마녀!, [분류되지 않은 걸작]에서의 행복이 남은 자리, 이키 씨, 제미나, 산 아가씨 모두 총 11편의 아주 재기 발랄한 단편들이 쏙쏙 들어차 있다.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황당하고 신선한 이야기들은 저자의 놀라운 창작력과 상상력에 흥분하게 독자들을 만들기에 충분하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낼 수 있었을까? 특히나 소재와 캐릭터에 초점을 맞추고 책을 읽었다.
이 단편들의 주된 특징은 특별히 잘 짜여진 드라마도 아니고, 반전과 인간의 섬세한 심리묘사와도 상당히 거리가 멀다. 긴밀하고 긴장감 있는 스토리텔링에 초점을 맞추었다기 보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라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둔 것 처럼 보인다. 낙타의 뒷부분이나 벤자민 버튼이야기도 그렇고 빨간 머리 마녀와 제미나 산 아가씨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저자도 책에서 이미 그런 말을 해버렸다.
"이 이야기가 '문학'인 척하지는 않겠다. 이것은 '스토리'를 원하지, '심리적' 요소와 '분석'으로 잔뜩 채워진 것을 바라지 않는
혈기 왕성한 사람들을 위한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다."
- p. 394
종말적인 폭발이 일어나 낙원같은 다이아몬드 산이 파괴되는 내용인 '리츠칼튼 호텔만큼 커다란 다이아 몬드' 이야기도 상당히 기가 막힐 노릇인데, 논란으로 쑥덕거리는 이 벤자민 버튼이 더욱 기가 찰 노릇이다. 태어나자마자 근 칠십세는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였던 벤자민이 모든 세상이 흘러가는 시간과는 거꾸로, 점점 젊어져서 아기가 되어버린다는 사실이 섬칫하다. 아무래 판타지라도 해도 이건 좀 지나친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마저도 들게 했지만, 이런 상상력이 쉽사리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다른 단편에서도 언뜻 언급했지만 화려한 삶의 추구와 그것이 한꺼번에 날라갈 수 있는 일장춘몽과 같은 삶, 젊음과 혈기로 왕성할 수 있는 그 자신감을 깨버리고 싶었던 것 같다. 자신은 성숙함과 노숙함을 갖추고 있으면서 같은 나이 또래들의 미숙함과 어리석음과 붙딪히기도 하고, 또 나중엔 거꾸로 부딪히게 되는 돌고 도는 인생의 물레방아와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원했던 비판은 무엇일까. 여러번 생각하게 만드는 아주 신선한 단편집이다. 사회 부조리에 대한 것들도 담았지만, 항상 붙어서 휘저음을 당하는 각양 각색의 개인이란 존재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고 엉키고 설키게 했다. 그 실타레를 풀어낼 필요는 특별히 없어 보인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기발하고 놀라운 상상력과 젊음의 시간을 말하고자 하는 기분만으로도 여러번 읽어보고 싶게 만든다.
벤자민 버튼의 버튼을 누르게 되면 한 인간의 나이가 거꾸로 흐른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모든 세상의 시간과 함께 흘렀다. 아무리 발버둥 치려 해도 개인은 사회속에 속한 공동체에 속할 수 밖에 없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이 영화.. 놓치지 않고 꼭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