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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나이프 ㅣ 밀리언셀러 클럽 98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2월
평점 :
살인이 살인을 부르는 소리, 천사의 나이프
요즘은 세상이 뒤숭숭하다. 경제가 어려워서 여기저기 살기 힘들다는 신음소리가 들리는 가하면, 입에 담기도 어려운 패륜적이고 잔인한 살인 사건이나 폭력사건들이 줄을 잇는다. 특히나 가장 충격적인 것은 10대들이 저지르고 있는 극악한 살인 행위가 아닐까. 독일에서는 10대 한명이 총기 난사를 하여 10여명을 살해하는 가하면, 우리나라에서는 10대 4명이 ( 남매도 포함되어 있다 ) 같이 살고 있던 정신 지체아를 구타로 살해하기도 했다. 중학생이 삶을 비관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고, 한마디로 세상은 극과 극의 세계를 달리고 있는 느낌이다. 한쪽에서는 호화스러운 삶을 영유하면서 희희 낙낙하지만 한쪽에서는 다들 어둠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안타까운 생각뿐이고, 이 어둠이 싫다.
그런데 이 책 <천사의 나이프>를 만나게 되었다. 천사. 천사라는 존재는 우리를 착한 세계로 인도해주는 가장 최상위의 '선(善)'이라고 여겨왔었다. 내가 생각한 천사의 나이프는 세상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무기와도 같다고 생각했다. 그 무기가 과연 이 책에서는 어떤 식으로 쓰였을까. 궁금해서 참을 수 가 없었다. 특히나 만장일치로 뽑힌 일본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이라 함에 솔깃하여 매서운 바람처럼 책을 집어 들었다. 이 책이 지금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책이란 사실을 알게 되면서 온 몸을 휘감는 섬뜩함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것이 어린 아이들의 범죄이다. 그런데 이 소설이 10대들의 충동적인 살인에서 또 다시 다른 살인을 부르게 되는 ‘살인의 연속’에서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음은 안쓰럽고 답답했다. 이 책이 세상과 맞닿아 있는 것 같아서 그 ‘연속’에 끊임없는 물음을 제기하면서 읽어 내려갔다.
커피숍을 경영하는 히야마 다카시의 아내는 4년 전에 10대 미성년자 3명의 강도짓에 살해당했다. 아직 너무나 어린 딸 마나미를 남겨두고 떠난 아내에 대한 슬픔과 함께 13세의 중학생이란 이유로 단순히 '보고관찰 처분'을 받은 범인들에 대한 분노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에 대해 말하는 화자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우울하고 차분하다. 이제는 이런 잔인한 범죄들이 어른에게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인지 그의 분개가 측은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사건은 이제부터 시작된다. 바로 그 3명 중 한명이 그 동네에서 살해된 것이다. 미스터리 하게 벌어지는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기 위한 스토리 전개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면서 끊임없는 재미를 던져준다. 다카시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 것인가. 범인은 누구인가. 침착하면서도 긴박하게 그 '천사의 나이프'를 찾아가는 먼 범죄의 여정을 시작했다.
이 책은 단순히 잔인함, 살인에만 초점을 두고 있는 소설은 아닌 듯하다. 그런 소설들은 대부분 범죄 행위에 대해서 자세히 묘사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소름 돋는 느낌을 주는 것에 반에, 이 소설은 '심리'와 '가족'이라는 측면에 더욱 무게를 실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읽으면서 그렇게 어둡고 칙칙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범죄를 추격해 가는 짜릿한 스릴을 만끽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실제로 우리의 이웃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인지 몰라도 진지하게 읽을 수밖에 없었다. '현실'과 '미스터리'를 골고루 잘 소화시키면서 재주 있는 작가의 손에서 탄생한 이 빛나는 '천사의 나이프'를 칭찬함을 아까워하지 않겠지만,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가슴을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