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그리 뜨거웠냐는듯,
밤 열어둔 창틈새로 바람이 가을 가을합니다.
하늘의 푸르름이 더 높고, 깊게 번지는 계절
시집 한 권 손에 들고
그 안으로 들어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백악문학상을 수상했던 시인은
숱한 감정을 한 발 떨어져 관조하듯
한 땀 한 땀 글로 노래하고 있네요.
인생에 희노애락이 있듯이,
이 시집안에는 참 다양한 관점과 감정이 뒤엉켜 있습니다.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에서는
시대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기성세대의 아픔을,
'치매'에서는
아버지를 향한 먹먹한 마음을,
'아들'에서는
어머니 닮고자 애쓰는 한 소년의 눈짓을,
'지상에서 가장 이쁜 별 희서에게'에서는
손녀를 향한 애틋한 사랑을 그리고 있다.
능소화, 사랑초, 목련꽃, 찔레꽃, 수국, 감꽃.
내가 좋아하는 많은 꽃들이 곳곳에 등장하고,
신발장, 호두나무, 풍로, 그믐달,돌 등
평상시에 우리 곁에서 익숙했던 사물들을
다른 시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익숙함에서 낯선 그 무엇으로 안내하는 싯구들.
시집을 읽는 타이밍때문이었을까?
시 2편에서 한참을 서성거리게 되었다.
올 가을이 가기 전에
인생을 돌아보고픈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초강력긍정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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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 이승범
지난 장에 조기도 몇 마리 사 놨고
주먹만 한 사과 댓 개도 사 놨다.
걱정 말고
바쁘면 안 와도 괜찮다.
조기도 사과도 사 두지 않은
먼 고향집 들어서자
어머니는
신발도 신지 않고
대문 밖까지 뛰어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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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
- 이승범
꽃에게도 말 걸지 못했다
가는 여름에게도 아무 말 하지 못했다
흘러가는 눈물 앞에서도 서 있지 못했다
가을이 일어나는 바람 앞에서도
아무 말 하지 못했다
그리고
느리게
침묵으로 떠나가는 그대에게
사랑해
라고 말하지 못했다
오늘은 아무것도 제대로 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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