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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문장 - 우리가 가졌던 황홀한 천재 이상 다시 읽기
이상 지음, 임채성 주해 / 판테온하우스 / 2018년 11월
평점 :
'나는 믿는다. 箱은 갔지만, 그가 남긴 예술은
오늘도 내일도 새시대와 더부어 동행하리라.'라는 문장으로 이 책은 끝이 난다.
읽는 내내 낯선 단어, 생경한 풍경, 낯선 묘사 등으로 인해
참 진도가 안나갔던 책.
하지만 후대의 많은 이들이
왜 그를 천재라고 칭했으며,
왜 그의 문장들이 많은 작가들의 글에 영감을 주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스스로 혈관을 짜서 '시대의 혈서'를 썼다는 글귀에 마음이 움직여 손에 든 책.
끊임없이 시대보다 자신과 싸우며 글을 썼던 이상.
그는 이미 너무 오래전에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리움은 남겨진 이들의 몫일 뿐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이상'이다. 본명 김해경.
한국의 현대 문학을 논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시인이자,
모더니즘 운동의 기수로 알려졋다.
대부분 교과서 귀퉁이에 인용 지문을 통해 여러번 접하게 되지만
이렇게 모아둔 문장으로 그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이 책은 크게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제비
어느 시대에도,
보고도 모르는 것을 폭로시켜라,
내가 좋아하는 화초와 내 집의 화초 등 다양한 글들이 담겨 있다.
그 중에서도 나는 '꿈은 나를'이 마음에 확 와 닿았다.
'꿈은 나를 체포하라 한다.
현실은 나를 추방하라 한다.'
2장. 금홍
여상 사제, 약수, Epigram 등 다양한 글들이 담겨 있다.
'행복'이라는 글의 경우 요즈음의 젠더 감수성으로는 말도 안되는 글이지만
'당시에는 이러한 생각들을 했었구나...'라는 시대성 자각이 되었다.
3장. 오감도
산촌여정, 조춘점묘, 추등 잡필 등
다양한 소제목을 품고 있는 글들이 모여 있다.
그 중에서 '산책의 가을'에 담긴 당시의 시대묘사는 참 흥미롭다.
'소다의 맛은 가을이 섞여서 정맥주사처럼 차고,
유니폼 소녀들 허리에 번쩍번쩍하는 깨끗한 밴드,
물방울 떨어지는 유니폼에 벌거벗은 팔목 피부는
포장지보다 정한 포장지고,
그리고 유니폼은 피부보다 정한 피부다.
백화점 새 물건 포장-밴드를 끄나풀처럼 꾀어들고
바쁘게 걸어오는 상자 속에는 물건보다도 훨씬훨씬 호기심이 더 들었으리라.'
4장. 멜론
혈서삼태,권태, 최저 나가원,
어리석은 석반, 이 아해들에게 장난감을 주라 등 저자의 생각을 담아내는 글들이 많다.
객혈의 아침은 이렇게 마무리 된다.
'봄이 와서 따스한 건 지구의 아궁이에 불을 지폈기 때문이다.
모두가 끌어오른다. 아지랑이처럼.
나만이 사금파리 모양 남는다.
나무들조차 끓어서 푸른 거품을 수두룩 뿜어내고 있는데도.'
5장. 거울
정화에게, 김기림에게1,2,3,4,5,6,7,
H형에게 보낸 편지, 동생 옥히 보아라 등
저자가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글이다.
살아있는 느낌의 글, 개인의 소소한 정이 담긴 글들이라 애틋하다.
누군가는 그렇게 이야기 했다.
그 사람이 품고 있는 단어가, 바로 그 사람의 세계라고.
낯선 단어들, 생경한 묘사들이 궁금한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단, 녹녹치 않을거라는 충고는 덧붙여 둔다.
초강력긍정주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