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말하지 못한 진실
폴 인그램 지음, 홍성녕 옮김 / 알마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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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인류 태초의 종교와 마음씀씀이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전하여 지는 땅, 조장과 돌무더기를 통한 그들의 신앙, 여전히 눈망울 맑은 인자함을 통해 마치 샹글릴라의 흔적을 보듯, 모든 것이 융해되고, 용서되며, 몇 천년 숨결을 간직하고 있는 땅으로의 티벳, 작년에 “차마고도”라는 다큐를 통해 더욱 더 그들의 자연과 신앙과 생활을 그리워하게 된 곳, 장무까지 이어지는 길을 따라 네팔까지의 배낭여행 코스, 그리고 그 곳에서 만나게 될 그 이색풍경과 사람들을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많은 여행자들이 가기만 하면 온통 사방에서 만나는 그들을 통해 그간 잃어 버렸던 자신의 순수함을 찾게 된다는 허영에 목매고 있는 곳. 나 역시 그 부류의 한 인간일 뿐이어서 한동안 그곳에 대한 그리움을 버릴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이게 다 깨버리다니..


중국, 세차례의 여행을 통해, 그리고 심심할 때마다 들어다 보던 공부를 통해, 그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경외감까지도 숨길 수 없었던 나라. 평생을 다녀도, 그 곳의 변두리 한 곳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의 문화유산과 자연경광을 가지고 있는 곳. 한족 출신인 중국인 지인 한 명은 한족이기 때문에 산아제한 제도에서 벗어 날 수 없다며 가끔 딸 아이 하나 키우는 것에 대한 섭섭함을 드러내기도 했던 술자리가 기억난다. 그 때, 그 말을 들으며, 55개의 소수민족에 대한 배려와 육성, 소수민족축제 등의, 어찌 보면, 관광자원으로까지 충분히 활용되고 있는 정책이 본 받을 만 하다 했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이것도 역시 다 깨버리다니....


사실, 지난 여름, 언제가는 가리라 마음먹고 있는 티벳을, 틈나는 대로 정보를 모우다가, 강제적 생일선물로 이 책을 고를 때만 하더라도, 이 책은 티벳 여행시 일반 여행서적에서 구할 수 없는 생생한 현지의 역사와 사람들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결론부터 말 하자면, 그 가슴 두근거릴 기대는 모두 다 무참하게 깨어져 버렸다.


이 책은 1979년 설립된 과학적불자협회 SBA의 비서관인 폴 인그램이 1990년에 발간한 책이다. 1984년 초판은 미국 의회의 티벳에 대한 현안을 알리는 데에 사용되었고, 1986년 개정판에 이어, 1990년 제 3판을 번역한 책인데, 국제연합 인권위원회를 위해 작성한 티베트 보고서의 제 2차 개정판이라고 한다.


인권 위원회. 세계 도처에서 자행되고 있는 인권유린의 실상에 접근하고, 그 행위의 근절을 권고하긴 하지만, 도대체 그게 얼마나 당사자들 사이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는 지극히 의심스러운 기구이긴 하다.


책은 제 1부부터 충격과 오한이 넘치는 진실을 보고한다.



제 1부 유구한 문화의 죽음과 제 2부 오늘날들 티벳트;강철제국과의 악수 편에서, 당나라 문성공주가 불상을 싸들고 티벳을 찾은 이후 역사적으로 간간이 일어났던 중국의 침략, 그리고 청나라 이후 완전히 중국영지로 부속되고, 1949년부터 1989년까지 40년간 집중적으로 일어났던, 티벳에 대한 인종청소에 가까운 중국의 만행을 수많은 사례와 현지 보고를 인용하여 자세히 서술했다.


제 3부 국제연합, 미국, 유럽, 그리고 티베트와 제 4부 자율티베트라는 미신과 인도의 곤경편에서는 자국의 이해 앞에서의 윤리와 정의를 감추고 있는 서방열국의 입장들, 도처의 인권유린에 대한 정의감을 표하면서도, 홍콩반환, 영토분쟁 등의 미묘한 국제적 이해 앞에 중국의 편을 들어야 하는 선진국들의 비도덕성에 대한 보고서이다.


그리고 제 5부, 붉은 용의 권좌 퇴출:사실 대 신화에서 중국과 러시아, 1980년이후 무기거래 등 중국의 확장, 천안문사건 등 동시대 중국의 비판적 시각에 이어 그들의 위험을 경고한다.


그리고 저자는, 저자의 자료와 시각의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해 부록으로 친중국계 보고서인 톰 그런펠드의 “현대적 티베트의 전설”에 담긴 허위성을 낱낱이 비판하고 있으며, 편집자의 권한으로 1992년 2월 26일 제 14대 달라이 라마가 발표한 미래 티베트의 정책과 기본적 특질에 대한 지침서를 담았으며, 마지막으로 웬만한 단행본 분량에 육박하는 각주를 통해 본문에서 서술하고 있는 사실을 방증 하는 참고 주석들을 달아 놓았다.


어떤 이유이든, 침략자는 힘을 무기로 입에 담아 내지 못할 만행들을 저질러 왔다. 폴란드의 수용소, 만주의 731부대, 그리고 도처에서 알게 모르게 가슴 쓸어내리며 읽어야 하는 많은 역사의 기록들이 그 만행을 입증한다. 그런데 티벳은, 정말 티벳은 침략의 권력앞에 의당 있을 수 있는 일로 치부하기엔 너무 심했다.


하나의 국가라는 명분 아닌 명분을 통해, 기존 영토만큼의 광활한 땅에 대한 무력침략, 문화혁명이라는 깃발아래 무참히 누천년 내려 온 종교시설의 파괴, 승려의 말살, 독립전쟁에 대한 씨말리기 일환으로 데모현장과 반체제인사, 운동에 대한 광범위한 학살과 고문, 벌목과 대체자원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무분별한 환경파괴, 인종차별 아니 티베탄들의 유전적, 민족적 박탈감을 일으키기 위한 정책들, 이제 더 이상 영토와 민족의 분쟁을 끝내려는 한족 이주정책과 고유 문화 말살 등 도저히 한 정부가 영토확장을 이유로 자행한 40년의 티벳통치는 상식의 범주를 벗어 난 “미치광이”의 “광기”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보자. 인류의 문화유산인 수천개의 사원 파괴와 더불어 승려들의 학대, 독방에 며칠씩 가둔 다음 굶주린 개 풀어놓기, 여승에 대한 성적 수치심과 배급식에 오줌싸기, 데모 현장에서는 관련자뿐 아니라 그 일대를 모조리 총으로 쓸어 버리기, 고문사 및 사형으로 죽은 시신을 가족에 인도하면서 죽이는 데 들어간 총알비용 등을 청구하기,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벌목으로 빈둥산 만들기와 티베탄들의 주식인 보리밭으로 밀밭으로 대체하면서 모작 형태의 실패로 인한 식량부족현상, 23명의 여성이 살고 있는 마을에 들어가 18명의 여성에게 임신중절과 가족계획 시술하기, 물값 보다 10분이 일이 싼 저급 술 판매를 통해 삶은 절망스러운 것임을 체험하게 하기, 이주 한족에 대한 식민지 통치 정책에서나 볼 수 있는 우월감 조장 등 책을 읽으면서 정말 낱낱이 그대로 전재하고 싶은 문장들이 하나 둘이 아니였다. 그러기엔 400면이 넘는 본문의 내용을 모두 옮겨와야 될 것이겠고, 차마, 비록 읽기는 읽었다만 그 만행을 그대로 적어내는 것이 너무 몸서리 쳐졌기 때문이다.


이 책은 1990년 간이다. 그러니까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오늘, 과연 티벳은 어떻게 절망하고 있는 가 궁금할 뿐이다. 책에서 밝힌 천안문사태, 그리고 경제적 허약함은 이제 먼 나라 이야기가 되어 있다. 경제적 대국으로 세계 각국의 자원들을 쓸어 모우고 있고, 값싼 노동력으로 대표되던 평가대신 무역발전은 어느 누구도 중국의 존재를 무시 못하게 되어 있다. 라싸의 포탈라 궁 대로 앞에는 밤새 찬란한 조명등이 반짝이고 있고, 그 건너편 길가에는 한족들이 운영하는 가라오케가 성업중이다. 천장열차의 개통으로 세계의 지붕으로의 관광정책은 재생된 순수함을 그리워하는 관광객들로 넘쳐나고 있다. 지난 여름, 성화봉송으로 야기된 티벳의 운동은 우리나라에서도 중국인들의 폭력 앞에 티벳의 자치 뿐 아니라 우리나라 공권력까지 무너지는 것을 확인하지 않았는가. 결코, 다시 지난 20년동안 심하면 심했지, 어떤 이유로든 부드러워 질리는 없을 것이라는 추측만이 가능할 뿐이다.


이제 중국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올림픽 개막식때 소수민족 대표로 구성된 무용단이 사실은 한족으로 모아 놓은 것을 뒤늦게 따져야 할까? 모두 다 무너뜨리고 디즈니랜드처럼 조성한 라싸에 가서 그들의 흘렸던 눈물의 추억을 떠올려야 할까?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입맛에 맞쳐 재건된 땅, 인도의 임시정부의 활동은 그저 신화로써만 존재할 뿐, 그들의 권익보호와 미래는 여전히 어두운 땅, 애써 그 과거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단순하게 가꾸어 놓은 관광지에서 감탄사만 부르짖고 있어야 하다니.. 슬픈 일이다.


옮긴이는 이 책의 국내 출판은 “웰빙 관광주의” 및 “관광판타지”에 목 마른 체, 티벳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한 백신처방으로 기획되었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또 한편, 이 보고서는 티벳의 독립, 중국의 종속 등의 한쪽으로 치우친 어떤 정책의 입장에도 편을 들지 않겠다고 했다. 나 역시 감히 책 한권 읽고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역사에 대해 흥분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만, 그저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중국의 검열을 사전에 거쳤다는 “차마고도”를 방열날짜를 손꼽아 기다리면서 열광적으로 시청한 내가 부끄러울 수 밖에 없었으며, 그 보상을 위해서도, “많이 읽고, 많이 추천하고, 온․오프라인 어디에서든 많이 거론되길 바란다”는 옮긴이의 부탁을 충실하게 들어 주는 것만이 이 책을 읽는 내내 가슴 한 켠이 짙은 어두움 때문에 종잡을 수 없었던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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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들의 대한민국 - 한국 사회, 속도.성장.개발의 딜레마에 빠지다
우석훈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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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에게 "강제적 주문형 생일선물"로 받은 두 권의 책 중, 손으로 무게를 달아 그 중 가벼운 책이다. 첫날 3분의 2정도를 읽고는 거듭되는 강한 톤도 좀 식상하고, 뭐 열심히 직장도 다녀야 하니 일주일 묵혀 두었다가 다시 서둘려 정독하기다. 사실, 2주전인가? 회사에서 제일 높은 분과 술자리를 하다가 이 책 말씀을 하시길래, 구했는데, 어제 다시 같은 분과의 술자리에서 독후감을 말씀드리고 났더니, 완독하지 않은 독후감이라는 게 마음에 걸려, 눈 뜨자 마자 책 먼저 집게 된 것이 아마 약간의 양심불량에 대한 용서바람, 뭐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그 분이 알까 싶다만서도..


'한국사회, 속도∙성장∙개발의 딜레마에 빠지다"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모두 6부에 걸쳐 통렬한 한국의 블도저식 건축양태에 대한, 그리고 그 속에 숨어있는 자본과 연류된 자들의 욕심, 정치인들의 웃기는 짬뽕같은 속내까지.. 아니 그것들과 협착하고 있는 우리 모두의 양심에 대해 통렬히 비판하고, 속 시원히 긁어 내려갔다. 특히 최근 사회적 소재가 되고 있는 대운하에 대한 전편에 걸친 관심, 그리고 청계천을 통한 위장된 생태복원에 대해 언급 했으며, 마지막 한 살림등 우리 사회에 끈질기게 이어져 오고 있는 생태미학에 대한 상상도까지 펼쳐 내려갔다.


시원하다. 한 단어의 독후감이라면 이 단어가 제일 그럴듯할 것이다. 겉모습만 보고 있던 앞서 얘기한 주제들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그 화두를 이해할 수 있도록 저자의 폭넓은 지식을 전달 받을 수 있었으며, 대부분 정말 속 시원하게 이해되고, 수긍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갈수록 보수골통이 되어간다는 주위의 놀림에 전혀 어색하지 않은 내가 소위 진보적 성향의 단어들이 아직 낯설지 않은 것은.. 이상의 오감도, 최근 몇 편의 영화들,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문화코드들을 간간히 인용, 표절(?) 하면서 끄집어 낸 문화읽기의 결론들이 그가 말하고자 하는 본질에 떡고물처럼 딱 들어 맞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요사이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이론이 다양할 수 밖에 없는 화제를 딱 그만큼의 관심으로 고양된 화풀이로서 제법 그럴싸하게 두둘겨 패고 있으니, 같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한번쯤 마구 웃으며 읽어 봄 직하겠다.


1970년대 박정희 시대부터 지금 이명박정부까지, 건설, 자본, 그리고 파괴와 부의 축적, 그리고 그 안에 숨여있는 토호(중앙이든 지역이든)에 대한, 그리고 시대적으로 국토건설의 당면성과 필연성에 대해 단순한 이중 논리의 부딪침을 피하고, 다중적인 시각과 의식으로 그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은 뭐 나처럼 월급에 매인 사람이 볼 때면 한없이 부러운 일이긴 하면서, 잠깐 이런 류의 생각들을 들여다 보면서, 가끔 생기던, "참으로 복잡하게 산다는 안쓰럼"같은 것까지는 미치지 않는 것은, 왠지 이 책에서 그가 보여주는 "메갈로마니아"애 대한 비아냥 속에 숨어있는 자유로움이 읽혔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한편,

"88만원 세대"로 인기를 끌었다지만, 또 저자의 활동범위가 상당히 매력적임에도 불구하고, 슬쩍 딴지를 걸고 싶은 것은, "자건거를 타면서 경쟁을 왜 할까?", "청계천은 어항이다", "대한민국 개발 오감도", "토목공화국의 몰락" "부드러운 변화를 위해", "생태미학 상상도"라고 모두 6부에 걸쳐 구분된 내용이 4부까지는 앞서 말한데로, 그 관점이 어디든, 그 사례에 청계천과 대운하의 악령에서 벗어나지 못한 체, 웅변대회 연사처럼 그것들을 지속적으로 차용하는 바람에 도리어 각 주제별 "독립사고 발현"의 기대에 못 미쳤으며, 이런 차원에서는 도리어, 2부의 생태미학이야기에서 도리어 각 주제에 대한 각기 별스런 이야기들을 잘 매만진 듯 했다.


혹시 이런 트집에 매우 억울하겠지만, 아마, 88만원 인기에 힘 입은 급작스러운 저작이 아닌가 생트집잡기까지 동원하고 싶은 것은, 정수기와 비데로 때 돈을 벌고 있는 재벌의 한 가지에 매달려 있는 출판사 이름에서 연유한 것이기도 한다. 왠지 인기에 영합한 자본의 마켓팅 전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다소 아이러니컬 하게도 말이다. 환경, 생태 뭐 이런 단어를 의식해서 있가? 중질지 스러운 지질이나, 재생지 스러운 간지의 색, 그리고 문화일보 스러운 색지위의 인쇄 등, 갑자기 내용보다 양장과 제본을 걸고 넘어지는 것이 이 때문이고, 그렇다면 내용과 부피에 비해 다소 거품이 많이 들어간 책값 역시 같은 이유로 말할 수 있겠다. 하긴 바로 이런 이유가 한달만에 3쇄에 들어간 이유가 될 수도 있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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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DVD 포함) - 라다크로부터 배우다, 공식 한국어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양희승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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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라다크에서 배우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지음, 양희승 옮김, 중앙북스, 2007년 11월 초판 1쇄, 2008년 10월 초판 8쇄, 354p, 12,000원


"오래된 미래-라다크에서 배우다"는 1992년에 출판되어 50여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읽히고 읽는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라다크" 지역은 인도의 북서부, 그러니까 티벳 문화 영향을 많이 받은 불교지역과 이슬람교 문화가 비슷하게 엉켜있는, 아주 깊은 곳이긴 하나, 그 옛날에는 한 때 실크로드의 길목에서 번성을 누렸을 지역이다. 척박한 땅, 어려운 기후, 야크와 재래종 소의 교합체인 "쪼"나 가축으로 살 수 있는, 보리를 심어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넓이는 광활하되(인도의 영토들이 다 그러니..) 아주 적당한 사람들이 충분히 행복해 하던 지역이다. 책은 이 지역을 16년 동안이나 연구하고, 지켜 봐 왔던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세계화, 문명화라는 명분으로 점차 행복지수를 잃어가고 있는 이 지역의 회복, 그러니까 요즘 표현대로 말하자면 "문명화라는 이름으로 빼앗겨가고 있는 마을공동체의 복원을 위한 노력" 에 대한 보고서다.


흙으로 벽돌을 빚어 집을 짓고, 온 가족이 함께 가족을 이루고 있고, 아이들은 이웃과 또래 집단을 넘어 선 세대에 의한 자연스런 성장 과정, 그리고, 네 것, 내 것이 없는 도움의 현장, 농사를 짓고 나면 함께 모여 춤을 추고, 긴 겨울, 휴식기의 노래들, 그리고 때맞추어 성혼과 축하. 라디크 마을은 그렇게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과 함께 살며, 하다못해 불교와 이슬람과의 종교차이마저도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곳임을 보여주는 사례들로 묶여 있는 것이 제 1부 “전통에 대하여”의 주된 내용이었다면,


제 2부 "변화에 대하여“에서는 그런 마을이 1970년 인도의 중앙집권적 제도 하에 관광지로 개발되고, 영토에 대한 이해, 삶의 가치관의 변화, 획일화된 서양교육, 다국적 기업의 비료와 재화(돈)의 귀중함으로 발생되는 빈부의 격차, 그리고 이제 이 문명화된 세계에서 적응하기 위한 라디크 사람들의 양상들, -핵가족화, 신교육도입, 서양의술 체험, 공해와 잉여물 등,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기류 속에서 점점 더 왜소화되고, 갈수록 비참해 지는 환경 속의 그 들 모습을 전달해 준다.


그리고 마지막 제 3부 “미래를 향하여”에서 저자가 라디크에서 실천 중인 각종 프로젝트들, 자연과 함께 한 에너지, 라디크 실정에 맞는 교육, 그리고 소공동체 운동실천을 통한 정체성 회복등 몇천년 동안 지켜 왔던 과거를 다시 미래로 끄집어 냄으로서 치유 가능성 제 3세계의 같은 질병에 대한 처방을 제시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유럽인의 신장과 성장판에 맞춘 절대 신체지수, 유럽인의 삶에 근거한 각종 생활지식과 과학상식, 서구인의 위생관념과 여흥꺼리에 기준한 각종 매체와 광고. 그리고 GNP에 맞춘 국가 및 지역에 대한 순위 등 이 모든 것이 과연 선진화와 인류 행복의 지수일까? 이 기준에 의하면 제 3세계의 사람들은 당연히 비정상적이며 절대 영양이 결핍된 소인국 사람들이며, 사막, 오지, 밀림속의 생활환경에 반한 도시적 생활지도서인 교과서들은 그들이 살아가는데 전혀 쓸데없는 정보만 전달될 뿐이며, 작은 콧노래의 흥얼거림과 함께 하는 노동요, 마을사람들과 함께 하는 소박한 어깨동무, 강강수월래 춤들은 화려하고 격식을 갖춘 매체속 가수의 몸놀림과 비교되면서 점차 자신들의 그 행위들에 대한 부끄러움만 야기 시킬 뿐이며, 결국 이 모든 것으로 인한 자기파괴, 왜소함, 그리고 우울증과 스트레스로 인한 현대병만 야기 시키는 것은 아닐까?


GNP, 이 지수는 재화의 이동이 있어야 늘어난다. 집에서 만들어 먹던 빵을 돈을 주고 사는 행위가 이루어져야 지수에 포함될 수 있고, 도둑질을 당해 가구와 전자제품을 새로 구입하면 그 또한 지수가 올라가며, 무엇보다 가정주부로서 발생하는 모든 노력은 전혀 재화로 잡히지 않는 모순이 있다. 물론, 그렇다고 제 3세계의 공통적 특징인 영아사망률, 평균수명, 그리고 학습의 결여 등에 대한 문제를 “순수”란 단어로 슬쩍 포장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알래스카에서 오직 바다표범의 기름만 먹어도 비타민이 보충되고, 사막에서 양의 치즈만으로도 살아 갈 수 있는 지역의 특수성, 체질들에 대한 그 지역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토기에 담던 소금을 이제 화학비료 깡통에 넣어두고, 이미 사용이 제한된 각종 비료들을 퇴비대신 쓰는 것, 무엇보다 멀쩡히 연료로 사용하던 동물의 배설물을 버리고, 미끼처럼 갈수록 고가로 올라가고 있는 화석연료로 대체하고 있는 지금. 그들의 자생을 위해서는 누천년 동안 이어 온 그들의 과거를 미래로 다시 돌려놓아야 할 것이다.


국가도 민족도 없이, 소위 세계화라는 명문으로 기업만 살찌우게 하면서, 갈수록 인류를 이렇게 빈곤으로 몰아가고 있는 이 때에, 과연 제 3세계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은 무엇일까? 그 글로벌 기업들이 속한 지역에서는 건강을 위해 호밀빵을 비싼 값에 구입하고, 건강을 위해 헬스클럽에 많은 돈을 지불하고, 아토피를 피하기 위해 편백나무 집을 짓고 있는데, 어찌보면 라디크에서 아니 모든 제 3세계에서 전혀 재화의 이동 없이 자연스럽게 삶을 영위하던 이 모든 사례들을 목소리 높여 주창하고 있는 이 때에... 우린, 과연 어느 지표에 서 있는 가하고 자문을 한번 하게 되는 것, 그게 아마 “오래된 미래”가 주는 교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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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쓴 일본사
아사오 나오히로 외 엮음, 이계황.서각수.연민수.임성모 옮김 / 창비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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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살아있는 유기체다. 어떤 이유든, 제 3자 입장이라는 것이, 절대로 보장되지 않는 경우이기도 하다. 실증주의와 민족사관이라는 양분의 시각이 아닐지라도 역사를 알아간다는 것은 늘 탄광의 삽질처럼 어렵고 고단한 일이 분명하다. 그러니 내 한번 인용한 바도 있지만,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E.H Car의 말 보다는 차라리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한자리에서 마치 유적지의 지층에서 쏟아져 나오는 화석처럼 복잡하게 다양하게 공존하고 있다고 본다. (같은 말인가?)


특히나, 일본역사라는 것이, 뭐 “일본세기”의 표현들을 그대로 읽어도 웃기겠지만, 나야 당연히 한국학자들이 정리한 지식에 의존하려니 양국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어차피 정확한 전달은 어려울 것 같다. 학자의 양심이라는 것과 말 그대로 역사라는 것과의 “차이”때문이겠지만. 물론, 그 차이를 알아차릴 정도의 다면화된 지식도 없으니 더더욱 그렇다.


개인적으로 주변으로 만 읽었던 일본역사를 한권의 책으로 소위 통사의 개념으로 읽기는 난생처음이다. 그냥 귀 따갑게 들었던 “왜놈”들에게는 절대로 우호적이면 안 된다는 어설픈 민족정서가 내재되어 있음도 숨길 수 없지만, 그래도.. 한번은 알아야 한다는, 그리고 최근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있는 아시아 각국의 제대로 된 역사책 읽기의 일정 중 빠뜨릴 수 없는 한 과정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어떤 책을 구할까? 하며 인터넷 서점을 뒤지다가 과감(?)히 일본학자들이 쓴 번역서를 구입할 때는 아마 “그래 그럼 너희들은 어떻게 보냐?”라는 오기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긴 제대로 다른 책으로 일본역사를 읽은 경험도 없느니 이 말 역시 웃기기는 하지만 말이다.


동아시아 주변의 정세 속의 일본의 위치, 일반 대중의 사회사, 문화사를 중시했으며, 민중생활사를 조망했다는 것이 이 책의 세가지 특징이라고 편자는 밝혔지만, 뭐 다른 일본 역사책을 본 바 없어서 그 말의 진위를 따질 힘은 없지만, 작년에 이이화님의 “한국사이야기” 22권을 통독한 경험으로도 통사개념의 개론서에서 왕조 등 집권층을 제외한 일반 사회와 민중의 이야기를 추적해 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짐작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 책이 일정 부문에 대해 참으로 재미있게 그 특징들을 살릴려고 했다는 것에 동감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헤이안 시대까지 대부분의 이야기가 도대체가 입에 익숙해지지 않는 집권층들의 계보로만 채워지고 있는 본문안에서 정말 낑낑대고.. 몇 번이고 던져 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시대를 보니 그게말이다, 우리로 따지면 뭐 삼국시대 아닌가. 뭐.


사과야 빠를 수록 좋으니 나의 무식을 이제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조오몬문화, 야요이문화, 고분(아스카)문화, 나라문화, 헤이안문화, 카마꾸라,무로마찌문화, 에도문화,메이지문화. 이 쉬운 시대별 구분조차 이 나이에 처음 알았다. 정원, 막부시스템 등 형태는 틀려도 끊임없이 일어나는 정세뒤집기와 그 속에서의 사회운영체제.. 그래 역사는 타산지석인 모양이다. 몇국의 역사를 접하면서 이제 점점 시대별 개괄이 참으로 쉽게 다가오니 말이다.


그래도, 이게 일본사가 되다 보니까.. 흐흐. 역자들이 가끔 (특히 고대사부문에서) 필자들의 의견에 상반되는 참고사항들을 친절하게 덧붙이는 것에 대해 웃음이 나오기도 했으며, 원래 책에는 없다지만 수십개의 도표들을 삽입하여 본문내용의 이해를 도운 편집체계는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그런데, 나 역시 어쩔 수 없었나 보다. 나 역시 한국인인 모양이다. 1899년 중국의 의화단의 난. 그리고 1900년 6월 서구 및 일본 8개국의 개입의 서술 중 “의화단 진압전쟁 당시 연합군의 약탈, 방화, 학살은 극에 달했다. 일본군만이 용감하고 군기가 엄정하여 열강의 신뢰를 받았고, 청나라의 불안한 정치정세 때문에 이른바 ‘극동의 헌병’이라는 지위를 얻었다.”라는 본문을 읽으면서는 정말 낄낄대고 웃었다. 나는 왜 이 극동의 헌병이라는 멋있는 일본군이 아니라 모르긴 해도 그 8개국중 제일 비인간적인 군기속에 있던 놈들이 아닐까 하고.. 아시아 지역에 퍼져 있는 안티일본에 대한 기억들이 모두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되도록 나 한국인이라는 기본적인 선입관은 버리고 최대한으로 필자들의 의견을 그대로 읽었다. 그게 그 나라에 대한 가장 빠른 이해라고 알고 있기에..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일본, 이제야 한번이라도 그 들의 역사를 들여 볼 수 있었다는 것에 큰 수확이고, 뭐 몇 번의 검토가 있긴 했지만 우연처럼 참으로 좋은 책을 골랐다 라는 자부심도 함께 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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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탄트 메시지 - 그 곳에선 나 혼자만 이상한 사람이었다
말로 모간 지음, 류시화 옮김 / 정신세계사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몇 주전에.. 술자리에서 인류학에 대한 얘기가 안주로 나온 적이 있다. 자리에서, 나는, 내가 처음 성에 눈뜨기 시작한 고등학교 시절 성에 대한 책을 집는 다는 게, “원시사회의 성과 억압”이라는 순전히 제목 때문이라고 낄낄 됐었다. 당시 그냥 한 두장 읽고 만다고 한 것이 내용에 빠져들어 열심히 읽었던 아주 훗날 인류학 저자들이 언급될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말리노프스키라는 저자를 그러니까 나는 순전히 “성적 호기심” 때문에 입문한 것이었다. 그리고 한참 뒤, 프레이져, 레비 스트로스 등 영국과 프랑스의 학자들의 관련서적들을 몇 권 읽었나 보다. 아마, 유적 다음에 오는, 아니, 정말 가죽옷 입고 돌맹이 들고 다니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 지, 어떤 꿈을 꾸며 종족관계를 이루워 왔는 지 그걸 들여다 보는 즐거움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왜 궁금했는 지, 지금 생각해 보면, 원시동굴이든, 암각화이든, 그리고 손바닥 만한 물증같은 유적들을 들여다 보면서 나는 여전히 그들과 같이 어울리고 싶어 하나 보다. 왜 그럴까? 정말 스스로, 그게 현대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회귀 본능에 집착하고 있는 내 성정이 문제일까?


아주 오랜만에, 그와 관련된, 아니 조금 동 떨어지긴 했으나, 그럴듯한 책을 한권 읽었다. 술자리 다음날, 그 자리를 함께 했던 동료가 한번 읽어보라고 건네준 책으로 말이다. 무탄트메세지. 제목과 슬쩍 정보로는 호주 원주민 사회에서의 종합적인 생태보고서 정도인 줄 알고 시작했는데, 단순한, 그러나 아주 호흡이 긴 호주사막으로의 여행기였다. 일반 여행기와는 다른 것은 저자의 곁에 오스틀로이드라는 호주 원주민 부족이 동반자로서, 그들의 삶 속에 눈 밖의 여정이 아닌, 가슴속의 삶을 함께 겪게 해준 것 이었다.


자연치료법을 전공하고, 우연한 기회에 호주에서 활동을 하게 된 저자는 자연치료법을 통한 의료활동속에서 관계자들의 관심을 끈다. 몇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막 시작하려던 찰라, 원주민단체로부터 초청장이 날아온다. 그리고, 근사한 점심, 정장, 시작연설까지 준비한 그녀는 인솔자의 지프에 의해 사막 한가운데로 인도된다. 전혀 예기치 않게, 그녀의 삶속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62명의 원주민들과 넉달동안 호주사막 횡단여행은 이렇게 전혀 준비되지 않고 시작됐다. 게다가, 입고간 옷, 몸에 걸친 비싼 장신구, 주머니속의 현금과 카드.. 마지막 속옷 마저도 모두 모닥불에 불태워 버려지고, 그들이 건네 준 담요같은 천 한 장 달랑 몸에 걸치고 말이다.


넉달동안 최소한의 약초와 물통만 가지고도 그 많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자고, 병을 치료하고, 대화를 이끄는 본문은 설사, 이게 허구라고 해도 좀 웃긴다 싶을 정도로 판타지 소설이나 신비주의로 취급될 내용으로 꽉 채워 있으니, 도대체, 오십이 다 되도록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반신반의가 여전히 남아있는 내게, 책의 내용은 몇 번이고 고개를 가우뚱거리게 하고, 피식 웃게 하고 두려움에 떨게 했다.


모든 것을 다 비운 사람들, 오직 자연의 의해 존재하고, 자연과 호흡하며, 우주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모든 일상은 구전이든, 영적으로 전해오는 소통구조에 의존한 채, 정말 딱 필요한 양 만큼의 사냥과 채집, 아니 대상물들이 스스로 알아서 나타나 주는 것만 한정해서 먹고 살아도 풍요와 너그러움이 함께 하는 사람들, 책은 그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보내오는 메시지이다. 설마 설마 하면서도, 계속 반복되는 내용과 설득력 있는 구체적인 방식들을 이해하다보면, 정말 충분히 이렇게 해도 그 척박한 사막에서 한 무리의 인간이 살아갈 수 있다고 믿게 되는, 그리고 정말 그들이 호주 사막 어딘가에 감추어 놓은 신전을 인디아나 존스처럼 찾아가고 싶어지는, 그 여행기속에는, 절벽에 굴려 부러진 발도 치유가능하기도 하고, 선발대로 앞서 간 동료들끼리의 원거리 통신을 텔레파시를 통해 가능하게 하고.. 그런 것까지야 마음에 와 닿진 못했지만, 적어도 그들이 가진, 자연에의 회귀와 그 회귀를 통해 거부감 없이 이 우주 삼라만상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그들이 가진 순수하고 원초적인, 맹목적적인 메시지에 대해 튼튼하게 구축된 신뢰감 때문이리라.

물론, 같은 경로를 답습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그들이 나를 받아 줄리도 만무하지만, 구데기와 나무껍질, 캥거루고기, 별이 보이는 야숙, 그리고 사막 한가운데서의 배변행위조차 나는 결코 나의 경험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아주 튼튼한 문명의 장기를 몸 속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보지 않은 길, 경험하지 못한, 절대로 버릴 수 없는 짐들을 가득 진 우리가 이런 사람들의 삶에 흥미를 느끼는 것 조차 만용일 수도 있겠으나, 그게, 과학이라는 명제가 도입되면서부터 거꾸로 잃어 버려야 하는 상상력, 그 꿈의 빈도를 이런 간접경험을 통해 되찾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조용히 아주 지속적으로 책의 발간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여행기를 떠나 혹시 저자는 그들과 함께 했던 시간속에 그들의 내면을 좀 더 들여다 본 보고서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삶이 방식에 대한 궁금증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 우리가, 아니 내가 잃어버리고 있는, 전혀 감지 못하고 있는 숨어있는 인간성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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