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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탄트 메시지 - 그 곳에선 나 혼자만 이상한 사람이었다
말로 모간 지음, 류시화 옮김 / 정신세계사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몇 주전에.. 술자리에서 인류학에 대한 얘기가 안주로 나온 적이 있다. 자리에서, 나는, 내가 처음 성에 눈뜨기 시작한 고등학교 시절 성에 대한 책을 집는 다는 게, “원시사회의 성과 억압”이라는 순전히 제목 때문이라고 낄낄 됐었다. 당시 그냥 한 두장 읽고 만다고 한 것이 내용에 빠져들어 열심히 읽었던 아주 훗날 인류학 저자들이 언급될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말리노프스키라는 저자를 그러니까 나는 순전히 “성적 호기심” 때문에 입문한 것이었다. 그리고 한참 뒤, 프레이져, 레비 스트로스 등 영국과 프랑스의 학자들의 관련서적들을 몇 권 읽었나 보다. 아마, 유적 다음에 오는, 아니, 정말 가죽옷 입고 돌맹이 들고 다니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 지, 어떤 꿈을 꾸며 종족관계를 이루워 왔는 지 그걸 들여다 보는 즐거움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왜 궁금했는 지, 지금 생각해 보면, 원시동굴이든, 암각화이든, 그리고 손바닥 만한 물증같은 유적들을 들여다 보면서 나는 여전히 그들과 같이 어울리고 싶어 하나 보다. 왜 그럴까? 정말 스스로, 그게 현대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회귀 본능에 집착하고 있는 내 성정이 문제일까?
아주 오랜만에, 그와 관련된, 아니 조금 동 떨어지긴 했으나, 그럴듯한 책을 한권 읽었다. 술자리 다음날, 그 자리를 함께 했던 동료가 한번 읽어보라고 건네준 책으로 말이다. 무탄트메세지. 제목과 슬쩍 정보로는 호주 원주민 사회에서의 종합적인 생태보고서 정도인 줄 알고 시작했는데, 단순한, 그러나 아주 호흡이 긴 호주사막으로의 여행기였다. 일반 여행기와는 다른 것은 저자의 곁에 오스틀로이드라는 호주 원주민 부족이 동반자로서, 그들의 삶 속에 눈 밖의 여정이 아닌, 가슴속의 삶을 함께 겪게 해준 것 이었다.
자연치료법을 전공하고, 우연한 기회에 호주에서 활동을 하게 된 저자는 자연치료법을 통한 의료활동속에서 관계자들의 관심을 끈다. 몇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막 시작하려던 찰라, 원주민단체로부터 초청장이 날아온다. 그리고, 근사한 점심, 정장, 시작연설까지 준비한 그녀는 인솔자의 지프에 의해 사막 한가운데로 인도된다. 전혀 예기치 않게, 그녀의 삶속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62명의 원주민들과 넉달동안 호주사막 횡단여행은 이렇게 전혀 준비되지 않고 시작됐다. 게다가, 입고간 옷, 몸에 걸친 비싼 장신구, 주머니속의 현금과 카드.. 마지막 속옷 마저도 모두 모닥불에 불태워 버려지고, 그들이 건네 준 담요같은 천 한 장 달랑 몸에 걸치고 말이다.
넉달동안 최소한의 약초와 물통만 가지고도 그 많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자고, 병을 치료하고, 대화를 이끄는 본문은 설사, 이게 허구라고 해도 좀 웃긴다 싶을 정도로 판타지 소설이나 신비주의로 취급될 내용으로 꽉 채워 있으니, 도대체, 오십이 다 되도록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반신반의가 여전히 남아있는 내게, 책의 내용은 몇 번이고 고개를 가우뚱거리게 하고, 피식 웃게 하고 두려움에 떨게 했다.
모든 것을 다 비운 사람들, 오직 자연의 의해 존재하고, 자연과 호흡하며, 우주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모든 일상은 구전이든, 영적으로 전해오는 소통구조에 의존한 채, 정말 딱 필요한 양 만큼의 사냥과 채집, 아니 대상물들이 스스로 알아서 나타나 주는 것만 한정해서 먹고 살아도 풍요와 너그러움이 함께 하는 사람들, 책은 그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보내오는 메시지이다. 설마 설마 하면서도, 계속 반복되는 내용과 설득력 있는 구체적인 방식들을 이해하다보면, 정말 충분히 이렇게 해도 그 척박한 사막에서 한 무리의 인간이 살아갈 수 있다고 믿게 되는, 그리고 정말 그들이 호주 사막 어딘가에 감추어 놓은 신전을 인디아나 존스처럼 찾아가고 싶어지는, 그 여행기속에는, 절벽에 굴려 부러진 발도 치유가능하기도 하고, 선발대로 앞서 간 동료들끼리의 원거리 통신을 텔레파시를 통해 가능하게 하고.. 그런 것까지야 마음에 와 닿진 못했지만, 적어도 그들이 가진, 자연에의 회귀와 그 회귀를 통해 거부감 없이 이 우주 삼라만상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그들이 가진 순수하고 원초적인, 맹목적적인 메시지에 대해 튼튼하게 구축된 신뢰감 때문이리라.
물론, 같은 경로를 답습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그들이 나를 받아 줄리도 만무하지만, 구데기와 나무껍질, 캥거루고기, 별이 보이는 야숙, 그리고 사막 한가운데서의 배변행위조차 나는 결코 나의 경험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아주 튼튼한 문명의 장기를 몸 속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보지 않은 길, 경험하지 못한, 절대로 버릴 수 없는 짐들을 가득 진 우리가 이런 사람들의 삶에 흥미를 느끼는 것 조차 만용일 수도 있겠으나, 그게, 과학이라는 명제가 도입되면서부터 거꾸로 잃어 버려야 하는 상상력, 그 꿈의 빈도를 이런 간접경험을 통해 되찾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조용히 아주 지속적으로 책의 발간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여행기를 떠나 혹시 저자는 그들과 함께 했던 시간속에 그들의 내면을 좀 더 들여다 본 보고서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삶이 방식에 대한 궁금증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 우리가, 아니 내가 잃어버리고 있는, 전혀 감지 못하고 있는 숨어있는 인간성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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