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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들 - 여성은 왜 원하는가
캐럴라인 냅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5월
평점 :
P41
많은 여성들의 마음속에 깔린 가장 주된 욕구는 아마 욕구에 대한 욕구일 것이다. 자신의 진짜 욕구가 무엇인지 있는 그대로 밝힐 수 있을만큼 충분히 안전하고 안정되었다고 느끼고 싶고, 그 욕구를 만족시킬 충분한 자격과 힘을 갖추었다고 느끼고 싶은 갈망 말이다.
P.128
나는 아버지에게는 직업이, 어머니에게는 취미가 있다고 생각하며 자랐다.
이 책을 읽으며 수많은 인덱스들을 붙였지만 내 뇌리에 깊이 남은건 위의 두 문장이다. 여성은 진짜로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그리고 그것을 찾더라도 실현시키는 것을 주저하거나 포기하는 것이 자연스럽도록 학습된지도 모르겠다.
욕구라는 단어를 사전적으로 정의하면 ‘무엇을 얻거나 무슨 일을 하고자 바라는 일’이다. 인간이 무언가를 얻고자 하고 바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삶의 태도이고 좋은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의지일 것이다. 그러나 ‘욕구’라는 단어 앞에 ‘여성’이라는 단어를 채워 넣는 순간 욕구의 사전적 의미와 이미지는 퇴색되어 버린다. '여성의 욕구'는 쾌락, 탐닉이라는 단어와 슬며시 연결되고 그 단어의 꼬리를 물고 있는 것은 억제, 자제, 갈등, 수치심 등의 부정적인 단어들이다. 그리고 욕망에 대한 성취를 누리는 것이 쉽지 않을 거라는 예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걸까?
우리는 생각해보아야 한다.
여성은 왜 원하는가?
여성의 진짜 욕구는 무엇일까?
[욕구들]에서 캐럴라인 냅은 거식증에 걸렸던 자신의 과거를 반추하며 여성의 욕구들에 대해 통찰한다. 그녀에게 거식증은 자기혐오, 슬픔에서 발생하는 모든 불안감을 해소시켜줄 실마리라는 잘못된 강박의 결과였다. 배에 움푹 들어간 굴곡이 생기고 스판덱스 레깅스의 무릎이 불룩 튀어나올 정도로 깡마른 다리는 자신의 수많은 욕구를 단 하나의 욕구로 대체시키고 그것을 외현화한 것이라 여겼다. 욕망의 대상을 문제가 아닌 해결책으로 여기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고 말하는 캐럴라인 냅의 솔직한 고백을 들으며 우리는 각자의 내면을 탐색하고 여성의 가치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성상은 어떤 모습일까.
여성에 대한 가치판단 기준이 아직 서지 않은 유아기에 읽은 동화는 남성과 여성의 특성을 확연히 다르게 그리고 있고, 여성은 외적인 아름다움을 갖추어야만 된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선한 여성은 아름답고, 악한 여성은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탐내고 시기 질투한다.(신데렐라, 백설공주, 콩쥐팥쥐) 결핍이 있는 여성은 사랑받기 위해 자신의 힘으로 적극적으로 노력하기보다는 무언가를 포기한다.(인어공주) 그리고 대부분의 동화에서 수동적이고 힘이 없지만 아름다움을 갖고 있는 여성은 남성에 의해 위험에서 구출된다.
T.V나 영화, 또는 책에서 보게되는 여성은 어떠한가. 욕망을 갖고 표현하고 적극적으로 행동에 옮기는 여성은 한정과 제한이라는 벽에 수도 없이 부딪히고 온갖 시련을 겪어낸다. 영상과 문자로 형상화된 구체적인 표현을 바라보게 되면 욕구와 그에 따른 책임, 가능성의 범위와 행동의 범위, 사회적 허용과 도덕적 잣대가 남성과 여성에게 각기 다르게 적용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성을 가리키는 주체성, 독립성, 권력은 여성에게서 찾아보기 힘들다. 시련을 이겨내는 것이 여성성을 파괴하는 것은 아닐까 의문이 생긴다.
오랜 세월 동안 이렇듯 여성을 대상화하고 부정적 관념들의 지배를 받고 자란 것이다. 따라서 사회에서의 여성상은 축소될 수밖에 없고, 여성의 몸에는 이런 문화가 기입되어 자신의 욕구에 대한 통제와 억압을 하는 것을 내면화하게 된다. 그리고 여성은 한계와 제한으로 점철된 삶 속에서 감정적 허기를 느끼게 되고 공허함을 채울 무언가를 원하게 된다.
그러나 여성은 자신의 욕구를 향한 권리의식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불안감을 느낀다. 육체와 영혼의 즐거움을 찾는 것에 소극적이 되고 그것을 인정하고 누리는 데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때 여성은 자신이 실현시킬 수 있는 가짜 욕구를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 한다. 날씬하고 아름다운 몸의 이미지에 집착하게 되고, 쇼핑중독에 빠지고, 존중받지 못하는 이성과의 관계에 빠지게 된다. 그럼으로써 여성은 허기를 결코 채울 수 없으리라는 두려움을 느끼고 자기혐오와 슬픔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묻는다. 이것이 진정으로 원했던 욕구인가? 사랑, 기쁨, 열정에서 중핵을 뺀 껍데기뿐인 충동 아닐까.
우리는 자신의 내면을 탐색하고 자신의 감정적 허기로 인한 진정한 욕구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인정해야 한다. [욕구들]에서 인간 허기의 근원은 사랑이라고 말한다.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은 우리를 끊임없이 욕망하게 한다. 욕구 자체가 아니라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아는 것은 그것을 온전히 실현하고 충만해짐으로 가는 첫걸음일 것이다.
[욕구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본인의 내면을 응시하는 캐럴라인 냅의 고뇌가 느껴지고, 그녀가 투쟁하는 삶을 통해 얻은 통찰과 감정을 깊이 공유했다고 느낀다. 캐럴라인 냅과 함께 어둡고 긴 터널을 통과한 우리는 내면적 허기를 채운 충만한 미래를 꾸려가려는 의지를 다잡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