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메론 프로젝트 - 팬데믹 시대를 건너는 29개의 이야기
빅터 라발 외 지음, 정해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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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수도권거리두기를 4단계로 격상한다는 속보가 뜨고 있다. 3학년 아들은 원격으로 학교 수업을 하는 중이고 아마도 다음주부터는 1학년 딸도 원격수업을 할 것이다. 다시 집안에 격리된 일상을 보내야하는 것인가. 최근 4차 대유행 조짐이 보여서 불안하더니 매일 1000명이 넘는 신규확진자 소식에 이제 다시 공포에 떨고 있다. 백신접종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어느 정도 바이러스 유행도 잡히고 있는 분위기라서 7월이 되면 외출도 자유로워질거라 예상하고 친구들과 오랫만에 모임을 갖기로 했었다. 희망을 갖는다는 것이 이렇게 잔인한 일이었던가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며 무뎌졌던 바이러스에 대한 경각심으로 인해 마음가짐이 달라져서인지, 좋아질 거란 희망이 깨져버렸기 때문인지 다시 집안으로 대피해야하는 이 상황에 깊은 우울감이 느껴진다. 처음 바이러스가 유행했던 작년초에 비해 더 비극으로 치닫고 있는 느낌이다.

10여년 전쯤 모임에서 만난 분의 닉네임이 '데카메론'이었다. 데카메론이란 제목은 학교에서 배웠던 희미한 기억만 갖고 있던 때라 왜 그런 닉네임을 쓰셨는지 궁금했었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분은 그 책을 읽고 굉장한 감동을 받았다고 하셨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위험상황에서 격리를 결정한 사람들이 그 상황을 이겨내고 희망을 찾는 책이라는, 쉽고 재밌고 유쾌하고 야하지만 이야기를 통해 전달되는 메세지는 가볍지 않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팬데믹 상황에서 카뮈의 '페스트'와 함께 관심을 끄는 책이 있는데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다. 페스트로 인해 지금과 같은 팬데믹 상황에서 격리된 젊은이들이 서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씌여진 책이다. 나는 아직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읽지 않았다. 그러나 ‘데카메론 프로젝트'를 읽으며 왜 이야기의 힘이 대단한지를 알게된 것 같다. 360여 페이지에 담긴 29개의 이야기. 사실 나는 여러 소설가들이 참여했다는 사실 외에도 '데카메론'이라는 단어에 꽂혀서 왠지 무언가 심오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 줄 알았다. 책을 읽으며 '뭐야. 이게 끝이야?'하는 이야기들이 여러편 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지난 1년 반동안 내가 경험한 일상이 그려진, 지금의 우리에겐 너무 평범한 하루, 감정, 사건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피해 다니고, 외출을 하고 싶은 욕망을 갖고, 또 오랜 기간 봉쇄조치로 인한 감금에 비슷한 생활을 하다가 밖으로 나와 적응하려고 애쓰는 모습이나, 바이러스 감염으로 이웃이 사망하는 사건이라던가, 아이가 아파도 병원에 가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하는 모습이라던가, 개의 산책은 가능하나 아이의 산책은 불가해서 tv시청을 허락하는 이야기라던가, 교도소에서 감염된 사람이 격리시설로 들어가 치료를 받는 이야기라던가, 보건시설에서 나온 직원을 강도로 생각하는 노인이라던가(직원은 노인의 스킨십에 격렬히 저항함 ㅋ), 봉쇄기간 중 임시방편으로 만들어 먹던 아이스아이스크림과 그것으로 오래된 불화를 깨버리는 일이라던가, 개를 산책시키는 것은 용인하는 봉쇄조치 하에서 개를 대여하는 사업을 한다던가.

물론 데카메론의 이야기와 비슷한 액자형 소설도, 팬데믹과 큰 관련이 없는 소설도 있었다. 외계인이 (격리중인)지구인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애트우드의 참을성 없는 그리젤다), 환상을 갖게된 여인을 찾고 만나게 된 소설(빨간 가방을 든 여인), 분별 있는 살인을 저지른 여인들 이야기(분별 있는 여자들) 등.

책을 덮고는 이 이야기를 팬데믹이 훨씬 지난 시기에 읽으면 어떤 책이라는 생각을 할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14세기 페스트가 유행하던 시절 쓰여진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바라보듯 이 글들을 보게 될까? 기이한 이야기? 어처구니 없지만 유쾌한 이야기? 상상력이 풍부한 이야기? 라는 생각이 들까? 지금 우리에게 또는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런 일들이 언젠가는 '아 그 시절에 이런 일들도 있었지.'라는 생각에 허탈한 웃음이 나올수도 있을테고, 지금의 일을 돌아보며 자조의 메세지를 얻을수도 있을것 같다. 그렇지만 어떤 방향으로 이 이야기들을 바라본다고 해도 이야기의 힘이 크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일상과 감정을 공유하며 마음의 안정을 얻는 의미가 될 수도 있고, 결국 희망을 갖아야 한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고, 이후의 누군가에게는 지금 현재의 일들을 바라보며 혼란 상황에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지혜나 진실을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을 덮으며 나는 이제는 일상화되었을 지라도, 사실은 혼란한 이 시기가 이야기가 되었다는 사실이 좋았다. 감정이나 행동들이 구체화되어 확장해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일까. 지금은 어쩌면 나의 일상에 대한 불평이나 우울감에 대해 두리뭉실하게 이야기 하는 것이 누군가와 하는 대화의 주된 내용일텐데 그 감정들이 구체화 된 이 이야기들은 내 감정에 형태를 부여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나는 책과의 대화, 또는 교류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리브카 갈첸의 '데카메론' 서평에서 한 문장을 가져와 본다.

어려운 시기에 소설을 읽는 것은 그 시기를 이해하는 방식이자 그 시기를 끈기 있게 버텨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 이 포스팅은 ‘인플루엔셜’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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