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 시절, 미래에는 문어를 닮은 외계인이나 광포한 미지의 생물체가 지구를 습격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있었다. 넓고 넓은 우주의 어딘가에는 다른 생명체도 존재하고 있을 거라고, 분명 그들이 우리를 찾아올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과 호기심을 품었다. 밑도 끝도 없는 지구종말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던 세기말에도 그것의 원인은 외부에서 오는 적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이 그것을 자초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어른이 된 지금, 2021년의 지구는 어린 시절 품은 두려움의 씨앗들과 상관없는 이유들로 인해 위기에 봉착해 있다. 기후위기로 세계 곳곳은 삶의 유지를 고민함을 넘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게 되었다. 과학의 발전과 생활의 편의를 위해 생산된 물건들은 쉽게 쓰고 버려져 삶의 터전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 바이러스의 창궐은 질병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인해 사람들의 연대마저 흔들리게 하고 있다. 혼란한 시기를 지나며 우리는 원인보다는 현상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평화와 연대를 모색하기보다는 지금 현재의 안락함에만 몰두하게 되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이 혼란의 원인은 무엇인가, 이 혼란을 이겨내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해야 할까? [지구 끝의 온실]은 그에 대한 해답을 주는 책이었다.

[지구 끝의 온실]은 21세기 중반에 일어난 더스트 폴 전후의 혼란한 상황을 살아가는 아마라와 나오미의 이야기, 22세기 초반 세계 재건이 이루어진 후 더스트생태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아영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서술된다. 과거 속 나오미와 아마라의 생존을 위한 여정을 따라가며 황폐한 세계에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 세계는 생존을 위해 건설된 돔이 선택된 자에게만 열려있고, 한정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인간의 생명조차 사소한 것이 되는 세계이다. 생존이 최고의 이념이 되는 곳이다. 이런 잔혹한 세계를 사는 아마라와 나오미는 약탈과 살인을 일삼는 권력자들에게 쫓기고 달아나는 중 프림빌리지라는 마을을 만난다. 온실을 품고 있는 그곳은 암울한 세계에서 만난 인간답게 사는 곳이었다.

22세기 초, 현재에는 모스바나 이상증식이 일어난 해월을 방문한 아영이 모스바나의 정체를 연구하는 과정을 그린다. 모스바나는 독성을 지닌 식물이라 위험하고 강한 번식력으로 다른 식물들에게도 피해를 주어서 한동안 이롭지 않은 식물이라 여겨졌다. 하지만 과거를 거슬러 모스바나의 시초를 찾고 연구를 해보니 더스트를 응집시켜 증식을 막는, 종말에 다다른 세상을 구한 식물이었다. 아영은 모스바나의 비밀들을 밝혀내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책의 주요한 모티프인 모스바나는 끈질긴 생명력과 번식력으로 다른 생명체를 위협하는 식물이다. 그러나 그와 모순되게도 더스트를 줄이는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식물이다. 이런 양가적인 측면은 위기에 처한 인간과도 많은 부분 겹쳐 보인다. 위기를 만든 존재이지만 그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존재,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아야 할 상황을 필연이라고 느끼지만 타인의 도움 없이 혼자서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는 존재이다.

왜 식물에게서 희망을 발견하게 될까 생각해 보았다. 식물이란 이해관계나 이기심을 뺀 생명체가 아닐까. 이기심이나 탐욕과 같은 다른 어떠한 관념 부여도 하지 않고 생명을 유지하는 존재가 아닐까. 그래서인지 마지막, 온실을 사이에 둔 지수와 레이첼의 아무 계산 없이 느끼는 서로를 향한 따뜻한 감정은 인간의 연대야말로 가장 큰 가치가 될 것이라는 깨달음을 준다. 인간들에 의해 더스트 시대가 시작되었고 프림빌리지가 파괴되었지만 다정함과 따뜻함을 품은 연대의 힘을 가진 우리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음을 느끼게 한다.

우리에게 공포감을 주는 소설 속의 디스토피아도 등장인물들에게는 익숙한 배경일지도 모른다. 이 세계를 마주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현재 우리가 야기한 불편한 진실을 대면하고 앞으로의 삶에 어떤 가치를 첫 번째로 두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이로부터 인간은 스스로를 지킬 것이라는 어린 시절의 믿음, 그 믿음이 진실에 점점 더 가까워질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