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심장 가까이 암실문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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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첫문장에서부터 빠져들고 어떤 책은 책을 덮으며 빠져든다. '야생의 심장 가까이'는 후자에 속한다. 책의 서사는 선명하지 않다. 등장인물의 생각과 의도들을 따라가며 나는 그것을 짐작하고 느낄 뿐이다. 읽는 내내 알 것 같으면서도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 장을 덮자 문장을 따라가는 동안 겹겹이 쌓아둔 주아나의 감정들이 갑자기 훅 밀려들어왔다. 만약 영화를 보았다면, 예술 영화를 보고 난 후 불이 켜진 극장을 빠져나오는 기분이라고 할까. 지금부터 책이 또다시 시작되는 느낌이다.

p.169

그를 만나기 전, 그녀는 늘 두 손을 내밀었으니, 불시에 받아들인 것들이 얼마나, 오, 얼마나 많았던가! 한 줄기 빛처럼, 작은 빛들의 소나기처럼 너무도 불시에...... 이제 그녀의 시간은 모두 그에게 주어졌고, 작은 얼음조각들로 쪼개졌다. 그녀는 그것들이 녹기 전에 재빨리 마셔 버려야 했다. 그러고는 전속력으로 달리라며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시간만이 자유니까! 어서, 빨리 생각해, 어서, 빨리 너 자신을 찾아, 어서...... 끝났어! 이제는-얼음조각들이 든 쟁반은 나중에야 다시 나타난다. 그때 당신은 거기에 있다. 이미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 물방울들을 홀린 듯 바라보며.

p.175

'미루자, 그냥 미뤄.' 주아나는 생각을 멈추기 전에 그렇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마지막 얼음 조각이 녹았고, 이제 그녀는 슬프게도 행복한 여자가 되었으니까.

2부의 첫 장 <결혼>에서 나는 주아나에게 처음 반하게 되였다. 오타비우와의 결혼으로 인해 구속받는 자신의 삶을 못견뎌하며 '헤어져야지' 생각하면서도 옥타비우의 품에 머리를 기대며 행복을 느끼는 주아나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주아나에게도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에게도 마음이 통하는 지점이 되었던 것 같다.

주아나의 삶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와도 닮아있는 것 같다. 결국 오타비우와 헤어진 주아나처럼 외교관 부인의 삶을 포기하고 작가의 삶을 선택한 그녀. 글은 작가의 삶과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p.14

"아빠, 나 시 지었어요."

"제목이 뭔데?"

"'해와 나.'"그녀는 아주 잠깐뜸을 들이다가 시를 암송했다. "마당의 암탉들이 지렁이 두 마리를 먹었지만 나는 그 지렁이들을 보지 못했지."

"응? 해와 네가 그 시와 무슨 관계가 있니?"

그녀는 잠시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아빠, 해는 지렁이들 위에 있고, 나는 그 시를 지었는데 그 지렁이를 보지 못했으니......"

완독 후 책을 훑어보며 앞의 문장들을 다시 읽으니 주아나도, 이 책도 너무나 알 것 같았다. 이보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문장들이 있을까. '모든 것을 보고 있는 해가 아니지만 나는 시를 짓고, 시를 짓는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굳이 해석하는 것은 불필요하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글자를 읽는다기보다는 누군가의 생각을 읽는 것 같았다. 주인공 '주아나'의 시선을 따라 그녀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리뷰를 쓰는 게 어렵다. 분석해야 하는가? 이해해야 하는가? 책을 읽고 난 이후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참, 이상한 책이다. 느껴지는 것은 많은 것 같은데 글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책은 [달걀과 닭], [ G.H.에 따른 수난] 두권을 갖고 있지만 둘 다 완독하지 못했다. 책을 읽으며 매혹되었지만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에 나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미뤄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작가의 초기작 [야생의 심장 가까이]를 읽으며, 특히 위의 문장들을 다시 읽으며 조금은 작가에 대해 알게 된 것 같다. 다시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책을 펼쳐봐야겠다.


p.26

내 의식은 길을 잃었지만 상관없다. 나는 환각 속에서 가장 큰 평온을 발견하니까.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없다는 건 기이한 일이다. 너무 잘 아는 걸 말할 수가 없으니까. 무엇보다도 그걸 말하기가 두렵다. 말하려는 순간 내가 느끼는 걸 표현할 수 없을뿐더러, 내가 느끼는 것이 서서히 내가 말하는 것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을 때에도, 내가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말하는 것이 나를 행동으로 이끌곤 한다. 내가 누구인지 느낄 때, 그 느낌은 뇌의 꼭대기에, 입에-특히 혀에-, 팔의 살갗에 박히고, 또 내 몸을 관통하여 몸 속 깊숙한 곳에, 하지만 어디인지, 정확히 말할 수 없는 곳에 닿는다.

p.48

"점, 차원을 지니지 않은 점 하나가, 극단의 고독이라는 생각, 해 본 적 있어? 점은 심지어 스스로를 믿고 의지할 수도 없잖아. 보통 그 자신의 바깥에 있으니까."

p.78

"이상적인 인간이라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 더 가치 있는 존재를 뜻하는 게 아니야. 자기 안에서 더 가치 있는 존재를 뜻하는 거지. 내 말 이해하겠니? 주아나?"

p.121

무엇보다도, 그 여자는 삶을 이해한다. 삶을 이해하지 못할 만큼 지적이지 못하니까.

p.150

"감정과 말의 분리. 이미 그 점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어. 가장 신기한 일은,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순간이 오면 내가 느끼는 걸 표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내가 느꼈던 게 서서히 내가 말하는 걸로 변해 간다는 거야. 아니면 최소한 이렇게 말할 수는 있겠지. 나를 행동하게 만드는 건 내 느낌이 아니라 내 말들이라고. 그건 정말 확실하다고."

p.152

그는 그녀의 냉정함과 당당함이 필요했다. 그것과 함께라면, 그는 어렸을 때처럼 안전한 보호 속에서 거의 의기양양하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터였다: 그건 내탓이 아냐......

............그는 그녀와 함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로부터 그 자신이 계속 살아가도 된다는 허락을 얻기 위해 그녀를 원했다. 그 자신을 넘어서서, 그의 과거를 넘어서서, 그가 비겁하게 저질렀으며 또한 비럽하게도 여전히 애착을 갖고 잇는 사소한 악행들을 넘어서서 살 수 있도록. 옽타비우는 주아나의 곁에서라면 계속 죄를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p.181

"병자는 세상을 상상하고, 건강한 자는 세상을 갖죠." 주아나가 계속해서 말했다. "병자는 자신이 허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고, 건강한 자는 자신의 힘이 쓸모없다고 느끼죠."

p.292

그는 꽃이 주아나처럼, 거짓말을 할 때의 주아나처럼 커져가는 매력으로 자신을 침범해 오는 걸 느끼며 무력한 분노에 사로잡혔다: 그는 장미를 으스러뜨리고, 씹고, 파괴했다.

지금, 그녀를, 뭐라고 규정할 수 없는 그 얼굴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문득 사촌 이자벨의 정원으로 돌아가 그 해묵은 감정을 복원해 보고 싶어졌다.

#도서협찬 #암실문고 #클라리시리스펙토르 #야생의심장가까이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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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주의 뜨개 양말 - 한 주에 한 켤레씩, 사계절 손뜨개 양말 52주
레인 지음, 서효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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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주일에 1개씩 1년동안 총 52개의 양말을 뜬다는 제목부터가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여러 디자이너들의 디자인한 다양한 양말들을 한권에 책으로 볼수 있다니 꼭 소장해야 될 것 같잖아요~ 그럼에도 구입을 망설인 이유는 원서인데다가 해외배송이 된다는 점때문에 너무 번거로웠거든요. 늘 구입할까말까를 고민하던 중 이번에 한국어판으로 나온다는 것을 알고 너무 기뻤어요. 그리고 꼭 갖고 싶었던 이 책을 니팅카페에서 좋은 기회를 주셔서 받게 되었습니다. 너무 감사드려요~

아마도 일주일에 한켤레를 뜨지는 못하겠지만 한달에 한켤레만 떠도 저는 4년동안 뜰 양말이 줄 서 있게 되었네요. 너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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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예쁜 양말들이 많이 나오는데요, 양말을 고르려고 책을 넘겨보다보면 모든 양말을 다 뜨고싶은 생각이 듭니다. 한켤레 한켤레 다 예쁘고 포근해보이고요, 사진만으로도 따뜻해보여서 책을 넘기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가을의 느낌과 양말의 포근함이 느껴지는 사진 아닌가요? 이런 사진들을 보다보면 감성 가득한 포근한 뜨개양말을 신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전 뜨고 싶은 52개의 양말중에 49주차 신디가 선택한 양말(Cindy's choice - 이자벨 크레머)을 첫번째로 떴습니다.

운동을 하러 갔을 때 레깅스에 레그워머를 신은 언니들이 그렇게 예뻐보였는데요. 이 양말을 보았을 때 레깅스 위에 신고 산책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저는 이전에 여러켤레의 양말을 떴지만 거의 2.0mm~2.25mm의 발에 꼭 맞는 양말만을 떴었는데요, 이번에는 3.25mm, 3.75mm 바늘을 이용하려 루즈한 스타일의 양말을 떴습니다. 실은 닛픽스 스트롤과 아이스얀 실을 합사했고요.

혹시 헐거워서 불편할까 걱정을 했었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포근하고 따뜻한 양말이 완성되었습니다.

큰 바늘로 작업해서인지 얼마나 빨리 완성되었던지요... 과정샷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사진 하나만 찍고는 완성을 해버렸네요.

과정샷을 못찍은게 나중에 생각나서 저를 계속 꾸짖었는데.....

이렇게 빨리 뜰 수 있는 양말이라니, 꼭 도전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신었을 때 무릎 바로 아래까지 오는 길이감이예요.

원래는 청바지 아래로 흘러내리게 신었다가 청바지 위로도 올려보았습니다. 다음에 레깅스 위에 신어도 괜찮을 것 같지 않나요?




정말 갖고 싶던 책을 보고 예쁜 양말을 뜰 기회를 주셔서 니팅카페와 한스미디어 출판사분들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51개의 양말도 차근차근 떠 볼 생각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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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eunlee71 2022-11-19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청바지위에 신고 앵클부츠 신어도 예쁘겠어요. 이제 책을 꼭 사야겠다느생각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눈물 없는 뜨개 - 누구에게나 맞는 옷을 뜨는 기본적인 기법과 쉬운 지침
엘리자베스 짐머만 지음, 서라미 옮김, 한미란 감수 / 윌스타일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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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짐머만이라는 이름은 알게 된 것은 10여년 전, 뜨개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옷을 뜨고자 하는 열망으로 독학을 하다가 우연히 '베이비 서프라이즈 자켓'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일본식 도안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매 단마다 뜨는 방법이 안내된 이 자켓의 해설도안이 너무나 신선했다. 처음에는 도무지 옷의 형태를 가늠할 수 없었던 뜨개 작업을 인내심을 갖고 하다보니 어느샌가 옷이 되는 것도 신기했다. 그러나 가장 놀라웠던 것은 앞판, 뒷판, 소매를 각각 평면으로 떠서 잇는 것이 뜨개 옷 작업의 정석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잇는 과정없이 한번에 옷을 뜨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데에 있다. 그 이후 여러가지 방식으로 제작되는 뜨개작품을 찾아보다가 탑다운 또는 보톰업으로 진행하는 심리스 기법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탑다운 심리스 기법의 옷들이 보편화되었지만 그 당시의 내겐 큰 충격이었다. '아, 옷을 뜨는게 어려운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의 전환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나의 실력은 초라했으나 옷을 뜨는 것이 내가 결코 하지 못할 일이 아니라는 확고한 믿음이 생겼다.
아... 그런데 이 심리스 기법의 기초를 세운 사람이 짐머만 여사님이라니! 그 사실을 알고는 짐머만 여사님을 내 마음속에 뜨개계의 사부님, 대모님으로 추앙하게 되었다.


p.37
뜨개를 즐기기 위해 정말로 필요한 것은 실과 바늘, 손 그리고 평균보다 약간 낮은 지능이면 충분하다. 물론 여러분이나 나처럼 높으면 더 좋고.


엘리자베스 짐머만의 [눈물 없는 뜨개]를 읽으며 혼자 피식피식 웃고, 이 말이 정답이라고 혼자 맞장구를 치고, 머릿속으로 내가 뜨고 싶은 옷을 구상했다. 많은 것을 알고, 경험하고, 느낀 선생님과 대화하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낸 기분이다. 안뜨기가 싫어서 거울을 보며 안뜨기를 뜬다는 재치있는 주장(겉뜨기를 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낀다는), 안뜨기와 꿰매기를 제거하려고 심리스 기법을 고안해냈다는 이야기, 인간의 몸이 몇개의 원통을 연결하면 완전히 덮일 수 있는 구조라 이상적인 원통을 만들면 옷이 만들어진다는 이야기. 짐머만 여사님은 특유의 위트와 뜨개에 대한 소신을 능수능란하게 글로 펼쳐보이신다.


그리고 도안들. '누구에게나 맞는 옷을 뜨는 기본적인 기법과 쉬운 지침'이라는 표지에 적힌 설명이 이 도안들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다. 도식화된 일본식 도안 또는 상세한 해설 도안에 익숙해진 내게 이처럼 친절하면서도 불친절한 도안이라니. 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닌 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도안이랄까. 옷을 뜰 때 필요한 뜨개방법에 대한 설명을 앞에서 충분히 하고, 게이지를 내고 계산하는 방법을 설명하고는 바로 옷과 소품들을 뜨는 방법을 글로 설명한다. 그런데 이 방법이라는게 구체적이지 않아서 옷을 만들려면 나의 의견을 반영해서 작업을 해야한다. 이것은 다~ 알려줘서 감이 오는데 뭔가 질문을 던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마치 엄마가 찌개 끓이는 방법을 알려주시면서 '된장, 고추가루 적당히 풀어서 니 입맛에 맞게 간 맞춰.'라고 말씀하시는 듯. 맞지, 나한테 맞게 완성하면 되지. ㅎㅎㅎ 그러니 이 도안은 '누구나 맞는 옷을 자신의 디자인으로 뜰 수 있다.'라는 데에 방점을 찍을 수 있겠다. 이 책을 읽고 있는데 머릿속에는 내가 뜰 옷의 전개도와 뜨개 진행 과정이 시뮬레이션 되고 있다. 뜨개를 위해 상세한 해설도안을 볼때와는 다른 과정이다. 그러나 나의 의견이 들어가야 하는 수고에도 불구하고 '옷 뜨는 게 이렇게 쉬워도 돼?' 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10여년 간의 나의 삶을 돌이켜보면 어떤 순간, 어떤 장면에도 늘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뜨개'다. 내가 뜨개에 몰두하고 있거나, 뜨개 작품을 손에 들거나 입고 있거나, 뜨개 용품을 사고 있거나, 뜨개 친구들과 뜨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아서 멍때리고 있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도 머릿속으로는 뜨개 작업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뜨태기가 와서 뜨개를 잠시 쉰다고 하던 최근에는 뜨개에 대한 글을 쓰고 이마저도 즐기고 있었다. 이제 뜨개는 나의 고유한 특성 중 하나가 되어버려서 나와 뜨개를 따로 떼어 설명할수 없게 되어 버렸다.
뜨개에 빠진 모든 뜨개인은 나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한 순간 뿐만 아니라 평범한 일상에서도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을 뜨개의 세계 속에서 이해하려고 시도한다. 예를 들면 이런것. '아 저 옷 예쁘다. 나도 뜰 수 있겠는데?', '아 이 소품은 플라스틱이 아닌 뜨개로 만들면 더 실용적이겠다. 내가 만들어야지.' 뿐만 아니라, '아 저 의자 편해보인다. 저기서 뜨개하고 싶다.', '아 저 관광지 너무 좋다. 저기서 뜨개하면 행복하겠다.'


이렇게 삶 속에 뜨개가 녹아 있는 사람이라면 뜨개에 대한 각자의 철학과 소신이 있을 것이다. 뜨개가 단순히 '손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노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뜨개를 하는 사람은 창작에 대한 고민을 하고, 더 나은 뜨개 방식을 찾아내려 애를 쓰고, 뜨개를 하는 동안에는 고요함 속에 침잠하며 자신의 내면을 돌본다. 나 역시 서서히 뜨개의 세계에 빠져들면서 많이 생각하고 그것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이 욕구가 조금은 해소된 듯한 느낌이 든다. 짐머만 여사님의 뜨개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나의 뜨개 생활을 왠지 돌아보게 만드는것. 뜨개를 알려주는 책 뿐 아니라 이렇게 뜨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책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p.92
대부분의 뜨개인이 싫어하는 두가지, 안뜨기와 꿰매기를 구조적으로 무리 없이 기지를 발휘해 제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두번째, 그러니까 꿰매기에 대한 거부감은 너무 심해서 돈을 주고 다른 사람에게 맡길 정도다. 부디 꿰매기를 못한다고 말하지 말자. 안 하는 것뿐이다.


p.93
인간의 몸은 몇 개의 원통을 연결하면 완전히 덮일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재단사와 드레스 제작자는 납작한 직물로 훌륭하고 능숙하게 원통을 만든다. 그들의 작업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 소박한 뜨개인은 원통뜨기라는 공예 본능을 살려 이상적인 원통을 만들수 있다. 자유자재로 늘리고 줄이는 기술을 사용해 원통의 형태를 만들고 심지어 구부릴 수도 있다. 솔기와 거싯과 다트 없이 말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는 원통을 이어 합체하는 것뿐이다. 내킬때는 다리 여덟게 달린 문어에게 줄 속바지도 만들어줄 수 있다.


p.94
여러분이 내 도안을 그대로 뜬다면 내 노력이 실패한 것이다. 도안은 그저 가이드일 뿐이니 스스로 디자이너가 되어라. 세상에 똑같이 뜨고 똑같이 보고 똑같이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그런데 어떻개 똑같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겠는가. 여러분의 스웨터는 오로지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개성 있는 레시피로 만들어져야 한다. 누구의 것과도 비슷하지 않게.
모든 좋은 것들이 그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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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 - 개정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이혜승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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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러시아 소설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첫번째로 '도스토옙스키'를 떠올릴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은 읽을 때마다 내게 충격을 주고 감정의 널뛰기를 겪게한다.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지만 찌질한 등장인물들의 내면의 혼란을 두서없이 글로 뱉어내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좋아한다. 그 다음은 사회풍자와 유머로 피식피식 웃으면서도 씁쓸해지는 고골이 떠오르고, 아름다운 것 같지만 왠지 모를 슬픔이 느껴지는 체홉이 떠오른다. 그러고보니 나는 러시아 소설을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나는 많은 책을 읽지는 못했다. 톨스토이나 투르게네프는 읽었지만 오래되어서 기억이 잘 나지 않고 고리키의 책은 아직 접해보지 못했다.(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얼마전 읽다가 멈춘 상태이나...) 그러나 나는 많은 작품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러시아 문학 특유의 비장함과 정치적, 사회적 비애들을 조금은 알 것 같았고 그것들이 장황하지만 장엄하게 그려지는 것이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좋다.

p.27 [러시아 작가, 겸열관, 그리고 독자] 중
러시아 문학이라고 하면 눈부신 대작들이 탄생한 19세기에 초점을 맞춘다. 다시 말하면, '러시아 문학'은 최근의 사건이다. 게다가 특정 시기에 국한된어 있기 때문에 외국인들은 러시아 문학을 이미 완성되고 종결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책의 초반 [러시아 작가, 검열관, 그리고 독자]의 강의에 실린 문장이다. 생각지 못했는데 나보코프의 말에 깜짝 놀랐다. 나 역시 19세기의 작가들 몇몇만을 떠올리고 러시아 문학에 대한 나름의 특징을 규정하고 완성된 것으로 여기고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기 때문이다. 위에 나열한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이 내가 알고 있는 거의 대부분이다. 나보코프는 러시아 문학의 발전은 정신적 성장이 이루어진 19세기부터 정치적 억압이 전반적으로 이루어지기 전이었던 20세기 초반까지 가능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고골, 투르게네프,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체호프, 고리키>이 여섯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으로 이루어진 강의록이다. 나보코프가 미국에서 러시아 문학에 대한 강의를 하기 위해 작성한 강의록을 바탕으로 출판된 것이다. 사실 나는 책을 비평하는 것보다는 감상하는 독서를 하는 편이기 때문에 분석과 해석을 하는 이런 강의가 신선하기도 하고 어렵게도 느껴졌다. 아마도 모든 책을 읽은 것이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각각의 작품에 대한 강의보다는 작가를 평가하는 나보코프의 견해가 더 흥미로웠다.

나보코프는 도스토옙스키를 문학적 진부함이라는 황량함을 지닌 평범한 작가라고 말한다. 추리소설이나 감상소설을 쓰는 이류 작가라며 그의 소설들을 평가절하했다. 광적이고 인간 내면의 추악한 모습을 절절하게 그린 인물들은 그저 정신병자나 범죄자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비하의 쾌락을 그리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은 단지 관념적이고 감상적인 추리소설일 뿐이라는 것이다. 나는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혹평에 당혹스러웠다. 내가 도스토옙스키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가 나보코프에게는 비판의 이유가 되었다. 반면에 도스토옙스키 다음 강의인 톨스토이에 대해서는 찬양일색이다. 안나 카레니나 강의로 많은 지면을 할애했고 발췌문의 양도 어마어마하다. 톨스토이는 도덕적이고 진리를 추구하는 진정한 예술가로 추앙하고 안나 카레니나를 구성과 예술적 측면에서 완벽한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나보코프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고 도스토예프스키를 좋아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지만 나의 편협한 시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긴 했다. (나는 내가 좋은 작가에 대해서는 좋은 점만 본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문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골의 작품은 풍자적이고 해학이 풍부하지만 그것이 사실일 수 없다는 지적을 한다. (나보코프는 고골이 러시아를 잘 모른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각의 다양화를 이룬 것에 대해 말한다. 투르게네프는 아름다운 글을 쓰고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았지만 인위적이고 너무 자세한 설명을 이어가는 이야기 전개능력에 대해 비판하였다. 평범한 일상을 정교한 유머로 풀어낸 체호프의 작품들을 칭찬하고 고리키의 작품에는 진부하고 예술성이 빈약함을 지적한다.

처음 나보코프의 소설을 읽었을 때 너무도 지적인 표현과 세련된 문장들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를 읽으며 이번에도 그때의 느낌이 떠올랐다. 나보코프는 부유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란 작가였다. 그는 섬세하고 예술적인 문학을 쓰는 지식인이었고 또 그런 가치들을 중시하는 작가이자 독자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톨스토이, 고골, 체홉의 작품에 대한 예술성을 높게 평가하고 상대적으로 문체가 장황하고 투박한 도스토예프스키와 고리키의 작품에 대해서는 비난한 것이 아닐까.

나는 문학을 공부해 본적이 없어서 이런 강의의 구성이나 방식에 대해 경험해 본적이 없다. 간혹 영상을 통해 접하긴 했지만 짧은 길이, 흥미 위주의 내용으로 구성된 것이라서 나보코프의 강의와는 깊이가 달랐다. 훌륭한 독자였던 나보코프의 강의는 내게 훌륭한 선생님의 비평 강의를 들은 듯, 독서모임의 지성 담당 멤버의 훌륭한 감상평을 들은 듯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내가 모든 책을 읽은 것은 아니었기에 나보코프의 강의에 전적인 동의도 논리적인 반박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럴수 있었다면 더 좋은 독서가 되었을 텐데. 책을 읽으며 나는 나보코프를 통하여 러시아 문학에 대한 전반적인 해석을 하고 작가와 작품들의 평가와 해설을 따라갔다. 그리고 책을 덮은 이후 가장 먼저 책을 읽는 독자로서의 자세를 생각하게 되었다. 감상적인 독서도 좋지만 작품에 대한 이해와 가치판단의 몫은 독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전보다 조금은 더 성숙한 독자가 될 태도를 갖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미루어 두었던 러시아 문학들을 다시 펼쳐보아야겠다.

#도서협찬 #나보코프의러시아문학강의 #블라디미르나보코프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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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롱보다 몽롱 - 우리 여성 작가 12인의 이토록 사적인 술 이야기
허은실 외 지음 / 을유문화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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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롱보다몽롱 #을유문화사 #에세이 #술 #도서협찬

생각해보니 법적으로 술을 마셔도 되는 20살 이후 친밀한 누군가와의 사적인 자리에는 늘 술이 있었다. 감정표현이 서툰 나는 술의 힘을 빌려 용기를 내기도 하고, 벌개진 얼굴로 친구들과 끝없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대학교 신입생오리엔테션에서 처음 술을 마신 이후(물론 수능 100일전 엄마가 저녁식사를 하며 소주 한숟가락을 신생아 약 먹이듯 입에 털어넣어 준것은 예외다. 그것은 주술적 의미를 갖는 신성한 100일주였으므로) 술은 내 인생의 동반자가 되었다. 20대에는 알콜과 싸워서 누가 이기나하는 심정으로 술을 마셨고, 30대에는 육아에 힘든 동지들과 바쁜 일상의 틈을 가까스로 벌리고 만나서는, 서로의 한창때를 그리워하며 마셨다. 지금은 팬데믹과 바빠진 일상에 밤에 책을 읽으며, 뜨개를 하며, 영화를 보며 혼자 마신다. 이제 술은 나의 삶과 떨어뜨려 놓을 수 없다. 어쩌면 술은 나의 일상과 이상의 간극을 메우는 완충제일지도 모르겠다.

'영롱보다 몽롱'은 혼자 술을 마시는 밤, 자꾸만 펼치게 되는 책이었다. 책과 함께 하려니 자꾸만 테이블 맞은편에 누군가와 대화를 하며 술을 마시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천천히 읽어가던 어느날인가는 '아 오늘은 술을 마시지 말아야지'라고 결심한 참이었는데도 책을 읽다가 갑자기 냉장고로 달려가 맥주캔을 꺼내오기도 하고, 와인을 한두잔 따르기도 하였다. 혼자 마시는 술도 즐거웠지만, 그래… 난 이렇게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이 좋다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말랑말랑해졌다. 이렇게 '영롱보다 몽롱'을 읽어가는 순간은 술자리에서 친구와 끝이 없는 대화를 하는 것과도 같았다.

눈이 많이 오던 날 읽었던 ‘꾸시시허' 허은실 작가님의 인생 술이야기는 그것을 읽어가며 내가 마시던 맥주와 찰떡이었다. 어린시절부터 술과 사람과 글이 함께한 인생이야기를 읽으며 나의 어린시절과 학생 시절이 떠올라 눈오는 창밖을 보았으니 말이다. 백세희 작가님의 아픈 기억과 혼자 마시는 술이 맛있음에 가슴 아프면서도 찡해지고 ,‘아 그래, 술은 쓰기도 하지……’ 라는 생각을 삼켰다. 다자이 오사무처럼 술로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해보려하는 한은형 작가님에게 나도 그럴거라며 허공에 대고 '치얼스'를 외치기도 했다. 시를 마시는지 술을 마시는지 헷갈리도록 감상적이 되던 문정희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그날 마신 맥주가 더 찌~인하게 느껴지고, 안마셔도 되는 술을 거절하는, 금주를 지지하는 이다혜 작가님의 생각에 박수를 보냈다. 시인에게 선물받은 '샤스 스플린'-슬픔,우울을 쫒아낸다는 뜻이라고 한다-으로 그 시인의 삶을 확인할 수 있었던 황인숙 작가님의 일화에 애잔해지고, 술을 못마시던 나희덕 작가님이 부정맥에 레드와인이 좋다는 말에 술을 마시게 되었다는 문장을 보곤 괜히 나도 와인 한잔을 마셨다. 신미나 작가님의 어린시절 한때를 함께했던, OB맥주를 마시던 수미언니의 인생 한 조각이 그렇게 쓸쓸하게 지나가버린 것에 마음이 공허해지고, 술로 인해 불쾌해지곤 하던 술자리로 인해 술을 피했지만 여전히 술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박소란 작가님의 -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 취하지 않는다는 것- 왠지 띵~ 울림이 있는 마지막 문장에 마음이 스르륵 풀려버렸다. 제주에 혼자 살고 술은 약하다는 글을 쓰셨던 이원하 작가님이 독주만은 끊지 못하겠다고, 목구멍이 타오르는 느낌 뒤 환생한 기분이라는 표현과 독주의 강렬함으로 과거의 기억을 지운다는 문장에 동감했다. 우다영 작가님의 술친구, 그 중 첫번째 술친구는 나와도 같아서 나의 어린시절 집의 풍경을 그려보게 되었다. 금주시즌이 되어서 주당시즌의 과거를 기억하며 술 밖에서 술 안을 바라보는 강혜빈 작가님의 시쓰는 마음과 술마시는 마음에 대해 가만히 귀기울이게 되었다.

책을 읽고나니 12명의 친구, 언니, 동생과 맘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눈 느낌이다. 전화통화나 메시지로는 전달할 수 없는 깊은 대화가 그리웠다.
술 예찬을 늘어놓으려니 누군가는 술의 효과를 빌린 관계가 진실하냐고 물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경우는 함께 마신 술의 효과인지 그날의 분위기 때문인지, 보이지 않던 선이 지워지는 마음 때문에 그 자리에서도 그 이후에도 그들에게 진심을 담아는다고 자신있게 말할수 있다. 나는 진심을 보이고 싶지 않은 사람과는 술도 마시고 싶지 않으니까.
참, 이 책은 아껴가며 야금야금 읽었는데 타이밍 딱 맞게도 그 사이사이 드라마 ‘술 마시는 도시 여자들’을 함께 보았다. 고민이 한가득인 날 내 말을 밤새도록 들어줄 술친구, 기분이 너무나도 업되어서 상또라이가 되어도 그날의 내 모습은 가볍게 무시해 줄 술친구가 그립구나. 나도 여전히 친구들에게 그럴 수 있는데. 부디 올해는 친구들과 눈을 바라보며 술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아, 책이야기를 써야하는데…… 나도 막 다른 여성작가들과 술과 문학과 인생과 철학이 담긴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 친구랑 술마시고 싶다는 이야기만 쓰고있다니. 이건 모두 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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