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 - 개정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이혜승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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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러시아 소설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첫번째로 '도스토옙스키'를 떠올릴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은 읽을 때마다 내게 충격을 주고 감정의 널뛰기를 겪게한다.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지만 찌질한 등장인물들의 내면의 혼란을 두서없이 글로 뱉어내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좋아한다. 그 다음은 사회풍자와 유머로 피식피식 웃으면서도 씁쓸해지는 고골이 떠오르고, 아름다운 것 같지만 왠지 모를 슬픔이 느껴지는 체홉이 떠오른다. 그러고보니 나는 러시아 소설을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나는 많은 책을 읽지는 못했다. 톨스토이나 투르게네프는 읽었지만 오래되어서 기억이 잘 나지 않고 고리키의 책은 아직 접해보지 못했다.(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얼마전 읽다가 멈춘 상태이나...) 그러나 나는 많은 작품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러시아 문학 특유의 비장함과 정치적, 사회적 비애들을 조금은 알 것 같았고 그것들이 장황하지만 장엄하게 그려지는 것이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좋다.

p.27 [러시아 작가, 겸열관, 그리고 독자] 중
러시아 문학이라고 하면 눈부신 대작들이 탄생한 19세기에 초점을 맞춘다. 다시 말하면, '러시아 문학'은 최근의 사건이다. 게다가 특정 시기에 국한된어 있기 때문에 외국인들은 러시아 문학을 이미 완성되고 종결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책의 초반 [러시아 작가, 검열관, 그리고 독자]의 강의에 실린 문장이다. 생각지 못했는데 나보코프의 말에 깜짝 놀랐다. 나 역시 19세기의 작가들 몇몇만을 떠올리고 러시아 문학에 대한 나름의 특징을 규정하고 완성된 것으로 여기고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기 때문이다. 위에 나열한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이 내가 알고 있는 거의 대부분이다. 나보코프는 러시아 문학의 발전은 정신적 성장이 이루어진 19세기부터 정치적 억압이 전반적으로 이루어지기 전이었던 20세기 초반까지 가능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고골, 투르게네프,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체호프, 고리키>이 여섯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으로 이루어진 강의록이다. 나보코프가 미국에서 러시아 문학에 대한 강의를 하기 위해 작성한 강의록을 바탕으로 출판된 것이다. 사실 나는 책을 비평하는 것보다는 감상하는 독서를 하는 편이기 때문에 분석과 해석을 하는 이런 강의가 신선하기도 하고 어렵게도 느껴졌다. 아마도 모든 책을 읽은 것이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각각의 작품에 대한 강의보다는 작가를 평가하는 나보코프의 견해가 더 흥미로웠다.

나보코프는 도스토옙스키를 문학적 진부함이라는 황량함을 지닌 평범한 작가라고 말한다. 추리소설이나 감상소설을 쓰는 이류 작가라며 그의 소설들을 평가절하했다. 광적이고 인간 내면의 추악한 모습을 절절하게 그린 인물들은 그저 정신병자나 범죄자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비하의 쾌락을 그리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은 단지 관념적이고 감상적인 추리소설일 뿐이라는 것이다. 나는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혹평에 당혹스러웠다. 내가 도스토옙스키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가 나보코프에게는 비판의 이유가 되었다. 반면에 도스토옙스키 다음 강의인 톨스토이에 대해서는 찬양일색이다. 안나 카레니나 강의로 많은 지면을 할애했고 발췌문의 양도 어마어마하다. 톨스토이는 도덕적이고 진리를 추구하는 진정한 예술가로 추앙하고 안나 카레니나를 구성과 예술적 측면에서 완벽한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나보코프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고 도스토예프스키를 좋아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지만 나의 편협한 시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긴 했다. (나는 내가 좋은 작가에 대해서는 좋은 점만 본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문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골의 작품은 풍자적이고 해학이 풍부하지만 그것이 사실일 수 없다는 지적을 한다. (나보코프는 고골이 러시아를 잘 모른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각의 다양화를 이룬 것에 대해 말한다. 투르게네프는 아름다운 글을 쓰고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았지만 인위적이고 너무 자세한 설명을 이어가는 이야기 전개능력에 대해 비판하였다. 평범한 일상을 정교한 유머로 풀어낸 체호프의 작품들을 칭찬하고 고리키의 작품에는 진부하고 예술성이 빈약함을 지적한다.

처음 나보코프의 소설을 읽었을 때 너무도 지적인 표현과 세련된 문장들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를 읽으며 이번에도 그때의 느낌이 떠올랐다. 나보코프는 부유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란 작가였다. 그는 섬세하고 예술적인 문학을 쓰는 지식인이었고 또 그런 가치들을 중시하는 작가이자 독자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톨스토이, 고골, 체홉의 작품에 대한 예술성을 높게 평가하고 상대적으로 문체가 장황하고 투박한 도스토예프스키와 고리키의 작품에 대해서는 비난한 것이 아닐까.

나는 문학을 공부해 본적이 없어서 이런 강의의 구성이나 방식에 대해 경험해 본적이 없다. 간혹 영상을 통해 접하긴 했지만 짧은 길이, 흥미 위주의 내용으로 구성된 것이라서 나보코프의 강의와는 깊이가 달랐다. 훌륭한 독자였던 나보코프의 강의는 내게 훌륭한 선생님의 비평 강의를 들은 듯, 독서모임의 지성 담당 멤버의 훌륭한 감상평을 들은 듯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내가 모든 책을 읽은 것은 아니었기에 나보코프의 강의에 전적인 동의도 논리적인 반박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럴수 있었다면 더 좋은 독서가 되었을 텐데. 책을 읽으며 나는 나보코프를 통하여 러시아 문학에 대한 전반적인 해석을 하고 작가와 작품들의 평가와 해설을 따라갔다. 그리고 책을 덮은 이후 가장 먼저 책을 읽는 독자로서의 자세를 생각하게 되었다. 감상적인 독서도 좋지만 작품에 대한 이해와 가치판단의 몫은 독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전보다 조금은 더 성숙한 독자가 될 태도를 갖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미루어 두었던 러시아 문학들을 다시 펼쳐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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