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없는 뜨개 - 누구에게나 맞는 옷을 뜨는 기본적인 기법과 쉬운 지침
엘리자베스 짐머만 지음, 서라미 옮김, 한미란 감수 / 윌스타일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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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짐머만이라는 이름은 알게 된 것은 10여년 전, 뜨개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옷을 뜨고자 하는 열망으로 독학을 하다가 우연히 '베이비 서프라이즈 자켓'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일본식 도안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매 단마다 뜨는 방법이 안내된 이 자켓의 해설도안이 너무나 신선했다. 처음에는 도무지 옷의 형태를 가늠할 수 없었던 뜨개 작업을 인내심을 갖고 하다보니 어느샌가 옷이 되는 것도 신기했다. 그러나 가장 놀라웠던 것은 앞판, 뒷판, 소매를 각각 평면으로 떠서 잇는 것이 뜨개 옷 작업의 정석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잇는 과정없이 한번에 옷을 뜨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데에 있다. 그 이후 여러가지 방식으로 제작되는 뜨개작품을 찾아보다가 탑다운 또는 보톰업으로 진행하는 심리스 기법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탑다운 심리스 기법의 옷들이 보편화되었지만 그 당시의 내겐 큰 충격이었다. '아, 옷을 뜨는게 어려운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의 전환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나의 실력은 초라했으나 옷을 뜨는 것이 내가 결코 하지 못할 일이 아니라는 확고한 믿음이 생겼다.
아... 그런데 이 심리스 기법의 기초를 세운 사람이 짐머만 여사님이라니! 그 사실을 알고는 짐머만 여사님을 내 마음속에 뜨개계의 사부님, 대모님으로 추앙하게 되었다.


p.37
뜨개를 즐기기 위해 정말로 필요한 것은 실과 바늘, 손 그리고 평균보다 약간 낮은 지능이면 충분하다. 물론 여러분이나 나처럼 높으면 더 좋고.


엘리자베스 짐머만의 [눈물 없는 뜨개]를 읽으며 혼자 피식피식 웃고, 이 말이 정답이라고 혼자 맞장구를 치고, 머릿속으로 내가 뜨고 싶은 옷을 구상했다. 많은 것을 알고, 경험하고, 느낀 선생님과 대화하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낸 기분이다. 안뜨기가 싫어서 거울을 보며 안뜨기를 뜬다는 재치있는 주장(겉뜨기를 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낀다는), 안뜨기와 꿰매기를 제거하려고 심리스 기법을 고안해냈다는 이야기, 인간의 몸이 몇개의 원통을 연결하면 완전히 덮일 수 있는 구조라 이상적인 원통을 만들면 옷이 만들어진다는 이야기. 짐머만 여사님은 특유의 위트와 뜨개에 대한 소신을 능수능란하게 글로 펼쳐보이신다.


그리고 도안들. '누구에게나 맞는 옷을 뜨는 기본적인 기법과 쉬운 지침'이라는 표지에 적힌 설명이 이 도안들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다. 도식화된 일본식 도안 또는 상세한 해설 도안에 익숙해진 내게 이처럼 친절하면서도 불친절한 도안이라니. 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닌 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도안이랄까. 옷을 뜰 때 필요한 뜨개방법에 대한 설명을 앞에서 충분히 하고, 게이지를 내고 계산하는 방법을 설명하고는 바로 옷과 소품들을 뜨는 방법을 글로 설명한다. 그런데 이 방법이라는게 구체적이지 않아서 옷을 만들려면 나의 의견을 반영해서 작업을 해야한다. 이것은 다~ 알려줘서 감이 오는데 뭔가 질문을 던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마치 엄마가 찌개 끓이는 방법을 알려주시면서 '된장, 고추가루 적당히 풀어서 니 입맛에 맞게 간 맞춰.'라고 말씀하시는 듯. 맞지, 나한테 맞게 완성하면 되지. ㅎㅎㅎ 그러니 이 도안은 '누구나 맞는 옷을 자신의 디자인으로 뜰 수 있다.'라는 데에 방점을 찍을 수 있겠다. 이 책을 읽고 있는데 머릿속에는 내가 뜰 옷의 전개도와 뜨개 진행 과정이 시뮬레이션 되고 있다. 뜨개를 위해 상세한 해설도안을 볼때와는 다른 과정이다. 그러나 나의 의견이 들어가야 하는 수고에도 불구하고 '옷 뜨는 게 이렇게 쉬워도 돼?' 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10여년 간의 나의 삶을 돌이켜보면 어떤 순간, 어떤 장면에도 늘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뜨개'다. 내가 뜨개에 몰두하고 있거나, 뜨개 작품을 손에 들거나 입고 있거나, 뜨개 용품을 사고 있거나, 뜨개 친구들과 뜨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아서 멍때리고 있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도 머릿속으로는 뜨개 작업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뜨태기가 와서 뜨개를 잠시 쉰다고 하던 최근에는 뜨개에 대한 글을 쓰고 이마저도 즐기고 있었다. 이제 뜨개는 나의 고유한 특성 중 하나가 되어버려서 나와 뜨개를 따로 떼어 설명할수 없게 되어 버렸다.
뜨개에 빠진 모든 뜨개인은 나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한 순간 뿐만 아니라 평범한 일상에서도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을 뜨개의 세계 속에서 이해하려고 시도한다. 예를 들면 이런것. '아 저 옷 예쁘다. 나도 뜰 수 있겠는데?', '아 이 소품은 플라스틱이 아닌 뜨개로 만들면 더 실용적이겠다. 내가 만들어야지.' 뿐만 아니라, '아 저 의자 편해보인다. 저기서 뜨개하고 싶다.', '아 저 관광지 너무 좋다. 저기서 뜨개하면 행복하겠다.'


이렇게 삶 속에 뜨개가 녹아 있는 사람이라면 뜨개에 대한 각자의 철학과 소신이 있을 것이다. 뜨개가 단순히 '손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노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뜨개를 하는 사람은 창작에 대한 고민을 하고, 더 나은 뜨개 방식을 찾아내려 애를 쓰고, 뜨개를 하는 동안에는 고요함 속에 침잠하며 자신의 내면을 돌본다. 나 역시 서서히 뜨개의 세계에 빠져들면서 많이 생각하고 그것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이 욕구가 조금은 해소된 듯한 느낌이 든다. 짐머만 여사님의 뜨개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나의 뜨개 생활을 왠지 돌아보게 만드는것. 뜨개를 알려주는 책 뿐 아니라 이렇게 뜨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책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p.92
대부분의 뜨개인이 싫어하는 두가지, 안뜨기와 꿰매기를 구조적으로 무리 없이 기지를 발휘해 제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두번째, 그러니까 꿰매기에 대한 거부감은 너무 심해서 돈을 주고 다른 사람에게 맡길 정도다. 부디 꿰매기를 못한다고 말하지 말자. 안 하는 것뿐이다.


p.93
인간의 몸은 몇 개의 원통을 연결하면 완전히 덮일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재단사와 드레스 제작자는 납작한 직물로 훌륭하고 능숙하게 원통을 만든다. 그들의 작업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 소박한 뜨개인은 원통뜨기라는 공예 본능을 살려 이상적인 원통을 만들수 있다. 자유자재로 늘리고 줄이는 기술을 사용해 원통의 형태를 만들고 심지어 구부릴 수도 있다. 솔기와 거싯과 다트 없이 말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는 원통을 이어 합체하는 것뿐이다. 내킬때는 다리 여덟게 달린 문어에게 줄 속바지도 만들어줄 수 있다.


p.94
여러분이 내 도안을 그대로 뜬다면 내 노력이 실패한 것이다. 도안은 그저 가이드일 뿐이니 스스로 디자이너가 되어라. 세상에 똑같이 뜨고 똑같이 보고 똑같이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그런데 어떻개 똑같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겠는가. 여러분의 스웨터는 오로지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개성 있는 레시피로 만들어져야 한다. 누구의 것과도 비슷하지 않게.
모든 좋은 것들이 그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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