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잡지를 읽다 - 『동광』 창간 100주년, 그리고 『새벽』, ‘금요강좌’
이만근 지음 / 스타북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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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카페 서평단으로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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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에 베이는 것보다, 종이에 이는 것이 더 깊은 상처를 남긴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글은 사람의 마음에 크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은 많은 정보들을 정말 많은 루트를 통해서 얻을 수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하철에서 신문을 보는 분들이 많았었다. 오늘은 시대를 거슬러 한국인들이 정서와 시대의 정신을 담았던 잡지를 통해 우리의 역사를 새롭게 돌아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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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광>은 일제강점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끌던 독립운동가 안창호가 민족 이념의 전파와 정신의 함양을 위해 창간 보급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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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광의 가장 큰 의미는 어려운 시대에 한글을 잃지 않고자 한 노력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민족의 정신적 지주였던 동광은 수많은 문학작품을 실었을 뿐만 아니라 신인들을 발굴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한국 소설들의 맥을 잇도록 노력한 잡지였다. 민족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같은 특정 이념을 선동하는 방식을 지양하며 민족 스스로가 자신의 이념을 바로 잡기를 바랐던 가장 영향력 있으면서도 자유의지를 바로잡을 수 있게 발자취를 남긴 기념비 적은 잡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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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이후 발간된 <동광>의 속간호인 <새벽>. 동광이 일제에 저항하고 민족의 얼을 지키기 위한 움직임이었다면, 새벽은 독재세력에 저항하는 민주주의의 혁명의 불씨가 되어주는 잡지였다. 이 땅의 주인이 국민임을 고취 시키는 많은 문학이 실린 문예지이면서 시사 종합지였다. 새벽은 한국 소설뿐만 아니라 해외 문학들을 선보이며 평화와 안식을 갈망하는 인간의 심리를 다룬 작품들을 실어 문제의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주는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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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세계정세를 볼 수 있는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과학, 원자력 등 막연한 두려움을 품었던 것들에 대한 공포감을 해소하는 대에도 큰 공헌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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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과 더불어 저명인사를 초청하여 문학을 통한 진리 탐구를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개강좌가 열리는데 이를 '금요강좌'라 이름 짓는다. 일반 시민들이 만나보기 힘든 교수, 언론인들과의 만남은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대중매체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언론의 자유를 제약받던 독재 시절, 시민들의 교양의 증진과 시민의식의 함양은 곧 민주주의 의식을 심어주는데 크게 이바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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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의 마지막 챕터는 동광과 새벽의 총 목차가 기록되어 있다. 어려운 한자가 가득하긴 하지만 그 오랜 세월을 끊임없이 작업했을 사람들의 고뇌가 희망의 씨앗을 되어가는 과정 같아서 한자 한자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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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 흐름은 점점 종이에서 영상으로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 본연의 기능이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어렵고 힘든 시기에 우리의 민족 얼을 잃지 않고 이 땅의 주인으로서의 의식을 잃지 않고 억압하는 세력으로부터 끊임없는 대항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기록의 힘이었다고 나는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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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해 보이지만 지금도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침해하는 세력들과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나는 그 기본은 국민의 주인이라는 의식부터 시작된다고 본다. 우리에게 그 의식을 뿌리 깊게 내리게 해준 시대의 잡지들에 대한 발전과정과 그 시작의 아련한 설렘과 떨림이 그대로 느껴지는 너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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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잊고 사는 사람은 절대로 성장할 수 없다. <시대의 잡지를 읽다>로 우리의 역사를 다시 되돌아보고 다시 한번 민족의식을 일깨워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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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욕
웨인 케스텐바움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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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협찬받아 읽고 개인적인 견해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처음 저자는 여러가지 예를 들며 굴욕이라는 것의 종류(?)를 서술한다. 하나같이 기분이 나빠지는 사건들이었다. 남에게 저런 행동을 하며 자신이 얻는것이 무엇일까? 저런 부류들은 사회에 꼭 있다니까. 법적으로 제제할 방법은 없는걸까? 등등 나는 계속 눈에 띄는 악에게 분노했다. 하지만 점점 나의 주변에서 느낄 수 있는 사소한 것들로 예시를 변경하면서 서서히 좁아지는 굴욕의 범위가 순식간에 나를 심판하듯, 내 심장의 박동을 빠르게 했다.


사적인 감정을 파고들어온다고 느껴지면서 부터 나는 이 책이 무척이나 불편해졌다. 처음의 기분 나쁜 분노에서 서서히 진짜 내안의 씨앗처럼 퍼져있던 굴욕이 피어나는 기분이었다. 굴욕 또한 다른 감정들 처럼 켜켜히 쌓여지고 경험에 의해 더욱 견고해 진다. 반복되면서 더욱 짙어지는 굴욕의 감정이라니..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굴욕의 가해자가 누구나 말하는 악의 근원자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는 왜 항상 나만 피해자라고 생각했을까? 아주 세세한 굴욕의 예시안에서 나는 어느 만큼 가해자이기도 했다. 나를 가해자로 만든 그 기억들이 또 나를 굴욕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갖가지 굴욕을 서술하고 어원까지 파해치며 읽는 이에게 너는 피해자 인줄 알았지? 사실은 가해자였던 거 몰랐지?

그런 굴욕감을 주기 위한 것일까?


나는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작가가 악취미 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우리 주의 도처에 공기처럼 퍼저있는 '굴욕'이라는 두 글자의 감정은 내가 생각하는 만큼 나 자신은 올바르기만 하고 항상 피해만 당하는 소극적인 피해자가 아니라는 말 같았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감정에 노출되어 살아간다. 언제나 성공, 행복, 성취 등의 빛나는 글자에만 반응하고 가치를 두려고 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생각해야 한다. 나의 그 빛나는 글자들 뒤에 누군가의 실패와 불행이라는 굴욕의 감정이 따라 오는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을. 그렇다고 내는 남을 위해 나의 빛나는 글자들을 버려야 할까? 결코 그렇지 않다. 내가 격은 모든 것은 나 자신이 되겠지만 굴욕이라는 감정을 없애는 것에만 치중하고 성취와 성공만을 향하는 삶에서 벗어나 나의 굴욕을 되짚어 보아야 할 때라는 것을 말해주는 글이라 생각한다.


견고할 것 같은 타일 위에 뚫린 작은 구멍 처럼, 누구나 다 채워진 단단한 벽 이라 생각하는 곳에 아주 작은 틈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구멍은 항상 예의 주시하고 돌보아야 할 것이다. 피하고 외면하면, 어느새 겉잡을 수 없는 큰 홀로 변하게 되리라. 삶에서 공존하는 감정, 결코 사라지지 않고 사라져서도 안될 경각심같은 굴욕이라는 감정을 우리는 시시때때로 바라보며, 서로에게 경각심을 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작가는 메세지를 나는 꼭 기억하며 살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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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적 여성들의 북클럽
마리 보스트윅 지음, 이윤정 옮김 / 정은문고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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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고 개인의 견해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서

평] 문[서평] 문제적 여성들의 북클럽 _ 마

늘 소개하고자 하는 도서는 제목이 너무 끌렸던 작품 <문제적 여성들의 북클럽> 입니다.

60년대를 살아가는 중산층 가정의 네명의 주부들이 북클럽을 가지며 시대가 원하는 여성상에서 벗어나 자신들이 주관하는 삶을 살고자 고군분투하며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저에겐 의미가 가득한 이야기였어요.



아주 작은 일이 발단이 되어, 삶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하죠~

미국 DC주, 중산층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마가릿, 비브, 빗시. 어느날 운명처럼 끌리는 살롯의 등장으로 함께 북클럽을 만들게 되고 그동안 마음 속 에서만 꿈꾸던 각자의 인생의 방향으로의 꿈틀거림이 시작됩니다.




남 부럽지 않은 가정을 가진 여성들이 남편과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제처두고 자신의 꿈을 위해 무언가를 하려하는 모습은 어찌보면 복에 겨운 소리라 할 수 도 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이름으로 된 계좌개설, 피임약 정도도 구매할 수없는 시대적 불합리함은 대학과정까지 공부한 그녀들에게 자신의 가치는 한 남자에게 귀속 당했을 때만 존재한다고 증명하것 처럼 느끼기에 충분했던 것 같았어요.

이야기의 70%정도는 마가릿이라는 인물의 서사로 채워져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녀의 서사가 가장 이상적인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되도라구요.

사랑으로 맺어진 부부이지만 그녀들도 결국은 남편으로 하여금 꿈을 실현하기 보다는 자신과 가정을 부양하기위해 일하게 만든건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고, 세상 어떤 사람도 의무를 배제하고는 살아가기 힘들다는 생각에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던 작품이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의 위치에서 서로 이해하고 해결책을 찾아 나갔지만, 사랑없이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선택은 결국 자신의 가치를 위한 쪽으로 결론이 나서 저는 좀 반가웠던 것 같아요.

아주 작은 용기가 불러일으킨 작은 파동들은 네명의 여성들에게 서로 자극되어지고, 안타까워하고, 남의 순간을 시기하지 않고 응원해주는 모습들이 아름다웠던 작품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모두 해피엔딩 같지만 특히나 마가릿은 너무 소설적인 엔딩이라서 조금 질투나기도 하더라구요 ㅎㅎ

누구도 실패하지 않았던 소설 속 이야기 처럼, 우리도 각자의 해피엔딩을 위해 달려가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리 보스트윅 / 정은문고제적 여성들의 북클럽 _ 마리 보스트윅 / 정은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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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호랑이
네주 시노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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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인 의견으로 작성한 리뷰]



네주 시노의 문체는 담담함을 넘어 조금은 건조하게 느껴졌다. 마치 제 3자의 입장인 것처럼 가해자인 의붓아버지, 그녀를 그런 상황에 놓게 만든 친엄마, 그리고 떨어져 지냈지만 그녀가 의붓아버지에게 그런 일을 당한 다는 걸 알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끝내 연락을 끊어버린 친아버지의 이야기까지. 작가는 분노하고 탓하기 보다는 그들의 작은 행동까지 기억해내고 이해해보려고 애쓰는 것 처럼 보였다면 나의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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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어날 수 없는 지경에 놓여있었지만 작가는 자신의 본질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는 것을 여러부분에서 알 수 있었다. 지금은 모든 것이 끝나고 회상에 가까운 서술을 하고 있지만 왜 인지 그녀의 기억의 조금도 퇴색되지 않은 듯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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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작가의 서술방식은 피해사실을 낱낱이 고하고자 하는 형식이 아닌, 가해자는 왜 그런 행동을 보였는가 하는 어쩌면 인간이 아닌 자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조금이나만 이해해줄 것이 있는 지를 묻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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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읽으면서 그만두고 싶은 순간들도 많았다. 작가는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지만 그안에 숨은 분노를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어린 나이에 이런 일들을 당했다고 생각하면 앞뒤가 꽉 막힌 깊이가 깊은 상자안에서 어디로 몸을 돌려도 벗어날 없는 벽에 계속 몸을 부딪치며 소리쳐도 저 위까지 들리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가슴이 너무 답답해져왔다. 나는 생각해보지도 생각할 이유조차 없는 일련의 사건들이 그녀에게는 일상 처럼 일어났을 것을 생각하면 슬픔이상의 고통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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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끄집어내고 진술하는 고통스러운 재판과정을 끝나고 9년이라는 말도 안되는 기간을 선고받은 가해자. 하지만 그마저도 모범수로 5년밖에 복역하지 않는다. 작가의 삶은 여기저기 미디어에 보도되어지고 파해쳐졌지만 정작 가해자는 안락한 교도소 생활을 하고 모범수로 나오다니. 대체 누가 괴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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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부당한 일을 겪어도 그 기억은 아주 오래남는다. 그 일은 이미 끝났지만 내 기억안에서는 아직 끝나지 않은 영원히 매듭지어지지 않을 상처이기 때문이다. 작가도 그 부분을 알고 있다. 사건은 끝났지만, 자신이 그 일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하지만 작가는 결코 자신이 동정의 대상자로 남기를 원치 않는다. 그녀는 안다 절대로 완전히 치유될 수 없다는 걸. 그리고 어쩌면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줄 수 없다는 마음이 그녀 안에서 완전한 치유를 거부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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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주 시노는 글로서 자신을 말한다. 하지만 이 자체가 그녀를 구원하지는 않았다고 본다. 계속해서 같은 어둠이 네주를 휘감고 걷치지 않을 것을 알지만 끊임없이 노력하고 걷어내려 계속 해서 나아가리라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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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딩 같은 동화같은 마무리는 아니지만  네주 시노의 말들을 다시 한번 곱씹어보면 인간이 인간에게 정말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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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자신의 경험을 알리며 말하고자 했던 건 무엇일까? 

진정한 치유? 가해자의 악행?


그녀는 말하고 싶었으리라. 극복할 수 없는 슬픔과 악몽같은 삶이 반복 된다하더라도, 그 삶에 가치가 없지 않다는 걸. 그것을 증명해 내는 작가의 용기와 노력이 너무 아름다워서 가슴 시리도록 슬픈 이 작품을 나는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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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의 탄생
박수현 지음 / SISO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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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를 업체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인 의견으로 서평하였습니다]


유럽 음식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나라는 어디인가요?

저는 파스타, 피자 등의 음식이 떠오르지만 막상 나라를 말하라고 하면 이탈리아보다는 프랑스라고 말할 것 같아요. 그런데 희안하게도 프랑스 음식은 그다지 저에게 익숙하지 않다는 아이러니에 조금 놀랍기도 하고 왜 그럴까를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렇다면 작가가 전하는 프랑스의 역사 속의 음식의 발전은 저를 어떤 미식의 세계로 데려가줄지 긴장되면서도 설레이네요~

작가는 갈리아의 탄생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나갑니다. 농사를 짓게되면서 밀과 보리를 경작하고 맥주를 담고 빵을 만들기 시작하는 인류. 수렵과 채집으로 얻은 육류와 포도주, 빵을 곁들인 음식의 발달은 마치 현대의 식탁을 연상케했어요. 어떤 과학자가 인류가 농사를 짓게 된 이유는 탄수화물의 중독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탄수화물의 변주가 음식의 발전의 기초가 된게 아닌가 할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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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인간은 동물을 사냥하기 보다는 사육하게 되고 사육하는 동물의 크기와 규모도 늘어나게되면서 저장법이 달라지고 요리법도 변화하게 되죠. 가장 큰 변화의 시작은 종교로 인한 음식의 제제였던 것 같아요. 금지된 음식을 교리에 위반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온갖 기발한 방법을 고안해 먹으려고 하는 모습들. 특히 수달과 비버를 어류로 분류해 육식을 하지 못하는 교리를 피하려했다는 예를 보면 알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는 중세시대였어요. 사람들은 점점 육체와 영혼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모든 것에 가치의 순위를 매기게 되요. 예를 들면 나무위의 과일이 땅에서 자라는 곡식보다 위이고, 땅에서 사는 동물보다 하늘을 나는 새가 최고의 지위를 가지게 되죠. 이를 <존재의 대사슬>이라 칭하고 계급에 따라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나누게 되죠. 이는 계급별로 음식을 재배하고 조리하는 법도 다 다르게 발전하게 만들었을 거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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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변화는 무역을 통한 향신료의 유입이었는데 아주 살짝의 조미가 얼마나 음식의 맛과 풍미를 더하는지 그 시대 사람들이 느꼈을 그 혁명적인 느낌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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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시대에는 아직 이론적인 체계가 잘 잡히지는 않았지만 우리 몸을 구성하는 혈액, 점액, 황담즙, 흑담즙의 4체액을 각각 사계절과 공기, 물, 불, 흙의 네 가지 원소에 대응하여 그에 맞게 식재료의 균형을 맞추려는 생각에까지 다다르는 것도 꽤 인상깊었어요.

절대왕정의 시대 독보적인 길을 걷게 되는 프랑스. 하지만 화려한 코스로 읽는 동안 군침이 돌게 했던 귀족의 식탁과는 달리 생존을 위해 좋은 과일은 팔고 상한 과일을 먹어야하는 서민들의 대비는 점점 프랑스의 역사를 뒤흔들 혁명으로 몰아넣는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프랑스 인들에게 빵은 고통이자 기쁨이며 삶자체라는 것이 참 와닿았네요. 음식으로 익히 알고 있던 프랑스의 역사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기분은 좀 묘하긴 했지만 이 한 부분만으로도 저는 프랑스 국민들의 투쟁이 납득되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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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으로 부의 크기와 계급에 상관없이 함께 식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된 '시민의 식탁'. 이는 평등한 사회를 꿈꿀 수 있는 긍정적 변화이면서 '테루아'를 기반으로한 자국 음식문화에 대한 자부심도 여기서 부터 발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는 명실상부 세계최고의 미식의 나라인 프랑스, 그 시작과 긴긴 역사의 길을 따라 오다보니 한식도 프랑스음식 만큼 아름답고 의미도 많은데, 언젠가 멋진 미식하면 한식이 떠오르는 날도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며 긴긴 리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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