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심은 사람 ㅣ 탐 그래픽노블 17
다니엘 카사나브 그림, 박재연 옮김, 장 지오노 원작, 플로랑스 르봉발레 각색 / 탐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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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개인의 감상을 리뷰함]





황량한 산 앞에 서 있는 한 남자.

생명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이 곳은 

어떻게 숲이 되었을까?



처음 화자가 마주했던 황량한 이 곳은 

마음까지도 삭막하게 만들었다.

마실 물 조차도 구하기 힘들었던 그때,

양을 치는 남자를 만난다.

선뜻 마실 물을 내주며 기꺼이 하룻밤 쉴곳을 

제공하는 그와의 만남이 바로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특별할 것 없을 듯했던 그날 밤

화자는 양치기가 정성스레 고르는 

양질의 도토리들로 무엇을 하려는지 감도 잡지 못했다.


무례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궁금증으로 그의 뒤를 밟던 화자에게

양치기 남자는 같이 걷기를 청한다.


 

그리고 그가 심어놓은 어린 참나무들을 만나게 된다.


하루에 백개의 도토리를 심는 남자.

무모하게도 하릴없게도 보일 수 있지만

묵묵히 그일을 해내는 50대의 남자는 


그 후에도

전쟁의 폐허에서 지쳐 돌아온 화자를 

또 따뜻하게 맞아준다. 

책을 읽으면서도 이상하게 

그는 그대로 그곳에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매년 찾아가도 그 곳에서 

계속 나무를 심고 있을 것 같은 기분.


​그가 심어 놓은 도토리들은 얼마나 자랐을까?

분명 더 아름다운 곳이 되어있겠지?


​읽으면서 이렇게 계속 뒷장을 넘기는게

기대되는 책이 몇권이나 될까?

이야기 자체의 희망서사도 있지만

그림으로 전하는 비쥬얼적 설렘도 컷다.


​어찌보면 어린이 그림책 같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안에 전해지는 이야기의 흐름은

아이가 아닌 어른을 겨냥한 것 처럼 보였다. 


​바로 내가 알아야 할 이야기!!

그리고 아이들에게 황무지가 아닌

푸르름이 가득한 세상을 전해주어야 할 의무감을 

내 맘 속에 심어주는 것 같았다.


중반부에가면 화자와 양치기의 이름이 나온다.

처음에는 이들이 정말 존재하는 사람들인지 궁금했지만

끝까지 읽고 나면 그들이 실존인물인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가 남긴 행적만이 실제이기를 바라는 마음만이 남는다. 


​무분별한 벌복, 반복되는 전쟁, 

주거지를 옮겨가는 사람들로 인해 

폐허만이 남은 공간에

하루 백개의 도토리들은 계속 심어지고 

죽거나 싹을 틔우고, 또 죽거나 싹을 틔우며,

10만 그루의 시도는 2만 그루의 싹을 틔우게 한다.


후반부에 그림들은 정말 가슴이 벅찼다.

포스팅하지 않는 것은

책을 읽으며 서서히 점진적으로 느껴지는

뒷장의 감동을 스포하 듯 선보이기 싫어서다.



양치기 알제아르 부피에

그의 신념과 묵묵한 행동은

아무것도 아님을 풍요롭게 만든다.


​파괴하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스펙타클한 몸부림과 싸움이 아닌

긴박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잔잔한 서사가

오히려 가장 큰 도파민을 주었던 작품이다.


​

이것이야 말로

Power of One의 신화가 아니면 뭘까?


​나는 이 글을 읽으며 내내 생각했다.

자연을 희생시키고, 바로 앞의 이익에만 몰두하여

빼앗는 인류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분명 지구는 병들어가고 있고

내가 선두에 서지 않았다고 해도 

나는 파멸의 한자락을 잡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내가 도토리를 주어 나무를 심는 행동을 할 수 없다고 해도

플라스틱보다는 에코백을 사용하고

재활용품을 활용하는 아주 작은 움직임이

계속 된다면, 또 한명 두명 동참한다면

분명 반세기가 지난 어느날에는 

더 나은 세상이 되어 있지 않을까?


​진정 후대에 남겨야 할 것은

커다른 부와 숨쉴 수 없는 공기일까?

아름다운 숲과 깨끗한 물일까?


​나 자신에게 곰곰히 생각해 볼 시간을 준 

묵묵하지만 큰 울림을 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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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의 조각
이다 투르페이넨 지음, 정보람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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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제공 받아 읽은 후, 개인의 감상을 담은 리뷰]




가위로 오려낸 듯, 그림 안에서 사라진 생명체

역사상 발견된 종 중에 가장 일찍 멸종된 생물.

그 이름을 따라 걷는 여정을 함께해보자!


18세기 중반, 인류가 발견에 혈안 되어 있던 시대,

불행하게도 스텔러바다소는 탐사대에 의해 발견된다.

물과 음식을 얻지 못하던 선원들에게

커다랗고 온순한 이 동물은 최고의 양식이자

가죽을 제공해 주는 자연의 선물이지만,

그의 존재를 알게 된 지 겨우 27년 만에

세상 어디에서도 다시 볼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인류에게 적대적이지 않았던 구원의 존재가

발견된 지 반세기 아니 반 반세기 만에 사라지다니.

친절함이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인간이라는 존재만이 가졌다는 이기심은 상대적이다.

저항하지 않음이 소유하며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는 생각에,

그 온유한 생명체가 사라져 갈 때의

소리 없는 외침이 들리는 것 같아서 내내 불편했다.


한 세기가 지났다.

지나 버린 시대만큼 인간의 인식도 바뀐다.

지구에서 사라져 버린 아니 사라지게 한 생명체에 대한

관심이 일면서 스텔라바다소나 해달 등,

인간에게 참혹하게 학살 당해 사라진 생명체들을

연구하고 전시하는 복원의 움직임이 인다.


이 작품은 스텔러바다소의 멸종의 과정이

잔혹하고 적나라하게 표현한 작품은 아니다.

사실 1부 스텔러 박사의 발견의 여정으로

그려진 시간들은 조금은 흥미롭기도 하고

박사의 열정과 끈질김이 멋지게도 보였다.


하지만 그가 미처 생각지 못한 시간 동안

꺼서 갔던 생명의 흔적을 다시 찾는 데는

다시 30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차분하고 진진한 그 시간들이 나에겐 소설이라기보다는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만 같았다.

흔적을 찾는 여정은 뼛조각을 모아 크기를 상상하고

그 아름다움을 그려본다.


발견을 추구하던 인류는 그들의 발자취를 땅에 묻고

이제는 발굴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에

기분이 묘했다.


이야기 곳곳에 등장하는 사라져 간

많은 종들의 역사도 함께 엿볼 수 있는데,

어찌 보면 참 무심하게 들리는 일상의 의미 없던 순간들로

어떤 한 종을 사라지게 했다는 게

참으로 소름 돋는 순간들이었다.


어찌 보면 고발서 같기도 한 이 소설은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전 세계의 바다 종들의

멸종을 말한다.

그리고 몇 세기 후에 또 인류는

이들의 조각을 모으러 다니고 있을까?


바다를 유영하며 인어로도 오인받았던

신비하고 온유하던 거대한 생명체가 다시 숨 쉬는 걸

상상하며 후회의 조각들을 모으는 과정이

담담하게 가슴을 찌르는 작가의 문체로 그려져

슬퍼졌던 것 같다.


틀만 남은 조각의 길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따라가며 파괴에 대한 인간의 무지가 안타까워

그 동물의 숨을 잠시나마 느끼며,

끝내 사라져 버렸지만 인류에게 따뜻했던

종에 대한 미안함과

앞으로 우리가 생각하고 나아갈 방향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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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셔틀 ㅣ 특서 청소년문학 50
고정욱 지음 / 특별한서재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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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개인적인 견해를 담아 작성한 리뷰]



화성으로 향하던 우주선에서 깨어난 수아.

사방은 온통 시체와 부서진 우주선의  잔해들.

우주선 곳곳을 돌아다니며 5명의 생존자을 더 발견하지만 불행은 끝나지 않았다. 


지구로 귀환할 것인가 화성으로 향할 것인가?

하지만 그들에겐  겨우 47시간을 버틴 정도의 산소밖에 남지 않았다.

움직임 조차도 최소화하던 6명은 이대로 죽음을 기다리기 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렇게 

수아, 프랭키, 소타, 아구스, 캐리, 빌

여섯 생존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각기 다른 연령대, 다른 인종, 다른 국가에서 각자의 사정으로 화성으로 향하는 우주선에 몸을 실은 사람들.


?생각지도 못한 사연을 담은 사람들, 개인적인 자부심, 아픔, 설렘 등이 그들의 이야기 속에 담겨있어서 앞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음이 마음이 아파졌던 각자의 시간이었다.



이야기 중간 중간에도 우주선의 상황은 변해가고 지루하지 않게 시선을 돌릴 수 있는 변주들이 있어서 읽는 동안 내내 조금은 긴장하게 된다.


정말 저 6명은 죽게 될까?

연대와 이해, 살기위한 긴박하지만 비굴하지 않은 사람들의 행동이 뭉클해 질때쯤.


이야기는 클라이막스를 향한다.

결말은 참으로 담담하면서 반짝였다.

이것이 미래를 향한 우리 인류의 결정인가? 라는 마음이 들었다. 


?어릴 적에 이런 비슷한 주제로 수업시간에 토론을 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은 저마다 누군 꼭 살아야 한다는 식으로  주장했지만 누구도 누군 죽어도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 시절 우리는 모두 10대 였고 죽음은 그냥 이야기 속의 현상 같은 거였다.


하지만 지금 이 소설을 접하며 그때의 나를 돌아보면 내가 그래도 한층 자랐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나도 저 상황이면 그들 같은 결정을 내렸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겪은 일, 그리고 누군가의 입을 통해 얻은 간접 경험들이 분명한 자양분이 되어 지금 이 책을 읽은 청소년들이 더 멋지고 건강한 미래의 자산이 되어주길 바라며 온맘을 다해 지지해 보며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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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 벚꽃
유즈키 유코 지음, 김지연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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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후, 개인적인 견해를 담아 작성한 리뷰]




일본 스릴러, 탐정물을 좋아하는 내게

선물 처럼 찾아온 작품

<지지 않는 벚꽃>

다분히 일본적인 제목이 궁금하면서도

긴장감을 주는 작품이었다.


한국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처럼

아무래도 제목에 국화가 들어가는 건

그만큼의 묵직함이 뒤따라오기 때문이다.


요네자키 현의 경찰청 홍보과에 다니는 이즈미는

스토킹 살해 사건을 맞이해 어수선한 상황에서

경찰이 사건 접수 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기사로

비난 받는 경찰에 대한 민원으로 시달리면서도

혹시나 자신이 내부 출처자가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이유는 그녀의 절친인 지카가 기사를 낸

신문사의 기자였으며 자신의 실수로

지카에게 부실대응 사실을 누출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억울해 하는 지카가 자신을 증명할 새도 없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즈미는 이 사건 뒤에는 무언가 거대한 흑막이

있다는 사실을 직감하게 된다.


사건 초반부터 압박해오는 큰 그림자가

기존에 봐오던 일본 권력층의 어두운 모습을

잘표현해 주어서 빨려들 듯 읽게되는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피해자가 주로 여성이며

그 사실을 밝혀내고자 하는 주체자도 여성이어서

더 감정을 이입해서 읽었던 것 같다.


이즈미는 두려워하고 슬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암담하기만 하던 진실에 조금씩 접근해간다.


소설 속의 경찰조직은 내가 보기에는 한심하기

짝이 없었지만 잇달아 목숨을 빼앗기는

사건에 얽힌 이들이 나오면서,

그만큼 누군가가 숨기고 있는 사실이 너무 큰 일인 것 같아

이대로 진실을 파해치다 주인공도 목숨을 잃을까

걱정하며 읽게 된다.


전문탐정도, 수사관도 아니지만

사건에 책임(?)과 흥미(?)가 있는 몇면의 동료들과

의기 투합하여 조사한 결과

이즈미는 결국 진실에 닿게 된다.


그녀가 알게된 흑막은 통증조차 느끼지 못하게 할 만큼

가슴을 차갑게 만들었다.


나는 트롤리의 딜레마가 떠올랐다.

우리는 더 많은 이들의 이익과 권리가 보장되는 쪽에

항상 손을 들어야 할까?


그렇다면 나는 언제까지 다수 쪽에 속해있을 수 있지?


너무 암담해서 나는 숨조차 크게 쉬어지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역시 이런거군 이런 결말인가?

라고 할 수있지만

짓밟혀 사라져간 꽃같았단 피해자들의

나 주변의 친구들, 내 가족이면 어쩌나하는 생각에

가슴이 너무 아팠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건.

주인공 이즈미의 마지막 결심이였다.

솔찍히 생각하지 못한 결정이라서

조금 설레기도 하고 많이 기특하게도 느껴졌다.


그녀의 선택이야 말고

벚꽃이 지지 않는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옮음을 말할 수 있고 행할 수 있는

아직 작은 권리라도 나는 이제 행하며 살아가겠다는

작은 결심을 하게 해주었던

가슴 뜨거워지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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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라는 우연
브라이언 워싱턴 지음, 최현영 옮김 / 더픽션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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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개인의 의견을 담아 작성한 리뷰]



표지가 매우 인상적인 오늘의 도서

<아름다움이라는 우연>

퀴어의 삶을 조명한 작품이란 생각에

꽤 흥미로워 읽기 시작했지만 실상은 

어떤 부류의 이야기가 이닌

우리 모두의 삶, 가족, 친구, 

그 안에서 나를 찾아가는 이야기였다.


자메이카 이민자인 어머니는 어느날,

지구반대편 도쿄에 머물고 있는 아들의 조금은 어색하고

어찌보면 정막한 전화를 받고 곧바로 도쿄로 날아온다.

하지만 아들은 어머니를 전혀 반기지 않고

두 사람의 고요하지만 위태한 동거가 시작된다.


​살갑지 않은 가족의 방문, 

아들에게는 외롭고 아픈 기억이 가득한 

원가족과의 관계에서의 트라우마가

어머니의 등장으로 다시 파도처럼 밀려온다. 


​어머니 또한 문화가 전혀 다른 먼 타국에서 살아가는 

아들을 보며 다시 휴스톤으로 데려가려하지만

아들이 살아가는 새로운 장소에서의 인연들과

그 안에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아들을 보며

지금은 없는 오빠와의 시간들을 떠올린다.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주인공을 아들과 어머니로 표현된다.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 존재들이 이끌어가는 이야기.

처음 읽을 때는 살짝 적응이 어려웠지만

읽다보니 마치 우리 삶에서 매순간 만나는 

존재들과 같다는 느낌으로 다가와서 

작가의 의도(?)를 내가 잘 파악한건가 

싶어서 뿌듯해지기 까지 했다.


​내가 읽은 이 소설은 꽤 정적으로 느껴졌다.

마치 폭풍의 눈안의 고요함같은

안에 내포하는 많은 울분과 두려움, 좌절이

이렇게도 잔잔하게 느껴질까? 싶었다.


​도쿄라는 공간은 서울과 같은 동양적 공간이지만

나에게도 꽤 낮설고 묘하게 느껴지는 장소이다.

아들이 처음 도쿄에 도착했을때 했던 생각들

내일 다시 비행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있다는

허세를 품고 하루를 버텨가는 이방인의 삶.

어쩌면 아들에게는 자신의 존재자체가 

이방인으로 느껴졌던 건 아닐까?


자신의 정체성으로 빚어진 아버지의 폭력,

노력하면 할 수록 어그러졌던 가족과의 관계,

더이상 돌아갈 곳 없던 휴스톤과는 달리

도쿄에서는 선택이라는 걸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들에게는 관계의 틀에서 벗어난 삶을 살 수 있었는 

장소였는지도 모르겠다. 


​며칠간의 동거로 어머니는 아들에게 포커스 할 수 있었다.

가족안에서 자신이 아들을 어떻게 대했나?

지금 아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나?

자신 또한 도쿄에서 만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삶에는 각자의 방식이 있고 

내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그냥 그것이 인생이라는 걸 알게 된 것 같다.

어쩌면 아들보다 어머니가 더 빨리 느꼈지 않았나 한다.

그래서 아들을 두고 어머니는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아무것도 바꾸려하지 않고 인정해줌에 

아들도 안도하였다는 생각에 이른다.


대도시, 이방인의 삶, 색이 다른 각자의 삶의 방식이

뒤섞인 이곳에서 색을 모두 지운 도쿄 곳곳의 사진은

이 모든걸 나누고 다르게 볼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

가족이 있는 곳이 집일까?

아니면 나 자신이 나로서 인정받는 곳이 집일까?




"맞아. 그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

"오케이. 나도 미안해."

"어쩌면 인생이 그런 건지도 몰라, 죽을 때까지 매일.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그러게. 그래도 진심이기만 하다면 

내 생각엔 괜찮은 것 같은데."


​진심이라는 건 뭘까?

내가 너를 다 알 수는 없지만 함부로 판단하고

너를 나의 기준으로 정의하려고 했다면

한마디면 충분했다.

진심이 담긴 "미안해"


이 작품은 퀴어작품이라기보다 인생을 이야기하는 

에세이처럼 다가왔다.

모두 다 원가족에게 사랑을 느끼고 

생각하면 포근하고 그립기만 할까?


가끔은 나를 정말 저 밖으로 내던져,

내가 원래 무엇인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 해본적 있지 않나?


이 소설은 나에게 그런 기분을 선사했다.

틀에 갇힌 나에게서 벗어나 

누군가에겐 이상한 삶일 지라도

나의 결정과 나의 의지로 살아가는

나 자신의 삶으로 살아도 된다는 신뢰와 안도였다. 


​꽤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소설이지만

단숨에 읽어내릴 만큼 문장의 흡입력과

스며드는 감정이 좋았던 소설이다!!!


삶에서 진정으로 나를 인정받고싶다면

누군가의 삶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함을

절감하게 해주는 내 생각의 틀을 바꿔주는

멋진 작품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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