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리뷰했던 가습기살균제 리포트에 나오는 내용과 유사한 사례가 오늘 읽은 부분에서 나왔다. 주인공의 회사인 유니콘 측에서 삼전에 위탁생산을 부탁한 매직 서클 제품이 제대로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주인공이 직접 회사를 방문하는데, 방문시찰 중에 제조공정을 보다가 부품에 크게 스크래치를 내는 장면을 목격한다. 급기야는 해당 공장장에게 생산 시스템 가동을 중지할 것을 요구하고 해당 공정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뒤 출고직전의 상태로 포장까지 완료된 완제품을 표본검사하는데, 거기서도 불량이 나오자 해당 공정을 책임지는 공장장은 주인공 앞에서 미처 고개를 들지 못한다.
어제 리뷰한 내용도 그렇고 오늘 읽은 부분도 그렇고 직접 확인하고 감시하지 않으면 중요한 일이 엉망진창으로 진행되거나 심한 경우에는 사람의 목숨까지도 앗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철저히 의심해보고 직접 확인하는 습관이 불량을 줄이고 보다 안전한 사회로 가는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한다.

위탁생산을 통해 떨어진 국내 공장의 가동률을 끌어올리고 우린 산처럼 쌓인 예약 주문을 해결한다.
"결국 실리가 아니라 체면이 더 큰 문제로군요."
"삼전이 OEM 생산을 한다. 그것도 우리보다 훨씬 작은 유니콘의 물건을. 그거 생각보다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어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 자리는 여유를 잃으면 망하는 자리거든.
"형님이 아예 야망이 없는 분이었다면 상관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분은 아니죠. 그래서 자신만의 경영을 늘 고민해왔을 겁니다. 그러니 유지보다는 변화를 선택하게 되는 거죠."
그날. 유중호의 집에서 너무도 당당하게 거실을 향해 있던 감시 카메라. 그것이 유중호의 상황을 단적으로 대변하는 것이었다.
"아마 아버지의 모든 걸 바꾸고 싶을 겁니다. 아버지의 사람, 사업, 그리고 그가 만들어낸 회사에 대한 평판까지도요."
"그러니 실리와 체면. 두 가지 중 뭘 선택할지는 뻔한 거였죠. 체면은 선택한다는 건 아버지의 의지를 그대로 이어받는다는 의미였을 테니까요."
"유중호 회장은 아버지의 경영 방식 대신 자신만의 경영을 원했던 거죠."
뒤늦게 경영권을 손에 쥔 그는 피의 숙청을 시작한다. 아버지의 사람, 사업, 평판. 모든 것이 숙청이 대상이 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그 과정을 통해 모두가 알수 있었다. 유중호가 아버지의 그늘을 얼마나 벗어나고 싶어 했던가를.
"이사님도 나한테 잘해요. 무서운 사람인 거 알았으면요."
가슴에 따뜻한 온기가 커지기 시작했다.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감돌았다. 막 퇴원한 환자한테 참 못 할 짓들을 하고 있지만 그 마음만은 너무도 고마웠으니까.
"우리 영업부 말입니다. 꼭 모래알처럼 합쳐지지를 못하는군요. 이번 일이 처음도 아니고 대표님께서도 걱정이 많으십니다."
"야 이 멍청한 새끼들아! 내가 너희 그렇게 가르쳤어?"
아니나 다를까. 회의실에서 터진 노성으로 인해 영업부 직원들의 고개가 미어캣들처럼 파티션 위로 빠짐없이 올라와 있었다.
"들어오시지 말고 회의실 밖에 있어달라고 했지." 그 결과 최지용 본부장은 영업의 현 상황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또 알게 되었을 것이다. ‘왜 그가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했는지‘ "다행이네요. 정말." 녀석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통제가 되지 않던 영업부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왔던 신용재. 녀석에게 본부장 복귀는 그야말로 최고의 선물일 테니.
"상대는 삼전이야.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회사란 말이지. 경영진이 지시를 내린다고 실무자들의 자존심까지 꺾이지는 않아." "아....." "그리고 그 자존심 높은 사람들이 코딱지만 한 우리 제품을 만들어주는 상황인 거야." 이제 팀장이 된 이상 녀석도 알아야 한다.
크던 작던 조직을 이끄는 사람이 반드시 머릿속에 새겨야 할 원칙.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백 퍼센트는 없어. 명심해라. 네 눈으로 확인한 것만이 사실이고 진실인 거야."
어느 공장이나 불량은 발생한다. 사람의 실수건 기계의 오류건 불량 발생을 완벽하게 제거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
"진짜 문제는 저걸 어떻게 걸러내는가에 있습니다." 발생을 막을 수 없으니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 바로 ‘불량 검출‘. 검출 시스템이건 육안 검사건 불량을 검출해 낼 수 있는 능력은 제조업 공장의 핵심 중 핵심이다.
"오늘이 아니면 내일, 내일이 아니면 모레 터졌을 문제였을 겁니다."
내가 고작 한 시간여의 라인투어를 통해 잡아낸 여러 가지 문제는 그들이 잡아내야 할 것들이었다. 그러니 지난주에 파견되어 이곳에서 상주하고 있는 저 두사람은 직무 태만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내 대답이 영 까칠해서였을까? 뒤통수를 긁던 공장장도 표정을 바꾸었다.
"이대로 출고가 된다면 곧장 클레임이 됩니다. 게다가 이 제품을 받을 사람들은 장장 십 일이 넘는 기간을 기다린 사람들입니다."
"이 정도의 파손이라면 외관상의 문제뿐만 아니라 기능에도 문제가 생길 정도의 중대한 클레임인 거죠."
"검사 방식이 육안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 또 하나는 이미 수많은 공정과 작업자의 손을 거치고도 이 정도 불량이 최종 검수 단계까지 왔다는 겁니다."
포장이 해체된 유니콘 매직서클 세대가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빨간색 매직으로 길게 스크래치가 생긴 부분에 크게 동그라미를 그려 버렸다. "이 정도면 확인이 됐을까요?" ΄......네. 죄송합니다." 드디어 공장장도 땅바닥에 고개를 파묻었다. 포장이 끝났 다는 건 출고 준비가 끝났다는뜻. 어떤 공장도 포장이 끝난제품을 해체해 제품을 확인하지는 않는다.
즉 테이블 위 세 제품은 이 상태 그대로 고객에게 보내질 제품이었던 것이다. 지게차가 만들어낸 저 흉측한 기다란 스크래치를 가진 채로. 그리고 이것으로 확인은 끝났다. ‘삼전 화성공장은 불량을 검출해 낼 능력이 없다.‘ 표시가 끝난 빨간 매직을 테이블 위에 아무렇게나 던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