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시대 - 소설 읽기의 이론과 실제
김한식 지음 / 미다스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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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건설을 되돌아보는 하나의 지적활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속에는 시대와 사상의 변천사를 중심으로 이상과 현실이라는 업보를 지닌 인물이 모여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기에 이른다. 소설에 직간접적으로 등장하는 작가의 사상이 소설의 처음과 끝을 꾸며주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그것을 읽는 독자는 재차 자신의 상상력을 통하여 남다른 정의를 내리는 것으로 소설의 교훈 및 의도가 다양하게 성립되기도 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설을 읽는 행위, 즉 감상을 하는 것에서 끝낼 것인가와 소설의 의도를 분석할 것인가에서 많은 독자가 갈등에 휩싸인다. 이에 <소설의 시대>는 "소설 독서에 있어서는 분석이 감상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감상이 분석을 따르기는 어렵다."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소개되는 소설을 읽고 기대에 못 미쳤다는 반응을 내보인다. 그것은 분석에 의한 독서가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결국 소설은 분석과 감상이 분리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독서 후에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가정하에 접근한다면 보다 넓은 의미로서 독서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글의 분량에 따른 장편과 단편소설, 접근하는 주제에 따른 계몽, 교양, 대중, 추리소설과 소재에 따른 역사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형의 소설이 존재하고 있으나, 독자의 입장에서는 소설의 성격에 따라 접근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하기 때문에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소설을 보다 친숙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읽고 싶다면 <소설의 시대>를 먼저 읽어보는 건 어떨까? 이 책은 소설 읽기의 이론과 실제를 다루고 있다. 소설의 변천사를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대표작품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있으며, 소설에 대한 논리적 분석과 작품에 대한 감상적 접근법에 대하여 말한다.

 

「독서 과정에서도 개별성이 보편성을 획득하게 되는 과정을 보는 일은 무척 흥미롭다. 무엇을 다루는가 못지않게 어떻게 다루는가가 소설에서 중요한 문제라고 볼 때, 작품이 개별성을 통해 보편성 쪽으로 접근해 가는 과정은 작가의 능력과 소설의 완성도를 평가할 수 있는 좋은 기준이 된다. (…) 소설과 소설 외적인 배경을 연결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설 안에서 그것들이 어떻게 작용하고 전개되는 가를 보는 일도 중요하다.」- 본문 중에서(p.80)

 

 

 

소설은 주제에 따라 자전적 성격을 띠기도 하며, 사실과 허구의 중간지점을 포착 또는 완벽한 허구로서 성립된다. 또는 현시대의 코드를 포착하여 강렬한 성격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독자의 입장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소설이 다루는 내용이 허구일지라도 그러한 존재의 유무를 따질 것이 아니라, 그 존재가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정확히 읽어내야 한다는 점이 될 것이다. 사실보다 더 사실을 지향하는 것이 소설이라면 말이다. 작가와 서술자 그리고 등장인물의 관점에 따른 분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소설을 구성하는 요소의 특징은 무엇이 있으며, 소설이 모델로 삼은 동시대의 다양한 모습에 이르기까지… 나는 <소설의 시대>를 통해서 그동안 내가 소설에 취했던 접근방식의 취약했던 점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다.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 사이에 숨겨놓은 작가의 독특한 장치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하여 알게 되는 발견의 기쁨이란…… 이 책은 쉽게 말해서 '소설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 중심을 이룬다. 나는 추상적인 의미로 가득한 단편소설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을 많이 겪는 편이다. 의외로 장편소설은 그 분량만큼이나 집중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해석의 농도도 짙어지기에 십상인데, 단편소설은 미지근한 물에 손을 담근 듯한 느낌이 많이 든다. 작가가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모호하게 매듭짓고 보여주는 듯, 결말에 대한 해석은 독자에게 맡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소설 애호가라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다. 저자는 대학 강의에 적당한 교재로 만들고 싶었던 욕심을 <소설의 시대>에 담았다고 한다. 소설에 대하여 중립을 지키고 다양한 형태의 소설과 그에 대한 방식을 풍부하게 알려주는 저자의 마음이 느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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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림역에서 공자를 만나다 - 치열한 삶의 순간마다 논어의 지혜를 떠올려라
한장쉐 지음, 이주엽 옮김 / 오늘의책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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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리분별에 능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항상 나 자신을 경계하면서 살아간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것도 나 자신을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좋은 사람이 되려거든 좋은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누구나 인생의 롤모델을 선정해놓고 그를 하나의 지침서처럼 따르며 살아간다. 선망의 대상임과 동시에 자신도 그렇게 되고 말겠노라는 다짐일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성공의 기준이 변하기 시작하면서 그 모델의 역할도 점차 줄어들었다. 잘난 것을 따라 하는 것이 잘못되지 않았으나, 그로 인해 나 자신의 못난 것은 외면하여 도리어 화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자신의 크기에 따라 물을 채운 양동이가 더이상 탐욕을 부리지 않듯이, 내 그릇의 깊이를 깨닫는 과정은 험난하기만 하다. 이치에 정통하여 타인을 업신여기지 않고 사는 풍족한 삶을 꿈꾼다. 나는 간밤에 공자를 만났다. 그가 나에게 묻기를 "당신은 얽매여 사는가?"라고 하였다. 하여 나는 "무엇에 얽매여야 얽매인 삶이라 할 수 있는지요." 라고 되물었다. 그대 도처에 널린 것이 굴레이거늘, 그로 인해 얽매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말한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묻고 싶었으나, 공자는 이미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자기를 알고 세상을 알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행동이다. 다른 사람의 지식이 얼마나 많은지, 교양이 있는지, 도덕적인지, 꿈이 있는지 따위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 자신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그중 실행하기에 가장 좋으면서 적합한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고 살피면 된다. 그런 후에 그것을 더욱 발전시켜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견현사제'의 모델로 삼도록 해야 한다.」- 본문 중에서(p.156)

 

 

 

공자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 나는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나, 그의 정신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었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도리란 무엇일까. 나는 어릴 적 부터 사람은 덕을 쌓으며 살아야 한다고 배웠다. 특히 어머니는 자식들 앞에서 항상 말과 행동이 어긋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성인이 된 지금까지 내가 흔들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준 것은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된다. 이에 <신도림역에서 공자를 만나다>에 실린 공자의 지혜는 우리가 실천하고도 모자랄 삶의 도리를 일깨워주고 있기에, 그가 만인의 선생으로서 칭송받는다면 나에게 공자는 아마 어머니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이 책은 사람 노릇에 서툰 우리의 몸과 마음을 향한 공자의 호통이 담겨 있다. 그는 얽매이지 말라고 했다. 인간이라는 틀에 자신을 구속하지 말라는 뜻이었을까. 인간답게 산다는 것에 대한 편협한 이단에 휘둘리지 말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면 구구절절 어찌나 옳은 말만 적혀있는지 낯짝이 벌겋게 달아오르기에 십상이다. 지은 죄가 많아서 속상한지도…… 지금 이 순간 자신이 현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공자를 만나보기 바란다. 과연 당신이 현명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 삶이 현명한 것인지 보다 통쾌하게 정리해 줄 것이라 믿는다. 공자의 모든 것을 통틀어 이렇게 말해보고 싶다. '정도를 지키는 삶'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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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찌지 않는 스모선수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림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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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노숙자와 다름없는 행색으로 잡다한 물건을 길거리에서 팔고 있는 소년이 있었다. 녀석은 속이 뒤틀리고도 모자랄 만큼 잔뜩 성이 난 퍼그처럼 사람들을 쳐다본다.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왜소한 체격으로 인해 인상은 더욱 날카롭게 보이기 일쑤다. 부모도 없고 마땅히 거처할 곳도 없는지, 그저 누울 수 있는 공간이면 두 다리 뻗고 세상과의 접촉을 차단한 채 살아간다. 그러던 소년에게 이따금 나타나서 "네 안에 떡대가 보인다."라고 말을 거는 노인이 있었다. 볼품없는 말라깽이와 같은 자신에게 무슨 떡대가 보이느냐고 대뜸 콧방귀를 끼고 노인을 무시하는 소년이다. 그러나 연이어 "네 안에 떡대가 보여."라는 말로 소년의 심기를 건드는데……

 

<살찌지 않는 스모 선수>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히는 프랑스 작가 중 한 명인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의 풍자와 철학이 오묘한 콩트처럼 조화를 이루는 성장소설이다. 정처 없이 떠도는 가출청소년을 연상시키는 '준', 그리고 스모선수를 양성하는 도장을 운영하는 노인 '쇼민주' 두 사람의 거리가 좁혀지기까지 소년의 경계심은 극에 달했으나, 마치 소년의 일탈을 잡아주기라도 하듯 노인은 잊혀질 때쯤이면 소년을 찾아온다. 그리고 "네 안에 떡대가 보인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노인은 소년에게 스모경기 입장권을 주면서 자신을 찾아오도록 하는데…… 경기장을 찾아간 소년은 상대선수에 비해 왜소한 체격을 가졌음에도 우승을 차지하는 스모선수를 보면서 알 수 없는 희열을 느낀다. 이 책은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한 청소년이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비관적인 삶을 살아가야만 했던 아픔을 보여준다. 그 아픔 속에는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모습, 지적장애를 가진 어머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던 유년시절의 상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스모선수가 되고 싶어서 체중을 늘리고 할 수 있는 모든 운동에 집중했으나, 눈에 띄는 성과가 보이지 않자, 소년은 자꾸만 움츠러들고 그러한 현실이 자신에겐 별수 없는 것,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기만 한다.

 

 

 

「"(…) 너는 관찰하기 보다는 입을 놀리고 있어. 현상들을 파악하기보다는 선입관들을 투사하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너 자신이 코에 걸고 있는 색안경을 통해서 내다보는 거다. 파란 안경으로 보면 세상이 파랗고 노란 안경으로 보면 노란색 천지인 데다, 빨간 안경으로 보면 빨간색 때문에 다른 색이 모두 죽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 너 스스로 너 자신의 인지능력을 떨어뜨리고 있단 얘기야, 스스로 덧칠해놓은 것만 눈에 들어오니까 그럴 수밖에.」- 본문 중에서

 

이 책은 짧은 분량임에도 많은 교훈을 함축시켜 놓았다. 유년시절의 상처를 치유하는 소년의 모습은 우리 모두가 꽁꽁 숨겨놓은 자화상과 같다. 노인이 소년에게 말한 '떡대'는 보통 몸집이 큰 사람을 일컫는 경우에도 쓰이나, 여기서는 '장성(壯盛)'의 의미로 해석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노인은 소년을 향해 '네 자신도 큰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알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그가 소년을 스모선수로 키우기 위해서 자신의 도장으로 불렀을까? 나는 이러한 소설의 장치야말로 저자가 숨겨놓은 이 책의 핵심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왜소한 체격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우람한 덩치의 스모선수가 더할 나위 없이 부러울 것이다. 그래서 소년으로 하여금 자신의 단점을 과감히 인정하고 현실에 적응하기 위한 힘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현명한 처세임을 깨닫게 하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그것은 말 그대로 하나의 계기였다. 우리는 우연찮은 계기를 통해서 무언가를 깨닫거나 큰 감명을 받기도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다. <살 찌지 않는 스모 선수>는 그러한 가르침이 담겨 있다. 또한 저자는 선불교의 오묘한 세계, 즉 명상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소년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에게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끔 한다. 소년은 자신이 떡대임을 깨닫는 순간까지 몸과 마음을 갈고 닦는다. 이제는 우리도 그에 동참하여 내면의 나와 마주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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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학자다 - 즐깨감 과학서술형 공부법 와이즈만 영재학습법
배정인.황근기 지음, 김석 그림, 와이즈만 영재교육연구소 감수 / 와이즈만BOOKs(와이즈만북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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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실험을 통해서 얻은 결과를 다시 논리적으로 서술하는 '과학서술형', 이는 과학과 국어능력을 동시에 향상시킬 수 있는 학습법이다. 실험과정이나 결과를 서술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제는 교사가 학생의 창의적 사고에 기초한 다양한 문제를 제시하고 문제해결능력을 식별하기에 이르렀다. 최대한 많은 것을 생각해내는 능력, 즉 기발한 발상을 요구하는 과학 서술형 문제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과학자다>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과학서술형에 대비하기 위한 기초를 잡아주고 그에 대한 학습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과학서술형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암기식 학습법과 객관식 시험에 익숙한 아이들의 수렴적 사고를 확장시키기 위해서 생긴 시험 유형이다. 교과서를 중심으로 공부하면서도 출제비중이 높은 특정내용을 무의미하게 암기하는 것은 진정한 학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초중고등학교에서 학업을 마치고 대학교에서 보다 세분화된 학문을 접하게 된다면, 과연 아이들은 그 광범위한 교과내용은 말할 것도 없으며, 다양한 사고를 요구하는 대학의 특성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책은 지도교사가 필요없는 맞춤전략형 학습안내서라고 보면 되겠다. 일정한 틀에 기초한 정답을 요구하는 내용이 아니라, 그저 아이들이 자유롭게 탐구하고 생각하면서 과학서술형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돕는다. 과학서술형은 정확한 답이 아닌, 아이들이 정답에 근접한 다양한 해결책을 직접 찾아가는 과정을 학습의 목표로 삼고 있다. <나는 과학자다>는 현재 시험에 자주 나오는 각각의 과학서술형 문제들을 유형별로 분석하고, 다시 아이들로 하여금 각 유형별로 문제를 푸는 방법을 직접 배울 수 있도록 구성했다. 모든 문제의 핵심은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변화에 주의를 기울이고 관찰하는 능력을 키워야 함에 주력한다.

 

「과학서술형 문제는 많고 다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해부해 보면 모든 문제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어. 선생님들은 이런 문제들을 통해 학생들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해. 따라서 과학서술형 문제를 풀 때는 우선 이 문제가 어떤 유형의 문제인지, 나에게 어떤 능력을 확인하려고 하는지 등을 자기 자신에게 질문해 봐야 해. 그런 다음 문제를 풀어야지. 아무리 빨리 가려고 해도 정확한 방향을 잡지 못하면, 엉뚱한 곳으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문제를 읽는 단계는 아주 중요해.」- 본문 중에서(p.24)

 

 

 

과학서술형 시험은 아직 체계적인 단계에 진입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까지는 아이들의 창의력과 논리적 사고의 향상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으나, 보다 다양하고 체계적인 문제를 출제하여 형식적으로 되풀이되는 학습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과학서술형에 대비하기 위한 <나는 과학자다>와 같은 책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은, 결국 일종의 시험 유형에 따른 전략을 세우기 위한 하나의 학습법이 형성될 수도 있기 때문에, 과학서술형이라는 시험을 만든 취지가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와 같은 책이 시험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게 아닐지라도 과학이라는 학문은 학습자의 자발적인 문제 인식과 그것을 해결하려는 능력이 일치해야만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지도교사와 부모는 아이들이 과학서술형 시험을 통해서 진정 자신의 능력을 재발견하고 시험의 질적인 목표가 달성되기를 원한다면, 평상시에 책을 읽는 습관을 키울 수 있도록 격려하고 다양한 경험 및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 아닌가 싶다. 과학은 생각, 관찰, 추리, 실험이라는 요소가 결합된 창의적인 학문이다. 보다 많은 아이들이 잠재된 능력을 발견하여 수렴적 사고에서 벗어나 자신만 독창적인 사고로 꿈을 향해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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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딸을 이해하기 시작하다 - 나이젤 라타의 나이젤 라타의 가치양육 시리즈
나이젤 라타 지음, 이주혜 옮김 / 내인생의책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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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남자라서 알면 안돼. 비밀이야.', '아빠는 남잔데 어떻게 말하지?'라는 생각으로 오로지 고민거리가 있으면 엄마를 찾는 딸이 있다. 그리고 '나는 남자라서 딸은 당연히 엄마랑 상담해야지.', '나는 아빤데 딸이 나한테 무슨 말을 하겠어?'라고 생각하는 아빠가 있다면 <아빠, 딸을 이해하기 시작하다>라는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아빠와 딸이 가까워질 수 없는 유일한 이유가 있다면, 바로 남자와 여자는 다르기 때문이라는 아주 단순하고도 어처구니없는 주장 때문이 아닐까. 동성끼리 어울리면 서로 코드가 잘 맞아서 편한 건 사실이다. 또 서로에 대한 이해심도 풍부하기 때문에 딸은 엄마, 아들은 아빠와 가까운 건지도 모른다. 간혹 아빠와 딸이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 '아빠가 딸의 눈높이에 맞추고 가까워질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남녀평등과 더불어 강한 여성과 부드러운 남성이라는 신조어가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성공전략처럼 많은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양육에 있어서도 딸을 여성으로서의 장점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사회에 나가서도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부모가 많아졌다. 그래서 양육에 참여하는 아빠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일명 치맛바람보다 강력한 바짓바람이라던가? 그러나 아빠가 딸을 키우는 과정이 결코 순탄하다고 볼 수 없다. 이에 저자는 아들과 딸의 차이에 대한 상식을 버리라고 말한다.

 

「딸의 친구가 되지 마라. 가슴 깊이 새겨둬야 할 중요한 말이다. 아빠는 절대로 딸의 친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딸에게 아빠는 단 한 명뿐이다. 친구는 언제든 새로 사귈 수 있지만, 아빠는 그렇지 않다. 내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이는 사실 엄마들에게 더 어려운 과제다. (…) 자식과 친구 사이가 되면 자식에게 가장 중요한 '비빌 언덕'인 부모가 없어진다. 친구는 하자는 대로 따라주는 존재지만, 부모는 꺼내기 어려운 말도 할 수 있는 존재다. 딸이 무모한 일을 하려고 할 때 부모는 그만두라고 말할 수 있지만, 친구는 옆에서 낄낄거린다.」- 본문 중에서

 

 

 

부모는 자식과 친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저자가 말한다. 그러나 나는 이에 반대의 입장이다. 자식과 친구처럼 지낸다고 부모로서의 역할과 위치가 달라지는 건 아니라고 본다. 그러한 사태가 오지 않도록 부모가 자식과의 관계에서 '부모로서의 위치'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내에서 거리조절을 잘하면 오히려 더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저자는 부모가 말 그대로 자녀의 친구 역할에 큰 비중을 두는 것에 대한 우려를 말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양성 평등에 기초하여 아빠와 딸의 관계를 재조명하고 있다는 점이 눈여겨볼 만하다. 성별과 연령에 맞추어 딸과 아들의 양육이 다른 부분도 반드시 존재할 것이나, 여자는 여자답고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치우쳐서 자식을 키우면 안 된다고 말한다. 특히, 이 책은 아빠와 사춘기 딸의 복잡한 관계를 유연하게 풀어나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언제부터 딸에게 스킨십을 하면 안 되는 거죠?'와 같은 아빠들의 수줍고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고백이 아빠와 딸이 더욱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화성에서 온 아빠, 금성에서 온 딸이 항상 정해진 것 아니라는 점, 사랑하는 딸이 자신을 어려워하고, 또한 딸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 아빠가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자. 지금보다 더 나은 가정의 행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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