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모나리자에 눈썹에 대해서는 크게 3가지의 의견이 존재한다(고 한다.) 내 기억이 맞다면, 첫번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리던 중 모델이 된 여성을 사랑하게 되어 그녀를 계속해서 보기 위해여 4년이나 그림을 완성시키지 않고 기다리다가 결국 그녀가 먼저 죽어버림으로서 눈썹을 그려넣지 않았다는 이야기, 두번째는 당시 눈썹을 뽑는 귀부인들의 유행 때문에 원래부터 대상에 눈썹이 없었다는 이야기, 세번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눈썹을 그렸으나 어떠한 연유로 지워지고 말았다는 이야기.


나로서는 아무래도 레오나르도라고 하면 피자나 좋아하는 말많은 거북이가 오히려 더 친숙한 판이고, 위와 같은 단편적인 지식 밖에는 없으니, 아예 이 문제에 대하여 상상하는 것은 딱 여기서 중지하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할 일이 많을 수록 망상으로 도피해버리고마는 습성 때문에 잠시나마 이 문제를 상상하였는데 굳이 앞의 세가지 이야기 중에서라면 첫번째 이야기에 끌릴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이런 드라마틱한 사연을 통하여 모나리자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게다가, 나는 어쩔 수 없는 소심한 남자라서.


그러다가 한하운 씨를 자연히 떠올리게 되었다. 실은 이번에 한하운에 대한 발표 준비를 하다가 모나리자의 이야기를 나온 것인데, 이제 나로서는 이 둘을 나눠서 생각하기 어렵게 되었다. 드라마틱한 삶으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못지 않을 한하운 씨의 눈썹없는 얼굴과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불후의 명작 모나리자. 모나리자의 경우로 말하자면 첫번째 설을 따르기로 했을 때, 눈썹을 그려넣는 것야 말로 곧 사랑의 완성을 뜻한다는 말이 된다. 그녀가 그 전에 죽어버렸으니, 아무래도 어떤 이유로든 그 눈썹을 그려넣을 수는 없게 되었다. 눈썹의 자리에 붓을 대는 순간 그 그림은 거짓말이 될 테니까. 그리하여 결국 불멸의 사랑이 되지 못한 이 이야기 때문에 오히려 눈썹 없는 모나리자는 불멸의 명작이 된다.


그런가 하면 후년에 크게 병세가 회복되어 식모 수술을 권장빋자 "미칠 노릇"이라고 했던 한하운 씨가 결국 눈썹을 심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눈썹을 붙인 뒤의 나의 앞날의 인생을 어떻게 하나 하는 흥분에 망설인다. 눈썹은 거의 다 성공이 된다니 정말로 미칠 노릇이라 하겠다. 나는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P씨에게 식모수술을 안하겠다고 말한다. 잘못 살아 온 지난날과 엉뚱한 생각과 운명의 앞날이 혼돈하는 불연속선不連續線이 그칠 줄 모르게 나를 뒤덮는데, 조락凋落하는 낙엽을 휘물아온 바람은 나에게 부딪친다.


그런데 앞서 세가지 논의 가운데 모나리자의 눈썹이 지워졌다고 주장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눈썹만이 없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다." 나로서는 그런 발언 자체가 정말로 아름답지 못한 말이라고 생각되지만, 어쨌든 그의 말대로라면 눈썹이 없는 삶은 이치에 맞지 않는 삶인데, 이치에 맞지 않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한하운은 인환의 거리를 그리워하며 서러운 생명에 대하여 노래해야만 했다.


이제 나는 생각한다. 눈썹을 그려넣는 것이 사랑의 완성이었다면, 서러운 생명을 노래하는 것도 사랑의 완성이었구나. 그러니까, 그렇게 이치에 맞지 않아서. 그런데, 도무지가 삶이라는 게 이치에 맞는 것이었던가? 이치에 맞게 모나리자를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란 정말 쓸쓸하겠구나 생각하고 만다. 한하운 역시 그런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살다가, 이제는 파랑새가 되어 날아갔으니 그 또한 이제 우리 손으로는 잡을 수 없는 불후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치에 맞는 삶을 꿈꾸는 이들이 눈썹의 부재를 이해할 수 없듯이, 문둥이가 아닌 사람이 문둥이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데, 끝끝내 눈썹을 심지 않은 한하운이 자꾸만 내 마음에 걸린다. 어쩔 수가 없다. 조락하는 낙엽을 휘몰아온 바람이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부딪치므로. 그렇게 우리 모두는 서러운 생명이니까. 그걸 모르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이렇게 외로운 것이구나.

간밤에 얼어서
손가락이 한 마디
머리를 긁다가 땅 위에 떨어진다.

이 뼈 한 마디 살 한 점
옷깃을 찢어서 아깝게 싼다.
하얀 붕대로 덧싸서 주머니에 넣어둔다.

날이 따스해지면
남산 어느 양지터를 가려서
깊이 깊이 땅 파고 묻어야겠다.

           - <손가락 한마디>, 한하운

그러니까 그는, 더이상 슬프지도 부끄럽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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