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뒤흔드는 소설
그녀는 말했다.
“‘프랑스 중위의 여자’에서 그 프랑스 중위와 붙어먹은 여자, 사라 우드러프는 이렇게 말해. 나의 행복은 내가 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 있는 것 같다고.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이해하기 전과 이해하고 난 뒤에는 다른 인간이 되는 것일까? 우리는 그 뒤에도 같은 존재로 서로에게 남아있을까?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두 사람이 서로를 다시 사랑할 확률은 대체 얼마나 될까? 말해봐. 거꾸로 더 이상 우리가 서로에게 던질 질문이 남아있지 않다면? 어서 말해봐. 이 질문이 끝나 버리면 모든 게 끝이니까. 어서 말해봐, 어서.”
그녀의 이야기는, 즉 모든 것이 상상력의 문제라는 것이었다.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내 안에서 그 모든 이야기가 되지 못한 파편들을 끌어올려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것 뿐인데, 그것은 일종의 무모한 환상이며 어느 정도 자기 자신부터 속일 수 밖에 없는 거짓말이기도 하다. 피터 에크로이드의 <어느 시인의 죽음>에서 괴팍한 여류 작가 해리엇이 그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자신이 아니라 타인의 상상력에 맡기는 것은 이런 믿음을 극단으로 밀고 나간 예이다. 그녀의 말대로 그 모든 것들은 "분명히 무슨 관련이 있을 거야. 그러나 내가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은 우리가 처한 현실의 문제이면서, 뒤집으면 상상력의 문제였다. 러셸 셔먼은 <피아노 이야기>에 이렇게 적었다. "상상력이 없으면 기교도 있을 수 없다. 기능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서는 인간의 개념적 정의에 대한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린다. 그 때 우리는 하나의 기능이 된다. 그러니 그 기능을 벗어나 어떻게든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곧 상상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미 어린 나이에 이스탄불이라는 흑백으로된 삶의 공간에서 이 거리 어딘가에 존재할 또 다른 '오르한'을 상상했던 오르한 파묵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저택들은 불타고 허물어졌으며, 문화는 단순화되고 불완전해졌고, 집 안은 존재하지 않는 어떤 문화의 박물관처럼 정렬되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서서히 나의 내면에 영향을 미친 이 모든 이상함과 슬픔을 나는 답답함과 침울함으로 어린 시절에 경험하게 되었다. 도시 안에 파묻힌, 도무지 빠져나갈 수 없었던 슬픔의 느낌은, 마치 할머니가 무의식중에 슬리퍼 발끝으로 박자를 맞추며 '터키' 음악을 듣는 것을 보며 느꼈던 것처럼, 치명적인 권태에 휩싸이고 싶지 않으면 상상의 세계로 가야 한다는 것을 환기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가 자신의 삶에 대하여 자칫 잘못하면 거짓말이 될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이야기를 짜맞추는 것은 아니다. 살만 루시디는 이렇게 적었다.
"자신을 발명하는 자는 자신을 믿어줄 사람을 필요로 한다."
"남이 자신을 믿어줄 뿐 아니라 자신도 남을 믿어야 하는 것."
"바로 맞췄다. 사랑이다."
다시 이야기는 그녀와의 대화로 되돌아갈 수 밖에 없다. 그리하여 나는 상상한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서로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남아있으며, 그녀가 나의 이야기를, 내가 그녀의 이야기를 믿을 수 있는 그 순간을. 흔한 인식과 달리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충분히 긴 시간이며 앞으로의 미래를 예상할 수는 없기에, 아무래도 우리는 계속해서 살아갈 수 밖에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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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그러므로 인간이 스스로 삶을 포기한다는 것은 이런 관점에서 더이상 상상할 힘이 남아 있지 않다는 이야기랍니다. 수잔 손택은 "극장에서는 오직 진실만이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더 고차원의 진실이 있었다. 연극에서 연기를 할 때, 위대한 연극의 배우로 있을 때, 실제 자기 자신보다 훨씬 더 나은 인간이 되었다."라고 적었는데, 우리는 실제의 최'진실'보다 나은 브라운관의 그녀 '고차원의 진실'을 실제의 그녀라고 착각하고 있었으니, 그녀의 자살을 완전히 이해하는 일은, 그녀의 상상이 멈추어버린 지점에 대하여 상상하는 일은 우리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답니다. 신문지상이나 인터넷상에 어떤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나오더라도, 이미 그 자신이 가장 '고차원의 진실'을 연기해버린 한 배우에 대하여 그녀보다 '더 고차원의 진실'을 말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거짓말이 될 수 밖에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