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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김애란 作

9개 단편소설집. 달려라, 아비_나는 편의점에 간다_스카이 콩콩_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_영원한 화자_사랑의 인사_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_종이 물고기_노크하지 않는 집

그녀를 어떻게 부르면 좋을까?
나는 그녀를 '삶의 세밀화가'라고 부르고 싶다. 편의점에 가는 행위, 잠 못 드는 일, 동창과의 우연한 만남, 하숙 생활 등 일상 생활에 얽힌 미묘한 감정들은 세밀하게 잡아내며 묘사하고 있어, 공감을 이끌어 내는 한 편, 일탈의 기쁨을 느끼게 한다.

또한 그녀의 작품들 속에서 몇 가지 특징을 잡아 내자면, 아래의 세 가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다. 모든 작품에서 느껴지는 것은 아니며, 몇 몇 작품들에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아버지의 부재
아버지는 어디로 갔을까? 작품 속의 아버지는 이미 사라졌거나, 혹은 사라지거나, 사라졌다가 나타나거나, 나타나도 초라한 행색이거나.. 아버지는 아버지다운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다. 무능하고, 초로한 아저씨에 불과했다.

달려라 아비_어느날, 어머니는 임신을 했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부풀어오르는 배를 보고 얼굴이 점점 하얘지다가, 아버지가 되기 전날 집을 나가 그후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_그녀의 아버지는 며칠 전, 어디서 났는지 어울리지도 않는 빨간 이스트팩 하나를 맨 채 그녀 앞에 나타났다. … 다만 변한 것이 있다면, 그녀가 상상하던 아버지의 하반신이 그녀가 없는 사이 그곳에서 뿌리째 걸어나갔다는 것 뿐이었다.

사랑의 인사_순간 나는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나는 버림받았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순하고 모호한 문장, 먼 곳에서 수백년 전 출발해 이제 막 내 고막 안에 도착하는 휘파람 소리, '아빠가 사라졌다'는 말이었다.

감추지 않는 성性
작가는 성을 감추려하지 않는다. 감추려하지 않고, 주목시키려 하지도 않는다. 그냥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잠이 오지 않아 떠오르기도 하고, 끝없이 말하다 불쑥 나오기도 하고, 회상하다 떠오르기도 한다. 그래서 그냥 그렇구나 할 뿐이다.

달려라 아비_그러자 어머니도 아버지가 가여운 생각이 들었고, 어쩌면 그 날만은 '평생 이 남자의 하중을 견디며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몰랐다.

나는 편의점에 간다_그러던 내가 패밀리마트에 가지 않게 된 건, 어느날 콘돔 한갑을 계산대 앞에 내민 내게 그녀가 주민등록증을 요구하고 나서부터다.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_그러던 어느날 그녀에게도 그녀를 쫓아다니는 남자친구가 생겼고, 여차저차해서 그녀는 자기가 무엇을 입고 있는지도 잊은 채 몸을 맡겼던 것이다.

영원한 화자_"더이상 욕망이 없는 사람이 지는 거다?" … 한참후 그는 너와 잘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참 후 나도 너와 잘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종이물고기_삼양라면 한개를 옆구리에 끼고 퇴근하던 그의 아버지가 시골에서 올라온 그의 어머니를 보고 놀라 한참을 서 있다가, 말없이 돌아나가 라면 한개를 더 사가지고 돌아오던 날 이후, 그는 그렇게 생떼를 쓰듯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노크하지 않는 집_물론 이곳에도 얼굴 없는 사건들이 일어난다. 가령 몇번 방 아가씨가 어제 울었다든가, 몇번 방 여자가 세탁기를 쓴 뒤에는 항상 양말 한짝이 남는다든가, 몇번 방 여자는 남자를 자주 들인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 커다란 옷들은 보풀이 일어난 채 건조대에 피로하게 걸쳐져 있었고, 늙은 팬티 앞면엔 하나같이 누르스름한 얼룩이 배어 있었다. 갑자기 '여자에게는 애인이 없다'는 생긱이 들었다.

선언적 시작
한 문단만으로 소설 한 편을 완성시킨다면? 나머지 문단에 맞먹는 힘을 가진 그녀의 첫 문단. 작가는 간략하며 인상적인 첫 문단으로 소설을 시작한다.

달려라, 아비_내가 씨앗보다 작은 자궁을 가진 태아였을 때, 나는 내 안의 그 작은 어둠이 무서워 자주 울었다. 그러니까 내가 아주 작았던 시절-조글조글한 주름과, 작고 빨리 뛰는 심장을 가지고 있었던 때 말이다. 그때 나의 몸은 말(言)을 몰라서 어제도 내일도 갖고 있지 않았다.

나는 편의점에 간다_나는 편의점에 간다. 많게는 하루에 몇번, 적게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 나는 편의점에 간다. 그러므로 그사이, 내겐 반드시 무언가 필요해진다.

영원한 화자_나는 내가 어떤 인가인가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가를 알기 위해 내 이름을 부르면 대답하는 사람, 그러나 그것이 내 이름인 것이 이상하여 자꾸만 당신의 이름을 불러보는 사람이다.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_바람이 많이 불던 밤이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무엇이든 묻고 싶은 밤. 뭐라도 묻지 않으면 누군가 굉장히 어려운 질문을 해올 것만 같은-그날은 그런 바람이 불던 밤이었다. 

인상 깊었던 장면_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_누군가 아버지의 (모래) 성기에 기다란 불꽃 놀이 막대를 꽂는다. 그러곤 그곳에 라이터로 불을 붙인다. 아버지가 놀란 눈으로 자신의 아랫도리를 바라보는 동안 친구들은 하나, 둘, 셋을 외친다. 심지를 타고 조급하게 타들어가는 불꽃이 피유우웅-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펑! 펑! 활짝 피는 불꽃들이 아름답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거대한 성기에서 나온 불꽃들이 민들레씨처럼 밤하늘로 퍼져나갔을 때, 아버지의 반짝이는 씨앗들이 고독한 우주로 멀리멀리 방사(放赦)되었을 때. "바로 그때 네가 태어난 거다."

이처럼 탄생비화를 아름답게 묘사할 수 있을까? 물론 그 말을 듣고 아들은 "거짓말" 이라고 했을 뿐이지만.

김애란, 앞으로 더 많은 작품을 기대해야겠다. 이 작품이 그녀의 정점이 아니길. 더 많은 무수한 일상 생활을 경험하기를, 그리고 그녀의 세필을 들어 묘사해 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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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 - TBWA KOREA가 청바지를 분석하다
TBWA KOREA 지음 / 알마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옷에 대한 관심이 없는 내게 벼락처럼 떨어진 책이었다. 청바지라니. 청바지의 무엇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거지? 호기심이 동했다. 도발적인 제목, 역시 광고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의 글 답다. 내용역시 굉장히 비주얼하고 글은 짤막했다.

이 책은 청바지를 읽으라는 TBWA 코리아 대표의 주문에 대한 일곱 명 신입사원의 답이다.
그들은 청바지를 통해 세상을 읽는다. 적절히 가볍고, 적당히 호기심을 자극한다.


청바지가 태어났다. ……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으로 통칭되는 포드의 대량 생산 방식을 받아들였고, ……
팍스아메리카나의 시작이었다.……
양적인 번식에 성공한 청바지는 질적인 번식을 시도한다.……
보보스들은 적합한 숙주였다.……
우선 각종 드레스코드를 허물었다. 비즈니스 석상이나 심지어 국가원수간의 만남에도 등장했다.

가장 먼저 궁금해진 것은 보보스였다. 읽고 싶은 책 중에《보보스, 디지털 시대의 엘리트》라는 책이 있기는 했지만, 보보스에 대해서는 잘 모르던 터였다. 보보스는 한 계층을 의미한다.


보보스는 부르주아 Bourgeois와 보헤미안 Bohemian이 결합된 용어로서 부르주아는 기득권을 상징하며 보헤미안은 그와 반대되는 자유주의를 상징한다. ……

돈을 가치있게 여기지 않지만 돈은 많고, 예술과 지성을 숭상하지만 상거래 속에 매몰되어 살고 있으며, 엘리트주의에 반대하면서 자란 엘리트다. 풍요로우면서도 물질주의에 반대하며, 무언가를 팔면서 삶을 영위할 수도 있지만 자신들이 팔리는 것은 싫어한다. 반기득권적인 태도를 취하지만 이미 자신들이 새로운 기득권 계층이 되었음을 감지하고 있다. ……

부자이면서도 욕심쟁이가 아니며, 윗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면서도 비위를 맞추지는 않는다. 사회의 상층부에 도달했으면서도 아랫사람들을 경멸하지 않고, 세속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면서도 사회적 평등이라는 이상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풍요로운 삶을 살면서도 과도한 소비는 피하려고 한다.
《보보스, 디지털 시대의 엘리트》중에서

 

그리고 그 보보스가 선택한 옷, 바로 청바지. 그래서 청바지는 작업에 편한 바지로 탄생한 이후,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패션 아이콘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20만원이 넘는 고가의 프리미엄진이 탄생한다.

이 책을 읽고 내가 가진 청바지를 살펴보았다. 한 벌은 리바이스에서 나온 바지였다.

 

 

태초에 리바이스가 있었다. 리바이스가 랭글러와 리를 낳고, 랭글러와 리가 조다쉬와 캘빈 클라인과 베르사체 진을 낳았다. 이윽고 시장의 신비스러운 힘에 의해 장식 하나 없던 '작업용 바지'가 프롤레타리아의 뿌리를 벗고 뭉게구름 가득한 나라의 대표주자가 되었다.
《갖고 싶은 게 너무나 많은 인생을 위하여, 이충걸》


랭글러니 리니 하는 상표들은 모르지만 리바이스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청바지가 질긴 천막용 천에서 만들어졌으며, 그 사람이 바로 리바이 스트라우스라는 것이었다. 또한 위 사진에서 보다시피 바지 뒤에 붙은 라벨의 그림은 말 두팔이 양쪽으로 잡아당겨도 끄떡하지 않을 만큼 내구성이 강하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으며, 내가 가지고 있는 청바지는 리바이스의 대표 상품인 501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청바지는 진의 맞춤복이라 불리며 이탈리아에서 전 품목 생산되는 고가의 브랜드인 '디젤'의 짝퉁이었다. 방콕의 카오산 로드에서 싸게 산 바지였는데, 그땐 몰랐는데 이제서야 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처박아 두고, 입지도 않았던 바지도 꺼내 보았다. 그런데 이번 바지는 웬걸, 캘빈 클라인이었다. 이거는 내가 산 기억조차 없기 때문에 아마도 동생이 길거리에서 사오지 않았나 싶다.

 

 

나와 나의 캘빈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 캘빈 클라인 광고 카피, 모델 브룩 쉴즈 -


누드, 섹스, 동성애 등 도발적인 소재를 담아 온 캘빈 클라인다운 광고였으며, 이 광고 후 너무 선정적이라는 항의 세례를 받았으나, 아이러니컬하게 1주일 만에 40만장이 팔려나갔다고 한다.

나에게 청바지는 그냥 편하게 입는 바지였을 뿐인데, 이 책은 내게 청바지에 관한 다양한 시각을 열어주었다.


나는 갑자기 일자형의 청바지를 입고 있는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인간의 마음은 청바지의 여러가지 디자인만큼이나 복잡한 것이니까.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그리고 나 역시 리바이스 501진을 입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청바지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나보다.

PS.
이 책을 다 읽고 가장 먼저 찾아본 것은 "데님"이었다. "데님"을 모르는 사람은 나 밖에 없는 걸까? 데님에 대한 설명이 나오길 기다렸지만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데님에 대한 설명은 나오지 않았다. 청바지를 만드는 재료라는데..

PS 2.
이 책에서는 신세계 백화점의 청바지 구입 연령 자료가 두 번 인용되는데, 첫 번째 인용(p.156)에서는 2000년 0퍼센트였던 50대가 2007년 18.2퍼센트로 뛰었다고 나온다. 설마 0퍼센트였을까 싶었는데, 두 번째 인용(p.204)에서는 2000년 50대의 청바지 구입률 11퍼센트라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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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역사 앞에서 인물로 읽는 한국사 (김영사) 10
이이화 지음 / 김영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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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를 현재의 모습에서만 바로본다면 우리나라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날아가는 공의 찰나의 시간을 사진을 붙잡아 놓고, 이 공이 어디로 갈 것인가 묻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의 현재는 멈춰진 공이 아니다. 우리는 프레임 속에 갇힌 사회가 아닌 활동 사진 속에 담긴 사회를 바라보아야 한다.

이이화의 인물로 읽는 한국사 10번째권, 끝나지 않은 역사앞에서는 일제시대부터 해방전후로 활동한 정치가들을 통해 우리가 걸어온 길을 살피고 있다. 북한, 김일성, 김정일에 대해 전혀 교육을 받지 못하고, 아예 무관심으로 북한을 대하는 오늘의 시대에 북한의 최초 권력자 김일성에 대해 잘한 것은 잘한 대로 못한 것은 못한 대로 사실적으로 쓴 책을 만났다는 것에 감사했다.

박정희나 이승만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었지만, 김일성에 대해서는 아는 게 이름 외에는 거의 없었고, 신익회, 조병옥, 조봉암, 장면, 김두봉, 허헌, 백남운은 아예 생소한 사람들이었다. 이 책을 통해 내가 이승만에 대해 느낀 감정을 옮겨보자면,

이승만 대통령,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 터무니없는 헛소리이다.
이승만은 세종대왕의 큰형이었던 양녕대군의 후손이었다. 무너진 조선왕조를 대신해 세워진 민주주의 국가에서 태조(이성계)-태종(이방원)-양녕대군을 잇는 그 후손이 첫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승만의 출세는 영어실력과 미국에서 받은 박사학위로 요약된다.

이승만은 어떤 사람이었나?

그는 강연이나 기고 또는 기자의 인터뷰에서 "조선이 병합된 뒤에 눈부시게 발전했다"거나 "나는 조선 안에서나 하와이에서나 혁명을 획책할 생각은 없다"는 말을 하면서 일본과 무력투쟁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토로했다.

1908년, 대한제국의 외교 고문을 지낸 스티븐스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본이 조선을 보호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말을 신문에 실었다가, 공립협회 회원 장인환의 저격을 받고 숨졌다. 그런데 장인환의 법정 통역을 이승만에게 부탁하자, 이승만은 "기독교도로서 살인자를 도울 수 없다"고 거절해 많은 비난을 받았다.

3.1운동 후 서재필, 이승만 등은 이해 4월 14일부터 사흘 동안 필라델피아에서 한국인 대표자대회를 열고 한국 독립을 선언하고 자유민주국가의 수립을 다짐했다. 이승만은 한성정부에서 자신을 집정관 총재로 추대했다는 소식을 듣고, '임시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쓰면서 미국 외교가를 누볐다. 이에 안창호가 임시정부는 국무총리제이니 임시대통령이라는 호칭을 쓰지 말라는 전보를 보냈고, 이승만은 "독립운동에 방해가 되는 떠들지 마시오"라는 회진을 보냈다.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추대한 일로 임시정부는 초기부터 내분에 휩쓸렸다. 박용만은 이승만과 함꼐 일할 수 없다 하여 처음부터 참여를 거부했고, 이동휘, 신채호 등은 이승만이 위임통치론을 주장한 인물이라 하여 맹렬히 비난했다. 그는 이완용은 존재하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나라를 찾기도 전에 팔아먹었으니, 이승만은 이완용보다 더 큰 역적이라고 매도했다.

1934년 서양 여인과의 재혼. 당시 이승만은 59세, 오스트리아 비엔나 출신 프란체스카는 34세였다.

1945년 10월 12일, 임시정부의 미주 대표 자격으로 김구 등 중국의 임시정부 일행보다 한 발 앞서 귀국했다. … 그는 동경에서 맥아더와 만나 회담을 가졌다. 이 때 맥아더는 이승만의 반공, 반소 노선을 확인했다. 그는 이승만에게 절대적 신임을 보였으며 사실상 한국 대통령 자리를 보장받았다. … 미군정은 임시정부 요인들 곧 김구, 김규식, 조소앙, 김원봉 등에게 개인 자격으로 귀국하게 해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유엔의 감시 아래,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선거를 실시하게 되었다. 이승만은 물론 북한이 정부 수립을 준비하는 마당에서 이를 적극 지지했고, 김일성의 제안으로 1948년 4월 평양에서 개최된 하나의 정부 수립을 위한 남북협상도 비난하고 나섰다. … 이승만은 국회의 간접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 과정에서 여운형, 송진우, 장덕수, 김구가 차례로 암살되었다. 그 진상은 지금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이승만은 입만 열면 북진통일을 외쳤다. 한국전쟁이 벌어졌을 때, 이승만은 국군이 북진하고 있으니 국민은 안심하라고 방송을 하고 자신은 대전으로, 부산으로 허겁지겁 피난을 떠났다. 그러는 과정에서 연합군(미군)에게 전시작전통제권을 넘겨주었다. 이 군사권의 포기는 자주국가가 되기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세상에서는 이승만을 두고 "외교에는 귀신, 내정에는 병신, 인사에는 등신"이라는 말들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그는 아첨꾼이나 친일파들을 고위직에 등용했다. 신성모는 공식으로 만나는 자리에서도 큰절을 올리면서 말끝마다 눈물을 뚝뚝 흐렸다. 그래서 그를 두고 낙루장관이라 불렀다. 최인규는 이승만의 말이 떨어질 때마다 "지당하십니다"를 연발하여 지당장관이라 불렀다. 이익흥은 이승만이 방귀를 끼자 "시워하시겠습니다"라고 말해 유행어를 만들어 냈다.

국가보안법은 여순사건의 발발을 계기로 탄생했다. 당시 내무부 장관 윤치영은 경찰이 영장 없이 반란군을 체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고, … 1948년 11월 국가보안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 끝내 이해 11월 20일 통과되었다.

1954년 11월 27일 초대 대통령에 한해 연임을 허용하는 개헌안 표결. 표결 결과, 제적 203명, 재석 202명인데, 가표가 135표. 최순주 부의장은 3분의 2에 1표가 부족하다고 해서 부결에 방망이를 때렸다. … (그 결과를 듣고) 이승만은 미리 알고 있다는 듯 이렇게 대꾸했다. "이 사람들아, 통과된 것이야. 사사오입해야 하지 않나!" 곧 203의 3분의 2는 135.333 인데, 이를 반올림하면 135명이므로 통과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개헌 후 선거에서) 정치깡패들이 난동을 부렸고, 반이승만 언론인 경향신문을 폐간시켰고, 조봉암을 간첩으로 조작해 사형을 집행했다.

1960년 3.15 부정선거에서 이승만, 이기붕의 지지표가 95~99퍼센트에 이르렀다. 부정선거를 지휘한 자들도 어처구니없고 황당한 계표에 당황했다 한다. 최인규는 이승만 88.7퍼센트, 이기붕 79퍼센트로 조정해 발표했다.

《끝나지 않은 역사 앞에서, 이이화》


이승만은 1960년 4.19 혁명에 의해 하야한 후, 미국으로 망명, 하와이에서 90세의 나이에 죽었다.

과연, 민주주의의 절차를 훼손하고 권력에 눈이 먼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떠받들 수 있을까? 이명박 정부가 광복절은 뒷전으로 밀어내고 이승만을 국부로 하는 건국 60주년을 전면에 내세워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왜곡하는 처사를 벌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뉴라이트는 이승만을 대한민국을 수립한 건국의 아버지, 김구는 남북협상을 추구한 건국의 방해자, 친일파와 일본은 식민지 근대화의 공헌자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승만을 옹호하여 친일파, 지주세력을 등장시키고 남북협상파, 독립투쟁세력을 역사의 대열에서 패기 처분하기 위함이라고 역사학자 이이화는 주장한다.

또한, 박정희 정권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바도 이이화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박정희 정권의 경제 정책은 그의 독재와 구분되어 평가되어야 한다. 그의 경제정책이 성공적이었다고 그의 독재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러면에서 오직 경제만 믿고, 도덕성 제로의 MB를 뽑은 것은 지독한 역설이다)

또한 박정희 정권의 경제 정책이 그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것이었을까 생각해봐야 한다. 누군가 이룬 업적에 대해, 훗날 그의 업적을 보며, 그걸 누가 못해 하고 평가 절하하기는 쉽다고 반박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사람에게는 다시 한 번 물어봐야 한다. 그러면 당신은 박정희 정권이 군부 독재를 시작할 때, 한국 경제을 성장시킬거라는 것을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느냐고. (MB역시 경제만 믿고 뽑은 대통령이지만, 한국 경제는 엉망이 되었다.)

즉, 박정희 정권의 시작은 경제를 담보에 건 독재가 아니라, 경제를 생각하기 이전 권력욕에 눈이 먼 독재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리고 한국 경제가 발전한 것은 독재의 결과가 아니라, 경제 정책의 결과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끝으로, 나는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허헌이라는 인물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어졌다. 법률가로 독립운동가들을 돕고, 독립운동을 몸소 실천한 존경스러운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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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란 무엇인가 - 최민식, 사진을 말한다
최민식 지음 / 현실문화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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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는 일은쉽다. 그러나 누가 나에게 사진을 왜 찍는가 혹은 사진이란 무엇인가 하고 묻는다면, "머...", "그냥..", "재미로.." 등으로 대충 대답하고 말 것이다.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 작가는 스스로에게 과감하게 사진이란 무엇인가 묻는다. 그것은 작가가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일 수도 있다.

이러한 본질적인 물음을 던지는 책의 제목은 작가의 역량을 반증하고 있다. 누구도, 쉽게 근원적인 물음에 대답할 수 없으며 그런 질문을 가지고 책 한권을 쓴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작가도 이곳 저곳에서 비슷한 말을 되풀이 하지만 50년 한 길을 걸어 온 작가의 마음만큼은 고스란히 전해진다.

작가가 말하는 것은 색채, 형태, 구도 등의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집착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삶과 함께 호흡하며 내면을 담아내어 서민들을 대변하고, 시대에 진실을 알리는 힘을 지닐 것을 말한다. 그래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찰나의 거장,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다. 「결정적 순간」이란 사진집으로 널리 알려진 브레송은 자신의 사진을 연출하지 않은 것, 트리밍하지 않을 것을 원칙으로 하며, '빛과 구도와 감정이 일치된 순간에 셔터를 누르는 것을 작품활동의 기본'으로 했다. 그는 물리적인 순간만을 의도한 게 아니라 '내용과 형식이 일치된 순간', '대상(피사체)과 자신이 일치된 순간'을 기다려 촬영했다.

작가는 찰나의 순간으로 이 시대를 담고자 했다. 찰나의 순간으로 영원을 담으려는 무모함이 사진에 매료되게 하는 매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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