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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불안 - 더는 불안이 불안하지 않다
커티스 창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3년 10월
평점 :
이 땅에서 호흡하며 살아가는 한, 우리 사람은 불안이란 요소와 멀어질 수가 없을 것이다.
크든 작은 언제나 우리 삶에는 불안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현재를 살기 때문이다. 미래는 아직 살아보지 못한 시간이며 불분명한 미래는 우리에게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코로나 팬더믹 이후, 우리는 사람의 무능력함을 처절하게 느겼고 생명의 위협, 관계의 단절, 생업의 위협 등 수많운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며 괴로워했다.
그러한 크고 갑작스런 팬더믹이 아니라 할지라도 내일 당장 무엇을 입을까, 먹을까, 염려하는 게 우리 사람이란 존재들이다.
<<안녕, 불안>> 은 이러한 우리들에게 불안을 그저 없애버려할 정서로 말하지 않는다. 저자는 말한다. 불안은 죄가 아니다. 임박한 상실에 대한 자연스로운 인간반응이라고. 저자는 우리의 불안을 충분히 이해하고 남을 만큼 저자 커티스 창은 고기능성 불안장애로 고통의 삶을 경험했고 결국에는 교회 목회자 사역을 사임하게 될 만큼 불안은 그 인생에 커다란 걸림돌이었다. 그러나 그가 불안을 다루고 치료하고 마주하면서 상실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불안에 대한 공식으로 우리에게 도전을 준다.
옛공식: 불안=상실×피하기
“벗어나기 습관은 고무공을 계속해서 멀리 던지는 것과도 같다. 그럴 때마다 상실이 벽에 맞고 튀어서 우리에게로 다시 돌아온다. 맴돍 습관은 반죽 덩이리 공의 끈적임을 없앨 방법을 찾으며 계속해서 빙빙 돌리는 것과도 같다. 물론 그것은 헛수고일 뿐이다. 공을 돌릴 때마다 상실이 우리에게 점점 더 들러붙는다.”(p.284-285)
예수님의 부활 후 새로운 공식: 불안=상실÷부여잡기
“예수님은 모든 상실 중의 상실 속으로 들어가, 잃은 것을 손에 들고서 반대편에서 나오셨다. 그분과 그분의 길을 부여잡으면 우리도 잃은 것을 되찾는다. 아니 그 이상으로 얻게 된다.”(p.264)
‘피하기’는 상실을 배가시키는 곱하기 효과를 일으키는 반면, ‘부여잡기’는 상실을 줄이는 나누기 효과를 낳는다. 부활의 핵심 약속(잃은 것을 되찾는다)을 부여잡을수록 상실의 힘이 줄어든다.(p.265-266)
11,12,13장에 집중적으로 거론된 부활소망에 대한 내용들은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더욱 집중해서 읽고 하늘나라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새로이 함으로 죽음 이후의 부활소망을 더욱 견고히 하여 다시 지금 이 땅에서의 삶을 당당히 살아가게 할 귀한 내용들이 담겨져 있다.
저자는 불안을 충분히 줄인 상태에서만이 주님이 주신 소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불안의 수준과 상관없이 주님의 부르심 가운데 행동으로 반응할 때, 우리는 주님과 동행하며 그 길에서 마주할 불안이 우리를 더욱 영적 성장으로 인도 하며 예수닮아 갈 수 있다고 도전한다.우리의 불안마저도 선하게 사용하셔서 하나님을 만나고 닮아가는 기회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