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재원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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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사이비 종교라 해도 그걸로 전 세계 사람이 구원받는다면 그건 진실이 되는 거야.❞ (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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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재원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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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편의 단편과 에세이 두 편이 실렸다.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표제작인 <신앙>이다. 사이비 종교를 만들어 한몫 잡으려는 인물과 그를 의심하면서 서서히 동조하게 되는 다른 인물을 통해 종교(믿음)의 본질을 살핀다. 누군가 마음의 평화와 구원을 얻는다면 사이비라도 상관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은 위험해 보이나, 사실을 알고 보면 거대 종교 역시 사이비의 성질을 갖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일상에서 우리가 누리는 모든 취향, 물질에 대한 애호의 속성 역시 (사이비) 종교가 사람들을 세뇌시키는 것과 비슷하다는 작가의 주장에도 공감이 간다. 틀에 박힌 사고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기발한 전개, 아이러니 가득해 어이없는 웃음이 절로 터지는 결말이 인상적이다. 기회가 된다면 이 작품만은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편의를 위해 가전제품을 구매하듯이 자신과 똑같은 ‘클론’을 돈 주고 살 수 있는 어느 미래. 가사 노동과 경제 활동, 기타 목적으로 클론들을 구입한 주인공이 자신의 고유한 인격을 서서히 잃어 가고 있는 과정을 그린 <쓰지 않은 소설>도 꽤 독특한 감상을 남긴다. 기계로 대체된 사회에서 고유성을 잃고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니게 되는 주인공의 모습은 인간의 육체는 물론 정신까지 지배하는 외계 생물체의 위협을 그린 영화 ≪Body Snatcher≫를 생각나게 한다. 인간이 인간임을 확인받는 요소는 무엇일까, 에 대한 주제로 토론을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

그 밖에 수단이 목적을 앞서는 주객전도된 미래를 그린 <생존율>, 대체 가정을 꿈꾸는 세 여성의 이야기인 <토맥윤기>, 무개성, 몰개성이 일반화된 획일된 모습의 미래를 그린 <컬처쇼크>, 예술의 위대함과 영원성을 이야기한 <마지막 전시회> 등의 소설 작품이 실렸다.

나머지 두 작품은 에세이인데, <기분 좋음이라는 죄>에서는 개성과 다양성을 강조하면서 ‘무리에 섞일 정도만’을 요구하는 이율배반적인 주류 사회에 대한 작가의 경험이 들린다. 조금이라도 튀면 ‘비웃음을 당하고 캐릭터화 되고 라벨링을 당하는(126쪽)’ 일은 비단 일본 사회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무리 없이, 거부당하지 않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 개성, 다양함’이란 존재하는지,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자면서 가차 없이 제시되는 대중의 ‘이중 잣대’에 대해서도 사회는 고민해야 한다.

<그들의 혹성에 돌아가는 일>은 어릴 적, 주변과의 불화를 극복하게 해 준 어릴 적 상상의 친구에 대한 작가의 경험이 보인다. ‘상상 친구’의 경험은 작가들에게 거의 공통된 기억으로 보이는데, 내향형 인간의 전형적인 특징이라고 한다. 이야기를 짓고 글을 쓰는 일이 ‘내향형’의 인간에게 특화된 건 아닐지라도 좀 더 그들에게 유리한 일은 아닐지, 근거 없는 상상을 해본다.

대부분의 작품이 SF의 성격을 갖는다. 작가의 문학적 지향점을 짐작할 수 있다. 통통 튀는 상상력이 좋았다. 대부분의 작품이 짧다. 간략한 분량 안에서 할 말 다 하고 있으니 굉장히 효율적이고 이야기 집약적이다. 낭비가 없다는 건 좋은 작가의 덕목 중 하나이다.

사족.

<컬처쇼크>을 읽으면서 기시감이 들어서, 뭐지, 했는데, 생각해 보니, ‘박지리’ 작가가 ≪다윈 영의 악의 기원≫에서 보여준 사회와 꽤 비슷하다. 미래에 대한 상상은 누구나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하게 하고 있는 걸 보면, 현재에 대한 인식도 국가와 인종을 막론하고 서로 비슷한 구석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미래의 상상은 현재의 반영이니 사람들 사는 모습은 국경 너머 어디든 똑같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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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나팔 제안들 33
리어노라 캐링턴 지음, 이지원 옮김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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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얼어 죽기를 바라자. 권위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는 게 인간한테 훨씬 좋고 건강할 거라고 확신해.❞ (215쪽)

❝여긴 지옥이야. 그렇지만 지옥은 그냥 용어의 한 형태일 뿐이야. 사실은 여기는 모든 것이 유래하는 세계의 자궁이지.❞ (2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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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나팔 제안들 33
리어노라 캐링턴 지음, 이지원 옮김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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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92세의 ‘메리언’. 스스로를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존재, 생명체가 아닌 사물로 인식하고 있는 그녀는 아들 내외와 함께 살고 있다. 어느 날 활달하고 매우 부유한 친구 ‘카르멜라’가 방문하고 메리언에게 ‘귀나팔’을 선물한다. 잘 들리지 않아 애를 먹던 메리언에게 아주 유용한 선물이었던 것. 하지만 메리언은 듣고 싶지 않은, 굳이 듣지 않아도 될 말을 듣게 된다. 아들 내외가 자신을 노인 요양 시설에 보내기로 작당하고 있었다.

이야기는 진행할수록 진화를 거듭한다. ‘노인’, 특히 ‘여자 노인’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 이야기는 계급의 이야기로 방향을 틀었다가 살인 사건이 한 건 터지더니 정치의 아이러니, 지구와 생태, 환경 문제로 거듭나다가 마녀와 흑마술이 나오고 세기말 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급기야는 늑대 인간이 등장하기에 이른다.

한 마디로 정신없다. 메리언의 주변 모습 아래로 여러 갈래의 서사가 (그다지 일관성도 없이) 동시에 진행하는데, 줄거리를 간략하게나마 약술하는 것이 곤란할 지경이다. 그런데 수상쩍게도 꽤 흡인력이 좋다.

독자의 정신머리를 쏙 빼놓는 서사 진행에 독특한 이미지들이 강하게 남는다. 한 폭의 상상화 같기도 악몽 같기도 하다. 모든 무대, 장소, 인물들의 잔상이 강하다.
내 경우엔, 이야기를 즐기기보다 이런 이미지의 홍수, 작가의 상상력을 즐겼다. 이야기로 말하자면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어떤 이슈에 자극받아 이런 작품을 썼는지 상상하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다.
이야기는 정치를 거부하고 인간과 지구의 ‘자연다움’을 지향한다.

결말에서 세상은 갱생하고 부활한다. 온갖 잡다한 것들은 죄다 쓸려가고 사라진다. 필요한 것들만 남는다. 그것들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세상에. 늑대인간이라니…), 우리가 갖는 희망의 상징처럼 보인다.

동화와 신화적인 요소들을 적극 수용한 폭발하는 상상력이 놀랍다. 주술과 마법이 난무하는 신비롭고 동화적인 분위기가 주를 이루고, 작가의 자연친화적이고 염세적인 세계관이 난무한다. 한 폭의 지옥도, 혹은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주제로 한 상상화를 보는 것 같은 작품이다.



읽으면서 번역이 참 잘 됐다,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러다가 내가 번역에 대해 아는 게 뭐가 있지? 했다가, 그럼에도 번역 소설을 읽다 보면 번역자가 번역은 하지 않고 해석을 하고 있네, 라고 불평하거나, 이건 문장이 너무 이상해, 의심하거나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투덜거린 경험을 떠올리면, 외국어에 능통하지 않아도 결과물로 번역자의 실력을 독자가 가늠하는 게 아주 불가능한, 해서는 안 되는 일은 아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더랬다.
아무튼 괴상+요상+아름답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눈에 잘 붙었던 것은 번역이라는 작업을 거친 문장이 꽤 훌륭했기 때문이었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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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거짓말쟁이
E. 록하트 지음, 하윤숙 옮김 / 바람북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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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의 ‘케이든스’와 ‘조니’, ‘미렌’은 또래의 사촌지간이다. 대부호인 할아버지 소유의 ‘비치우드’ 섬엔 엄마와 이모들의 저택이 하나씩 있다. 어렸을 때부터 여름 휴가철이면 언제나 그곳에서 함께 추억을 만들던 세 사람에게 이모가 사귀는 인도 출신 애인의 조카 ‘갯’이 합류한다. 갯은 자연스럽게 그들과 섞이고 케이든스는 갯에게 사랑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해 여름. 케이든스는 모종의 일을 겪은 후 심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편두통과 너무 많다 싶은 약물 투약 이상으로 심각한 건 바로 부분적 기억 상실, 기억이 뚝 잘려나간 2년 전 여름, 그 섬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비치우드 섬은 (물론 가상의 섬으로) 잘 설계된(작가의 의도를 한층 잘 살리도록 고안된) 무대다. 그곳은 하나의 작은 세계다. 별장이 아닌 저택들, 그것도 네 채씩이나(섬이 얼마나 넓길래) 있다. 한 가족임에도 독립된 생활공간이 필요한 이유는 각자의 개인성을 잃지 않으려는 욕구의 발로다. 그들은 한시적이지만 육로도 없는 섬에 자신들을 고립시킴으로서 외부를 차단한다. 가족 외 사람의 ‘침입’을 불허한다. ‘섬’이라는 공간의 폐쇄성은 그곳에 모인 어른들의 태도를 대변한다.

섬 안에 모인(갇힌) 그들은 평화로울까. 보이는 것과 달리 세 딸들(엄마와 이모들)이 겪고 있는 갈등이 서서히 드러난다. 그런 어른들 옆에서 십대의 아이들은 오히려 평화롭다. 그들이 보기에 어른들이 겪는 문제는 사소하기만 하다. 우리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까. 십대의 아이들은 서툴렀다.

십대들의 성장드라마+로맨스의 냄새를 물씬 풍기며 시작된 이야기는, 가족들과 함께 섬을 다시 방문한 캐디가 새로 지은 할아버지의 저택, 그리고 말을 아끼며 어딘가 비밀스러워진 사촌들의 모습을 눈치 채면서 방향을 튼다. 이 작품은 한 십대의 내적 성장기이면서 이방인 혐오와 배금주의, 미국 내 백인 사회의 폐쇄된 분위기를 고발하는 사회 소설이고 주인공이 기억을 찾는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비밀이 드러나는 미스터리 소설이기도 하다.

결말은 충격적이다. 드러내는 방식이 익숙하긴 해도 인물들의 감정에 힘입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낸다.
작가가 목소리를 내는 방식이 무척 능숙하다. 세련됐다고도 할 수 있겠는데, 독자의 시선을 손가락 끝으로 유도하면서 시야에 들어온 달을 ‘느끼게’ 하는 식이다. 덕분에 이야기가 무척 풍성해졌다. 보통 길이의 장편소설 분량에 이야기가 빈틈없이 들어차 있다.

수수께끼 가득한 이야기, 흥미로운 전개, 날카로운 비판 의식과 문제 제기. 청소년 소설의 외양에 비극적인 이야기는 더 많은 독자들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비극이 단지 십대들의 미숙함 탓일지 고민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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