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피 ㅣ 페이지터너스
이렌 네미롭스키 지음, 이상해 옮김 / 빛소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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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육체의 욕망은 헐값으로도 채워진다. 도무지 채워지지 않는 마음, 사랑하고 절망하고 어떤 불로든 타오르길 갈망하는 마음이 문제다. 우리가 원했던 건 그것이었다. 타오르는 것, 우리 자신을 불사르는 것, 불이 숲을 집어삼키듯 우리의 나날을 집어삼키는 것. (151쪽)❞

 

작가는 불륜이나 살인, 출생의 비밀 같은 막장 요소들에 생생한 자연 묘사, 세대 간의 대립, 인간을 세밀하게 관찰한 결과 등을 세련되게 버무려 폐쇄적이고 이기적인 시골 공동체 안을 배경으로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전개하여 ‘본능’과 ‘욕망’이란 인간의 본질을 통찰한다. 이야기는 인물들의 사랑보다 훨씬 더 깊은 곳에 자리한 ‘그 무엇’에 초점을 둔다. 도덕에 관한 도발, 사회 통념에 반하는 작가의 진취적인 사고가 눈부시다.

 

서른아홉의 나이에 아우슈비츠에서 최후를 맞은 작가의 미완성 원고가 뒤늦게(2005년) 전체 발견되어 출판된 소설이라고 한다. 그렇게 이른 나이에, 그렇게 억울하게 생을 마감하지 않았다면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더 써냈을지, 생각하면 몹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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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먼웰스
앤 패칫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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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나 자신 안으로 추락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거였지. 내 인생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았어. 내 인생은 이미 바뀌어 있었으니까. 나는 헤쳐나가야 할 뿐이었지.

-중략-

우리 모두 그랬을 거야.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스스로는 그러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순간에도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어. 우리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 내가 결국 깨달은 건 그거였어.

그리고 우리가 영원히 살지는 못할 테니 그 사실을 붙들고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 (372쪽)❞

 

작가는 이런저런 동기와 이유로 얽히고설킨 두 가족을 가지고 재미있게 논다. 현재와 과거를 뒤섞은 구성은 호기심을 자극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생뚱맞은 곳에 등장하는 유머는 날카로우며 그릇된 선택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준 사람조차 나쁜 사람으로 그리지 않는 작가의 연민어린 시선은 몹시 따뜻하다. 인물들의 등퇴장이 명확해 그들에 대한 작가의 배려도 좋다. 인물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엔 애정이 철철 넘친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실수나 아직 닥치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진을 빼느니, 반쯤 내려놓는 마음으로 현재에 순응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작가는 말하는 듯하다. 어차피 닥칠 일은 닥치게 되어 있고 과거의 잘못된 선택은 우리의 손을 떠났으니, 그것들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 않을까. 작품 안 ‘테리사’처럼 ‘상실’을 인생의 기본값으로 여긴다면 삶 앞에서 주춤거리지 않을 용기가 생겨나지 않을까.

 

재미와 감동, 모두 만족스럽다. ≪벨칸토≫의 웅장함은 없지만 그 작품을 능가한다. 작가의 작품들이 많이 번역되지 않은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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얽힘 설킴 ㅣ 부클래식 Boo Classics 69
테오도어 폰타네 지음, 박광자 옮김 / 부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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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질 짜는 결말이나 환상적인 해피엔딩이 없는 로맨스. 130여 년 전의 소설이 이리도 담백할 수가. 다른 양념 없이 새우젓으로만 간을 한 맑은 조치 같다.

 

이름 뿐인 귀족 청년이 세탁부의 딸과 사랑에 빠지지만 빚 청산에 도움이 될 부유한 다른 여자와 결혼하고, 세탁부의 딸도 한 공장의 책임자와 결혼한다.

연인들이 제 짝을 찾는 과정에서 바짓가랑이 잡고 늘어지거나 연적에게 복수심을 품거나 하는 일은 없다. 인물들은 자신의 처지를 비교적 정확히 인식하고 있고 자기 그릇에 맞춤한 결정을 한다. 각자의 결정에 이르는 인물들의 내면을 따라가다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계급 차이를 극복하여 마침내 사랑을 이루는 통쾌함은 없지만 현실적인 결말에 안심이 된다.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마음에 회한은 남겠으나 그건 각자가 알아서 할 일.

 

당대(1888년) 독일의 사회 분위기와 역사적 사실들이 잘 반영된 글이라고 한다. 부유한 노동계급의 출현과 가난한 귀족 계급의 몰락은 사회의 갈등과 역변을 불러일으키기보다 아직까지 순응해야 할 대세적 질서로 보인다.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 ‘보토’와 ‘레네’의 짧은 사랑은 눈부시기보다 차분히 빛나는 윤슬 같다.

 

저자는 거의 환갑을 앞둔 나이에 첫 소설을 썼다고 하는데, 그 전에 이미 여행기와 운문 등을 출판하고 신문기자로 밥을 벌어먹었다고 하니 그 나이에 작가 데뷔를 했네, 하는 건 의미 없는 말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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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 다산초당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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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래 공수거,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세상인 건 알지만, 혼자 남아 혼자 죽는 삶을 누가 감히 상상할 수 있을까. ‘결국’ 혼자 잘 살아보기에 대한 책이지만 나에겐 혼자 살다가 잘 죽기에 대한 내용으로 읽혔다. 이 책의 주요 포커스가 죽음에 맞춰져 있는 건 아니지만, 대개 홀로 삶은 홀로 죽음으로 이어지기 쉽고, 사람들은 삶보다 죽음에 더 무게를 둔다. 어른들 말대로 사는 건 이러구저러구 살게 되는 것 같다.

 

‘결국 혼자’일 수밖에 없는 삶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혼자 삶’과 ‘독거’는 의미는 비슷하지만 뉘앙스는 사뭇 다르다. ‘독거’란 단어엔 외로움이 스며있다. 나 역시 일인 가구이고, 지금 당장은 별다른 외로움을 느끼지는 않지만 나중을 장담하는 게 오만이라는 걸 안다. 그러므로 관심 있고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슈를 다뤘기에 흥미가 동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바라고 기대했던 내용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쉽게 쓰이고 인문서적답지 않은 감동도 있었지만, 폐부를 찌르는 통찰이나 쾌감 같은 건 없었다. 어떤 느낌이었느냐 하면, 일인 가구를 중심으로 현 사회를 피상적으로 관망하고 리서치한 보고서처럼 읽혔다고나 할까.

그렇게 느낀 몇 가지를 적어보자.

 

그럴 수밖에 없는, 그것 외엔 별다른 도리가 없는 일인 가구의 대표성은 아마도 동성애자들에게 있지 않나 싶다. 그들의 사회적 결합이 불가능한 한국에서 그들이 가정을 꾸리는 건 아직 요원하다. 이성애자들과는 달리 그들에겐 혼자 남지 않을 어떤 방법도 없는 거다. 그들에게 혼자 삶은 선택이 아니다. 그들의 언급이 거의 없는 게 아쉽다.

 

저자의 편견도 다소 거슬렸다. 청년 일인 가구를 논할 때 그들 모두를 마치 워커홀릭처럼 다루는 데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일정 부분 사실일 수는 있지만 전부가 그렇지는 않다. 설득력을 좀 더 갖추려면 그렇지 않은 표본에 대해서도 언급했어야 하지 않을까.

외식이나 배달음식을 마치 쓰레기 음식으로 대하는 태도도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건 절대 사실이 아니다. 가정식도 충분히 쓰레기일 수 있음을 안다면 그런 생각은 분명 편견이다.

 

노년의 독신들에 대한 지표가 부족해 보인다. 사회가 진심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일인 가구는 경제력이 전혀 없는 독거 노인들이다. 그들에 대한 심도 있는 취재나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은데, 이는 전주에 대한 여행기를 쓰면서 전주비빔밥을 외면한 것과 같다.

 

돈, 자본의 중요성을 (마치 금단의 열매 대하듯) 도외시하고 있는 부분도 살짝 기만적으로 보인다. 솔직해 보자. 경제력은 무시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혼자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이렇게 말하거나 생각한다고 속물이 아니다. 현실이 그렇다. 특히 노년엔 더욱 그래 보인다.

예를 들어 보자. 중증의 치매에 폐암으로 죽어가는 노인 두 명이 있다. 그들에겐 가족이나 친구가 전혀 없다. 그런데 한 명은 완벽한 의료진에 환상적인 생활환경과 서비스, 고급 요양 보호 인력을 갖춘 시설에 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쓰러져가는 지하 셋방에 거주한다. 하루 양식을 벌기 위해 흐릿한 정신, 아픈 몸을 이끌고 폐지와 공병을 주우러 다닌다. 차이가 보이는가?

 

기타 등등…

 

전반적으로 저자는 그림자만 바라볼 뿐, ‘진짜 그늘’은 외면한다. 시선이 좁고 얕다. 주요 타겟으로 삼는 독자들(주로 20~30대의 싱글들)의 연령대를 의식한, 다소 ‘답정너’ 같은 결과물 같은 느낌이 컸다. 다소 편파적이고 ‘혼자 삶’이라는 이슈를 구석구석 훑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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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의 집
사샤 나스피니 지음, 최정윤 옮김 / 민음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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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나 작가에겐 큰 문제가 없다.

작품만으로 치면 웅장한 오페라 같은 느낌이고 각기 드라마 한 편씩은 충분히 뽑을 것 같은 인물들의 스토리는 퍼즐처럼 어우러져 거대한 그림을 만들어낸다.

인물들 각자의 굴곡진 삶이 무지막지한 자연 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지는 결말은 운명의 비애랄까, 비장미가 넘친다. 그런 점에서 ‘마가렛 케네디’의 ≪휴가지에서 생긴 일≫을 연상하게 된다.

 

이 책의 진짜 문제는 번역이다. 정말 심각하다.

외국 저작물의 경우엔 번역이 감상에 큰 영향력을 끼친다.

제 아무리 좋은 작품, 명색이 고전이라도 번역이 거지같다면 읽기 괴롭다. 가장 좋은 예가 민음사 판 ≪파리 대왕≫일 것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학과장이란 인간이 교재로 사게 한 전공 서적 생각이 난다. 표지엔 그의 이름이 역자로 버젓이 인쇄되어 있지만 결과물은 여러 사람이(아마도 제자들) 동원된 태가 역력했다. 사실 그렇더라도(그런 경우가 전문 서적 출판 분야엔 흔한 일이라고 쳐도) 한 번 걸러줄 편집자가 있으니, 절차 상으로는 크게 문제가 될 건 없다. 크레딧이니 저작권이니, 그건 그들의 일이고, 독자에게 피해만 가지 않으면 된다. 하물며 소설이 이런 꼴이니. 거기다가 거대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다. 공교롭게도 이 책도 민음사에서 나왔다.

독서를 방해하고 제대로 된 감상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번역이 엉망진창이면 독자들은 무슨 죄란 말인지. 이런 불량품에 거금을 지불한 독자들은 호구인가.

 

하나만 예를 들어볼까. ‘넨초니’와 ‘넨치오니’는 같은 사람이다.

‘지난네스키’와 ‘잔네스키’도 같은 사람이다.

또 예를 들어볼까. 쌍둥이 남매가 등장하는데, 오빠-여동생이랬다가 누나-남동생이랬다가 오락가락한다.

더 있는데 팔 아프다. 오자와 비문이라고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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