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면의 조개껍데기
김초엽 지음 / 래빗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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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스럽다. 별로 기대는 안 했지만.

 

현재의 일이 아닌 소재와 배경을 주재료로 삼는 판타지나 호러, SF장르에서, 독자로서의 내가 가장 주의를 기울이는 건, ‘내가 그 세계에 공감할 수 있는가’이다. 다르게 말하면 ‘작가가 나를 충분히 믿게끔 설득하고 있는가’ 정도겠지. 일단 작가가 제시한 설정에 설득되고 나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든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그런데 작가의 모든 작품을 섭렵한 건 아니지만,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 작가가 그 일에 참 미숙하다고 생각한다.

취향 운운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취향은 당연히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이야기에 숭숭 뚫린 구멍이 훤히 보이는 건 작가가 그냥 못 쓰는 거다.

 

솔직히 말해 보자. SF 장르는 거의 절반이 아이디어다. 그게 맞다. 그런데 나머지는? 현실이 아닌 그것을 독자들이 믿게 만드는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디어만 둥둥 떠다니는 꼴이 된다. 인물들이 무슨 일을 해도 신뢰가 생기지 않는다. 감정이 안 느껴진다.

김초엽의 첫 소설집에서 봤던 그런 문제가 여전히 보이는 건, 혹시 매너리즘에 빠진 건 아닌지 작가가 스스로 점검해 볼 일이다.

 

작가가 출판에 너무 열을 올리고 있는 건 아닌지, 독자로서 살짝 거부감이 든다. 작가의 책이 그나마 잘 팔리는 건 작품들이 좋아서라기보다 아직 우리나라 SF문학 시장이 그만큼 성숙하지 못한 증거로 보인다. 기반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꼭 거쳐야 하고 그 기간동안 우후죽순 선택안들이 다양하게 쏟아지는 것 또한 필요한 일지만 독자들은 무조건 읽는 사람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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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르 ㅣ 에디션 D(desire) 15
필립 지앙 지음, 장소미 옮김 / 그책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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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와 폭력이 난무하는 도발적인 시작, 나른한 분위기에 어질어질하면서도 촘촘한 그물망 같은 이야기.

관계와 영향력, 독립과 의존, 사랑과 폭력 같은 이슈를 다루는데, 무엇보다 주인공 ‘미셸’의 좌충우돌하는 내면을 엿보는 게 흥미로웠다. 인간이란 원래 두서없고 밑도 끝도 없는 존재가 아니던가.

무엇보다 ‘여초 집단’에서 회자될 만한 이런 작품을 쓴 작가가 남자라는 게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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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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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첫 소설집이래서 읽었다. 단편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은 내가 꼽는, 고금을 통틀어 한국 단편 베스트10에 든다.

 

그런데 기대가 너무 컸나 보다.

물론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작가의 개성 같은 것들이 선배 작가들에 살짝 기대고 있는 느낌이 종종 들었다. 특히 문체에 있어서.

 

전체적으로 작가 자신의 모습이 많이 보이고, 그래서 자전적인 글처럼 읽혔다. 잔잔한 분위기에 과거지향적인, 향수에 기댄 작품들로 채워졌다. 흥미진진하고 오감에 호소하기보다 마음을 향한, 기억 헤집고 내면을 더듬는 김연수의 특징들이 고스란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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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기맨을 찾아서
리처드 치즈마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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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자체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범죄 이야기다. 그런데 작가가 영리했던 게, 평범한 소재를 아주 맛깔스럽게 담아낸다.

평범한 라면을 범상치 않은 플레이팅으로 특별한 요리로 둔갑시켰달까.

영화로 치면 ‘페이크 다큐멘터리’ 정도 되겠다.

소설에서 이야기 자체 만큼이나 형식과 구조도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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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그녀의 것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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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껴가며 읽었다.

보통 국내작가의 장편들에 만족한 적이 별로 없었는데 희귀한 경험이었다.

TV 드라마로 치면 인물의 직업관과 그 세계가 전면에 드러나는 ‘오피스 드라마’ 색이 짙은데, 그 한계에 안주하지 않고 주인공의 삶과 사랑, 직업에 대한 긍지와 책임 등이 책과 출판 시장을 중심으로 맛깔스럽게 펼쳐진다. 소설 속 모든 요소들이 치고 빠지며 잘 어우러진 훌륭한 읽을 거리였다.

 

하지만 주인공과 똑같은 일에 종사하는 조카의 말; ❝그 정도는 아니에요.❞

 

역시 소설은 소설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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