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연구
그레임 맥레이 버넷 지음,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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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예순세 번째 책.

 

★★★

 

‘버로니카’라는 장래가 촉망되는 여성이 육교에서 떨어져 자살한다. 가족들에게는 그것만으로 충격인데, 생전에 그녀가 가족 몰래 정신과 상담 치료를 받고 있었음이 사후에 밝혀진다. 버로니카의 동생은 언니의 자살에 정신과 상담의 ‘브레이스웨이트 박사’가 원인을 제공했다고 믿는다. 언니의 뜻밖의 비극에 얽힌 진실을 밝히기 위해 ‘리베카 스미스’라는 가명으로 브레이스웨이트 박사의 상담실 문을 두드린다.

 

이야기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리베카 스미스라는 가명의 여성이 상담 치료를 받으면서 기록한 수기이고 또 하나는 브레이스웨이트 박사의 전기 형식의 글이다. 두 종류의 글이 번갈아 나오며 진행하는데, 가상의 작가(아마도 실제 작가 자신)가 익명의 기증자로부터 전달받은 리베카의 수기를 중심으로 자신이 한 조사를 토대로 쓴 브레이스웨이트 개인의 삶의 기록을 추가하여 완성한 책, 이라는 것이 이 작품의 전체적인 설정이다. 내가 보기엔 이런 얼개가 꽤나 복잡하고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아무튼, 작가는 이 책이 독자들에게 ‘실제 일어난 일’로 여겨지길 바랐던지, ‘콜린 윌슨’, ‘폴 매카트니’,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같은 실존 유명인사들을 카메오로 등장시키거나 언급한다.

 

일단, 정신의학을 부정하면서 정신과 상담치료를 업으로 삼고 있는 브레이스웨이트는 여러모로 특이한 사람이다. 이 사람은 60년대 정신의학계의 ‘앙팡 테러블’로서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고 반목하며 갖은 방법으로 반기를 드는 그 바닥의 문제아다. 난잡한 사생활과 여성 편력은 덤이요, 기성세대에 도전하면서 그들의 악습을 답습하는 모순도 보인다. 강한 매력과 캐릭터성에 반해 이 인물의 서사는 그에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 작가는 브레이스웨이트의 삶을 마치 유명인의 ‘위키피디아’에서 볼 수 있는 ‘바이오그라피’ 수준의 글로 압축한다.

 

리베카라는 가명으로 박사에게 접근한 인물은 보다 마땅한 대접을 받는다. 언니의 죽음에 박사가 원인을 제공했다는 의심은 거의 일방적이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 인물이 보이는 (까도 까도 끝이 없는 양파 같은)모습은 그녀의 의심이 전혀 근거가 없을뿐더러, 어쩌면 이 여자가 제정신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적어도 평범한 보통의 정신상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독자로 하여금 품게 만든다. 이 인물이 작품 전반에 걸쳐 보이는 모습은 마치 서랍 안에 작은 비밀 서랍이 있고 그 안에 또 다른 서랍이 발견되는 식이다. 그렇게 다양한 양상의 성격과 인격이 한 인간의 내면에 존재할 수 있을까.

 

‘진짜 나’는 존재하지 않고 ‘현재의 나’만이 존재한다는 브레이스웨이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드라마에 흔히 등장하는 ‘나다운 게 뭔데?’라는 대사도 말이 된다. 우리의 사회적인 모습은 모두 가면이다. 그것들은 신중히 선택되고 교묘히 연출된다. 그 중에 ‘진정한 나의 모습은 바로 이것’이라고 우리는 분명하게 말 할 수 있을까. 그 어느 것도 내가 아니고 동시에 모든 게 나다. 리베카 스미스의 실제 이름이 끝까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그녀는 리베카인 동시에 어떤 누구도 될 수 있다.

 

소재나 이슈가 꽤나 흥미로운데 반해, ‘이야기책’으로서 성공적인가, 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작품 전체가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의 한 ‘주장’, 내지는 ‘학술적 이론’을 설파하기 위해 소설 형식을 빌려온 느낌이 강하다. 브레이스웨이트 쪽의 이야기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위키피디아의 한 페이지처럼 읽히고, 리베카 스미스 쪽의 이야기는 제목처럼 정신과 상담 치료의 한 사례 연구 보고서처럼 읽힌다. 이제 생각해 보니, 불필요하게 복잡한 얼개는 소설로서의 얄팍함을 커버하기 위한 ‘가면’이었던 것처럼 여겨진다. 여운도 없고 의미도 없는 에필로그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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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랑
최은미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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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예순두 번째 책.

 

★★★

 

문장들에 서린 긴장감이 좋다. 쉽게 끌어다 쓸 수 있는, 클리셰 같은, 빤한 문장들이 별로 보이질 않아 생동하는 느낌이었다. 이 문장이 이렇게 끝난다고? 이런 순간들이 많았는데, 단어의 조합이나 표현들에 들였을 작가의 고민과 숙고가 드러난다.

배경과 설정이 정말 다양하고 인물들의 직업, 소재들이 참신하다. 전작 ≪눈으로 만든 사람≫에서도 느꼈던 바인데, 작가가 이 모든 글감들을 제 것처럼 소화할 수 있다는 게 경이로울 정도다.

 

반면 난해하고 모호한 작품들이 많이 보인다. 작가의 전작들과 비교해 볼 때, 작가가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한 느낌이 확연하다. 자신의 세계에 좀 더 집중했다고 보이는데, 수록작 절반이 굵직한 문학상 수상작임에도 내겐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독자로서 조금 소외된 기분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이해와 공감을 가로막는 무언가를 느꼈던 것 같다. 서툰 건 분명 아닌데 조금 빈약했달까. ‘작가 세계’와 ‘작가만의 세계’는 엄연히 다른 거란 생각도 했다.

 

인물들 사이에 존재하던 성적 긴장감이 나중에 와르르 무너지는 모습이 쾌감을 주는 한편, 인간 본성의 잔혹함을 부각한 <상리>, 튀르키에의 난민촌을 배경으로 타인의 상처와 고통을 대면하는 이의 진심에 대한 이야기인 <이 모든>, 1980년 ‘사북항쟁’을 소재로, 폭력 피해의 경계를 묻는 <김춘영> 등은 비교적 쉽게 읽혔다.

 

유적 발굴 현장을 무대로 쌓이고 퇴적된 폭력의 상흔을 고발하려 한 듯한 <무장하는 날>, 화자의 노스탤지어를 긴 호흡으로 풀어낸 <정선>, 동시다발적인 재난들을 배경으로 한 장소에 인물들을 고립시킨 후 그들을 관찰한 듯한 <그곳>, 시어머니의 장례식을 계기로 여성 화자의 각성을 보여준 듯한 <고별> 등의 작품은 선뜻 이렇다고 할 만한 감상이 없어 어려웠다. 읽는 데엔 막힘이 없었으나, 음식을 실컷 먹고 체한 느낌 같다고나 할까. 이런 작품들은 이해하려 하지 말고 느끼라고 하던데 뭘, 어떻게 느껴야 할지.

 

작가는 작품집의 제목으로 왜 ‘사랑’이라는 단어를 선택했을까. 가시적으로 사랑에 대한 작품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데. 그 이유를 고민하고 유추해보면 어렵사리 읽어냈던 작품들을 제대로 ‘느끼는’ 것이 가능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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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심리학적으로 맞지 않습니다만 - 의심 많은 심리학자 최승원의
최승원 지음 / 책사람집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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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예순한 번째 책.

 

★★★☆

 

❝믿음은 고민을 종결시키고 정신의 평화를 가져온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어떤 법칙이 내 마음에 든다면 오래 간직하며 삶에 적용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망각하고 살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 믿음이 자칫 우리의 인생을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다. 나만의 신념이든 대다수의 믿음이든, 그것이 틀린 것이라면, 창피하고 억울한 일이다. (작가의 말, 217쪽)❞

 

상술과 마케팅, 어쩌면 미디어의 호들갑에 동원된 심리학에 관한 오해와 편견을 걷어내고, 그때는 맞지만 지금은 틀린 과거 심리학 연구의 실수를 바로잡으려는 책이다. 학술적 진실을 증명하고 설득하기 위해 실시된 여러 심리학 실험들도 다양하게 소개되어 신빙성을 높인다. 심리학자이면서 현역 임상심리전문가인 저자는 속시원하게 폭로도 하고 차근차근 설명하기도, 오해로 인한 상처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독자들에게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실험의 오류와 결과의 과장으로 결국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모짜르트 효과’, 타인을 판단하고 폭력과 차별의 근거가 되고 만 유사 심리학 ‘MBTI 성격유형’, 복지 국가와 자살률의 상관관계, ‘마시멜로 실험’의 오류, 과장된 웃음 치료의 효과 등의 내용이 재미있었다.

 

경제적 약자들이 왜 보수당을 지지하는지, ‘시스템 정당화 이론’을 들어 그 행동을 분석할 땐 소름이 돋았다. 매 선거 때마다 갖곤 했던 불가사의였는데 그 저변의 심리를 명쾌하게 들려준다.

한때 트렌드의 키워드였던 ‘소확행’이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이 아닌 단순한 소비 형태로 어떻게 와전됐는지, 주식이나 도박에서 왜 이익을 얻는 사람들보다 손해를 보는 사람들이 많은지, 홈쇼핑에 중독되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인지,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호감을 이끌어내기 앞서 자신의 ‘무해함’을 증명해야 한다는 내용은 우리의 일상과 밀접해서 친근하면서도 귀기울일 만한 조언들이다.

 

책의 후반부엔 자폐 스펙트럼, ADHD, 조현병, 조울증, 우울증 등의 정신병리학에 관한 세간에 널리 퍼진 오해들을 바로잡는다. 저자는 ‘정신과 환자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볼 수밖에 없는 이유(15쪽)’를 설명하며 그들을 향한 혐오와 차별의 시선을 경계할 것을 촉구한다.

 

‘중심을 잡는다는 것, 균형을 맞춘다는 것(11쪽)’이란 말에서 저자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단순히 심리학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행복한 개인’과 ‘올바른 사회’를 지향한다. 주요 골자만 적고 있어 얇고 쉽게 읽히는 책이다. 심리학 도서보다 현재의 한국 사회를 진지하게 탐구한 저서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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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가 돌아왔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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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예순 번째 책.

 

★★★

 

전직 교사인 ‘조’가 고향인 ‘안힐’로 돌아온다. 이유가 있다.

우선 도박 빚. 조가 있는 곳은 채권자에게 금방 발각된다. 조는 이 돈을 동창 ‘스티븐’을 통해 해결하려 한다. 부자에 깡패, 재수 없는 스티븐을 옭아매고 돈을 우려낼 강력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과거에 여동생 ‘애니’에게 일어난 비극. 아마 조가 쥐고 있는 스티븐의 약점이 이 일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을 고향으로 불러들인 문자메시지, 최근 고향에서 일어난 살인+자살 사건도 과거 여동생 사건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모든 의문이 과거, 폐광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동생 ‘애니’를 향하고 있다.

 

우선 장점.

이야기는 미스터리+스릴러+호러+하드보일드(hard-boiled) 등의 장르적인 성격을 두루 갖췄다. 그럭저럭 모양새는 잘 갖췄다. ‘영국의 여자 스티븐 킹’이라는 별명에 큰 반감은 없다. 여러 요소들이 적절하게 치고 빠지며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다.

 

폐쇄된 탄광이란 공간은 호러의 좋은 효과를 낸다. 얼핏 ‘스티븐 킹’의 ≪애완동물 공동묘지≫를 연상하게 만들고 죽은 자가 살아 돌아온다는 설정은 ‘W. W. 제이콥스’의 유명한 단편 <원숭이 손>이나 여러 좀비 영화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여기에 범죄와 비밀이라는 미스터리가 추가되는데 크게 어색하지 않다.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주인공, 조는 ‘필립 말로우’나 ‘샘 스페이드’의 매력을 답습한다. 주변에 배치된 서로 차별화된 성격의 세 여자들(베스, 글로리아, 마리), 티격태격 유쾌하고 잘 짜인 대화 역시 하드보일드의 유산으로 보인다.

‘썩은 세력가’의 전형인 스티븐 역시 잘 만든 악역이다. 지역 공동체의 정계, 재계, 학계 등을 손아귀에 쥐고 제멋대로 놀린다. 이 사람의 영향력은 막강하지만 절대 선하지 않다. 여기에 주인공과는 여자 문제도 얽힌다.

 

무대와 인물 셋팅. 소설을 위해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해결한 듯 싶다. 이럼 된 건가?

이야기는 결말을 향하면서 정연함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다.

 

가장 큰 단점은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이야기에 푹 빠지는 데 장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주인공에게 가해지는 겹겹의 압박과 해결해야 하는 일이 대개 일치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살짝 어긋난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동력은 ‘애니’라는 인물에게서 나오는데, 그에 관해 주인공이 하려는 일이 대체로 모호하다. 작가는 애니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보여주길 거의 최후까지 미룬다. 그 덕에 주인공의 모험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못하고 그저 방관하게 된다. 잘 만든 음식 모형 바라보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작품의 재미와 완성도를 위해, 무엇보다 독자의 호기심을 붙들기 위해, 특히 미스터리 장르라면 작가는 ‘숨기는 것’에 능해야 하지만 그것에도 완급은 필요하다. 미스터리 장르는 지문을 확대한 사진만으로 인체를 알아맞히는 게임과 비슷하다. 당근 냄새도 못 맡은 말이 달릴 이유가 없다.

이 작품은 이야기의 중요한 토대가 되는 사실을 거의 막판에서야 보여준다. 지반이 약한 땅에 지은 사상누각처럼 보인다. 조가 원하는 게 복수인지 비밀을 풀기인지 저주를 막는 것인지 모호하다. 결국 셋 다인데 이래서는 곤란하다. 뭔가 강력한 깃발이 있어야 한다. 나머지는 부수적이 되어야 한다.

주인공은 뭔가를 열심히 하기만 한다. 그러다 결말에 가서야 사실들이 폭죽처럼 터진다. 그리고 허겁지겁 엔딩. 감정이 요동치고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다가 서서히 가라앉는 정서적 묘미가 생길 여유가 없다. 그냥 폭주하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작가가 결말에 터뜨리는 사실들이 모두 중요한 것도 아니다. 독자들이 몰라도 될,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에 크게 상관이 없어 보이는 것들도 있다. 트리비아에 불과한 것들을 마치 대단한 비밀인 양 폭로한다. 도대체 ‘팻맨’의 정체를 궁금해 했던 독자가 과연 있을까.

 

감히 넘겨짚는 말이지만, 작가가 미스터리를 구성하는 데 아직 완성된 재능은 갖추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장점은 분명히 있지만 얼개는 엉성해 보인다. 후반으로 갈수록 말이 안 되는 설정들이 눈에 띈다. 속도감이 갑자기 떨어지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중반까지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이 궁금했더랬다. 하지만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이 책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뒷심이 모자란, 여러모로 아쉬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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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프
S. K. 바넷 지음, 김효정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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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6년 쉰아홉 번째 책.

 

★★★

 

여섯 살 딸, ‘제니’가 사라졌다. 유괴로 짐작된다. 지역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키지만 어느새 미제 사건이 된다. 그리고 12년 후. 딸이 돌아온다. 그런데 열여덟의 제니는 어딘가 수상쩍다.

 

이야기의 초반은 돌아온 제니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야기는 그런대로 잘 흘러가지만 열여덟의 제니의 정체는 짐작이 가능하다.

중반을 넘어가면서 돌아온 제니의 정체가 까발려지고 국면이 전환된다. 제니에게 맞춰져 있던 포커스가 주변으로 확장된다. 제니는 음흉한 음모자에서 추적자의 입장이 된다. 과거의 제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이것이 이 작품의 진짜 노림수다. 그런데 이 부분을 지나면서 흥미가 뚝 떨어진다.

 

결말을 예측 가능한 게 가장 큰 이유인 것 같은데, 사실 그것도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뻔한 결말이라도 그것에 이르는 과정, 주인공의 활약과 통찰을 바라보는 재미도 무시할 순 없다. 제니의 부모인 ‘로리’와 ‘제이크’는 뭔가를 숨기고 있고, 까칠한 오빠 ‘벤’이나 과거의 제니를 기억하는 이웃들 역시 주목할 만하다. 작가는 이런저런 단서를 흘리고 미심쩍은 사건들을 전시하는데 그게 좀 빤하다. 발견한 사실들을 토대로 과거를 재조립하는 과정이 이 작품에서 가장 빛나야 할 부분인데, 작가가 썩 잘 한 것 같지 않다.

 

일단 너무 쉽다. 그리고 우연이 너무 많다. 주인공이 운이 좋아도 너무 좋다. 벤의 입원, 치료 기록을 찾아가는 부분에선 실소가 터져 나왔다. 책장을 뒤지다 보니 아주 중요한 서류가 나오고 키보드를 몇 번 두드리니 사이트가 열린다. 해킹이 이렇게 쉬운 일이었나. 정신분석이나 꿈이 너무 자주 등장하는 것도 눈에 거슬린다. 이 정도면 귀신이 사또를 찾아와 ‘저를 죽인 범인은…’ 하고 알려주는 『장화홍련전』이나 다름없다. 무의식 같은 소재는 캐릭터를 설명하는 수단, 암시 정도로 그쳐야 하는데 너무 결정적이다. 시점을 다른 인물에게 나눠주는 것도 작가의 편리를 위해서라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이 보이지 않는다.

 

이야기를 읽다보면 독자가 가장 크게 느끼는 ‘주도적인 감정’이란 게 있는데, 이 작품엔 그게 모호하다. 어느 인물과 감정을 함께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과 비슷하다.

이야기에서 가장 힘을 받는 인물은 ‘어린 제니’이다. 이 인물은 이야기 곳곳에 나오지만 실제로는 등장하지 않는(일찌감치 무대에서 퇴장한) 인물로서, 이 사람에게 건질 건 과거의 사실과 추측뿐이다. 과거의 사실은 박제된 동물과 다름없다. 아무리 험한 일을 겪었어도 생동감이 없어 독자의 감정도 그 밖에 머문다. ‘돌아온 제니’는 중반 이후의 역할이 너무 기계적이고 전형적이다. 처절한 서사를 갖는다고 캐릭터 성이 강화되는 게 아니다. 기능에 치우친 캐릭터의 얄팍함은 꼭꼭 숨어 있다가 엔딩에 이르러서야 모습을 나타내는 메인 빌런에게도 있다. 완전한 감정 이입이 어려운 독자의 눈에 들어오는 건 결국 ‘사건’뿐이다. 인물들은 사건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신경이 쓰이는 인물이 있기는 하다. 바로 ‘벤’과 ‘로리’. 그렇지만 누구 못지않은 악몽을 겪고 불행을 떠안은 이들은 그냥 방치된다.

 

아주 나쁜 작품이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그럭저럭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썩 좋았다고 하기엔 퍽 부족하다. 장르 소설 특유의 쾌감, 칼에 베이는 듯한 날카로움 같은 게 없다. 충분히 비극적인 이야기임에도 감흥이나 페이소스가 없어, ‘그랬다더라’ 하는 사실만 남는다. 클리셰 범벅에 여기저기서 좋은 것들만 주워다 엉성하게 엮은 공산품의 느낌, 어딘가에서 읽은 듯한 ‘헌 것’의 느낌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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