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프
S. K. 바넷 지음, 김효정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11월
평점 :
절판


26년 쉰아홉 번째 책.

 

★★★

 

여섯 살 딸, ‘제니가 사라졌다. 유괴로 짐작된다. 지역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키지만 어느새 미제 사건이 된다. 그리고 12년 후. 딸이 돌아온다. 그런데 열여덟의 제니는 어딘가 수상쩍다.

 

이야기의 초반은 돌아온 제니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야기는 그런대로 잘 흘러가지만 열여덟의 제니의 정체는 짐작이 가능하다.

중반을 넘어가면서 돌아온 제니의 정체가 까발려지고 국면이 전환된다. 제니에게 맞춰져 있던 포커스가 주변으로 확장된다. 제니는 음흉한 음모자에서 추적자의 입장이 된다. 과거의 제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이것이 이 작품의 진짜 노림수다. 그런데 이 부분을 지나면서 흥미가 뚝 떨어진다.

 

결말을 예측 가능한 게 가장 큰 이유인 것 같은데, 사실 그것도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뻔한 결말이라도 그것에 이르는 과정, 주인공의 활약과 통찰을 바라보는 재미도 무시할 순 없다. 제니의 부모인 로리제이크는 뭔가를 숨기고 있고, 까칠한 오빠 이나 과거의 제니를 기억하는 이웃들 역시 주목할 만하다. 작가는 이런저런 단서를 흘리고 미심쩍은 사건들을 전시하는데 그게 좀 빤하다. 발견한 사실들을 토대로 과거를 재조립하는 과정이 이 작품에서 가장 빛나야 할 부분인데, 작가가 썩 잘 한 것 같지 않다.

 

일단 너무 쉽다. 그리고 우연이 너무 많다. 주인공이 운이 좋아도 너무 좋다. 벤의 입원, 치료 기록을 찾아가는 부분에선 실소가 터져 나왔다. 책장을 뒤지다 보니 아주 중요한 서류가 나오고 키보드를 몇 번 두드리니 사이트가 열린다. 해킹이 이렇게 쉬운 일이었나. 정신분석이나 꿈이 너무 자주 등장하는 것도 눈에 거슬린다. 이 정도면 귀신이 사또를 찾아와 저를 죽인 범인은하고 알려주는 장화홍련전이나 다름없다. 무의식 같은 소재는 캐릭터를 설명하는 수단, 암시 정도로 그쳐야 하는데 너무 결정적이다. 시점을 다른 인물에게 나눠주는 것도 작가의 편리를 위해서라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이 보이지 않는다.

 

이야기를 읽다보면 독자가 가장 크게 느끼는 주도적인 감정이란 게 있는데, 이 작품엔 그게 모호하다. 어느 인물과 감정을 함께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과 비슷하다.

이야기에서 가장 힘을 받는 인물은 어린 제니이다. 이 인물은 이야기 곳곳에 나오지만 실제로는 등장하지 않는(일찌감치 무대에서 퇴장한) 인물로서, 이 사람에게 건질 건 과거의 사실과 추측뿐이다. 과거의 사실은 박제된 동물과 다름없다. 아무리 험한 일을 겪었어도 생동감이 없어 독자의 감정도 그 밖에 머문다. ‘돌아온 제니는 중반 이후의 역할이 너무 기계적이고 전형적이다. 처절한 서사를 갖는다고 캐릭터 성이 강화되는 게 아니다. 기능에 치우친 캐릭터의 얄팍함은 꼭꼭 숨어 있다가 엔딩에 이르러서야 모습을 나타내는 메인 빌런에게도 있다. 완전한 감정 이입이 어려운 독자의 눈에 들어오는 건 결국 사건뿐이다. 인물들은 사건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신경이 쓰이는 인물이 있기는 하다. 바로 로리’. 그렇지만 누구 못지않은 악몽을 겪고 불행을 떠안은 이들은 그냥 방치된다.

 

아주 나쁜 작품이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그럭저럭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썩 좋았다고 하기엔 퍽 부족하다. 장르 소설 특유의 쾌감, 칼에 베이는 듯한 날카로움 같은 게 없다. 충분히 비극적인 이야기임에도 감흥이나 페이소스가 없어, ‘그랬다더라하는 사실만 남는다. 클리셰 범벅에 여기저기서 좋은 것들만 주워다 엉성하게 엮은 공산품의 느낌, 어딘가에서 읽은 듯한 헌 것의 느낌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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