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죽은 그녀
로사 몰리아소 지음, 양영란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공원의 그늘진 구석에 아름다운 여자가 누워있다. 자세히 보니 죽은 것 같다.

직업도 성별도 나이도 다른 다섯 명의 사람들이 다른 시각, 다른 각도에서 여자의 시체를 발견한다.

하지만 목격자들은 각각 나름의 사정이 있어 그 장면을 외면한다.

 

이 책의 도입부를 읽자마자 제노비스 사건을 떠올렸다. 아니나 다를까, 책의 말미에도 이 사건이 언급되어 있다. 64, 미국 뉴욕에서 실제 일어난, 사회심리학이나 행동심리학 분야에서 방관자 효과(Bystanger Effect)’를 설명하기 위해 자주 언급되는 유명한 사건이다.

 

이쯤 되면 작가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현대인의 몰인정함을 파헤치는 이야기겠군.

그런데 의구심도 든다. 이미 사골인데, 더 우려먹을 게 있을까?

 

내 짐작은 반은 맞다. 살인을 의미할 수도 있는 현장을 외면함으로서 오늘날 만연한 이기주의를 고발하려는 의도가 있기는 하되 전부는 아니었다. 보고도 입을 닫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전개되는가, 작가는 그 양상들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다. 영화 슬라이딩 도어즈(Sliding Doors, 98)처럼.

 

다소 아쉽다. 시도는 충분히 실험적이고 인물들의 이야기는 충분히 재미있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공원의 시체를 구심점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기에는 너무 느슨하다. 작가의 의도대로라면, 시체를 발견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이후에 각자가 보인 행동에 영향을 받은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어정쩡한 지금의 결과물은 마치 따로국밥같다. 짧은 분량에 읽는 데엔 크게 문제가 없으나, 삐거덕거리는 전개는 작품을 공허하게 만든다.

 

사족.

 

키티 제노비스 사건(Murder of Kitty Genovese)’이 궁금하다면 여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북의 시간 - 망가진 세상을 복원하는 느림과 영원에 관하여
사이 몽고메리 지음, 맷 패터슨 그림, 조은영 옮김 / 돌고래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물 생태학자인 저자가 거북 구조 연맹에서의 경험을 들려준 책이다. 저자는 그곳에서의 자신을 인턴이라고 소개하는데, 동물생태가 저자의 전문 분야이긴 해도 거북이라는 동물은 생소하고 낯선 종이었으므로 이는 전혀 겸손이 아니다. 저자는 다치고 죽어가고 위험에 빠진 거북들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자원을 아낌없이 나누는 사람들을 만나고 스스로도 귀중한 경험을 쌓는다.

 

이 책의 첫 장(chapter)에 제기되는 질문. 왜 하필 거북인가.

이 의문은 왜 하필 개를 키우는지 묻는 것과 맥락이 비슷해 어리석게 들린다. 저자는 거북 구조 연맹의 자원봉사자 알렉시아의 대답을 인용한다. ‘어떤 동물이든 동물을 돕는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다람쥐를 돕는 것도 물론 중요해요. 하지만 거북을 구한다면, 특히 암거북을 구하면 앞으로 100년을 살면서 계속 알을 낳을 겁니다. 거북 한 마리를 구하는 것은 결국 여러 세대를 구하는 일이지요. (27~28)’

단지 거북이 오래 살아서? 알렉시아의 말을 오해하기 이전에 시간이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인간의 시간은 유한하다. 하지만 인류의 시간은 그렇지 않다. 인류의 삶이 지속되려면 지구가 보존되어야 한다. 이쯤 되면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가 분명해진다.

 

한 개인의 이기심과 안일함은 자신을 망치고 환경을 망치는 방식으로 그 악영향을 다음 세대에게 미친다. 요즘의 우리는 마치 오늘만 살 것처럼 산다. 내일은 없는 듯이, 다음 세대는 존재하지 않을 듯이. 지금의 세대 전에는 얼마나 긴 시간이 축적되어 있는가. 또 이후로는 얼마나 긴 시간이 예고되어 있는가. 그런데 긴 시간이 예고되어 있는 것 맞나? 여기저기서 이런저런 문제가 터지고 심각한 환경 문제가 대두된 것이 오래 전인데, 우리는 앞으로의 위험과 불행에 충분히 준비되어 있나?

자연은 솔직하다. 받은 대로 돌려준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자연에 대한 인간의 행동은 부메랑 같다. 자신이 행함에 그 대가를 꼭 치른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한없이 겸손해지고 가끔 서글퍼진다. 생태와 환경의 문제는 결국 인간으로서의 와 직결된 문제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성찰하기를, 자연과 연대하기를 종용한다. 삶과 죽음을 둘러보며 고통과 행복을 상상하고 인내와 겸양, 포기가 아닌 수용을 터득하라고 요구한다.

그렇다면 거북의 이야기는 일종의 화두인 셈일까? 그렇지 않다. 저자가 관찰하고 배운 바에 의하면 거북의 삶에는 인간들이 닮아야 할 미덕들이 많다. 이 느리고 자연계에서 취약한(때때로 난폭하긴 하지만) 생물의 삶에서 우리는 기다림과 연대, 복원의 힘, 용기 같은 것들을 배운다.

 

이 책의 감상을 정리하기에 적당한, 지구와 환경은 우리가 잠시 빌려 쓰고 있는 것이라는 제인 구달의 말이 생각난다. ‘샘이 마르기 전까지는 물의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는 영국 속담의 무시무시함에 비하면 제인 구달의 말은 지나치게 유순하게 들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강보라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의 첫 소설집이고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데뷔작이라고는 해도 문장을 구성하는 솜씨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모양새가 보통이 아닌데, 작가의 이력을 보니 납득이 간다. 아무리 문장을 짓는 일에 이미 잔뼈가 굵어졌어도 이야기를 창작하는 건 다른 영역인데, 참 대단하다, 이런 생각도 잠깐 했다.

 

또 하나 좋았던 게, 작품들마다 느껴지는 거리감이었다.

가끔 신인 작가들의 작품들(특히 데뷔작)을 읽다 보면, 이야기에 목까지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작가들을 종종 만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작품집에 점수를 주고 싶다. 소위 냉정함과 차분함이 느껴진다는 말인데, 이를 테면 이런 거다. 독설(이것도 일종의 재능이다)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 세월의 흐름도 겪고 주변인들의 애정 어린 충고를 받아들여, 자기 식대로 모서리를 다듬은 후에 나올 법한, 진심은 있지만 냉정함이 서린 말투랄까. 일인칭 화자가 등장하는 작품에서도 작가는 관찰자로서의 위치를 버리지 않는다. 마치 난 저 세계에 뛰어들지 않을 거야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한데, 이 또한 작가의 이력이 준 내공이 아닐는지.

 

그렇긴 해도 작품집을 읽고 나면 소설가로서의 작가가 마주하는 한계가 보이는 것 같다. 인물 설정이나 분위기 등에 다양한 변주를 주고 있긴 한데, 다채롭지는 못하다. 자기복제를 하고 있는 작품들이 많다고나 할까.

 

거의 모든 작품들마다 공통적으로 자신만의 프레임으로 타인을 바라보고 오해하며, 피상으로 판단하는 인물들이 나오고 결국엔 그 편견에 배반당하며 결말로서 그 믿음이 전복되는 순간을 맞는다. 대부분 이런 구성인데, 작가는 작품마다 특징적인 이슈들을 부가하여 차별화를 두려고 노력한다.

작가의 등단작인 <티니안에서>는 친구에게 주홍글씨를 새기려는 인물과 공간적 배경이 되는 티니안 섬의 역사가 지닌 아이러니가 나란히 전개되고,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에선 주인공의 계급과 취향에 대한 편견, 더불어 과잉된 에고에서 비롯된 허세가 보이며, <빙점을 만지다><직사각형의 찬미>에서 작가는 (타인을 포함하여)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고작 경계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는 우리의 눈에 씌운 프레임의 존재를 결코 알아채기 어렵다는 것을 경고한다.

대미를 장식하는 <아름다운 것들과 아름답지 않은 것>은 사실과 진실에 대한 작가로서의 고민, 오늘의 작가가 있기까지 영향과 도움을 준 고마운 사람들에 대한 애정 고백, 결과를 내기까지 힘든 여정을 거친 작가 자신을 향한 위로가 엿보여 애정이 갔다.

<신시어리 유어스><바우어의 정원>은 술술 잘 읽히나 약간 모호했다.

 

작품집 전체로 보면, 변화구 없이 비슷한 공만 연달아 던지고 있으니 식상하고 지루한 야구 경기 보는 기분이 든다. 한편으로는 스스로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한 가지 테마나 이슈에 천착하는 뚝심이 보이는 것 같아 부러워할 만한 내공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강보라가 어떤 작가인지는 다음 작품에서 좀 더 드러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리틀
에드워드 캐리 지음, 공경희 옮김 / 아케이드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역사 소설이면서 전기 소설이다. 프랑스 뿐 아니라 세계사에서 중요한 사건인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하고 그 시기의 중요한 인물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이야기는 주로 주인공 마리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스위스의 가난한 농노의 딸로 태어나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어 버려지고, 운 좋게 착한 어른의 제자가 되어 밀랍 기술을 배우지만 학대와 차별을 겪고, 뜻하지도 않았고 상관도 없는 정치적 대격변에 휘말려 죽음의 위기를 모면하다가, 결국 사업가로 성공하는 마리의 자립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작은 체구 때문에 마리에게 붙여진 리틀이라는 이름은 멸칭이면서 애칭이다. 누군가는 마리를 아껴주고 누군가는 이용한다. 리틀이라는 별명이 이중의 뉘앙스를 갖듯이 다양한 성격의 주변 인물들이 나온다. 그들 모두 입체적이고 특출한 개성을 지니고 있어 인상적이다. 역할들이 꽤 분명한 편이라 주인공과의 앙상블을 보는 것만도 재미있다.

 

작가는 주인공인 마리를 활용함에 있어서 균형을 잘 잡는다. 밀랍 제작자로서의 삶을 이야기할 때 마리는 당당한 주인공이지만, 인물 자신이 이방인(스위스 출신의 외국인)이므로 프랑스의 역사와 정치 앞에선 주변부로 살며시 밀려난다. 하지만 작가는 적절한 사건과 이유를 만들어 마리를 역사의 중심부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게 해 완전한 관찰자, 방관자로 추락시키지 않는다.

실제 역사에 개인 서사를 얹은 작품에서 작가가 빠지기 쉬운 함정인데, 두 요소 사이의 보기 좋은 밸런스는 작품을 매끄럽게, 쉽게 빠져들게 만든다.

 

궁극적으로 작가가 독자들에게 하고 있는 이야기는 인간사랑이다. 삶에 대한 의지, 폭력과 부조리에 대항하는 용기, 인간애, 보살핌과 이타심,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사랑.

지난한 시기를 겪어낸 인물의 이야기는 다소 뻔한 면이 있지만 이 소설은 그런 구태의연함을 잘 극복한 것처럼 보인다.

 

감정적인 높낮이가 꽤 심한 편이라 다 읽고 나면 다소 지친다. 분량이 적지 않은데 책장은 수월하게 넘어간다. 번역자가 무려 공경희인데다 (작가 자신이 그린) 삽화가 있다.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실존인물들이지만 작가 말로는 빈틈이 많아 나름의 상상력으로 채웠다고 하니, 완벽한 실화는 아닌 셈.

 

사족.

 

1. <마담 터소 밀랍 박물관>을 소재로 삼거나 배경으로 한 소설, 영화가 꽤 많다. 이 장소가 대중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식과 그 이유를 사유하면 꽤 재미있다.

 

2. 주인공인 마리 그로숄츠에 대해 궁금하다면 여기.

 

3. ‘마담 터소 밀랍 박물관에 대해 궁금하다면 여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로 고생하며 살고 있는 다나케빈과 새 가정을 꾸리던 1976년에서 순식간에 시간 이동(time slip)을 한다. 정신을 차려보니 18세기 초의 미국. 남북전쟁 전, 다나가 속한 때로부터 거의 170년 전이다.

다나는 그곳에서 루퍼스란 이름의 한 아이의 생명을 구하게 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의 몇 대를 거스른 조상. 많은 노예들을 거느린 부유한 농장주의 아들인 루퍼스는 자유민인 흑인 앨리스에게서 딸 헤이거를 얻는데, 그녀가 바로 다나가 알고 있는 가계도의 시작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는 둘째 치고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나중에 밝혀지는 사실이지만 루퍼스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때마다 다나는 과거로 소환된다. 그들의 가족이 현재까지 존재해야 하므로 헤이거가 태어나기 전까지 루퍼스는 살아 있어야 했다. 반대로 다나의 목숨이 위태로울 때(목숨의 위협을 느낄 때) 다나는 현재로 돌아올 수 있다.

 

이야기가 주는 긴장과 재미의 핵심은 다나의 신분이 역전되며 겪게 되는 모험에 있다. 현재에 그럭저럭 어엿한 미국 시민으로서 살고 있는 다나는 과거로 돌아감으로서 노예가 된다.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이 당시에 다른 무엇으로 사는 게 거의 불가능했으니까.

 

작가의 의도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여성과 인권, 폭력과 착취, 순응과 저항, 사랑과 증오. 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아주 재미있다.

특히 애증이 뒤섞인 다나의 감정과 정서적으로 나약한 루퍼스 사이의 감정은 아주 드라마틱하다. 굵직굵직하고 스피디한 사건들 사이를 채워주고 숨 가쁘게 몰아치는 감정들로부터 쉼 역할을 해주는데, 리듬감 있는 완급의 조절과 그 효과가 꽤 괜찮다. 의무가 아닌 필요당위에 의한 감정들은 전혀 군더더기나 소모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작품엔 (허점이 아니라) 작가가 의도적으로 설명들을 생략하고 있는 부분들이 많은데 그것들로부터 독자들의 시선을 돌리는 역할도 한다. 약간 교묘하게 보이지만 기술적이고 능숙하다.

 

솔직히 작품이 다루는 이슈는 새로운 건 없다. SF 장르에 특기를 가진 흑인 여성 작가가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딱 그만큼을 다룬다. 하지만 페이지가 쉴 새 없이 넘어가고 용감무쌍한 다나의 모험에서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의 흡인력을 보장한다. 다나는 타고난 여전사는 아니다. 경험과 시행착오가 빚어낸 결과물이라고 해야 할까. 겁에 질려 어쩔 줄 모르는 나약한 흑인 여성에서 강인한 주인공으로 거듭 나는 다나의 변화도 보기 좋다.

 

작품 속 세계는 다나에게 최악의 시절이지만 비교적 안전하다. 18세기의 사람들은 다나에게 친절한 편이고, 다나는 진짜 심각한 위기를 겪지는 않는다. 그런 면에서 작품이 약간 안일한 느낌도 든다. 이 책을 읽으며, 서부 세계를 체험할 수 있도록 고안한 놀이공원이 시스템 오류로 서서히 악몽으로 변하는 디스토피아 S.F.의 걸작, ‘율 브린너의 영화, 이색지대(Westworld, 1973)와 비교하게 됐는데, 이야기에 긴장을 부여하는 측면에서는 이색지대가 훨씬 잘 했다고 생각한다.

 

S.F. 장르보다 판타지 소설에 가깝다. 정통적인 SF에서 기대하는 과학 기반의 설정들은 거의 없다. 작가는 타임 슬립이란 소재, 왜 다나여야 하는가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파고 들면 플롯에 이런 저런 구멍들이 드러날 게 뻔하지만 작품은 그럴 새를 주지 않고 독자들을 몰아친다. 이 정도의 재미와 이 정도의 설득력, 이 정도의 메시지라면 ?’, ‘어떻게?’라는 질문 정도는 잊게 된다. (혹은 잊고 싶어진다)

 

사족.

 

원제인 ‘Kindred’는 상징이고 뭐고 굉장히 직설적인 제목이다. 보통 이런 제목은 촌스러워 보이는데 오히려 더 이상의 좋은 제목은 없을 정도로 딱 맞는다. 그런데 왜 번역 제목이 (이도저도 아닌) ‘이 되었을까. 차라리 솔직하게 번역해서 혈통이라고 하던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