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강보라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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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첫 소설집이고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데뷔작이라고는 해도 문장을 구성하는 솜씨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모양새가 보통이 아닌데, 작가의 이력을 보니 납득이 간다. 아무리 문장을 짓는 일에 이미 잔뼈가 굵어졌어도 이야기를 창작하는 건 다른 영역인데, 참 대단하다, 이런 생각도 잠깐 했다.

 

또 하나 좋았던 게, 작품들마다 느껴지는 거리감이었다.

가끔 신인 작가들의 작품들(특히 데뷔작)을 읽다 보면, 이야기에 목까지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작가들을 종종 만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작품집에 점수를 주고 싶다. 소위 냉정함과 차분함이 느껴진다는 말인데, 이를 테면 이런 거다. 독설(이것도 일종의 재능이다)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 세월의 흐름도 겪고 주변인들의 애정 어린 충고를 받아들여, 자기 식대로 모서리를 다듬은 후에 나올 법한, 진심은 있지만 냉정함이 서린 말투랄까. 일인칭 화자가 등장하는 작품에서도 작가는 관찰자로서의 위치를 버리지 않는다. 마치 난 저 세계에 뛰어들지 않을 거야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한데, 이 또한 작가의 이력이 준 내공이 아닐는지.

 

그렇긴 해도 작품집을 읽고 나면 소설가로서의 작가가 마주하는 한계가 보이는 것 같다. 인물 설정이나 분위기 등에 다양한 변주를 주고 있긴 한데, 다채롭지는 못하다. 자기복제를 하고 있는 작품들이 많다고나 할까.

 

거의 모든 작품들마다 공통적으로 자신만의 프레임으로 타인을 바라보고 오해하며, 피상으로 판단하는 인물들이 나오고 결국엔 그 편견에 배반당하며 결말로서 그 믿음이 전복되는 순간을 맞는다. 대부분 이런 구성인데, 작가는 작품마다 특징적인 이슈들을 부가하여 차별화를 두려고 노력한다.

작가의 등단작인 <티니안에서>는 친구에게 주홍글씨를 새기려는 인물과 공간적 배경이 되는 티니안 섬의 역사가 지닌 아이러니가 나란히 전개되고,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에선 주인공의 계급과 취향에 대한 편견, 더불어 과잉된 에고에서 비롯된 허세가 보이며, <빙점을 만지다><직사각형의 찬미>에서 작가는 (타인을 포함하여)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고작 경계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는 우리의 눈에 씌운 프레임의 존재를 결코 알아채기 어렵다는 것을 경고한다.

대미를 장식하는 <아름다운 것들과 아름답지 않은 것>은 사실과 진실에 대한 작가로서의 고민, 오늘의 작가가 있기까지 영향과 도움을 준 고마운 사람들에 대한 애정 고백, 결과를 내기까지 힘든 여정을 거친 작가 자신을 향한 위로가 엿보여 애정이 갔다.

<신시어리 유어스><바우어의 정원>은 술술 잘 읽히나 약간 모호했다.

 

작품집 전체로 보면, 변화구 없이 비슷한 공만 연달아 던지고 있으니 식상하고 지루한 야구 경기 보는 기분이 든다. 한편으로는 스스로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한 가지 테마나 이슈에 천착하는 뚝심이 보이는 것 같아 부러워할 만한 내공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강보라가 어떤 작가인지는 다음 작품에서 좀 더 드러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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