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의 시간 - 망가진 세상을 복원하는 느림과 영원에 관하여
사이 몽고메리 지음, 맷 패터슨 그림, 조은영 옮김 / 돌고래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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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생태학자인 저자가 거북 구조 연맹에서의 경험을 들려준 책이다. 저자는 그곳에서의 자신을 인턴이라고 소개하는데, 동물생태가 저자의 전문 분야이긴 해도 거북이라는 동물은 생소하고 낯선 종이었으므로 이는 전혀 겸손이 아니다. 저자는 다치고 죽어가고 위험에 빠진 거북들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자원을 아낌없이 나누는 사람들을 만나고 스스로도 귀중한 경험을 쌓는다.

 

이 책의 첫 장(chapter)에 제기되는 질문. 왜 하필 거북인가.

이 의문은 왜 하필 개를 키우는지 묻는 것과 맥락이 비슷해 어리석게 들린다. 저자는 거북 구조 연맹의 자원봉사자 알렉시아의 대답을 인용한다. ‘어떤 동물이든 동물을 돕는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다람쥐를 돕는 것도 물론 중요해요. 하지만 거북을 구한다면, 특히 암거북을 구하면 앞으로 100년을 살면서 계속 알을 낳을 겁니다. 거북 한 마리를 구하는 것은 결국 여러 세대를 구하는 일이지요. (27~28)’

단지 거북이 오래 살아서? 알렉시아의 말을 오해하기 이전에 시간이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인간의 시간은 유한하다. 하지만 인류의 시간은 그렇지 않다. 인류의 삶이 지속되려면 지구가 보존되어야 한다. 이쯤 되면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가 분명해진다.

 

한 개인의 이기심과 안일함은 자신을 망치고 환경을 망치는 방식으로 그 악영향을 다음 세대에게 미친다. 요즘의 우리는 마치 오늘만 살 것처럼 산다. 내일은 없는 듯이, 다음 세대는 존재하지 않을 듯이. 지금의 세대 전에는 얼마나 긴 시간이 축적되어 있는가. 또 이후로는 얼마나 긴 시간이 예고되어 있는가. 그런데 긴 시간이 예고되어 있는 것 맞나? 여기저기서 이런저런 문제가 터지고 심각한 환경 문제가 대두된 것이 오래 전인데, 우리는 앞으로의 위험과 불행에 충분히 준비되어 있나?

자연은 솔직하다. 받은 대로 돌려준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자연에 대한 인간의 행동은 부메랑 같다. 자신이 행함에 그 대가를 꼭 치른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한없이 겸손해지고 가끔 서글퍼진다. 생태와 환경의 문제는 결국 인간으로서의 와 직결된 문제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성찰하기를, 자연과 연대하기를 종용한다. 삶과 죽음을 둘러보며 고통과 행복을 상상하고 인내와 겸양, 포기가 아닌 수용을 터득하라고 요구한다.

그렇다면 거북의 이야기는 일종의 화두인 셈일까? 그렇지 않다. 저자가 관찰하고 배운 바에 의하면 거북의 삶에는 인간들이 닮아야 할 미덕들이 많다. 이 느리고 자연계에서 취약한(때때로 난폭하긴 하지만) 생물의 삶에서 우리는 기다림과 연대, 복원의 힘, 용기 같은 것들을 배운다.

 

이 책의 감상을 정리하기에 적당한, 지구와 환경은 우리가 잠시 빌려 쓰고 있는 것이라는 제인 구달의 말이 생각난다. ‘샘이 마르기 전까지는 물의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는 영국 속담의 무시무시함에 비하면 제인 구달의 말은 지나치게 유순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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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강보라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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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첫 소설집이고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데뷔작이라고는 해도 문장을 구성하는 솜씨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모양새가 보통이 아닌데, 작가의 이력을 보니 납득이 간다. 아무리 문장을 짓는 일에 이미 잔뼈가 굵어졌어도 이야기를 창작하는 건 다른 영역인데, 참 대단하다, 이런 생각도 잠깐 했다.

 

또 하나 좋았던 게, 작품들마다 느껴지는 거리감이었다.

가끔 신인 작가들의 작품들(특히 데뷔작)을 읽다 보면, 이야기에 목까지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작가들을 종종 만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작품집에 점수를 주고 싶다. 소위 냉정함과 차분함이 느껴진다는 말인데, 이를 테면 이런 거다. 독설(이것도 일종의 재능이다)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 세월의 흐름도 겪고 주변인들의 애정 어린 충고를 받아들여, 자기 식대로 모서리를 다듬은 후에 나올 법한, 진심은 있지만 냉정함이 서린 말투랄까. 일인칭 화자가 등장하는 작품에서도 작가는 관찰자로서의 위치를 버리지 않는다. 마치 난 저 세계에 뛰어들지 않을 거야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한데, 이 또한 작가의 이력이 준 내공이 아닐는지.

 

그렇긴 해도 작품집을 읽고 나면 소설가로서의 작가가 마주하는 한계가 보이는 것 같다. 인물 설정이나 분위기 등에 다양한 변주를 주고 있긴 한데, 다채롭지는 못하다. 자기복제를 하고 있는 작품들이 많다고나 할까.

 

거의 모든 작품들마다 공통적으로 자신만의 프레임으로 타인을 바라보고 오해하며, 피상으로 판단하는 인물들이 나오고 결국엔 그 편견에 배반당하며 결말로서 그 믿음이 전복되는 순간을 맞는다. 대부분 이런 구성인데, 작가는 작품마다 특징적인 이슈들을 부가하여 차별화를 두려고 노력한다.

작가의 등단작인 <티니안에서>는 친구에게 주홍글씨를 새기려는 인물과 공간적 배경이 되는 티니안 섬의 역사가 지닌 아이러니가 나란히 전개되고,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에선 주인공의 계급과 취향에 대한 편견, 더불어 과잉된 에고에서 비롯된 허세가 보이며, <빙점을 만지다><직사각형의 찬미>에서 작가는 (타인을 포함하여)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고작 경계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는 우리의 눈에 씌운 프레임의 존재를 결코 알아채기 어렵다는 것을 경고한다.

대미를 장식하는 <아름다운 것들과 아름답지 않은 것>은 사실과 진실에 대한 작가로서의 고민, 오늘의 작가가 있기까지 영향과 도움을 준 고마운 사람들에 대한 애정 고백, 결과를 내기까지 힘든 여정을 거친 작가 자신을 향한 위로가 엿보여 애정이 갔다.

<신시어리 유어스><바우어의 정원>은 술술 잘 읽히나 약간 모호했다.

 

작품집 전체로 보면, 변화구 없이 비슷한 공만 연달아 던지고 있으니 식상하고 지루한 야구 경기 보는 기분이 든다. 한편으로는 스스로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한 가지 테마나 이슈에 천착하는 뚝심이 보이는 것 같아 부러워할 만한 내공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강보라가 어떤 작가인지는 다음 작품에서 좀 더 드러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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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에드워드 캐리 지음, 공경희 옮김 / 아케이드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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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소설이면서 전기 소설이다. 프랑스 뿐 아니라 세계사에서 중요한 사건인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하고 그 시기의 중요한 인물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이야기는 주로 주인공 마리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스위스의 가난한 농노의 딸로 태어나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어 버려지고, 운 좋게 착한 어른의 제자가 되어 밀랍 기술을 배우지만 학대와 차별을 겪고, 뜻하지도 않았고 상관도 없는 정치적 대격변에 휘말려 죽음의 위기를 모면하다가, 결국 사업가로 성공하는 마리의 자립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작은 체구 때문에 마리에게 붙여진 리틀이라는 이름은 멸칭이면서 애칭이다. 누군가는 마리를 아껴주고 누군가는 이용한다. 리틀이라는 별명이 이중의 뉘앙스를 갖듯이 다양한 성격의 주변 인물들이 나온다. 그들 모두 입체적이고 특출한 개성을 지니고 있어 인상적이다. 역할들이 꽤 분명한 편이라 주인공과의 앙상블을 보는 것만도 재미있다.

 

작가는 주인공인 마리를 활용함에 있어서 균형을 잘 잡는다. 밀랍 제작자로서의 삶을 이야기할 때 마리는 당당한 주인공이지만, 인물 자신이 이방인(스위스 출신의 외국인)이므로 프랑스의 역사와 정치 앞에선 주변부로 살며시 밀려난다. 하지만 작가는 적절한 사건과 이유를 만들어 마리를 역사의 중심부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게 해 완전한 관찰자, 방관자로 추락시키지 않는다.

실제 역사에 개인 서사를 얹은 작품에서 작가가 빠지기 쉬운 함정인데, 두 요소 사이의 보기 좋은 밸런스는 작품을 매끄럽게, 쉽게 빠져들게 만든다.

 

궁극적으로 작가가 독자들에게 하고 있는 이야기는 인간사랑이다. 삶에 대한 의지, 폭력과 부조리에 대항하는 용기, 인간애, 보살핌과 이타심,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사랑.

지난한 시기를 겪어낸 인물의 이야기는 다소 뻔한 면이 있지만 이 소설은 그런 구태의연함을 잘 극복한 것처럼 보인다.

 

감정적인 높낮이가 꽤 심한 편이라 다 읽고 나면 다소 지친다. 분량이 적지 않은데 책장은 수월하게 넘어간다. 번역자가 무려 공경희인데다 (작가 자신이 그린) 삽화가 있다.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실존인물들이지만 작가 말로는 빈틈이 많아 나름의 상상력으로 채웠다고 하니, 완벽한 실화는 아닌 셈.

 

사족.

 

1. <마담 터소 밀랍 박물관>을 소재로 삼거나 배경으로 한 소설, 영화가 꽤 많다. 이 장소가 대중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식과 그 이유를 사유하면 꽤 재미있다.

 

2. 주인공인 마리 그로숄츠에 대해 궁금하다면 여기.

 

3. ‘마담 터소 밀랍 박물관에 대해 궁금하다면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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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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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로 고생하며 살고 있는 다나케빈과 새 가정을 꾸리던 1976년에서 순식간에 시간 이동(time slip)을 한다. 정신을 차려보니 18세기 초의 미국. 남북전쟁 전, 다나가 속한 때로부터 거의 170년 전이다.

다나는 그곳에서 루퍼스란 이름의 한 아이의 생명을 구하게 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의 몇 대를 거스른 조상. 많은 노예들을 거느린 부유한 농장주의 아들인 루퍼스는 자유민인 흑인 앨리스에게서 딸 헤이거를 얻는데, 그녀가 바로 다나가 알고 있는 가계도의 시작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는 둘째 치고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나중에 밝혀지는 사실이지만 루퍼스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때마다 다나는 과거로 소환된다. 그들의 가족이 현재까지 존재해야 하므로 헤이거가 태어나기 전까지 루퍼스는 살아 있어야 했다. 반대로 다나의 목숨이 위태로울 때(목숨의 위협을 느낄 때) 다나는 현재로 돌아올 수 있다.

 

이야기가 주는 긴장과 재미의 핵심은 다나의 신분이 역전되며 겪게 되는 모험에 있다. 현재에 그럭저럭 어엿한 미국 시민으로서 살고 있는 다나는 과거로 돌아감으로서 노예가 된다.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이 당시에 다른 무엇으로 사는 게 거의 불가능했으니까.

 

작가의 의도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여성과 인권, 폭력과 착취, 순응과 저항, 사랑과 증오. 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아주 재미있다.

특히 애증이 뒤섞인 다나의 감정과 정서적으로 나약한 루퍼스 사이의 감정은 아주 드라마틱하다. 굵직굵직하고 스피디한 사건들 사이를 채워주고 숨 가쁘게 몰아치는 감정들로부터 쉼 역할을 해주는데, 리듬감 있는 완급의 조절과 그 효과가 꽤 괜찮다. 의무가 아닌 필요당위에 의한 감정들은 전혀 군더더기나 소모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작품엔 (허점이 아니라) 작가가 의도적으로 설명들을 생략하고 있는 부분들이 많은데 그것들로부터 독자들의 시선을 돌리는 역할도 한다. 약간 교묘하게 보이지만 기술적이고 능숙하다.

 

솔직히 작품이 다루는 이슈는 새로운 건 없다. SF 장르에 특기를 가진 흑인 여성 작가가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딱 그만큼을 다룬다. 하지만 페이지가 쉴 새 없이 넘어가고 용감무쌍한 다나의 모험에서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의 흡인력을 보장한다. 다나는 타고난 여전사는 아니다. 경험과 시행착오가 빚어낸 결과물이라고 해야 할까. 겁에 질려 어쩔 줄 모르는 나약한 흑인 여성에서 강인한 주인공으로 거듭 나는 다나의 변화도 보기 좋다.

 

작품 속 세계는 다나에게 최악의 시절이지만 비교적 안전하다. 18세기의 사람들은 다나에게 친절한 편이고, 다나는 진짜 심각한 위기를 겪지는 않는다. 그런 면에서 작품이 약간 안일한 느낌도 든다. 이 책을 읽으며, 서부 세계를 체험할 수 있도록 고안한 놀이공원이 시스템 오류로 서서히 악몽으로 변하는 디스토피아 S.F.의 걸작, ‘율 브린너의 영화, 이색지대(Westworld, 1973)와 비교하게 됐는데, 이야기에 긴장을 부여하는 측면에서는 이색지대가 훨씬 잘 했다고 생각한다.

 

S.F. 장르보다 판타지 소설에 가깝다. 정통적인 SF에서 기대하는 과학 기반의 설정들은 거의 없다. 작가는 타임 슬립이란 소재, 왜 다나여야 하는가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파고 들면 플롯에 이런 저런 구멍들이 드러날 게 뻔하지만 작품은 그럴 새를 주지 않고 독자들을 몰아친다. 이 정도의 재미와 이 정도의 설득력, 이 정도의 메시지라면 ?’, ‘어떻게?’라는 질문 정도는 잊게 된다. (혹은 잊고 싶어진다)

 

사족.

 

원제인 ‘Kindred’는 상징이고 뭐고 굉장히 직설적인 제목이다. 보통 이런 제목은 촌스러워 보이는데 오히려 더 이상의 좋은 제목은 없을 정도로 딱 맞는다. 그런데 왜 번역 제목이 (이도저도 아닌) ‘이 되었을까. 차라리 솔직하게 번역해서 혈통이라고 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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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의 딸 조지 오웰 소설 전집 (무선)
조지 오웰 지음, 이영아 옮김 / 현암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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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불통에 인색하고 가난한데다 취향만 고급인 성직자의 딸인 도러시는 보좌신부를 둘 형편이 안 되는 아버지를 위해 교구민 관리에 교회의 각종 행사 준비에 집안 살림까지 맡는, 하루 스무네 시간을 쪼개 사는 사람이다. 가장 나쁜 건 이런 저런 외상 거래로 많은 상점에 갚을 빚이 점점 불어나고 있다는 사실. 빚 독촉에 아버지는 도움도 안 되고 빠져 나갈 구멍도 없고. 그럼에도 매사에 성실하고 긍정적인 도러시의 일상은 흐트러짐 없이 꾸역꾸역 굴러가고 있는데.

그러던 어느 날, 도러시의 삶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다.

 

기억상실이란 사건은 여러모로 편한 소재다. 인물에게 위기를 주고 모든 상황을 반전시킨다. 어느 정도 클리셰라고 할 수 있는 게 주인공이 기억을 잃거나 다시 찾음으로서 국면 전환을 꾀하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 작품의 도러시가 겪는 기억상실도 그렇다. 뜬금없고 이야기 안에서 너무 편리하게 기능한다. 도러시는 그 일을 계기로 타지를 떠돈다. 부랑자들이나 매춘부들과 어울리고 노숙을 하고 육체노동을 하고 구걸한 돈과 훔친 음식으로 연명한다. 나중에 어찌어찌 기억을 찾지만 실종으로 비롯된 고향에 퍼진 자신에 대한 추문으로 집에 돌아가지도 못한다. 해 본 적도 없는 교사도 되어 보기도 하고 스스로 돈을 벌기도 한다.

도러시는 자신이 많이 변했다고 느낀다. 더 이상 예전의, 성직자의 딸로서 살던 과거의 자신이 아니다. 도러시는 자신이 겪고 있는 변화가 긍정적인 건지 그렇지 않은지 헷갈린다. 분명한 건 자신이 전혀 다른 것을 원하고 추구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음이 변하면 세상 전체가 변하잖아요.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니까. (396)

 

기억상실이란 소재는 이 작품에서 클리셰이기 이전에 일종의 상징이다. 한 인간이 일상의 습관에서 벗어나 스스로 변화를 꾀하는 게 과연 쉬울까. 삶은 관성에 의해 진행된다.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오려면 뭔가 커다란 충격이 있어야 한다. 작가가 그 충격을 기억상실이라는 외부의 사건에 기댔다고 하는 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그럴 의지를 갖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억상실이 없었더라면 도러시는 과연 아버지에게 귀속된 삶을 벗어나 스스로의 삶을 결정할 기회가 있었을까.

 

결국 집으로 돌아온 예전의 도러시가 아니었다. 겉보기엔 크게 다를 바가 없을지라도 그녀는 분명한 변화를 겪었다. 종교에 대한 회의가 대표적이다. 불경한 생각이나 상스러운 말을 한 벌로 시침핀으로 팔을찌르는 행동 따위는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신에 대한 믿음은 여전하다. 손바닥을 뒤집어도 여전히 손인 거다. 드라마틱함은 없지만 미묘하다. 오히려 현실적이다.

 

작가의 반골기질은 이 작품에서도 여전하다. 작가는 도러시를 이곳 저곳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당시 영국 사회의 숨은 그늘을 고발한다. 열악한 노동과 말뿐인 교육 현장, 빈민들. 그런 악몽 같은 무대에서도 작가는 휴머니즘을 잃지 않고 있다.

 

작가의 소설 작품들 중, 유일하게 여성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이라고. 게다가 초역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다른 듯 하면서도 사회주의 사상을 기반으로 현실과 당대 세태를 비판하고 있음은 일관적이다. 대표작인 1984동물농장SF와 우화의 특징을 갖고 있다면 이 작품은 그냥 현실이다. 기억상실을 겪는 여자가 비교적 안전히 집에 돌아왔다는 것 자체가 판타지처럼 들리기는 하지만.

 

사족.

 

제목과 본문엔 그냥 신부라고만 되어 있는데, 원제의 Clergyman이 보통의 신부와 어떻게 다른지, FatherPriest 등과 뭐가 다른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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