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의 봄 가노 라이타 시리즈 1
후루타 덴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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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reversed) 미스터리’ 성격의 작품이 다섯 편 실려 있다.
범죄 수사 집단의 주요직에서 동네 파출소의 일개 경찰로 좌천된 ‘가노’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작가가 지향한 장르가 미스터리이니 이 인물이 소위 ‘탐정’인 건 맞는데, 주인공의 역할에선 살짝 비껴 있다. 이야기를 이끄는 실제 주인공들은 각각의 악의를 지닌 인물들처럼 보인다.

작가는 범죄와 수사로 연결되는 미스터리의 전형성에서 벗어나 인물들의 ‘사연’에 집중한다. 도서 미스터리 장르의 특징을 잘 활용한 셈인데, 그래서인지 ‘죄의 고발’보다는 인물들에 대한 연민과 이해에 집중한다. 범죄자들의 편에 서려는 것처럼 보여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겠다.

전체적으로 추리소설의 작법을 활용한 ‘그냥’ 소설에 가깝게 읽힌다. 사실, 추리 장르로서는 다소 애매하다. 고민과 실패가 거세된 ‘가노’의 추리는 지나치게 신속하고 정확해서 기계적으로 보이고 실제적인 범죄라고 할 만한 행동이 나오지 않는 작품들도 있다. 단순히 악의를 품은 것만으로 죄를 저질렀다고 볼 수 있을까.

가족 내의 폭력과 트라우마의 긴 그림자를 고발한 <봉인된 빨강>과 외롭고 가난한 노년의 삶을 범죄에 기대려 한 노파의 슬픈 이야기인 <거짓의 봄>이 기억에 남는다. <이름 없는 장미>는 로맨틱한 정서가 두드러지며 연작으로 읽히는 <낯선 친구>와 <살로메의 유언>은 흐름이 다소 억지스럽다. 특히 억지로 끼워 넣은 듯한 가노 형사의 과거는 모서리가 너무 두드러진다.

≪밤과 아침의 범죄≫라는 제목으로 나온 후속 작품이 있다. ‘가노’ 형사가 나오고 단편들로 구성된 것 같은데, 호기심은 썩 생기지 않는다. 이 책에 대한 매력이 별로 크지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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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페이스
R. F. 쿠앙 지음, 신혜연 옮김 / 문학사상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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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작가, 이야기를 짓고 글을 쓰는 사람들을 주인공을 한 소설 중에 두 번째로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다. (대망의 1위는 ‘테디 웨인’의 ≪아파트먼트≫) 소설을 창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장 핍진하게 보여줬달까.

작가라는 직업군에 속한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다른 작품들은 대략 이렇다. 어렸을 때 문장가로서 싹수를 보였던 주인공이 작가가 되고 싶은데 돈도 안 되는 글만 써서는 입에 풀칠을 못 하니 생업을 버리지는 못하고 시간을 쪼개서 습작에 고군분투하는 와중에, 연애할 시간은 또 어디서 났는지 알콩달콩 연애 살짝 하다가 갑자기 ‘짠!’하고 작가 데뷔. 혹은 모든 걸 포기하고 귀향. 뭐 이런 정도가 아닐까?

그런데 이 소설, 뭔가 달랐다. 여타 다른 소설들에서 작가라는 직업이 최종 목표, 환상적인 미래, 꿈에 그리던 무엇으로 그려지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 플롯의 대부분이었다면, 이 소설엔 그 이후의 이야기들, 그 세계에 존재하는 함정들, 추악한 민낯들에 더욱 집중한다. 특히 ‘표절’이나 ‘타인의 사생활 훔치기’ 같은 일들은 우리 문학계에서도 실제 일어난 일이라 이 작품의 날 것 같은 생생함은 정말이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지만 작가가 정말로 노린 이슈는 아마도 이것이었을 거다.
백인이 아시아인의 역사를 소재로 소설을 쓸 수 있는가.
재미있는 건 중국의 역사를 주제로 소설을 쓰는 백인 소설가가 나오는 소설(이 책)의 작가가 실제로 미국계 중국인이라는 사실이다.
이성애자가 쓴 퀴어 이야기에 진심이 있을까. 남자 작가는 여성 서사를 쓸 자격이 있을까.
백인이나 흑인이 랩을 하는 건 어떤가. 백인이 아시아인을 연기하고, 흑인 인어공주가 스크린에서 활약하는 건? 그냥 문화적 다양한 접근, 정치적 올바름, 이런 단어들로 퉁칠 수 있을까.

작가는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주인공 ‘주니퍼’의 위기도 어영부영 봉합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해결은 아니다. 열린 결말처럼 보이지만 결말은 그냥 찢어진 채 방치된다. 독자는 질문하고 생각하고 스스로 (자신 만의) 답을 내려야 한다.

유쾌하고 천진난만해 보이지만 어딘지 음흉한 구석이 있는 작품이다. 노골적이지 않게 문제를 건드리면서 응급처치만 간신히 해놓은 상처의 핵을 건드린다. 아이러니와 문제의식으로 가득 찬 질문으로 독자를 불편하게 하면서도, 무겁지 않고 재미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소설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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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 뷰티풀
앤 나폴리타노 지음, 허진 옮김 / 복복서가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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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으로 네 자매가 등장하는 이 소설은, 작가가 의도를 했을지는 몰라도 ‘루이자 메이 알콧’의 ≪작은 아씨들≫의 다른 버전으로 읽힌다.
게다가 이야기가 좀 뻔한 구석이 있다. ‘작은 아씨들’을 염두에 두고 읽자니 더 그렇다. 이 사람은 나중에 글을 쓰겠네, 하면 작가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 사람은 나중에 일찍 죽겠네, 하면 병에 걸린다. 넷 중에 한 명은 동성애자가 아닐까, 했더니 느닷없이 커밍아웃을 한다. 예쁘게 봐주려는 필터를 벗기면 아침드라마에나 어울릴 법한 막장 요소까지 보인다. 점입가경이다. 불륜에 가까운 사랑에 불치병이라니. 너무 뻔한 거 아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진짜 재미있게 읽었다. 물론 독자들마다 ‘개취’가 있으니, 이 작품의 뻔함과 결말의 신파를 싫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겐 올해 들어, 여태까지 읽은 책 중 베스트에 속한다. 사랑스럽고 현실적인 인물에 이야기는 풍성하고 감정은 절절하고 재치 있는 대사에 빠른 전개, 그 뻔하디 뻔한 가족애와 형제애, 화해와 용서라는 주제까지. 뭐 하나 빠뜨릴 게 없다.
간극을 벌여놓고 찢어진 틈새로 피고름이 흐르는 소설도 좋지만, 이렇게 울퉁불퉁하긴 해도 상처가 아무는 걸 지켜보는 소설 또한 나름의 미덕이 있다. 각박하고 무서운 세상에 갑옷을 두르게 하는 이야기도 거짓말이 뻔한데도 희망과 행복을 주는 이야기도 우리에게 필요하다.

익숙한 이야기라도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척, 애쓸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책을 읽다보면 자신이 쓰고 있는 이야기가 너무나 뻔해서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고 무진장 애를 쓰는 작가가 보이는 책들이 있는데, 이 책에서 작가는 그런 장애를 정면돌파한다. 그래. 나 뻔한 이야기 쓸 거야. 남이사? 이런 뻔뻔함, 우직하게 나아가는 힘이 느껴진다. 그쯤 되면 독자로서도 이런 마음이 생긴다. 그래? 그러겠단 말이지? 어디 한 번 보겠어.
결과는?

익숙함과 뻔함의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건 이야기에 진심이 담겨 있는가이다. 착하고 모범적인 인물이 나오느냐의 문제도 아니다. 사람들은 모두 실수를 한다. 실수도 하고 오류도 하고 의도적인 악행도 저지른다. 문제는 자신의 실수를 어떻게 다루느냐, 그 앞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이다. 작가는 인물들(주로 ‘줄리아’와 ‘실비’)을 통해 오류투성이, 실수투성이, 엉망진창에 가까운 실제의 우리를 보여준다.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인물들을 보면서, 그 안에서 독자들이 자신을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이야기에 진심이 있다고 여긴다. 허무맹랑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질지라도 인물들의 감정과 반응, 행동은 ‘그럴 성 싶어야’ 한다.
소설 작품을 읽다 보면 가끔 이런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과연 이런다고? 진심이야?’
이런 질문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는 난 ‘거짓’이라고 본다. 최소한 진심은 없다고.

사족.

주로 여성 독자들에게 어필할 요소들이 많다고 하면, 너무 성차별적인 발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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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사나이 문지 스펙트럼
E.T.A. 호프만 지음, 김현성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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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앞에 읽은 ‘위수정’의 책, 어느 단편에서 잠깐 언급됐더랬다. (아! 나한테 있는 책이었지)
이 작가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표제작인 <모래 사나이>고, 이 작품이 실린 번역본만 내가 알기로 7권이 넘는다. 작가의 단행본은 물론이고, 호러+환상 문학 선집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작품이기도 하다.
이번에 읽은 ‘문학과지성사’ 판은 작가의 대표작 세 편이 실려 있고, ‘을유문화사’의 세계문학전집 135권으로 나온 ≪밤 풍경≫에는 원작에 실렸던 작품 8편이 모두 실려 있다. 혹시나 읽을 의향이 있다면 을유문화사 판을 권한다.

한참 후배인 ‘아서 메켄(Arthur Machen)’과 공통점이 많다. 낭만주의적인 작풍에 호러와 미스터리, 환상소설 등의 장르적인 색채가 강하다.
대략 골자를 추리자면 이렇다. 유한계급의 한량인 남주가 위험에 빠진 묘령의 여인과 우연히 마주치고 (밑도 끝도 없이) 사랑에 빠진다. 우리의 히어로는 그 여성을 구하려다가(도우려다가) 자신도 위험에 맞닥뜨린다. 그 와중에 어마무시한 비밀을 마주하게 된다는, 그런 이야기.
다소 고리타분한 클리셰처럼 보이지만 작가와 독자 사이에 놓인 200년의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이야기가 생생하다. 장황한 묘사와 오골오골함, 다소 과장된 비장함을 잘 넘긴다면 요즘의 (장르) 독자들에게도 충분히 어필 가능하다.

<적막한 집>이 호러와 미스터리의 조합이라면, <장자상속>은 미스터리 성격이 강한 대서사시 같다. 중편 길이의 분량에 이런 장황함이라니. 작가의 일방적인 설명이 차지하는 부분이 많아 다소 지루하다.

<모래 사나이>는 작가의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다. (다른 하나는 ‘차이코프스키’의 발레의 원전이 된 동화,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의 왕>) 호러, 환상소설 선집에 빠지지 않는 작품이라, 여러 번 읽었음에도 이번의 감상은 다소 달랐다. 이야기의 자극적인 요소(공포 효과와 모호하고 열린 결말 등)를 제거하면 ‘트라우마’에 대한 고찰, 심리 소설을 지향했던 작가의 의도가 좀 더 부각된다.
읽을 때마다 최종적인 감상이 내려앉는 지점이 다르다는 것. 그런 것이 바로 200년의 세월을 살아남게 한 작품의 힘을 증명하는 게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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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없는 밤
위수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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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은 지 석 달이 지난 후에 뭔가를 적으려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장편소설이면 그럭저럭 감상을 추릴 수 있겠으나 열 편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은 그러기가 쉽지 않다.
일단 올해 첫 책으로 읽은 작가의 첫 소설집, ≪은의 세계≫와는 많이 달랐다고는 말할 수 있다. 전작이 모호하고 불친절했다면, 이 책은 대체적으로 이야기의 윤곽이 잘 보였다. 어떤 이야기인지 대략 잘 보였다는 말. (그럼에도 말미에 실린 단편 세 편은 여전히 모호했다)

편편이 감상을 적기 위해서 다시 읽어야 할까. 그럴 생각도 했으나 굳이? 이 책으로 시험을 치를 거면 몰라도.

기억을 더듬어 인상적이었던(느낌의 잔재나마 건질 수 있는) 작품들을 적어보자면…

영원한 이인자의 열등감과 시기심을 보여주며 자신을 좀 더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실은 <제인의 허밍>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차이는 있겠으나, 그(그녀)가 되기 위해 사소한 것을 빼앗는 인물은 ‘문지혁’의 단편, <허리케인 나이트>를 생각나게 한다.

드러난 거짓이 많을 때, 진실이라고 알려진 건 과연 믿을 만한 것일까, 하는 의문과 함께 가부장적 온정주의에 빠지기 쉬운 선의에 대한 경고처럼 읽히는 <몬스테라 키우기>는 ‘휴 월폴’의 인상적인 단편 <은가면>을 연상시켰다.

‘E. A. 포우’의 고전적인 단편, <검은 고양이>를 패러디한 <플루토, 너의 검은 고양이>는 창작과 모방, 현실과 망상, 허상과 본질, 피상과 이면의 대립을 보여주는 실험적인 작품이었다.

여자로서 몸의 권리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처럼 읽혔던 <멜론>은 분위기, 서사의 흐름을 뒤집으며 환기하는 엔딩이 인상적이었다.

뭐, 이 정도로 이 책을 마무리할 수 있으려나. 책을 읽으며 짧게 메모를 해두었으나, 지금으로선 그것들조차 도움이 되지 않는다.
책 읽고 바로바로 감상을 정리해야지, 미뤘다간 이런 낭패를 보게 되니 나의 안일함과 게으름은 정말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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