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처방해 드립니다 1
이시다 쇼 지음, 박정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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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이었지만 행복했어.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나에게 와줘서 고마워.
사랑해. 사랑해. 고마워.
잘 가. 사랑해. 사랑해……. (352쪽)

이렇게 사랑스러운 이야기라니.
고양이 한 마리 키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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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이야기
메이 싱클레어 지음, 송예슬 옮김 / 만복당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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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처럼(원제는 Uncanny Stories) 불가사의하고 무시무시하고 신비로운 이야기 일곱 편이 실렸는데, ‘작정하고 호러’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하지만 처음 접하는 작가에 대한 호기심과 한 세기 전 작가가 누렸던 인기와 명성을 확인하고 싶다면 추천한다.

이 작품집엔 유령이 나오는 작품들(작가가 호러 장르를 의식하고 쓴 이야기들)이 몇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들조차 독자들의 기대를 뛰어넘는데, 보통 유령, 귀신, 죽은자의 영혼 등은 보통 악의를 가지고 복수나 현실의 혼란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 등장하는 유령들은 성격이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징표>에는 남편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죽은 아내의 영혼이 나온다. 아내의 목적은 무뚝뚝하고 냉정한 남편이 생전에 자신을 사랑했음을, 짧았던 자신이 삶이 무용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죽음이란 이별이고 망각이지만 육체가 사라진다고 완전히 소멸되는 건 아니다. 죽은 사람은 남은 사람에게 과거의 일부로, 그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아 존재한다.
단순한 구성에 짧은 분량, 죽은 유령의 애처로운 갈망과 남편의 극심한 후회가 어우러져 애수(哀愁)어린 감상을 남긴다.

<증거의 본질>은 뻣속까지 유물론자인 남자가 ‘진짜 체험’을 하는 이야기다. 아내의 죽음 후 아름답고 육감적인 여자와 재혼을 한 남자는 ‘합방’을 방해받는데, 죽은 아내의 환영이 남자 앞에 나타나기 때문. 자칫 코미디로 빠지기 쉬운 소재와 신비로운 분위기, 섹슈얼한 무드가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파장이 이야기에 독특한 임팩트를 부여한다.
현실의 아내와 환영으로 보이는 (죽은) 아내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남자의 두려움과 갈등은 물질과 정신의 대립으로 읽힌다. 주인공이 경험하는 ‘두렵고 강렬한 만남’,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것 이상으로 깊숙하며 존재의 모든 부분을 건드릴 만큼 거대한 열정(222쪽)’은 ‘낸시 A. 콜린스’의 기이하고 괴랄한 로맨스 <에이프라(Aphra)>를 연상하게 한다.

<죽은 자가 알게 된다면>은 늙은 모친과 애인 사이에서 갈등하는 가난한 오르가니스트의 이야기이다. 사랑스러운 애인과 결혼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은 노모가 죽음으로서 물려받을 유산으로서 해결된다. 남자는 애인을 사랑하는 만큼 어머니도 사랑하고 어머니가 살아있는 한 그 곁을 떠날 수 없다. 갑작스러운 병환으로 모친이 죽고 결혼에 성공하지만, 주인공은 잠시나마 자신이 어머니의 죽음을 바랐던 적이 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갖는다. 그 죄책감은 어머니의 유령을 마주하게 되면서 극대화된다. 누군가의 죽음을 바랐고 실제로 그 누군가가 죽었다면, 생각만으로도 죄가 되는 것일까.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는 게 면죄부가 될까.
‘죄(罪)’의 본질, 집착과 소유욕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는 가족애의 이면, 사랑과 증오, 부모와 연인 사이에서 갈등하는 남자의 양가감정이 짧은 분량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다.

<희생자>는 애인과의 사이를 이간질했다고 오해해 고용주를 살해하고 시체를 유기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하지만 남자 앞에 나타난 고용주의 유령은 오히려 남자를 용서하고 위로한다.
살인보다 더 큰 범죄는 증오이며, 그것을 다스릴 수 있는 건 오직 사랑이라는 작가의 관점이 독특하다. 사랑과 용서, 관용에 대한 이야기이다.

<크리스털의 결점>은 행간마다 강렬한 성적인 에너지가 흐르는 묘한 감상의 작품이다.
‘애거사’는 타인의 마음을 조종하고 정신을 치유하는 특이한 능력(일종의 염력)의 소유자로서, 그 자신이 바로 ‘맑고 진실한’ 무결점의 크리스털(99쪽)’이다. 플라토닉한 사랑에 만족하며 유부남인 ‘로드니’를 위해 사심없이 발휘되던 그녀의 능력은 그를 향한 ‘기쁨에 딸린 육체적인 성격(135쪽)’을 의식하게 되면서 손상된다.
‘리비도(libido)’의 각성은 애거사가 지닌 능력의 방해 요소로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원동력이기도 한 것으로 읽힌다. 애거사는 가정이 있는 로드니에게 성적으로 끌리면서 한편으론 두려워한다. 나중에 애거사의 자아는 또 다른 치유 대상인 ‘하딩’의 자아와 동일화되어 그의 공포와 괴로움이 애거사에게 전이된다. 이는 사랑(혹은 성적인 감정, 로맨틱한 관계에 대한 열망)의 은유로 읽힌다. 작가는 그것을 ‘신성하지만 위험한, 끔찍한(178쪽, 180쪽)’ 것으로 표현한다.

<그들의 불이 꺼지지 않는 곳>에선 사후 세계가 특이하게 묘사된다.
부모가 허락하지 않아서 실패한 첫사랑과 부인에게 돌아간 유부남과의 두 번째 사랑을 거쳐, 삼십대의 ‘해리엇’은 세 번째 사랑인 ‘오스카’를 만난다. 문제는 오스카 역시 유부남이라는 사실. 스릴 넘치는 모험 같은 사랑은 짧았고 지루해진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은 두 사람은 죽는다. 그리고 사후 세계.
두 사람만 존재하는 사후 세계가 펼쳐지는데 연애할 때의 지루함과 전혀 즐겁지 않았던 기억이 되살아나 해리엇은 오스카를 피하고 싶지만 절대 그럴 수 없다. 죽어서조차 ‘두 사람이 두려워하면서도 아직 용기 내어 거부하지 못하는, 영원한(23쪽)’ 관계가 지겹다.
죽어서도 서로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두 사람의 모습은 불륜에 대한 대가로 얻은 또 다른 지옥(징벌)일까. 혹은 단순히, 결혼 생활의 은유일까, 혹은 두 사람의 사랑이 자신들의 생각보다 진실했던 건 아닐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것도 재미있지만, ‘미래가 과거에 영향을 준다(46쪽)’는 작가의 운명론적인 사유가 독특하다. <크리스털의 결점>과 ‘불륜’과 ‘리비도’라는 키워드를 공유하며, 사후 세계라는 배경은 마지막 작품 <절대적 세계의 발견>과도 중첩된다.

철학가인 ‘스폴딩 씨’가 죽은 후 목격하는 ‘저쪽 세계’의 풍경이 묘사되는 <절대적 세계의 발견>은 서사보다는 이미지(시각화)에 치중한 작품이다. 철학과 SF적인 요소로 버무려 독특하고 대단히 현대적인 그림들을 그려낸다. 그런데 너무 어렵다. 미장센이 멋진 SF 영화를 보며 ‘와!’하며 감탄하는데 무슨 얘기인지 따라잡지 못하는 느낌이다. 철학이나 물리학에 대한 배경 지식이 있다면 좀 더 나았을까.
절대적이고 영원한 것은 없으며 천국도 없고 지옥은 있는데 그곳은 바로 우리가 사는 현세라는 정도만 이해했다(완전 공감). 과거와 현재, 미래가 뒤섞이고 공존하는 모습은 ‘최진영’의 단편 <홈 스위트 홈>의 ‘시간은 발산한다’는 문장과 맥락이 비슷해 보인다. 이 정도가 이 작품을 이해한 바이다.

나름 한 시대를 풍미했으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독자들에게 잊힌 작가로 보이는데 구글을 검색해 보니 해외에선 아직 책이 출판되고 있다. 소설, 시, 철학, 평론 등 팔방미인으로 활동했고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으며 작품에 실험적인 시도를 마다하지 않은 동시에 정치적으로도 활발했던(여성 참정권 운동), 여러모로 선구적인 작가였다고 한다.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작가의 면모는 다양한 층위를 가진 이야기들로 구성된 이 작품집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이 (단순히) 호러 소설집으로 알려지고 소비되는 것이 약간 아쉽다. ‘호러 선집’이라는 타이틀로는 이 책을 온전히 묘사하는 데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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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이야기
메이 싱클레어 지음, 송예슬 옮김 / 만복당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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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층위를 가진
이야기 일곱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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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의 도시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13
문지혁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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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문학상 수상집에서 처음 만난 ‘문지혁’의 소설이다.
에필로그와 프롤로그를 제외한 다섯 개의 챕터로 구성됐다. 각 장의 소제목은 다음과 같다.
(순서대로) Professor, Partner, Pursuit, Punishment, Pastor.

제목이 ≪P의 도시≫이고 각 장의 제목이 이렇다면 뭔가 짐작이 간다. 굉장히 멋을 부렸구나. 멋을 좀 부리는 건 나쁘지 않지만 내용이 부실하면 어쩌지. 아주 고약한 편견이라는 걸 알지만 많은 경우 공허한 내용을 커버하기 위해 외양(형식적인 면)에 공을 들이는 경우가 있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에 든 걱정이었다. 그렇긴 하지만, 음... 책은 이미 샀고 분량도 길지 않으니, 시간을 투자해도 괜찮겠지.

(작가에 의하면) ‘사랑’과 ‘고통’을 키워드로 쓴 이야기(라고 한)다. 사랑은 보통 고통을 동반하지만 사랑 자체가 고통은 아니다. 사랑의 순도가 떨어질 때 고통스럽다.

이야기가 자꾸 뭔가 어긋나고 어색하며 자연스럽지 않았다. 좀 억지스러웠다고 할까, 작위적이어서 자꾸 덜커덕거리기도 했고. 한 마디로 사랑 이야기를 하면서 그것에 고통이 자연스럽게 뒤따라 나온 게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이 작품은 마치, ‘고통의 연쇄와 상호작용(186쪽, 작가의 말)’을 보여주기 위해 사랑이라는 감정을 이용한 것처럼 읽힌다. 이런 작품을 두고 사랑 운운하는 작가의 말은 참 민망하게 읽힌다.

명색이 사랑 이야기라면 그 감정이 전달되어야 한다. 아름답거나 행복하거나 아프거나 애달프거나 아쉽거나. 하지만 그런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여기 나오는 주요 인물 네 명이 사랑을 하고 있기는 한 걸까? 이들의 감정은 피상적이고 반응은 기계적이고 행동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결국 생동감 없고 꼭두각시 같은 인물과 작가가 나름 열심히 머리를 쥐어짜냈으나 교묘하지도 않은, 엉성하기 짝이 없는 얼개만 남는다. 매 중요한 순간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우연이 개입하는 것을 보면 참 쉽게 썼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애초에 일을 키운 ‘미혜’의 거짓말엔 아무런 목적이 없다. 미수에 그친 성폭행을 두고 왜 ‘당했다’고 말하는 걸까. 경찰에 신고하자는 남편에게 광고라도 하자는 거냐며 눈에 불을 켜던(거짓말이니 신고하면 안 되겠지) 미혜는 애인에게도 거짓말을 반복한다. 왜? 도대체 왜? 게다가 그녀는 거짓말을 수습할 기회가 있는데도 하지 않는다. 그저 일이 커지는 걸 지켜보고 있다. 이쯤 되면 남자들을 괴롭히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건 또 아니랜다(대체 뭐하자는?). 그러면서 성폭행범들을 찾아 죽여버리겠다고 펄펄 뛰는 평화를 소극적으로 돕고 방관한다(129쪽).

‘지웅’은 미혜와 결혼하기 위해 칠 년간 사귄 ‘수진’을 차버리고 떠날 때, 수진이 주는 삼백만 원을 왜 숨겼을까. ‘그걸 냉큼 집어 들고 올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놓고 올 수도 없었다(95쪽)’고 하는데, 이게 말이야 방구야? 받기 싫으면 그냥 두고 나오면 되지 굳이 ‘책 사이에 구겨넣고 책을 다시 책장에 꽂았다(96쪽)’는 불필요한 행동을 왜 하고 있나? 보물찾기라도 하려고? 이는 나중에 수진의 동생 ‘평화’로 하여금 그것을 찾고 오해를 하며 분노를 키우게끔 만드는 밑밥이 되는데 작가의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라 헛웃음도 안 나온다.

다른 여자와 결혼해서 미국으로 가는 지웅에게 삼백만원을 줄 정도로 너그럽고 통 큰 행동을 보였던 수진이 동생에게는 그들이 ‘불행해졌으면 좋겠(121쪽)’다며 저주를 퍼붓는다. 다중인격인가. 이 정도면 동생한테 자기 대신 복수를 해달라고 부추기는 거 아닌가.

‘PTDS에 따른 양극성 장애, 공황 장애, 우울증, 충동조절 장애, 편집증(122~123쪽)’ 등을 앓고 있는 평화가 누이와 유산으로 죽은 제 조카의 복수를 위해 미국으로 갔을 때, 하필이면 ‘이목사’가 있는 교회에 발을 들인 것은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황장로’가 이목사에게 권총을 자랑하며 (나중에 알아서 훔쳐가도록) 숨겨둔 금고의 위치나 금고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장면(153~154쪽)을 보라. 이 정도면 개그콘서트다.
나중에 황장로는 위기를 맞는데, 이 사람이 벌을 받을 이유가 무엇인지 설득이 안 된다. 단지 부자라서? 이런저런 사람들 피해주면서 부자가 됐다면 이 세상 부자들은 전부 벌을 받아야 하나? 이목사는 황장로의 죄목들을 조목조목 읊어가며(교만하고, 사람들을 하대하며, 자신이 고용한 히스패닉들을 못살게 굴고, 여종업원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하고 임신한 여자들을 해고하거나 낙태를 강요하고, 156쪽) 그에 대한 악의를 정당화하려 하지만, 대체 무슨 자격으로? 자기가 신이라도 되는 줄 아나. 작품 속에서 이 사람이 제일 미쳐 보인다. (제정신이 아닌 것 맞다)

‘이목사’ 캐릭터가 너무 나갔다는 증거는 또 있다. 그는 왜 수진과 평화 남매에게 복수하려고 하는가. 그의 부모를 죽인 자는 남매의 아비다. 아비는 지금 감옥에 있다. 졸지에 남매도 고아 아닌 고아가 됐다. 그들도 피해자다. 그들과 이목사는 비슷한 처지다. 그럼에도 이목사는 ‘DNA에 새겨진 악을 피해갈 수 있는 인간은 없다(155쪽)’고 괴상한 논리를 내세우면서, ‘너희 아비가 시작한 이 고통의 문제(175쪽)’를 아들인 평화에게 뒤집어씌운다.
수진은 왜 용서하는가? 여자라서? 지웅에게 이미 고통을 받을 대로 받아서? 그렇다면 자신의 복수에 지웅과 미혜를 이용하는 이유는 뭔가? 그들도 타인을 배반하고 배우자 몰래 불륜을 저질렀기 때문에? 미예의 불륜은 이목사 자신의 책임도 있는데도?

‘누군가를 사랑하면 불행해져. 사랑은 마음 깊은 곳의 지옥으로 들어가는 문이거든.’
이 정도면 책 뒷표지에 찍힌 위의 문장이 과대포장, 과잉광고가 맞다. 이 책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고통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다. 복수에 관한 이야기는 되려다가 말았다.

작가가 어떤 것을 노렸는지 짐작이 간다. 건조한 정서에 ‘느와르(Noir)’ 느낌이 물씬 나는, 그럼에도 사랑이라는 감정이 진득하게 들러붙는, 권총이 등장하고 미국이 배경인, 그런 폼 나는 작품을 의도했을 것이다.
작풍(作風)으로 치면, ‘코넬 울리치(Cornell Woolrich)’의 ≪검은 옷을 입은 신부(the Bride Wore Black)≫나 ≪상복의 랑데부(Rendez-vous In Black)≫ 같은 작품이 생각난다. 두 작품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어이없이 잃고 관련자들을 찾아 복수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다. 이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살인과 범죄로 점철된 느와르-스릴러-미스터리 장르면서도 지독히도 절절 끓는 로맨스였다.

작가가 원한 게 이게 맞나. 아마도 맞을 것 같다. 하지만 결과물은 (미안한 말이지만) 처참하기 짝이 없다. 최근 발표한 단편을 인상 깊게 읽어서 고른 책이 하필이면 7년 전 작품. 작가가 언제부터 작품을 쓰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비교적 초기작일 것이란 느낌은 온다. 하지만 ‘아직 어설프고 부족하지만 예쁘게 봐주세요’ 이런 말 안 통한다. 독자가 왜 그래야 하는데?

우리나라 엔터테인먼트 업체에서 준비 안 된 연습생들을 데뷔시킬리 만무하다. 춤과 노래, 퍼포먼스, 그 능력이 최대한 무르익었을 때에라야 노래 한 곡 겨우 주어지고 ‘음방’ 출연 기회 한 번이 떨어진다.
문학 시장이라고 다르겠는가. 독자들은 돈을 지불하고 시간을 투자하여 책을 (단순히 읽는 게 아니라) ‘읽어주는’ 사람이다. 책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화를 내는, 화를 내도 괜찮은, 그래도 마땅한 사람들이다. 독자들이 원하는 건 ‘작가의 발전’이 아니다. 작가가 세상에 나올 때 이미 완성된 모습이길 바란다. 완성된 틀 안에서 자유분방하게 변화하는 모습을 반긴다. 미숙한 모습에서 점점 나아지는 걸 기다릴 겨를이 없다.
그러니 작가들이여. 출판의 기회를 마치 연습무대처럼 삼지 마라. 자비 출판으로 개인소장이 목적이 아니라면 독자들을 만족시키는 걸 최고 목적으로 둬라. 치열하게 써라. 완벽주의자가 되라. 독자들이 돈과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해라. 종이를 제공한 나무에 죄를 짓지 마라(전자책 제외). 그게 그대들의 사명이다.

사족.

‘은행나무 출판사’의 「N°(노벨라)」 시리즈의 한 권인데, 리커버(개정판)이라고 하는 걸 보니 과거에 같은 제목으로 출판한 이력이 있는 것 맞다.
출판사는 이 시리즈를 장편이라고 우기고 있는데, 판형이나 편집 모양새로 보면 중편 길이 정도밖에 안 된다. 비슷한 콘셉트로 다른 출판사에서도 한국소설 시리즈를 내고 있는데, 그것들에 비하면 정가가 저렴해서 그나마 나은 편이다. ‘위즈덤하우스’의 「위픽(WeFic)」 시리즈는 단편 한 편 책으로 묶어내고 만원이 넘는 가격을 책정하고 있어 가격이 완전 ‘WtF’이다. 독서 인구를 늘이고 모든 사람들의 손에 스마트폰보다 책을 들게 하자는 취지는 좋지만, ‘솔까말’ 책이랑 친하지 않은 건 책이 두껍거나 내용이 길어서가 절대 아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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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의 도시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13
문지혁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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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어설프고 많이 부족하지만
예쁘게 봐주세요.

독자가 왜 그래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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