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처방해 드립니다
이시다 쇼 지음, 박정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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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같은 분위기의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직장인.
입바른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동료가 꼴 보기 싫은 직장인.
생활에 지쳐 아이들에게 공감을 못 느끼는 엄마.
자신의 완벽주의로 피곤한 사업가.
잃어버린 고양이를 아직 잊지 못하는 여자.

교토 시 번화가, 찾기도 어려운 틈새 골목, 막다른 끝의 건물 5층. 간판도 없고 대기 환자도 없고 의사 한 명(니케)에 간호사 한 명(지토세)이 있는, 아는 사람만 찾아가는 ‘고코로 병원’에 갖가지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사실 이 곳은 (그렇게 소문이 났을 뿐) 정신과 클리닉도 아니고 상담소도 아니다. 사람들은 그곳을 나설 때 고양이 한 마리씩을 들고 나오는데, 그게 바로 의사의 처방이다. 그렇게 고양이와의 뜻밖의 동거가 시작되고, 사람들은 자신이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고 느끼며 (스스로)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다.

사람들은 자신을 괴롭히는 고민을 해결할 자구책을 이미 가지고 있다. 그걸 아직 깨닫지 못했거나 자신을 믿지 못하거나 실행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할 뿐. ‘답정너’라는 말이 있듯이 답은 이미 자신 안에 있다. 사람들이 타인을 통해 얻고자 하는 건 그저 단순한 동의이거나 그것을 깨닫도록 이끌어줄, 혹은 용기를 북돋아줄 작은 힌트나 동기부여인 경우가 많다. 여기 나오는 인물들도 자신 안의 답을 스스로 찾는다. 고양이들은 그것을 돕는다. 물론 고양이들이 그것을 의식하고 있지는 않겠지만. 독자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건 바로 이런 지점에서 비롯된다.

다섯 편의 이야기가 실렸는데 연작 형식이다. 각각의 이야기가 독립적인 동시에 ‘고코로 병원’을 매개로 이어진다. 마지막 단편이 하이라이트인데 앞의 네 편은 이를 위한 빌드-업이다. 각 이야기마다 주인공의 문제를 해결하는(혹은 해결을 위한 단서를 주는) 동시에 고코로 병원에 대한 비밀이 베일을 벗는다. 니케와 지토세의 정체도 서서히 드러나려다가 마는데, <2권에서 계속>이랜다. 작가는 아마도 시리즈를 기획한 것 같다.
작품집의 백미는 마지막 단편이다. 고양이를 잃어버린 인물이 상실과 이별, 그에 따르는 슬픔을 마주하고 극복하는 모습을 통해 상실의 대가가 언제나 슬픔은 아니며 그것을 딛고 일어설 용기가 누구에게나 있다고 작가는 전한다.

형식적으로 ‘오쿠다 히데오’의 ‘이라부-마유미’ 시리즈를 연상하게 한다. 통통 튀는 유머와 슬픈 무드의 공존, 주인공 커플이 정신과 의사와 간호사라는 점, 연작 단편집이라는 게 그렇다.
‘고양이 대여소’가 무대인 ‘시게마쓰 기요시’의 연작 단편집 ≪블랭킷 캣≫도 생각난다. 콘셉트나 형식이 비슷한 작품집이 그 외 몇 편 떠오르지만 (이 작품집에 있어서) 그것이 흠이 되지는 않는다. 다른 작품들과 차별되는 고유성이 있어 서로의 매력을 갉아먹지 않으면서 하나의 틀 안에 함께 존재한다. 일본 문학시장엔 (정말) 장르화(-化)가 되었을 정도로 고양이를 소재로 한 소설 작품들이 많은 것 같다.

(솔직히) 대단히 흥미롭거나 엄청난 통찰이나 각성을 기대할 만한 작품집은 아니다. 하지만 아기자기하고 소소한 즐거움, 오락으로서의 읽을 거리로서는 충분하다. 이야기 진행은 유려히 흐르는 물 같고 캐릭터들은 개성 있고 시작은 평범하나 진행은 독창적이다. 가까이 두고 거듭 읽을 책은 아닐 수 있지만(그럼에도 난 두 번을 읽었지만) 들인 시간이 아깝지는 않다.

(출판사 자칭) ‘힐링 소설’이다. 언젠가부터 ‘힐링’이라는 단어가 남용되는 것처럼 보여 싸구려처럼 보인다. 단어 자체가 싫은 것보다 여기저기 생각없이 아무데나 갖다 쓰는 모양새에 의미가 바랬달까.
거의 모든 소설의 주된 기능은 ‘힐링’이다. 소설은 어떤 식으로든 독자들의 마음을 치유한다. 사람들이 문학 작품을 읽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그거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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