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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들판을 걷다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8월
평점 :
일곱 편의 (중)단편들이 실려 있다.
가족 내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작별 선물>은 임팩트가 꽤 세다. 딜레마에 빠진 피해자와 가해자, 동조자, 방관자 모두를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배치한다. 작가는 주인공을 ‘당신’으로 지칭함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그녀 자신’이 되어 보라 종용하며, 이런 고통을 당신이라면 견딜 수 있는가, 어떻게 견디겠는가 묻는다. 호소력이 상당하다. 단순한 장면이면서도 모호하게 처리한 결말은 다양한 가능성을 내포한 듯 보인다.
<푸른 들판을 걷다>의 주인공인 사제도 딜레마에 빠진 인물이다. 그는 사제인 동시에 보통의 욕구를 지닌 남자다. 그는 ‘둘 다다. 둘 중 하나만일 수는 없는(38쪽)’ 인간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얼룩이 묻기 쉬운 흰 옷(45쪽)’을 입은 사제로 본다. 사제의 사생활을 목격했으면서도 그 일을 일절 화제 삼지 않는 ‘브린 양’은 상징적인 인물이다. 사제에 대한 작가의 대접은 앞에 실린 작별 인사의 주인공보다 박하다. 신비로운 중국인으로부터 치유를 받지만 그와의 소통은 불가하다. 하느님과의 관계도 비슷하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라틴어를 판독하는(64쪽) 게 고작이다. 하느님은 자연(64쪽)이므로 사제는 그냥 남기로 한다.
<물가 가까이>의 주인공도 사제와 비슷한 선택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알몸 상태(출생 이전, 삶의 시작)에서 내린 그의 선택은 회상으로 잠깐 나오는 할머니의 삶과 대구를 이룬다. 할머니가 앎의 부족으로 어쩔 수 없이 가부장의 지붕 아래로 돌아갔다면, 이 작품의 주인공은 자발적으로 관습을 따른다. 주인공은 위험과 불확실함뿐인 물 너머보다 비교적 탄탄한 현실이 약속된 ‘물 가까이’ 머무르기로 결정한다.
<삼림 관리인의 딸>은 중편 길이의 분량에 다양한 인물들의 개성, 크고 작은 사건들, 복선과 그의 회수, 서사의 진행에 따른 고조되는 감정 등, 비교적 완벽한 소설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반면 의미를 알 없는 엔딩은 다소 안일해 보이고, ‘디건’을 그렇게까지 가혹하게 대접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의문이 남는다.
개인적으로 엔딩의 ‘화재’ 장면은 클리셰 같아 좋게 보이질 않는다. <어셔 가의 몰락>이나 ≪레베카≫, ≪제인 에어≫ 등의 엔딩은 ‘집’이라는 배경이 인물 못지않은 이야기의 중심을 잡아주는 중요한 역할이 있었으므로 저택이 불 타는 장면이 크게 거슬리지 않았지만, 이 작품의 엔딩은 ‘과연 필요했을까’ 생각하게 된다.
<퀴큰 나무 숲의 밤>은 우리의 ‘선녀와 나뭇꾼’ 설화를 생각나게 한다. 미신적 요소, 신화의 특징을 접목한 신비로운 분위기, 서로 다른 듯, 닮은 ‘마거릿’과 ‘스택’의 성격 등으로, 이 책 에서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두 인물의 용기있는 행동으로 마무리되는 결말도 명징한 편이었다. 마거릿은 안전과 자유를 찾아 떠난다. 스택은 아내의 선택을 존중한다. 홀로 남은 스택의 삶은 무너지지 않는다.
<검은 말>과 <굴복>은 짧은 소품, 내지는 긴 장편의 도입부처럼 읽힌다. 이야기랄 것도 없다. 그저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며 보여주는 것으로 끝난다. 설정 자체가 작품인 셈인데, 개인적으로 이런 모양새의 작품은 좋아하지 않는다.
인물들의 성격, 배경, 분위기 등을 경제적으로 묘사하는 솜씨가 무척 좋았다. 진중하면서도 너무 무게를 잡지 않는 톤(tone)이 좋았다. 일상적인, 동시에 적당히 무게감 있는 분위기라고 할까. 그런 균형이 좋았던 것 같다. 질질 끌려다니거나 물고 늘어지는 감정이 없어서 좋았다. 작가와 작품 사이에 충분한 거리가 느껴졌다고 해야 하나. 자신의 이야기에 함몰되지 않고 객관성을 유지하는 작가가 좋았다. 구차하게 설명을 붙이고 덧붙이지 않는 담백함이 돋보였다. 길지 않은 분량에 이야기가 풍부하다고 할 만하다.
시골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많다. 이 책보다 먼저 소개된 두 작품 ≪맡겨진 소녀≫와 ≪이처럼 사소한 것들≫ 역시 농촌(혹은 소도시)을 배경으로 했다. 보다 앞서 읽은 ‘에드나 오브라이언’의 ≪시골 소녀들≫도 그랬는데, 아일랜드 작가들의 특기인가, 싶기도 하다. 편견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