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여자들 스토리콜렉터 82
아나 그루에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덴마크 해안가에 위치한 광고대행사 건물 안에서 한 여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건물의 야간 청소부로 일하고 있었다는 직업 외에 피해자의 신원 외엔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는다. 국적도, 이름도 나이도, 거주지도. 그야 말로 ‘이름 없는 여자’인 셈.
광고대행사 간부인 ‘소메르달’은(현장 내부 사정을 잘 안다는 이유로) 친구이면서 해당 지역 경찰인 ‘토르프’와 공조하여 수사에 착수한다.

추리소설의 전형적인 도입부를 지나고 두 가지 의문이 제시된다. 모두가 퇴근하고 빈 사무실에서 일개 청소부를 살해한 사람은 누구일까. 그리고 죽임을 당한 여자는 어떤 여자였을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여자의 신원이 하나 하나 밝혀지는데 작가는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것보다 그림자처럼 살아야 했던 피해자의 주변 상황들에 좀 더 집중하며, 삶(크게는 생존)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집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의 조명한다.

작가는 법이라는 테두리 밖에 존재하는 이들을 무대에 세운다. 이들을 향한 착취, 특히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드러내며 법 제도에 의문을 던진다. 동시에 선과 악은 그 경계가 분명한지, 선의(善意)가 단순히 그것뿐이지 않을 때, 즉 모종의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선의를 선의라고 할 수 있는지, 작가는 인간성에 내재된 결함과 함정을 고발한다.

덴마크 산(産) 미스터리이다. 세계적인 복지 국가로 이름 난 나라에서 이런 소설이 발표된다는 사실이 무척 고무적이다. 어떤 시스템에도 허점은 있나 보다. 이게 가능한가 싶지만,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단체에서 일어나는 횡령 사건이 종종 보도되는 현실을 생각하면, 덴마크든 한국이든 죄 짓고 사는 건 똑같구나, 생각이 든다. (설마, 덴마크라고 도둑이 없겠어) 범죄를 고발하려는 것 이상으로 자꾸 비뚤어져 가는 사회에 일침을 가하려는 의도가 더 크게 보인다. 이야기에 추진력과 힘이 느껴진다.

인물들이 굉장히 많은데 하나하나 잘 살렸다. 인간적인 모습과 고유의 성격을 부여받은 인물들 을 하나같이 좋은 놈, 나쁜 놈으로 구분하기가 꽤 어려운데, 이들 주위엔 선과 악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선도 없고 절대적인 악도 없는, 상황과 제 편의에 따라 사려 깊은 배려와 연민을 보이다가 한편으론 사익을 추구하는, 이런 게 인간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 ‘착한 사마리아 인’은 오로지 성경에만 등장하는 인물은 아닐까. 인물 각각의 이기심과 악의로 완성되는 이야기는, 그래서인지 하나의 거대한 모자이크 화(畵)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