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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
조나 레러 지음, 최애리.안시열 옮김 / 지호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신경과학의 발견들을 예견한 예술가들에 관한 것이다. 이 작가, 화가, 작곡가들은 인간의 마음에 대한 진실들을 발견했고, 과학은 그것들을 이제야 재발견하고있다. 예술가들의 상상력이 미래의 사실들을 예언한 셈이다. (서론에서)
저자의 이력부터가 흥미롭기 그지없다. 조나 레러는 콜럼비아 대학에서 신경과학을 전공했고, 옥스퍼드 대학에서 문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뉴욕의 일류 레스토랑에서 요리사로 일하기도 했으며 지금은 자유 편집자로 일하며 인기 과학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과학보다 한발 앞선 인물로 이 책에 선정된 이는 여덟 명.
월트 휘트먼, 조지엘리엇, 오귀스트 에스코피에, 마르셀 프루스트, 폴 세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거트루드 스타인, 버지니아 울프이다.
몸과 감정의 밀접한 관련성, 뇌의 가소성, 맛을 느끼는 방법, 변화하는 기억, 눈과 뇌가 사물을 보는 방식, 청각이 음악을 받아들이는 방식, 언어의 구조, 그리고 변화하는 자아까지 각자 관심을 가지고 표현하며 과학을 선도해간(실제로 당시의 과학으로부터는 비웃음을 샀지만... ^^;;) 이야기가 펼쳐진다.
- 여기서 내가 보기에 튀는 인물이 오쉬스트 에스코피에. 그녀는 요리사이다. 쟁쟁한 예술가들 틈에 웬 요리사인가 싶었다. 저자의 특이한 이력 덕인지 요리의 묘사도 생생하다. 물론 과학적 설명도 충실하고.
과학은 혀가 느끼는 맛은 네 가지뿐이라고 설명한다. 신맛, 단맛, 쓴맛,짠맛을 혀의 어느부분이 느끼는지 교과서에도 나와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진정한 프랑스요리의 창시자인 오귀스트 에스코피에가 가장 중시하는 육수 만드는 법을 보면 그 네가지 맛내기를 피하는 것만 같다. 오직 고기만 끓이고 태우고 우려내고, 짜투리 야채들을 이용하지만 네가지 주요 맛이 날만한 재료는 들어가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맛이라 인정하기 않지만 그녀는 가장 중시했던 그 고깃속 그 감칠맛의 정체의 과학적 표기는 L-글루타메이트이다. 일본 화학자 이케다 키쿠나에는 육수의 감칠맛 우마미(旨味)를 찾아 연구하다 MSG(인공감미료)를 만들어낸다. 1907년의 일이다. 1900년대 초반부터 에스코피에와 이케다는 그것을 확인했고, 대중은 예전부터 느끼고 즐겨왔던 그 맛. 단맛,신맛,쓴맛, 짠맛 이외의 맛을 과학은 21세기에야 인정한다. 2000년에 들어서야 고기맛을 아는 혀의 부분, 즉 글루타메이트 수용체를 발견했고, 그제야 고기맛이란 쾌락주의자의 환상일뿐이라는 과학계의 고집을 포기한 것이다.
- 과학의 발전으로 눈에 띄게 위기에 몰린 예술이 회화분야였다....고 할수 있을지 모른다. 사진기의 발명으로 말이다.
세상을 그대로 복사하내는 재주야 카메라에 당해낼 수 없어진 상황에서 (전기)인상파 화가들은 순간적인, 빛을 중시하는 화풍을 만들어낸다. 그런 와중에 합류한 (후기)인상파로 불리는 세잔은 '이상한' 그림을 그려낸다. 완전하지 않은 형태, 빈 공간, 길쭉길쭉한 선들이 들어선 그림을. 미완의 그림을. 그렇게 비어있음에도 세잔의 그림에서 우리는 형태를 볼 수 있다. 제대로 그려지지 않은 캔버스에서 산이 떠오른다. 당시에는 비판을 면치 못했던 이런 그림이 눈과 뇌의 작용이 많이 밝혀진 오늘날에는 과학적으로 설명이 된다.
사물이 수정체를 통해 망막에 거꾸로 맺히는 것까지는 예전부터 알려져 있었는데, 그 다음에는 어떻게 보게되는 것일까? 뇌속에 거꾸로 선 난장이가 있어서 그 그림을 제대로 보고 뇌에 설명해주는 건 아닐테고. 간단히 설명하자면 뇌의 각부분들이 각자 자기가 맡은 것만 수용하고 뇌가 다시 전체적으로 종합해서 파악하는 것이다. 어떤 부분은 음영을 파악하고 어떤 데선 색을 파악하고.... 그런 정보들을 종합해서 최종적으로 인식하게 되는데 뇌의 종합력이 고장난 사람들은 (올리버 색스가 소개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처럼) 눈에는 이상이 없으면서, 멀쩡히 보면서도, 전체적인 형태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의 시야 한복판에는 시신경이 망막으로 연결되는 부분에는 눈먼 부분 -맹점-까지 있다. 그런데 우리의 뇌는 우리의 눈먼 부분에 대해 눈 멀어있다. 안보이면서 주위에 보이는 것과 연결지어 보이는 체를 한다. 우리의 뇌는 어떻게든 멀쩡하게 설명을 하려고 한다. 그런 연습을 해온 까닭에 세잔 그림의 빈 부분을 채우는 작업도 수월한 것이다. 과학이 설명해주기 전부터.
예술보단 과학을 신봉하던 어리버리.... 한때 새로운 형식이던 글과 그림, 음악이 대중에게 수용되는 것은 예술가들의 변덕이 그냥 시간이 지나면서 받아들여진 정도로만 생각해왔는데, 치열한 탐구의 과정이었음을 알게되었다. (어째 너무 상투적 독후감 문구같지만, 진실한 고백임.... -.-;;)
이 책의 역자는 후기에서 예술이나 과학이나 궁극적으로는 사물들 사이의 보이지않는 관계, 보이지 않는 실재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겠냐고 하고 있다. 예술과 과학이 조화를 이룰때 진실을 향한 걸음이 더 빨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