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묘하고도 애매한 변화들. 그런 것들을 느낄 때마다 시준은 가슴께가 답답해져 왔다. 그리고 애써 무시했다. 오늘로 이러한 감정들도 모두 끝이었다. 오늘만큼은 하지하가 원하는 대로 해주리라고 마음먹었던 것처럼 시준은 그가 쑥스럽게 얼굴을 붉히며 웃어도 웃지 말란 소리를 하지 않았다.
다시는 안 그럴게.아프게 하지 않을게.그러지 말아줘.나한테 그러지 말아줘.울면서 속삭이는 말에 시준은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비겁하고, 비열하고. 말 한마디로 자신의 처지를 뒤바꿀 줄 아는 하지하.그는 시준에게만 멍청했을 뿐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이렇게 안겨 잠을 잘 수 있는 것도 그뿐이다. 그가 모든 걸 망쳐 놨음에도 지금 자신에겐 그밖에 남지 않았다.이제 자신의 세계에는 그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그게 우습고 이상하고 서글펐다.
"사랑한다고 말해 봐, 예전처럼. 거짓말이라도 상관없으니까, 그렇게 말해 봐."
그러니까 이 모든 비극은 자신 때문이다.이 사람과의 관계도, 삼촌의 죽음도, 모두 자신이 자초한 일이었다.그게 너무 아팠다.그 죄의 무게가, 자신에게는 너무 무거웠다.
진짜 괴물은 그 미친 남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명을 갉아먹는 자신일지도 모른다.그냥,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금 슬픈 것 같았다.햇살이 너무 찬란해서인지 눈뿐 아니라 가슴도 아려 오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