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 영의 악의 기원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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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영의 악의 기원

 

 어떠한 죄도 짓지 않은 채 어린 시절과 결별하고 어른이 된다는게 가능할까? 30년 전, 의문의 살인사건을 쫓아 9지구의 12월 폭동 당시의 사진 한 장을 주목하며 범인을 밝혀나가는 범죄추리소설이라는 이유만으로도 호기심이 생겼던 요 책. 인간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악한 기운을 여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충격적인 반전을 거듭하며 전개되는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책을 덮고서도 심장이 두근두근 거렸더랬다. 이 책은 무려 856 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분량의 도서지만 스토리가 바로바로 이어져 전혀 지루하거나 지치지 않게 잠시도 눈을 돌릴 수 없을 만큼 흡인력이 강했다.


 누가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용의자일지 주변인물들을 통해 하나씩 추리도 하면서, 만약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이런저런 상상도 해보고, 주인공 다윈 영의 심리 변화를 지켜보며 정말 어쩔 수 없는.. 아니, 모두의 행복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나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한 인간의 어둡고 잔인한 본성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마냥 욕을 할 수도, 그렇다고 잘했다고도 할 수 없는.. 용서받지 못할 살인자.


 계급체계가 확실한 사회에서 1지구란 어느 누구도 쉽게 오르지 못할 그들만의 리그로 모든 사람의 선망의 대상이었고, 부와 명예를 모두 가진 자들의 세상이다. 하지만 낮은 지구로 차츰 내려갈수록 그 격차가 벌어져 9지구는 그야말로 숨만 쉬며, 하루하루 아무 의욕도 없이 살아가는 어둡고 초라한 황무지의 모습을 떠올리는 그런 곳이다. 아무런 지원도 없고, 사람답게 대우도 받을 수 없는 모든 이들이 하나같이 꺼려하는 버려진 땅.


 제이삼촌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루미헌터, 1지구에서 천재들만 갈 수 있다는 프라임스쿨 학생인 다윈과 레오, 최고의 여학교를 다니는 프리메라 학생인 루미 이 세 사람의 나이가 16세이며 이 숫자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삼촌이 죽은 나이도, 범죄을 저지른 나이도 모두 16세가 되면서다. 그리고 책 표지에서도 힌트는 있었다는 것! 바로 후드였다. 1지구에서는 절대 입을 수도, 소장해서도 안되는 9지구를 상징하는 최하층 사람들만이 통용되는 후디들의 복장이다.


 할아버지 러너 영과 아버지 니스 영, 그리고 다윈 영까지 3대의 모습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신뢰하는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었다. 그러다 할아버지에게 아버지가 대하는 행동에서 아이러니 했던 그 이유가 밝혀질 때와 다윈의 밝고 순수한 천진난만한 귀여운 소년에서 아버지의 진짜 모습을 확인 후 다른 사람처럼 변해가는 그 과정을 보며 안타까웠지만 결국은 피는 못속인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참 무섭고 소름이 끼쳤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죄를, 다윈은 아버지의 죄를, 다윈의 아이가 또 다윈의 죄를.. 반복되는 악순환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론 루미와 엮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싶었다. 그랬다면, 다윈은 그렇게 심한 충격과 두려움으로 떨지 않아도 되고, 그 전과 똑같이 생활했을테니 그런 선택을 할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어찌보면, 다들 하나같이 나름대로 이유가 명확한 죄를 지은 불쌍한 사람들이었지만 세상에 비밀이 없듯 루미와 레오는 결국 증거를 모아 범인을 밝혀냈을 것이다. 책 속 글귀 中 남들에게 숨기고 싶은 비밀을 지키기 위해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짓게 되다면 바로 '가족' 때문일 거라는 글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누구나 납득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니..


 그렇지만 자기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소중한 가족을 해치는건 너무 잔인하고 슬픈 선택인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정말 상상도 못했던 반전이라 레오가 불쌍한건지, 루미가 불쌍한건지 정신이 없었더랬다. 진실을 알면서 숨기는 자와 죄를 짓고도 모든 것을 다 이루며 살아가는 자, 진실을 밝히려는 자와 진실을 덮으려는 자 사이에서 많은 생각이 스쳤던 <다윈 영의 악의 기원>. 후드를 쓴 다윈의 모습을 상상하며 이건 새드엔딩일까? 해피엔딩일까? 답을 내리진 못했지만 오랜만에 추리하며 알차게 즐겼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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