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구매
백선경 지음 / 든해 / 2019년 10월
평점 :
품절


 

폭우가 거세게 쏟아지던 이른 새벽, 바바리코트를 입고 등산을 하러 집을 나선 낯선 여자와 그녀를 미행하듯 뒤를 쫓는 의문의 남자가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바바리우먼 화영이 어렸을 때 술만 마시면 엄마에게 심한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던 친아빠, 엄마는 도망갔다가 다시 돌아오길 반복했고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거듭 용서를 빌며 사과를 했던 친아빠는 3일을 넘기지 못하고 술을 마셔댔다. 그렇게 겁에 질린 반복되던 일상의 어느 날 엄마가 갑자기 찾아와 도시 아파트로 같이 도망을 가게 되고, 그곳에는 정신과 의사인 새아빠와 오빠 둘이 기다리고 있었다.

 

술주정뱅이 친아빠를 피해 따뜻하게 보살핌을 받으며 단란한 가정을 이룰 수 있길 희망했던 부녀, 하지만 불행 끝 행복 시작이 아닌 더 끔찍한 악몽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 새아빠는 화영이 일곱 번째 생일날 기분 좋게 엄마를 외출하게 만들고선 특별한 선물을 주겠다며 뒷산으로 이끌어 어린 그녀를 성폭행했다. 추악한 민낯을 드러내며 어린 화영을 자신의 성욕을 풀 수 있는 도구로 이용한 것이다. 지울 수 없는 고통과 끔찍한 기억을 남긴 그날을 잊을새도 없이 그의 범행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는 사라졌고, 대신 잘못을 구하며 평생 그림자가 되어 지켜주고자 했던 배다른 오빠 기정이 그녀의 곁을 맴돈다.

 

그리고 봉제공장에서 잡역부로 일하다 성폭행 누명을 쓰고 직장에서 쫓겨난 콜린이라는 여성이 등장한다. 봉제공장 디자이너 겸 재봉사로 일하던 직원을 우연히 마주치고 그녀의 도움으로 온라인에서 김치판매를 시작했지만 4개월 만에 실패를 하고 디자이너가 만들어준 '주부세상만세'라는 카페를 개설해서 김치판매를 재게 한다. 점점 입소문을 타며 4년 만에 5만 명을 거스린 '주만세' 매니저로써 입지를 굳힌다. 하지만 김치판매 실적이 날이 갈수록 저조해지면서 단일품목에서 공동구매로 전환했고, 공구의 위력에 깜짝 놀라고 만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대세를 따르기 위해 변화를 준 '주만세'에서 공구를 할 때마다 대박을 쳤고, 수수료도 짭짤했기에 아예 공구 전문카페로 키우며 돈과 권력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다.

 

책 속 줄거리는 화영과 콜린 두 여성 주인공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교차되면서 전개된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서로 동떨어지고 교차점을 찾을 수 없던 이 두 여성이 과연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왜 책 제목이 공동구매인지 계속 의문을 갖게 하는 동시에 숨은 대반전을 파헤치기 위해 퍼즐을 하나씩 맞춰보는 재미가 있었다. 공통점이라곤 성폭행을 당했고 당할뻔한 화영과 콜린, 왠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으니 더 궁금증을 자아냈더랬다. 세상을 향해 더 잔인한 복수를 꿈꾸는 여자와 점점 더 큰 욕심과 욕망을 한껏 드러내는 여자, 가차없고 거침없는 행보가 이어진다. 특히 화영의 사고방식과 대처에 너무 놀랬다. 미쳐도 제대로 미쳤구나 싶었으니.
 

여자를 함부로 대하고 노리갯감으로 여기는 쓰레기 같은 남자들과 소통의 장이 아닌 철저히 이윤추구와 신분을 속이고 익명성을 악용한 편가르기의 실체를 까발린 카페 운영진과 회원들 간의 시기, 질투, 거짓 소문, 험담, 배신, 협박, 조작, 위기 등 그 속에서 학력과 재력과 신분과 나이를 떠나 너 나 할 것 없이 사람의 가면을 쓴 이기적인 속물들이었으며 양심도 정의도 배려도 인성도 못 갖춘 밑바닥 인생들이었다. 나만 아니면 돼 또는 내가 당했으니까 너도 한번 당해보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서로를 이용하고 내치고 속이면서 자기만족을 꿈꾸는 검은 속내와 음흉한 본성들을 엿볼 수 있었다. 흔들리는 유혹 앞에서 그들은 모두 범죄자였고 악인이었으며 반성 없이 본인들의 쾌락과 이익만을 추구했는데 꼭 그렇게 치졸하고 비열한 방법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싶을까 싶어서 더 안타깝고 씁쓸했던 <공동구매>. 
 

뒤틀린 생각과 인생 목표를 가진 그들의 실체와 민낯을 통해 독자들에게 건네는 교훈과 던지는 질문이 많은 것 같다. 때론 납득도 이해도 안 되는 부분이 종종 있었지만 악순환이던 인연의 연결고리가 끝끝내 완성됐을 때 당황스럽기도 하면서 세게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기왕이면 한번 사는 인생 상상도 못할 아주 끔찍하고 나쁜 기억이 내 삶을 송두리째 옭아매더라고 그 힘든 시간 움츠려들고 숨기보단, 씩씩하고 용기 있게 이겨내서 떳떳하고 보란 듯이 더 멋지게 살면 어떨까 싶다. 물론 3자 입자에서 하는 말이라 쉽겠지만 이미 엎질러지고 되돌릴 수도 없는 일, 그 악몽 때문에 죽을 만큼 힘들고 속상해도 어쩌겠는가...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더 창창하고 많은데 그 기억에 갇혀 소중한 시간을 마냥 허비하긴 너무 아까우니까 말이다.

 

노력 없이 남의 인생을 짓밟고 남의 인생을 탐내는 이중인격자들, 내 것이 아닌 것에 뻔뻔하게 욕심내고 죄책감이란 1도 찾아볼 수 없는 내 인생에서 멀리하고픈 그 세상 조연들이 판을 쳤다. 그럼에도 똑같은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선 그 시간에 본인의 삶에 집중하고 충실하는 게 현명하고 훨씬 이득이겠다. 그나저나 이중 아이디를 쓰는 사람이 많다는 건 흔한 일이라고 들어서 익히 알고는 있지만, 카페에서 운영진이나 회원들이 조작 프로그램을 여러 개 돌리면서 악용하는 사례가 많다고 하던데 책을 보니 진짜였나 보다. 블로그도 돈만 주면 방문자수랑 좋아요 하트수도 얼마든지 조작 해준다고 하는데 남들 보다 조금 느리고 뒤처진다고 해서 정직하게 사는 게 그렇게 힘든지 진심 궁금타. 왠지 이 부분에서 뜨끔하실 분 많으실 것 같다. 화영과 콜린을 중심으로 벌어진 만행들이 현재도 벌어지고 있을 수도 있고, 실현 가능성도 아주 높아 보여서 왠지 더 소름 끼치고 무섭게 느껴졌던 요 책. 그 충격적인 결말은 직접 읽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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